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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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올드레이디(Old lady)
29# 올드레이디(Old lady)
올드레이디(Old lady). 딕툼의 옆에 붙어 있는 중도시 엘리시움(Elysium)의 주거지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관은 고급스런 저택이지만 그 속은 현(現) 칼립스 연맹위원인 마티아스 계파의 인물들이 모이는 살롱의 명칭이었다.
마침 오늘이 모임이 있는 날이었는지, 널따란 정원의 한 구석에는 개인용 마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사전에 초대받은 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살롱의 특성상, 저 마차의 주인들은 모두 마티아스 계파에 속해 있는 클럽의 오너이거나 고위 관계자들일 터였다.
히히힝!
그때, 또 한 대의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이들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정장차림의 오크와 화사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두 명의 여인이었다.
통이 큰 정장을 입었음에도 울끈불끈 근육이 튀어나온 오크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와 동행한 두 명의 여인은 하나같이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좌측의 여인은 여자치고는 큰 키에 몸에 살짝 달라붙는 하늘색 드레스를 걸쳤는데, 길게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과 훤칠한 몸매의 조화가 청초한 물망초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면, 우측의 여인은 좌측 여인과는 달리 온통 검은색 일색이었다. 유난히 햇빛을 싫어하는 듯, 그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것도 모자라, 가느다란 손에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을 착용했다. 창백하게 굳어 있는 피부와 모자 아래에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가 어쩐지 음험함을 풍기는 여인이었다. 치마 아래로 내비치는 그녀의 다리는 특이하게도 차가운 은빛의 의족이었다.
세 명의 남녀가 살롱 입구로 다가오자, 현관에 서 있던 말쑥한 차림의 사내는 손에 든 인명부와 세 사람의 인상착의를 대조해보더니 이내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올드레이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리스 오너.”
“음. 고맙네.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노구덕에게 작은 목소리로 귀띔을 해주었다.
“레인저스 오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203호실입니다.”
“알겠네.”
저택 내부는 보기보다 상당한 크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로비가 있었고, 그 뒤로는 중앙홀로 통하는 복도가 이어졌다. 소피아의 보폭에 맞추느라 속도가 조금 느렸지만, 그다지 급할 것도 없었기에 노구덕, 실렌, 소피아 세 사람은 잡담을 나누며 느긋하게 복도를 거닐었다.
노구덕의 표정은 편치 못했다. 데모나에게 받은 이식 수술의 여운이 아직도 온몸에 짙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술을 받은 부위는 등.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등허리에는 척추를 따라 킹스콜피온의 갑각과 핵이 이식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주인에 비해, 소피아는 만사태평한 얼굴이었다.
“살롱에 가는 건 꽤 오랜만이네요.”
“소피아 씨는 살롱에 가 본 적이 있나요?”
“그야 당연하죠.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살롱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니까요. 청탁, 로비, 줄서기 등… 클럽의 주요사업 태반이 살롱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역시 아이리스의 두뇌다웠다. 노구덕은 격려의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다독여주었다.
“그러니까 널 데려온 거다. 잘 해라.”
“네에.”
“그럼 저는 왜…?”
다소 늘어지는 소피아의 대답과, 그 뒤를 잇는 실렌의 힘없는 물음. 노구덕은 새삼스레 왜 그러냐는 듯 실렌을 쳐다봤다.
“뭘 또 물어봐. 아이리스에 남고 싶다며. 그럼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마침 메이슨 그놈도 온다고 하니까, 이참에 네가 어느 소속인지 분명히 해둬. 사내놈들 중에는 은근히 집요한 놈도 있으니 선을 그어두란 말이야.”
“…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하더라도 메이슨이 하려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지는 않을까 염려하던 실렌이었다. 다행히 노구덕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를 살롱 파트너로 삼은 것은 ‘진상품’으로 쓰기 위함이 아니라, 이 자리를 빌어 그녀가 자신의 소유임을 분명히 공표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임대 간 헌터를 채가는 건 상대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자, 메이슨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굴욕이었다. 당연히 임대가 끝나고 블랙 랩터에 돌아가도 그녀의 자리는 없을 터. 이제는 정말 아이리스에 남는 것밖엔 다른 길이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그녀의 거취는 온전히 노구덕의 뜻에 달리게 되는 셈이었다.
