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nd the Mad Scientist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나인 호더의 상공에는 하루에 두 번, 거대한 비행선이 지나간다. 하늘을 가득 메운 굴뚝 연기를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나인 호더에는 수십만 개의 굴뚝이 있다.
궁전, 관공서, 공공기관, 수만 호에 이르는 주거지구. 나인 호더 시내에 공장을 지을 수 없게 된 지 30년이 지났다고 해도 규격상 법적으로 공장이 아닌 작은 작업장들은 여전히 상업지구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연기가 끊이지 않는 곳.
그러나 비행선이 있기에, 연기에 덮여 낮아진 나인 호더의 하늘은 반드시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제 색을 되찾는다. 다시 하늘이 낮아지기까지는 적어도 반나절이 소요되는 데다 비가 자주 오는 날씨 때문에 나인 호더의 하늘은 연기에 완전히 잡아먹히지는 않는다.
이곳을 제외하면, 결코.
“진짜 지독하다.”
사이러스는 머리칼에 뭐라도 묻을까 두려운 것처럼 후드를 꽉 눌러썼다. 다리아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아, 하지 마.”
“고작 연기 가지고 엄살떨기는.”
고작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짙고 자욱했다. 절망에도 색이 있다면 꼭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되는 대화를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나인 호더 근교의 쉘튼 공업지구. 공장 지대답게 어둑한 하늘과 매캐한 굴뚝 연기가 온몸에 달라붙을 것 같은 곳. 나인 호더의 하늘이 깨끗해지는 시간에도 이곳은 해도 보이지 않는 회색으로 뒤덮인다.
가장 하층의 인생. 신조차 돌아보지 않는 곳. 해가 들지 않는 땅.
얼터 지구조차 이곳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의 사람들이 테라스 위의 공주가 던진 빵 쪼가리를 위해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머리 위에 빵 조각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바짝 엎드려 구정물만 핥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버린 판자를 붙여 겨우 눈과 비를 막는 구실만 했다. 그보다 조금 사정이 나으면 창문도 없는 건물, 그 감옥처럼 좁은 방에서 여러 명이 끼어 잤다.
두 사람은 희망 없이 좁고 눅눅한 거리를 걸어, 이윽고 사람이 없는 건물로 들어갔다. 여왕에게서 얻은 돈으로 매입한 폐공장이었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사무실로 썼는지 책상과 책장이 있는 방이 있었다. 다리아는 녹슨 철제 책상 서랍에서 문서를 꺼냈다. 끽, 끽,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사냥꾼 놈들과 납품업자는 잘하고 있는 것 같고…….”
두꺼운 문서를 전부 읽은 다리아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대체 누가 여왕한테 바람을 넣은 거지?”
“갈리스턴 말고 누가 있겠어.”
다리아가 신경질적으로 후드를 벗어 던지자 그것을 집어 든 사이러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놈에게는 충분히 경고를 했는데. 마벨우드 던전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면 그거야말로 놈이 멍청하단 증거일 테니 신경을 꺼도 괜찮을 테고.”
“못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어.”
그럼 뭘까.
다리아는 자신이 갈리스턴이나 여왕만큼 수 싸움에 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러스와 머리를 맞대고 밤새 고민해야 여왕과 갈리스턴이 놓은 수의 의미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머리를 써서 기껏 판을 짜도 그 위에서 놀아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판이야 엎어 버리면 그만이다.
“이상하단 말이지. 갈리스턴 성격에 한 곳에 던전이 두 번 생길 수도 있냐는 질문을 한 것도 그렇고.”
“수상하니까 들어주지 말자고 했잖아.”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중요한 건, 그때부터 갈리스턴의 행보가 이상하단 거지.”
사교계에 아는 사람이 없는 그들은 뒷세계에서 정보를 얻었다. 우습게도 여왕이 준 돈으로 여왕의 뒤를 캐는 꼴이었지만, 여왕은 그 사실을 알더라도 한마디도 못 할 것이다.
