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54
54화
“무기 가진 사람 더 없어요?”
“저한테 있습니다! 그런데 총을 쏠 줄 몰라요!”
그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코델리아는 울상을 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코델리아 자신도.
잠깐. 전부는 아니다.
“로드 스털링! 군사 훈련을 받은 적 있다고 했죠?”
나서지 못한 채 한구석에서 총만 쏘던 알라스테어가 뒤늦게 대답했다. 제대로 서지 못해 목발에 의지한 채로도 그의 정확도가 제일 높았다.
“예, 레이디 코델리아.”
“지휘를 당신에게 일임하겠어요.”
“하지만.”
“다들 들어요. 로드 스털링의 지시에 따르도록 해요.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알라스테어는 흔들리는 눈으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창백한 소녀가 입꼬리에 힘을 주어 미소를 꾸며 냈다. 그를 믿는다는 듯이.
던바틴에게 받은 모욕을 잊지 않고 있으면서, 그를 그렇게나 싫어하면서, 이렇게 쉽게 지휘권을 넘기다니. 대단한 배포였다. 열여덟 소녀가 아니라 숙련된 군인이라도 쉽게 저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빨리, 지시 안 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코델리아가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한 이상, 조금의 흠도 잡힐 수 없었다.
“원거리 무기를 가진 사람은 뒤로 물러서서 머리를 노립니다. 단거리 무기를 가진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부상자와 노약자를 우선으로 피신시키겠습니다!”
* * *
괴물이 기다란 팔로 바닥을 쓸어 낼 때마다 사람들은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쓰러졌다. 비쩍 곯아 뼈와 가죽뿐인 괴물은 힘이 무시무시했다.
검과 낫, 도끼, 창을 든 사람들도 공격할 때를 잡지 못해 헛손질만 하기 일쑤였다. 그야말로 오합지졸. 체스 말처럼 일사불란한 병졸만 지휘해 보았던 알라스테어도 어쩔 줄 몰랐다. 그사이 괴물의 손이 드디어, 사람을 쥐었다. 갈고리에 옷이 걸려 버린 불쌍한 어린아이였다.
“사, 살려주세요!”
코델리아는 덜덜 떨면서도 권총을 들어 괴물을 겨냥했다. 탕. 운이 좋게도 괴물의 몸은 코델리아의 연약한 총탄도 맞아 주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목발을 짚은 채 다가온 알라스테어가 코델리아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알라스테어는 후들거리는 코델리아의 손을 강하게 끌어당겨 이제 머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영지민을 겨냥했다.
“무슨 짓이에요!”
발포는 군인의 말투처럼 간결했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을 떨어뜨렸다.
“죽…… 였어요?”
“안 죽었습니다. 레이디 코델리아, 마법 무기는 손을 떨면 위력이 약해집니다. 절대로 떨지 마십시오. 조준은 실패해도 괜찮지만, 머리를 노리십시오.”
대부분의 개체에게 머리는 급소다. 특히 눈은. 입을 벌리고 있다면 입 안을 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코델리아에게 그만한 요령은 없었다.
알라스테어가 한 말에 유의하며 총을 쏘았지만, 몇 발을 쏘아도 괴물은 도무지 쓰러질 틈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력탄들이 괴물이 휘두른 손등 거죽에 맞아 튕겨 나갔다.
에스페란사는 한 방에 거대한 새를 추락시켰다던데. 똑같이 총을 들고도 왜 나는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는 거지? 왜 내가 쏜 마력탄을 맞고는 눈도 깜짝 안 하는 거야?
코델리아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시키는 대로 괴물의 머리만을 겨냥했다. 몸통을 노릴 때보다 당연히 더 많이 빗나갔다.
“악!”
누구의 비명인지도 알 수 없었다. 괴물이 손발을 휘두르자 사람들은 저만치 튕겨 나가고, 밀려나고, 그 힘에 뼈가 부러져 비명을 질렀다.
코델리아는 여전히 멀찍이 서 있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안전할 리 없었다. 괴물은 지금도 이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코델리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저쪽이다!”
2층으로 이어지는 홀 계단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정체 모를 액체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땀에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모습에 더 마음이 놓였다.
전투를 겪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위층의 상황이 적어도 전력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는 여유롭다는 뜻이니까.
코델리아는 저려 오기 시작하는 팔에 힘을 준 채 커다랗게 물었다.
“위층의 상황은 어때요?”
“로드 에이번데일께서 상대하고 계십니다. 거의 끝났어요. 저희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아.”
힘겨운 미소가 터져 나왔다.
“레이디 코델리아, 앞을 보십시오!”
그때였다. 코델리아는 눈앞에 섬뜩한 팔이 들이밀어지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굴렸다. 장식 없는 드레스 자락이 어디에 걸렸는지 뜯어졌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코델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총을 마구 휘두르며 쏘았다.
눈앞이 하얘졌다.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괴물의 팔은 운석처럼 엄청난 힘으로 벽을 후려쳤다. 벽이 쩍 갈라졌다. 그 아래에서 달달 떨고 있는 코델리아의 머리 위로 돌조각이 떨어졌다. 괴물의 다리를 찌른 검이 아니었다면, 저 손이 벽을 빗맞지 않았다면. 식은땀이 흘렀다.
검을 든 사람들이 괴물의 팔을 찔러댔다. 긴 팔에서 녹색 진액을 떨어뜨리는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마구 휘둘러댔다.
검이 이쑤시개처럼 뽑혀 나가자 끈적끈적한 녹색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왔다. 움직임은 둔해졌지만 더 공격적이었다. 멀쩡한 괴물보다 아픈 괴물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진형을 유지하십시오. 도망가면 안 됩니다!”
