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45
45화
“그렇다면 로드 스털링께선 감시당하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 몸으로 돌아가시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당하실 수도 있고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알라스테어는 떨떠름히 대꾸했다. 하지만 알라스테어가 알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그들은 던바틴의 후계자를 암살한다는 위험을 안고도 그를 제거할 것이다. 마벨우드 저택보다는 열차나 기차역이 훨씬 적절한 무대일 테고. 게다가 지금의 그는 수행원 하나 없었다.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우리 저택에 머무셔야겠네요.”
만찬 때도 알라스테어는 저택에 머무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그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늑한 이 저택은 알라스테어 렌프루에게만은 사방이 가시투성이였다.
“저를 불편하게 여기고 계시지 않습니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직설적으로 던진 말에 코델리아는 드레스 자락을 말아쥐었다. 그러나 이윽고 냉랭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마벨우드가 던바틴보다 넓은 아량을 가졌을 뿐이에요. 원한을 호의로 갚을 만큼이나.”
알라스테어는 잠깐 욱한 듯했으나, 마벨우드 일가 앞에서는 정말로 단 한 마디도 반박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히…… 머물겠습니다.”
“나인 호더의 저택에 편지를 보내서 자초지종을 알리시는 게 좋겠어요. 하지만 마벨우드에 있다는 말은 빼 주시면 좋겠네요. 정말로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대화가 마무리되자 하나둘 자리를 떴다. 이윽고 응접실에는 시더와 에스페란사만 남았다.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때문인 것 같으니 빨리 떠나 주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고?”
“앞으로 숲에는 나만 갈게요.”
눈썹이 비뚤게 올라갔다. 시더는 못마땅히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팔뚝을 두드렸다.
“내가 못 미더운가 봐요?”
들켰다. 에스페란사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쪽에도 싸울 사람이 필요하니까…….”
나이 든 웰즐리 부인, 연약한 코델리아, 환자 알라스테어. 하인들이 몇 있긴 하지만 결국 저택엔 시더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 구조였다.
“일단 믿어 주죠.”
그렇게 당초의 체류 계획은 반절로 줄어들었고, 마벨우드에는 군입 하나가 더 생겼다.
* * *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에스페란사는 그사이 그린벨트 숲 너머의 폐촌에 세 번 더 다녀갔고, 도합 한 줌의 몬스터 털을 얻었다. 첫날의 털 쪼가리 몇 개에 비하면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 그 털 쪼가리도 에스페란사가 낸 성과였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숲엔 에스페란사 혼자 가는 것이 맞았다. 시더가 얼마나 불만스러워하는지와 상관없이.
물론 시더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에스페란사가 긁어모은 몬스터 털은 모아오는 족족 시더의 던전 탐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뭔지도 모를 기괴한 문자열을 남긴 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연구실로 쓰고 있는 방에서는 나날이 기름 냄새가 진해졌고, 톱니바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타자기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얼추 시더의 허리 높이까지 오는 양의 문자열을 쏟아 냈다. 에스페란사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고, 시더는 곁눈질로 대강 읽고도 이해했다.
“표본은 충분해요. 기계가 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학습만 시키면 비슷한 수준의 마력 발생을 감지할 수 있을 거예요. 몇 번 시험을 해 보긴 해야겠지만.”
몬스터의 장기도 피부도 아니고 털이라는, 마력이 적은 부위를 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던전 탐지기의 민감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시험 운행에서는 마구간에서 양해를 구하고 뽑아 온 말의 털을 통제 조건으로 쓸 예정이었다. 당연히 실험 조건에는 시험을 위해 남겨 둔 몬스터 털이 들어갈 것이다.
시더는 늦어도 나흘 내에는 던전 탐지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한시도 지체할 예정이 없었다. 자기 할 일을 끝낸 에스페란사가 응접실에서 무료하게 굴러다니든 말든 연구실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이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에이번데일 백작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저녁 식사 시간 정도가 다였다.
“때 되면 나오겠죠.”
이대로 괜찮은 거냐고 묻는 웰즐리 부인의 말에 에스페란사가 심드렁히 대꾸했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원래 저래요.”
에스페란사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너무 진지하게 걱정 중이라 놀라고 있었다. 시더가 밥을 굶든 하루 종일 방 밖으로 안 나오든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잠에 들든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에이번데일 저택의 고용인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무 걱정도 안 하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아주 사람을 길들여 놨지.
그런데 전혀 엉뚱한 사람이 이 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 * *
“들어와요.”
나긋나긋 부드러운 목소리에 문을 두드린 손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문고리를 돌렸다.
“필요한 거라도 있어요? 구경할래요?”
문전박대를 당해도 이만큼 당혹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저 녹아내릴 것 같은 말투는 뭐람?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뒤늦게 깨달았다.
기계에 고개를 박고 눈 한 번 들어 올리고 있지 않은 저 작자, 사람을 착각한 것이다.
“로드 에이번데일,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그제야 시더가 고개를 들었다. 익히 알던 그 세상만사가 다 지루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평소에 알던 눈빛이 되려면 거기에 약간의 예의를 코팅해야겠지만 원래도 있으나 없으나 하던 것이니만큼 큰 차이는 없었다.
