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7
7화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맹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화 안 나셨어요?”
시더는 혀를 찼다.
“고작 그런 걸로 화를 내진 않아요.”
분명 아까까지 꽤 화가 나 있었던 거 같은데. 에스페란사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분명히 화났었는데. 그치만 지금 놀리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겠지. 에스페란사는 멋대로 나불거리려는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나는 당신 얼굴을 알고도 못 알아봤잖아요?”
아, 그랬지. 너무 능청스럽게 사과도 없이 넘어가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럼 이쪽도 사과를 안 해도 되겠지? 에스페란사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목을 풀었다. 시더는 혀를 차며 티팟을 기울여 빈 찻잔을 채워 주었다.
차가 남아 있었는 줄은 몰랐다. 다 식어서 씁쓸해진 차로 혀와 입술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1년 후부터 던전이라는 건 무차별적으로, 불규칙하게 나타나거든요. 왕궁에도, 뒷골목에도, 어디에도 나타날 수 있고, 그 영역 안에는 몬스터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학살하죠. 던전은 그 안의 사람이 전부 죽어서 몬스터가 먹을 게 없으면 사라져요. 아니면 완전히 파괴돼도 사라지고…….”
끔찍한 이야기였음에도 시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빨려 들어갈 듯 이야기를 경청했다. 에스페란사는 차가운 찻잔을 손으로 감싼 채 덧붙였다.
“제가 찾는 그 물건은 던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들었어요.”
“굉장히 추상적이네요.”
“그런가요? 구체적이지 않나.”
촘촘한 속눈썹에 감싸인 회색 눈동자가 총기로 번뜩였다.
“그 물건이 던전을 어떻게 없애는데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황금 발톱의 개발사가 슬슬 게임이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쯤 서버 종료를 선언하면서 가르쳐 주지 않을까?
‘잠깐만, 지금이 바로 그때인가? 섭종을 위한 제물인가, 나는?’
꽤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황금 발톱을 찾고 던전을 닫으면 게임은 끝날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까지 이 게임에 쓴 돈이 얼만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섭종 선언이라니. 장난하나?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에스페란사.”
묘하게 달콤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 주목시킨 시더가 말했다.
“던전이 ‘어떻게’ 사라질지 생각해 봐요.”
“그냥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 아니에요?”
“반대로는요? 이 세상 전체가 던전이 된다면?”
그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그건, 게임이 끝나는 방식이라기에는 깔끔하지 못했다. ‘우리 헌터들이 사라진 세상은 몬스터 천지가 되었습니다?’ 몇 년간 함께 해 온 세계를 떠나보내는 방식으로는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어요. 황금 발톱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헌터들이 모두 찾고 있는 전설의 아이템 같은 건데.”
“근거가 없잖아요, 추측뿐이지.”
그렇게 치면 시더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에스페란사는 말을 아꼈다. 게임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서는 그를 납득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에스페란사는 그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시더가 에스페란사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13년 후에서 나타난 여자라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이 세상이 그저 누군가의 유희를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지 않은가? 두 가지는 무게 자체가 다르다.
“어느 쪽이든, 그걸 찾아야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이상하단 말이에요. 당신은 왜 그걸 찾아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던전이 없어지는 것과 당신이 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길래?”
‘섭종. 퀘스트.’
“당신 눈 굴러가는 거 다 보여요.”
찻물을 들이켜던 에스페란사는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켁켁거리며 가슴을 치는 모습을 보던 시더는 고개를 내저었다. 간질거리는 목을 몇 번이나 가다듬은 에스페란사가 아까보다 쉰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조잡한 대답이다.
“그게,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헌터들한테는.”
시더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곧 몸을 늘어뜨렸다.
“설명 못 하겠으면 말아요.”
“그래도 돼요?”
“당신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뭐.”
그건 그렇다. 지금 자문받으려고 한 거였지. 다행히 시더 클라이번의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한 듯하지만.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더 캐묻는 대신 말을 돌렸다.
“마도 공학적으로 접근해 보자니 던전에 대해 아는 게 없네요.”
“제가 아는 대로 다 말씀드릴 수 있어요.”
“당신은 마도 공학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마도 공학자, 던전 학자인 설리번 박사를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 13년 전의 설리번 박사가 눈앞의 남자보다 더 나은 마도 공학자일 리도 없고.
“어쨌든 학자라는 건 진실을 찾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탐정과 비슷하죠.”
“아, 네.”
그게 그렇게 되나? 좀 다르지 않나? 게다가 공학자는. 에스페란사가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물론 천재 마도 공학자는 남의 생각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당신 일을 잘 파헤쳐 보면 지금까지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세계를 이루는, 보다 본질적인 것. 그리고 그게 심지어 내 분야와 맞닿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마 그렇겠지. 이 세계의 핵심은 몬스터와 던전, 헌터, 그리고 ‘마도 공학’이니까.