실렌은 노구덕의 눈치를 보면서 힘에 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옛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지… 괜한 짓을 해버렸네.’
완전히 배수의 진이었다. ‘언령’ 재능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전투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었기에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게다가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제 막 개화한 유망주 수준. 실적으로 뭘 보여준 게 아니었기에, 블랙 랩터에 비싼 보상금을 지불하고 그녀를 데려갈 클럽은 아이리스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노구덕이 약속을 지켜 주리라 믿어볼 수밖에. 그게 최선이었다.
그러는 사이, 중앙홀을 둥글게 돌아 지나친 일행은 접객원이 말한 203호실에 도착했다. 노구덕이 작게 노크를 하여 도착했음을 알리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막심이 살갑게 그들을 맞아주었다.
“오! 이 사람, 왜 이렇게 늦었나!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졌네!”
“허어, 형님도 참. 아직 약속 시간이 되려면 십분은 더 남았는데요.”
“예끼! 그만큼 자네가 보고 싶었다는 게지! 허허헛!”
“이런, 제가 형님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촤하하하!”
늙은 두 남자가 서로를 얼싸안고 호들갑을 떠는 광경은 옆에서 보기에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실렌은 살짝 머리를 숙여 소피아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오너 말인데, 원래 저래요?’
‘비즈니스 스마일이에요. 좀 징그럽긴 해도 참아보세요.’
“흐허허헛! 아름다운 레이디 분들을 서 있게 하다니, 이런 실례가 있나. 안으로 들어갑시다.”
두 사람이 작게 소곤대는 것을 보았는지, 노구덕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막심은 짐짓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의 왜소한 체구와 간신 수염이 자아낸 얍삽함은 나름 호쾌하게 보이려던 시도를 수포로 만들었다.
실렌과 소피아는 억지웃음을 짓는 것으로 막심의 노력에 화답하곤,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 이분들은 누구신가?”
그녀들이 방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막심의 눈은 쉴 새 없이 두 여인의 얼굴이며 몸매를 훑어 내리고 있었다. 물론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아우가 꽤 능력이 있군. 이런 여인들을 거느리고 있다니… 훌륭해. 어디 보자, 파란 머리는 대략 85점? 음, 더 쳐주면 90점쯤 되려나. 볼륨이 좀 아쉽긴 해도 키 큰 여자를 좋아하는 인간들에게는 잘 먹히겠어. 각선미도 좋고, 특히 골반이 아주 잘 빠졌군. 얼굴도 순해 보이는 게, 성격도 순종적일 것 같아.’
다음은 소피아.
‘검은 챙모자는… 호오, 가슴이나 엉덩이도 적당히 크고, 뭣보다 피부가 굉장히 곱군. …잠깐, 뭐야? 불구잖아. 에잉… 아쉽군, 아쉬워. 다리만 있었어도 최소한 90, 취향에 따라 만점까지도 노려볼 물건인데… 가만, 이런 쪽 취향을 가진 인사가 있던가?’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벌써부터 헛물을 벌컥벌컥 켜고 있는 막심이었다.
“형님.”
“응? 으응. 미안하네. 내가 잠깐 딴생각을 했나보군. 요즘 좀 피로해서…….”
“괜찮습니다. 먼저 소개를 해야겠군요. 이쪽은 헌터 실렌, 이번에 블랙 랩터에서 임대로 온 사제입니다.”
“…실렌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실렌과 인사를 나눈 막심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리스의 헌터이긴 해도 실렌은 엄연히 원소속 클럽이 있는 헌터가 아닌가? 그런 여자를 살롱 파트너로 데려오다니… 노구덕의 의중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호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뒤이어 소개된 인물이 상상밖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전(前) 라이오넬 소속의 헌터 소피아 님이십니다. 라이오넬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시기도 했죠.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군요.”
“소, 소피아? 이스턴리그에서 활약했던 그… 혼돈의 정령사?”
“예. 그 소피아 님이 맞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선 막심은 이내 자신의 실태를 자각했다.
“이… 이런… 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괜찮아요.”
그는 곧바로 허리를 굽혀 소피아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그 뱀 같은 눈을 굴려 소피아의 동태를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겨우 노구덕의 말 한마디로 덜컥 믿어버리기엔, 소피아라는 인물이 지닌 신분이 너무 대단했다.