“레이디 코델리아. 웬일이죠?”
목소리도 영혼이 빠져나간 듯 무심해졌다. 코델리아는 오히려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은 진짜 소름 돋을 뻔했다.
잠시 숨을 가다듬은 코델리아가 허리에 손을 얹고 물었다.
“대체 언제까지 방에서 안 나오실 생각이죠? 저녁 식사만 끝나면 냉큼 방으로 돌아가 버리고,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여기가 여관인가요?”
“보시다시피 내가 좀 바빠서, 용건만 간단히 해 주면 고맙겠어요.”
시더는 코델리아의 얼굴을 확인한 후 타자기에 인쇄되는 글자로 시선을 돌렸다.
“나가서 사격이라도 좀 하시고, 승마, 승마는 좀 힘들겠지만, 체스라도 좀 두시고, 그러란 말씀이에요. 여느 신사들처럼.”
승마가 왜 힘들지? 시더는 줄줄이 뽑히는 시험 결과를 확인하며 머리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용건은?”
“……이 집에 남자 손님이라고는 딱 둘인데, 어쩜 둘이 행동반경 하나 안 겹칠 수가 있어요? 카드 게임을 하든 고상한 토론을 하시든 같이 좀 어울려요.”
“전부 흥미 없어서요. 손님 대접이 부족할까 걱정한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돼요. 아주 만족하고 있으니까.”
“제가 만족이 안 된다고요. 언제까지 신사분을 옆에 앉혀 두고 있어야 해요? 에스페란사랑 둘이 놀고 싶다고요. 제발 로드 에이번데일이 로드 스털링을 좀 데리고 놀면 안 되겠어요? 남자들끼리 하는 놀이 같은 거 없어요?”
그제야 코델리아가 얼씬도 않던 연구실까지 행차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친구랑 좀 놀고 싶으니 알아서 알라스테어를 데리고 그놈의 ‘남자들끼리 노는 것’을 하러 가라는 것이다.
사냥, 승마, 시가 피우기……. 알라스테어는 대부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체스나 당구 정도. 사실 시더도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고개를 든 시더가 삐딱하게 물었다.
“상식적으로, 내가 누구를 데리고 논다면 로드 스털링이겠어요, 에스페란사겠어요?”
말문이 막힌 코델리아가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로드 에이번데일, 상식이 통하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면전에 대고 욕을 해도 시더는 화를 내기는커녕 비스듬한 미소만 지었다. 뒷 목이 서늘해지는 미소였다. 시더는 그대로 코델리아를 내쫓았다.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돌아가요. 방해되니까.”
문이 닫혔다. 자기 집에서 축객령을 당한 코델리아가 하, 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그런다고 닫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이틀 동안 시더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에두른 거절이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시더가 에스페란사를 연구실로 불렀다.
코델리아와 시더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에스페란사는 응접실에서 껴안고 있던 쿠션을 그대로 안고 연구실에 입장했다.
“와…… 이게 다 그 자료예요?”
“반은 쓰레기지만, 그렇죠.”
시더의 키만큼 쌓인 종이를 올려다보던 에스페란사가 감탄을 터뜨렸다. 내용은 하나도 알아볼 수 없지만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성능 시험까지 전부 끝났어요. 마력 반응이 미달로 뜨기는 하지만, 던전 탐지기니까 진짜 던전을 만나면 어떻게든 보충이 될 거예요.”
“……던전을 안 만나길 바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요?”
시더는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재료도 많지, 마력 반응도 특이하지. 이걸 왜 포기해야 하죠?”
“아, 네.”
인류야 어떻게 되든 자기가 필요한 것만 모을 수 있으면 다라는 저 태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 반갑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렇게 또 하나를 해결했네요. 당분간은 좀 쉬고 싶지만.”
“당신이 연구를 쉬기도 해요?”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휴식이 필요하죠. 아무리 즐거운 취미도 재충전이 없으면 오래 즐기지 못해요.”
이러나저러나 그에게 마도 공학은 취미일 뿐이라는 것이다. 에스페란사는 시더의 뒤에서 증기를 뿜으며 복잡하게 돌아가는 던전 탐지기를 보며 혀를 찼다. 저런 게 취미란 말이지.
“쉬고 싶지만, 웰즐리 부인이 저택 기계의 수리를 부탁했거든요. 내가 수리공인 줄 아나 봐요.”
시더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공구를 챙겼다.
“가정용이야 뻔하니까 금방 끝나겠죠. 같이 갈래요?”
에스페란사는 잠깐 망설였다. 귀찮았다. 하지만 어차피 할 일이라고 해 봐야 서로가 아주 불편해 보이는 두 어린이들 사이를 지키고 있는 것뿐이었다. 가끔은 다독여 게임이라도 같이 시키기도 하고. 이게 손님인가 보모인가.
꼬마들에겐 연구실로 오기 전에 체스판을 쥐여 주고 왔으니, 한동안은 거기에 빠져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