알라스테어가 목이 터져라 말해도, 군사 훈련을 받은 것은 그 혼자였다. 민간인들은 살을 찢는 괴물의 팔을 눈앞에 두고 평정을 유지하며 무기를 휘두를 수 없었다.
“뭐지? 어? 마력이 다했잖아!”
“젠장, 내 것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마을 사람들은 에스페란사처럼 거의 무한정 마력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헌터의 마법 무기는 마력을 지닌 헌터를 기준으로 했기에 마력 효율이 떨어졌다. 게다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끼워 넣은 마정석의 제련 기술은 13년 전의 것.
이 모든 조건을 합치면, 시더 클라이번이라는 플러스알파를 붙인다고 해도 마이너스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코델리아의 권총은 이제 막 쓰기 시작해서 아직까지 작동했지만, 하나둘 작동을 멈춘 마법 무기를 보면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제발, 그 전에…….
괴물이 다시 팔을 휘둘렀다. 거대한 홀을 가로지르며, 벽에 붙어 천천히 노인과 부상자들을 수습하던 웰즐리 부인에게로.
“할머니!”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홀에 가득 울려 퍼졌다. 허리가 꼿꼿한 노인은 머리로 쏟아지는 괴물의 팔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으윽!”
웰즐리 부인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코델리아는 마음을 굳게 먹고 천천히 눈을 떴다. 웰즐리 부인은 깔려 있었다. 홀의 바닥 위에 내던져진 목발과, 웰즐리 부인을 향해 쇄도하던 팔을 막은 커다란 등. 셔츠 위로 피가 배어 나왔다.
“로드 스털링?”
괴물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다. 저기에 맞으면 진짜로 죽는다. 코델리아는 겨우 총을 겨누었다. 딸깍. 마력이 다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그때 계단 위로부터 총성이 쏟아졌다. 총이 아니라 대포 같았다. 날카롭게 벌어진 총탄이 정확히 괴물의 머리를 파고들어 눈으로 나왔다. 코델리아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시더는 권총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한바탕 전투를 치르느라 흐트러진 채였다.
“정말 자기만 좋은 걸 썼잖아?”
코델리아는 그 틈에도 잊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걸 볼 틈이 있었다니 대단한 관찰력이군요, 레이디 코델리아. 하지만 부상자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 맞다. 코델리아는 황급히 움직였다. 닥터 멜슨과 마을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침대가 있는 방으로 이송했다. 뼈가 부러진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히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어설픈 지휘에 그보다 더 어설픈 무력으로 임한 전투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로드 스털링, 움직일 수 있겠어요?”
웰즐리 부인이 손수 그를 부축했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등에 커다란 상흔이 난 알라스테어는 개중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두 명의 하인이 더 붙었다. 코델리아는 그들을 보내고, 시더를 돌아보았다.
“로드 에이번데일.”
코델리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더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와주고 싶지만, 난 저걸 보고 싶어서요.”
그의 손짓을 따라 창문을 본 사람들은 모두 숨을 삼켰다.
창문 밖에서는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택만큼이나 거대한 괴물이 독을 뿜어내고, 그것을 단신으로 상대하는 작은 인간.
그러나 무모해 보이지 않았다.
발을 한 번 굴러 하늘까지 날아오르고, 몸이 허공에 떠 있어도 조준에 실패하지 않는다. 이게 진짜 에스페란사의 전투였다. 저런 사람을 걱정했었다니, 한참 주제넘었다.
“처음 봐요.”
코델리아가 멍하니 속삭였다. 그들뿐 아니었다. 바삐 지나가던 사람들도 커다란 창문 너머에서 펼쳐지는 전투에 때때로 시선을 빼앗겼다. 시더는 1층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런 거였군.”
이래서 ‘헌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저택의 사람들은 괴물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수십이 달려들어야 한다. 훈련받은 군인을 배치한다고 사정이 달라질 리 없다는 건 그가 더 잘 알았다.
이런 던전이 한 개도 아니고 이 나라 안에 수십 개. 일당백의 전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운 좋게 나타난 것이 이 ‘헌터’란 인종들.
시더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지나치게 미약해 전투의 국면이 전환되자 흔적도 남지 않았다.
부상자의 처치가 어느 정도 끝난 후, 다른 사람들도 삼삼오오 저택의 창문가로 모여들었다. 비현실적인 전투였다. 오히려 그래서 위기감도 들지 않았다.
시더는 자신이 처치했던 괴물을 떠올렸다. 저것과 비교하면 우스울 정도였다. 그도 그것을 처치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에스페란사라면 특유의 능숙함과 단호함으로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았겠지.
발밑이 독으로 거멓게 죽어 있었다. 그러나 에스페란사는 장비로 무장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멀쩡했다. 거대한 총 하나를 어깨에 짊어진 채, 무려 괴물의 잘린 목 단면 위에서, 몸부림치는 다른 머리를 향해 쏜 마력의 궤적이 선명했다.
예술 작품 같은 움직임보다도 더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눈빛이었다.
서슬이 오른 눈빛은 잔혹한 쾌감에 물들어 있었다. 에스페란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눈빛. 독기와 마력이 얽히고설킨 틈에서도, 이 먼 거리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어떡해!”
그때 부상자 처치를 도우면서도 창문을 힐끔대던 코델리아가 주먹을 쥐고 발을 굴렀다. 히드라의 꼬리가 에스페란사를 후려친 순간이었다. 시더 역시 창틀을 꽉 쥐었다.
그의 마법사는 중심을 잃지 않고 착지해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시더가 느꼈던 즐거움은 흔적 없이 사그라들었다.
다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