“소문이 이상하던데. 웬 신분 낮은 여자한테 청혼을 했다고.”
“갈리스턴이 그럴 놈이야? 헛소문이겠지.”
“아니.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
사이러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장난스럽던 다리아의 얼굴도 천천히 굳어 갔다.
“자세히 말해 봐.”
“소문이 너무 자세하게 난 데다가, 그 소문이 난 다음 그 여자가 왕성에 불려 갔다고 했어. 갈리스턴이라면 끔찍하게 믿는 여왕이 사실도 아닌 소문만 듣고 여자에 보호자까지 불러들였다잖아. 그런데 그 보호자가.”
“그 보호자가?”
“에이번데일이야.”
“빌어먹게 운도 좋은 여자네.”
에이번데일이라니. 그 불세출의 천재를 보호자로 뒀다니. 다리아는 몇 번이나 그와 접촉하려 시도했다가 포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적당히 협박으로 어를 수 있는 여왕과는 달리 친분 있는 사람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가진 것은 많다. 원하는 정보와 기술을 얻으려면 비위를 맞춰야 하는 종류라 무작정 저택에 쳐들어가는 것은 미뤄 두고 있었다.
“네 말대로 이상하긴 하다. 그래서? 기껏 여기 두고 갔더니 얻어 온 정보가 그게 다야?”
사이러스는 천장에 붙어서 난 작은 창문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창문 바깥, 근처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와 저 멀리로 나인 호더에서 밀려오는 연기가 마치 숲을 뒤덮은 녹빛처럼 무성했다.
“더 알아보려고 하긴 했는데, 나와 있는 정보가 많진 않아. 루크 헤이븐리가 정보가 새는 걸 막고 있어서 직접 조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헤이븐리 놈이 정보를 막고 있다…… 진짜 뒤가 구린 모양이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정보상 하나 찾겠다고 발품을 팔 필요는 없었다. 다리아가 건조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잠든 갈리스턴 놈을 찾아서 팔다리 하나 끊어 놓고 시작하면 되긴 해. 자기가 죽게 생겼는데 여자 신상을 못 팔겠어?”
이렇게 말하면 성정이 유순한 동생은 이마를 팍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정말 못 말리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발 좀.”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그것이 갈리스턴을 염려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다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야. 나도 웬만하면 무력은 쓰고 싶지 않아. 이 관계는 오래 이어져야 하고, 여왕은 이대로 있어 주는 편이 좋으니까. 하지만 오늘처럼 딴생각을 하는 것 같으면 얘기가 다르지.”
다리아의 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사이러스도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왕이니, 공작이니, 그들에겐 우스운 장난감 놀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들은 여왕을 적잖이 배려해 주었다.
공주를 죽일 수 있는데 죽이지 않았고, 군함을 터뜨릴 수 있는데 터뜨리지 않았다. 여왕의 명예를 위하여 차마 손댈 수 없는 몇 가지 사소한 잡일을 처리해 주기도 했다.
공화주의자들이나 파오룬 분리독립주의자들이 다리아의 등장 이후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을 여왕이 모를까? 내심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티는 못 낼지언정 눈앞의 위협인 다리아보다 명분과 신념을 지닌 먼 곳의 적, 육신을 위협하는 다리아보다 명예를 무너뜨리려는 그들이 더 두려울 테니까.
그러니 이제 와서 그 사소한 요구 하나 들어주지 못하는 것은 여왕의 아집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믿는 구석이 생긴 것만은 확실한 것 같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갈리스턴의 이상 행동과 연관이 있는 것 같고.”