그러나 에스페란사는 그가 본질을 알아내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깊은 본질에 다가가면 그도 알게 될 테니까. 이 세상은 허상이며, 누군가의 유희를 위해, 그리고 그 유희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럼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할까요?”
우리?
시더가 거침없이 말했다. 대답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거다.
“정보를 모아야죠. 내 서재, 도서관, 어쩌면 소문이나 전설.”
정보.
잭의 정보.
벌떡 일어났다.
[인벤토리]정보가 있었다. 황금 발톱에 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에스페란사가 오랜만에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아이템: 잭의 쪽지]던전, 몬스터. 소문, 전설.
같은 이름의 종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발밑에 쌓인 쪽지들이 종아리까지 수북했다.
시더 클라이번이 놀란 낯을 감추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대체 내 응접실 어디에서 저 더러운 종이가…….”
에스페란사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종이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그대로 아이템 하나를 더 꺼냈다.
[아이템: 몬스터 도감 제7판(저자: 알프레드 설리번)]“알프레드였네요. 알프레드 설리번. 뭐,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지만.”
백과사전 두께의 도감이 시더의 손으로 넘어갔다. 먼지가 묻은 책을 시더는 조심히 받아 들었다. 잭의 쪽지를 볼 때와는 달리 겸허한 손짓으로 가죽 표지를 털어 냈다.
“응접실에 먼지를 털어도 괜찮아요?”
“알아서 치우겠죠.”
지식을 대하는 시더의 자세는 경건할 정도였다. 그는 어루만지듯 조심히 책장을 넘겼다. 대강 꼬았던 다리도 단정하게 내리고 있었다. 설리번 박사를 무시하던 오만한 어조는 어디 갔는지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 내렸다.
다섯 페이지째 읽던 시더 클라이번이 고개를 들었다.
“설리번 박사란 자, 영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아니군요.”
“그거 괜찮아요?”
“쓸 만해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인 것 같았다. 하긴, 방금 전까지 별 볼 일 없는 양반이라고 욕했으니까.
“나라면 이런 식으로 정리하진 않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아, 네.”
시더는 성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에스페란사를 슬쩍 흘기다가 다시 책에 시선을 주었다.
“어쨌든 학문적으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다 읽어 보면 던전이란 게 대충 어떤 건지 감이 올 것 같네요.”
적어도 비전문가의 횡설수설 설명보단 낫다는 말이겠지. 저 책을 안 버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물건을 버리는 걸 싫어하는 탓에, 인벤토리에 잡다한 걸 쌓아 두던 것이 이제야 이렇게 도움이 된다. 인벤토리 용량을 늘리기 위해 현질을 몇 번이나 했더라.
아냐, 이 생각은 접어 두고.
“그런데, 그건 뭐죠?”
“이거, 쪽지요. 잭이라고, 신문 파는 애가 쓴 건데,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알고 있어서 돈을 주고 신세를 좀 졌어요.”
“소문.”
소문은 많은 경우 쭉정이지만, 아주 가끔, 다른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진짜 정보를 품고 있기도 하다. 감히 공식적인 루트로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지하에서, 뒷골목에서 돌아다닌다. 한 번 걸러진 정보를 사려면 정보상에게 돈을 내야 하지만, 소문 정도는 뒷골목 사람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냥 쪽지 같은 거라 별 정보는 없지만, 혹시나 해서요. 황금 발톱으로 낚은 퀘스트도 꽤 많았고…….”
“퀘스트?”
“헌터한테 주는 임무요. 던전 파괴도 있고, 호위나 물건 운반 임무도 있어요. 중간에 던전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행사에 참여하거나 경비를 서는 경우도 있고.”
“고작 12년 된 직업치고는 독특한 용어를 많이 쓰네요.”
찔끔한 에스페란사가 잭의 쪽지에 코를 파묻다시피 하며 웅얼거렸다.
“워낙 폐쇄적인 커뮤니티라서요. 은어처럼 도는 거죠.”
헌터가 될 수 있는 건 플레이어뿐이니까 어떤 의미로는 정말 폐쇄적이다.
“아무나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죠?”
“……네. 자격이 필요해요. 저도 정확히 어떤 자격인지는 모르지만.”
“흐음.”
턱 끝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책장을 넘긴 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의 자격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 이 몬스터 가죽. 당신 낫에 감겨 있는 가죽이죠?”
다가가서 책을 확인했다. 이마가 닿을 듯 가까워지자 시더가 몸을 뒤로 조금 뺐다.
“어떤 거요? 아, 그거 맞아요.”
책은 세심했다. 두꺼운 오거 가죽을 조금 잘라 붙여 놓았다. 한정판으로 몇 권 나오지 않은 책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에피소드 완료 보상으로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한 번도 펴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서술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것도 저 남자가 보기엔 부족하단 거지.’
천재의 한도 끝도 없는 눈높이를 어찌 맞추겠는가. 자급자족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