미들리그에 속해 있는 막심이 그녀에 대해서 알 정도면, 말은 다한 셈. 사실 소피아가 라이오넬을 빅클럽으로 끌어올린 일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정보통을 자처하는 막심으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비트레이 오너의 친동생이자, 라이오넬의 꾀주머니. 서리여왕 하유라의 퀸즈가든에도 한 발을 걸치고 있고, 그 본신 능력도 일류 헌터……. 라이오넬에서 실각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진위는 불분명.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거느린 사업체와 연줄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는 인물이야. 이런 거물이 여긴 왜?’
그 복잡한 속내를 대변하듯, 막심의 눈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소피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 그녀의 신분을 보다 확실히 하고 싶었지만, 만약 그녀가 진짜 소피아일 경우 그건 굉장한 무례였다. 간담이 작은 막심으로선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 자식은 어떻게 이런 인물과 연줄이 닿았지? 데려올 거면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던가. 망할 놈.’
막심은 슬며시 눈에 힘을 주어 노구덕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럽게 사단을 낸 노구덕이 원망스러웠다.
“우후후. 많이 놀라셨죠?”
“아니, 아닙니다.”
나른한 소피아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막심은 황급히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는 일단 저자세로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쉬이 믿진 못하시겠지만, 전 진짜 소피아가 맞아요.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동안 아이리스에 몸을 의탁한 상태죠.”
“아…….”
그 말을 들은 막심은 낮은 침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라이오넬의 소피아가 뇌기종이라는 희귀한 질환을 앓고 있다는 소문을 접한 적이 있었다.
“신분증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건 쉽게 위조가 가능하니… 그래, 지금 사람을 불러서 헌터 하우스에 조회를 해 보는 건 어떤가요? 조회 대상은 라이오넬의 소피아. 지금 소속은 틀림없이 아이리스로 되어 있을 거예요.”
그 말과 함께, 소피아는 소파 옆에 붙어 있는 호출벨을 눌렀다. 그러자,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대기 중이던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공손히 용무를 묻는 그에게, 소피아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헌터 하우스의 신원 조회를 주문했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어버버거리며 그걸 지켜보고 있던 막심은 황망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이런 건 확실히 해야죠. 괜한 의혹을 남겨 둘 필요는 없잖아요?”
그 당당한 태도와 명명백백한 일처리. 막심은 비로소 그녀가 진짜 소피아 본인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욱 신중해진 자세로 소피아를 대했다.
“명망 높으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초면에 무례인 줄은 알지만… 딕툼 지역 암상(暗商)의 수장과 자리를 만들어주셨으면 해서요. 살롱 내에서라면, 최대한 은밀하게 만남을 주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
암상. 마약밀매, 매춘, 고리대금업, 노예상 등 때에 따라선 불법도 불사할 수 있는 어둠의 상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막심이 떨떠름히 되물은 것은, 그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단순히 자리야 만들 순 있지만… 그쪽은 정무문 계열이라……. 제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아닙니다.”
막심은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스스로의 약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 영 불편했던 모양.
도시에 뿌리내린 클럽은 크게 서너 곳의 조직과 유착관계를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시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암상, 그리고 일반적인 상인조직, 마지막으로 도시의 행정청과 치안청이 대표적인 조직.
중도시 딕툼의 경우에는 막심이 치안청, 정무문의 이진양이 암상조직, 세인트 나이츠의 카라케스가 상인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것 아니겠어요?”
“말씀하신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회한 막심은 섣불리 속을 드러내지 않고 소피아로 하여금 진의를 밝히도록 유도했다. 소피아는 뻔히 그 수작을 알아보고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아이리스를 내세워 암상조직과 관련한 정무문의 지분을 조금 뺏어볼 생각이에요. 레인저스 오너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가벼운 기분으로 발걸음 했다가 뜻밖의 모의(謀議)에 가담하게 된 막심은 쉬지않고 염두를 굴렸다.
아이리스를 첨병 삼아 정무문을 흔든다? 확실히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문제는 소피아가 저 작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 이런 좋은 제안을 넙죽 받아들일 정도로 막심은 어리숙한 자가 아니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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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리그는 아마 정치싸움, 권력다툼이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겠네요
이번화 리리플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