“확실히. 소문의 여자랑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마 에이번데일도 엮인 문제겠지. 아, 그 두 사람이 얼마 전에 마벨우드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쯤이면 정말로 수상하다. 마벨우드에 있었던 마도 공학자 시더 클라이번과 그 피보호자. 그때 마침 정확히 장소를 특정해서 ‘한 번 던전이 생겼던 곳에 또 던전이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던 갈리스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덮여 버린 마벨우드 사건. 그 후의 누가 봐도 연막에 불과한 구애니 청혼이니 하는 이야기들. 여왕의 변한 태도.
천하의 얼간이라도 이 모든 게 하나의 분명한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갈리스턴을 계속 내버려 두는 게 좋을지 모르겠네.”
다리아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수 싸움은 갈리스턴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여왕은 통치하지 않는 군주로는 아까운 인물이었으나 일국의 군주라는 자리는 결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여왕은 수족인 사촌에게 물밑의 싸움을 맡기고 있었고, 그는 늘 여왕이 원하는 것 이상을 해내는 지략가였다.
그 말은, 상징성과 막대한 부를 가진 여왕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갈리스턴만 제거하면 된다는 뜻이다.
여왕은 화를 내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여왕에게 다른 선택지를 줄 생각이 없었다.
다리아는 슬슬 당근 대신 채찍을 휘두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여왕이든 공작이든, 단꿈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진짜로 자신들을 해치지는 못할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
순진함의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일단 에이번데일이 마벨우드에서 뭘 했는지 알아보는 게 좋겠어. 그리고 갈리스턴은…… 놈이 보이는 태도를 보면 뒤통수를 치려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하고 싶은데?”
사이러스가 다리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손에 상아처럼 길게 휘어진 무언가를 든 다리아가 입술을 끌어 올렸다. 사이러스가 잘 아는 미소였다.
다리아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윤리도 도덕도, 그런 것을 챙길 여유가 있는 자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다리아에게 배울 틈을 주지 않았다. 맹목적인 열망만을 가졌던 자가 힘을 얻었다.
“그냥 죽이는 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 여왕은 사촌이 서서히 죽어 가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게 될 거야. 남은 가족이라도 지키고 싶으면 말을 잘 듣겠지.”
사이러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역시 다리아의 형제였다.
“조절돼?”
“몇 번 연습해 봤어. 될 것 같아.”
“그럼, 뭐.”
이게 그렇게 큰 죄일까? 갈리스턴은 알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니까. 다른 누군가 그를 죽이는 죄를 짓더라도, 그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도 자격이 없음을 알기에.
레버를 당기는 것만으로 살인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수천 번의 살인을 했다. 외면하는 것으로 살인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수만 번의 살인을 했다. 그런 자를 죽이는 일이다.
“그래. 죽일 만한 놈을 죽이는 거라니까.”
다리아가 달래듯 그렇게 말했다. 짧은 머리칼이 얼굴선을 감싸며 흔들거렸다. 눈동자에, 창백한 뺨에 금빛이 비쳤다. 철컥, 철컥, 금속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잠시 후, 사이러스가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 혼자였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해를 올려다보며 한탄했다.
“집에 가고 싶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다리아가 그보다 열 배쯤 강하다고 해도, 이 세계에서 움직이기에는 남자인 것이 백 배쯤 용이하니까.
위조 신분증을 손안에 꽉 쥐어 본 사이러스는 두꺼운 후드를 벗고 평범한 중산층 청년의 차림을 한 채 기차역으로 향했다.
“터틴, 터틴행 여섯 시 열차입니다!”
저녁의 기차역은 노동자의 한숨과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좀비 같은 일꾼들이 3등석에서 내리고, 그의 자리인 2등석에는 중산층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터틴행 열차는 몇 달 전 일어난 마벨우드 사건의 여파로 제법 자리가 넉넉했다.
‘다리아도 지금쯤 죽어나고 있겠지.’
큰일에는 그만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들의 이상은 더 높은 곳에 있다. 이 거대한 문명 위에 그들의 왕국을 세울 것이다.
이제 막 궤도를 탄 만큼, 조금 더 열심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사이러스는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증기를 뿜어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