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49
49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껏해야 스물 초중반으로 보이는 낯선 숙녀는 아무리 총을 들고 있다고 해도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에스페란사가 등장하자마자 그들을 위협하던 몬스터를 단숨에 도륙하지 않았더라면, 말하는 사이사이 몬스터 몇 마리를 잡아내지 않았더라면, 반발은 지금보다 더욱 거셌을 것이다.
“일단 다들 가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저택에 가는 게 낫잖아요.”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교회는 다 무너졌고.”
“저택에 가도 거기서 죽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가는 것으로 났다. 하나둘 쓰러지듯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태어나면서부터 한마을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단합력이 좋았다. 눈빛만 보고도 할 일을 척척 찾아냈다. 부상자는 부상자대로 눕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가 들쳐 안고, 부모와 헤어진 아이는 힘이 좋은 사람이 업어서 그럭저럭 움직이기 좋은 진형이 됐다.
“저희 왔습니다!”
저택 사람들이 도착하자 그들은 짧지만 뜨거운 해후를 나누었다. 헤어져 있었던 것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지금의 한 시간은 가족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제리, 우리 엄마 봤어? 다치시진 않았지?”
“걱정할 필요 없어. 멀쩡하셔. 지금은 저택 주방에서 요리하고 계실걸. 아, 미스 헌터. 코델리아 아가씨께서 부디 사상자가 없도록 잘 부탁드린다고.”
방관하듯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따금씩 접근하는 몬스터만 쏘아 죽이던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페란사에겐 귀찮은 타인들이지만 코델리아에겐 평생 알아 온 귀한 영지민들이고 이웃들이었다. 에이번데일 영지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면 아마 시더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했겠지?
“왜 그러십니까?”
“아니에요. 얼른 출발해요.”
“다들 갑시다! 빨리빨리 움직여요!”
본질은 순박한 농민이지만 마법 무기를 갖춰 들자 제법 군인 같은 태를 내는 젊은 남녀들이 영지민들을 이끌었다. 에스페란사는 제일 뒤에서 사람 무리를 노리는 몬스터 무리를 도륙했다. 요령 좋게 쏟아지는 핏물과 진액을 살살 피해 급소만을 공략했다.
“부족해…….”
기껏 제대로 된 대 몬스터 전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는데 사람들 다칠까 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이미 전투 모드로 팽팽하게 당겨진 몸이 얼른 싸우게 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미스 헌터, 낙오자는 버리고 가겠다더니 맨 뒤에서 챙기네요.”
다섯 살짜리 잠든 아이를 업어 본의 아니게 제일 뒷줄에 위치하게 된 마을 사람 하나가 에스페란사를 보며 말했다.
“못 가겠다고 주저앉으면 놓고 갈 거지만, 움직이겠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좀 더 힘내 보기는 해요.”
“……알았어요. 잘 되진 않네요.”
몇 번 더 재게 발을 놀리던 여자가 힘없이 웃었다. 묵직한 아이를 업고 가느라 가뜩이나 바닥이던 체력을 긁어다 쓰는데 마음을 먹는다고 발이 움직일 리가 없었다.
“앞에 누구 하나 와서 애 좀 받아 줘요!”
에스페란사가 소리를 높이자 청년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제가 업겠습니다.”
“이쪽 분도 업혀야 할 것 같은데.”
“됐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알아서 갈 수 있어요. 고마워요.”
얼마 안 있다 뒤처질 게 뻔했지만, 에스페란사는 여자가 허세를 부리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20분 정도 더 걸어가면 저택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맙소사.”
여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짙은 절망이 배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저택을 향해 걷던 발들이 어느새 못 박히듯 멈춰 그저 숲에서 온 거대한 생명체를 바라보기만 했다.
온몸이 바위로 된 거인이었다. C급 던전에 나오는 바위 거인의 수준이야 다 그렇고 그렇지만.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에스페란사는 뒤를 흘끔거렸다. 저 사람들을 다 데리고 입에서 돌덩어리를 뱉어 내는 거인과 싸우라고? 앓느니 죽지.
“빨리 움직여요. 내가 유인할 테니까, 당신이 여기 이 분 업고 가요. 나머지는…… 무기 쓸 줄 알죠? 특히 그거, 제일 낮은 화력으로 두고 써도 웬만한 애들은 죽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내 자리 맡아요.”
에스페란사는 시더가 개량한 총을 힘겹게 들고 있는 건장한 남자를 자기가 있었던 일행 뒤쪽 끝에 세우고는, 바위 거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 약한 위력으로 툭툭 건드리듯이 총을 쏘자 바위를 뿜어내던 거인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위 거인은 머리가 나쁘다. 돌이니까. 에스페란사는 거인이 볼 수 있게 로브를 벗어 휘두르며 일행의 반대편, 숲을 향해 달려 나갔다.
“꾸물대지 말고 가요!”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뒤를 보며 지체하는 사람들을 향해 일갈한 에스페란사는 발을 굴러 높이 점프했다. 나뭇가지를 잡고 돌아 그 반동으로 거인의 어깨를 타고 오른 에스페란사는 주저 없이 거인의 눈으로 추정되는 구멍에 총기를 쑤셔 넣고 발포했다. 탕!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그르르륵, 바위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거인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에스페란사의 몸은 낙엽처럼 가볍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 떨어져 나왔다. 맨땅 대신 적당히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 착지한 에스페란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까지 가면 몬스터는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휘청거리며 거인이 뿜어내는 바위를 향해 총을 쏘았다. 거대한 바위가 나무를 짓누르고 부러뜨렸다. 에스페란사는 넘어지는 나무 몸통을 밟고, 거인이 던지는 바위를 계단처럼 밟아 올랐다.
거인의 텅 빈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착각이 들었다. 총 안쪽의 톱니바퀴가 마력에 감응해 거칠게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달아오른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눈이 아니라 정확히 미간의 급소를 겨냥해서.
새파란 광선이 바위 거인의 급소를 뚫고, 애꿎은 나무뿌리까지 뚫어 버렸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시 사격 자세를 잡았다. 바위 거인의 몸 위에 붉은 십자 모양이 떴다. 입꼬리가 쏠리듯 올라갔다.
3, 2, 1.
심장이었다. 확인 사살. 눈이 시린 마력 광선과 함께 시야 한편, 에스페란사의 상태 창에서 마력이 후두두둑 떨어졌다.
쿵. 거인은 수십 개의 돌덩이로 변했다. 위에서부터 허물어졌다. 에스페란사는 이크, 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거인의 시체에서 멀어졌다. 저 바위, 잘못 맞으면 중상이다.
확실히 무기가 좋아지니 몬스터 하나하나를 해치우는 속도가 빨랐다. 그에 비해 마력 소모량은 별로 커지지 않았다. 아직 저택에 들어가지 못한 마을 사람들 때문에 다소 서두른 감이 있는데도.
고작 두 방에 바위 거인을 물리치다니. 마음에 든다.
역시 마법 무기의 성능을 확인해 보려면 실전이 최고였다. 바비큐 거리로나 먹을 멧돼지 따위랑은 비교가 안 된다.
[전투 모드 ON]전투 불능 0
상태 이상 0
사망 8
[바위 거인을 물리쳤습니다. 던전의 보스가 당신을 인식합니다.]그렇지. 이제 슬슬 보스가 나오겠군. 적어도 한두 시간 내면 나올 것이다. 보스를 죽이고 약한 놈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던전 공략은 끝이다. 반대로 해도 되지만 에스페란사가 7년이란 기간 동안 게임을 하면서 수천 개의 던전을 공략해 본 결과, 이게 편했다.
“어디 보자.”
바위 거인은 헌터 입장에서 그다지 공략하고 싶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성가신데 보상이랄 것도 없었다. 애초에 온몸이 바위로 이루어진 녀석이니. 이리저리 부수고 깨 봤자 돌이 돌이지.
허물어진 바위 거인의 몸을 잘 뒤져 보면 결정석을 발견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때에 그런 짓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에스페란사는 돌무더기를 망설임 없이 지나쳐 저택 쪽으로 달렸다. 발밑의 흰 부스터가 흙을 밟을 때마다 번쩍였다.
* * *
멀리서 보면 마을 사람들의 행렬은 물방울 모양 같았다.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노인과 아이들, 그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갈수록 느려졌다.
“조금만 힘내요. 저택이 바로 저기 있잖아요.”
에스페란사의 지시에 따라 맨 뒤를 지키던 청년이 말했다.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것마저도 재촉으로 들렸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교회에서부터 지쳐 있던 몸이 아무리 힘을 내 봐야, 조금 빨라지는 것에 불과했고, 그에 비례해 숨은 더 거칠어졌다.
탕. 청년은 다가오는 몬스터를 향해 총을 쏘았다. 몬스터는 허우적거리며 거친 숨을 들이켰다.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나며 총을 연사했다. 그중 반절은 질긴 가죽에 맞고 튕겨 나갔지만, 몇 발은 제대로 연약한 부분을 맞추었다. 오랜 대치가 끝나고, 겨우 몬스터를 해치운 그가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마도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일반 총은 몇 번 손에 쥐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전혀 달랐다. 반동도 없고 깔끔한 데다, 위력을 낮게 맞춰 두었는데도 몇 발 쏘니 몬스터가 죽었다. 사냥용 엽총 따위로는 간지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가 해치웠습니다. 걱정 마시고, 얼른 가세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고마워. 자네 없었음 어쩔 뻔했나.”
“별 것 아닙니다.”
어깨가 솟았다. 귀족들은 이런 걸 자기들끼리 독점하고. 나인 호더에 사는 온실 속 화초들보단 툭하면 산적이나 들짐승을 만나는 그들 같은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물건이 아닌가. 아까 대단한 무위를 보여 준 숙녀도 무기가 좋아서 뛰어나 보였던 것이다. 그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한두 개도 아니던데, 하나쯤…….
“이쪽 좀 도와줘!”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불에 달군 쇠 부리를 가진 괴수를 보고 기겁했다. 날개가 무려 두 쌍에, 발톱도 달군 쇠처럼 붉었다.
“저게 뭐야!”
청년이 총을 쏘았다. 그러나 새가 아래쪽 날개를 휘두르자 마력탄은 힘없이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