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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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올드레이디(Old lady)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마, 막심 님! 어떻게 이런… 근본도 없는 자를 편드실 수 있습니까!”
“어허, 이 사람이… 여기가 어딘지 잊었나보군. 할 말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오게. 공개된 장소에서 내 얼굴에 먹칠을 할 셈인가?”
쿵!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막심의 눈빛은 메이슨에게 둔기로 내려치는듯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본래도 다혈질적인 성미가 있었던 그는, 믿었던 파벌의 수장에게 외면당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이럴 순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막심 님을 위해서 얼마나……!”
“메이슨. 그만하란 말 못 들었나?”
“……!”
왜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기운을 접한 메이슨은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만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작고 얍삽한 외양 때문에 은근히 얕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막심이라는 남자는 지난 십여 년 간 딕툼의 리그 정상에서 두 명의 맞수들과 치열한 정쟁을 벌이며 군림해 온 인물이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지배를 공고히 해 온 까닭은 그가 비정한 심장과 악독한 손속을 지녔기 때문이다. 과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그의 손에 제거되어 외로운 넋이 되었는지, 몇 년 간 그의 수족으로 활동했던 메이슨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 화를 이기지 못하고 몇 마디만 더 내뱉었으면… 이번에는 그가 막심의 표적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에 차가운 물이 흐르는 듯 했다.
하지만, 오싹한 와중에도 가눌 길 없는 분기(憤氣)는 여전했다. 다만 그 표적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노구덕에게 열이 받았다면, 이제 그의 속내는 막심에 대한 먹빛 증오심으로 그득한 상태였다.
‘이… 이 뱀 같은 늙은이!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먹는다고 하더니, 이젠 내가 필요 없다 이거지?’
막심의 방식이 원래 그러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대상이 자신이 되고 보니 그 배신감은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살롱에서 개망신을 당했으니, 구경하고 있던 오너들에 의해서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나갈 터.
‘블랙 랩터의 메이슨이 막심의 파벌에서 밀려났다.’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안 그래도 클럽이 강등되어 많이 좁아졌던 그의 입지는, 이번 건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실상 그의 파벌 내 정치생명은 재기불능이나 다름없었다.
‘절대… 이대론 끝나지 않는다. 두고 보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던 메이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파를 헤치며 사라졌다.
막심은 인사도 없이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쯔쯔… 사람이 저리 경중을 가리지 못해서야…….”
그 옆에 서서 곁눈질로 막심의 표정을 살피던 노구덕은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메이슨의 뒤를 쫓는 막심의 눈알이 꼭 냉혹한 독사의 그것처럼 번들거렸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그 순간 막심이 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탓에, 노구덕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개처럼 피어오른 의문을 흩어버렸다.
“메이슨이 조금 젊어서 혈기가 방장한 것뿐이지,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네. 나중에 내가 자리를 주선해줄 테니, 뭔가 문제가 있거들랑 그때 좋게 풀어보게.”
“형님께서 그래주신다면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고개를 주억인 막심은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허허. 그건 그렇고… 너무 소란을 피웠나보군.”
“죄송합니다.”
“아우가 죄송할 건 없지. 그럼 일도 끝났고 하니… 중앙홀로 가세. 내가 신세지고 있는 분들께 자네를 소개시켜주고 싶으이.”
마침내 바라마지 않던 말이 튀어나오자, 노구덕은 가슴의 두근거림을 감추느라 서둘러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가 살롱에 발을 들인 가장 큰 이유는 딕툼을 비롯한 이 지역의 상류층들과 안면을 트기 위함이었다. 막심이 소개해 줄 인사들이라면 역시 치안청과 관련있는 인물들일 게 분명했다. 그는 치안청에 선을 대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일단 간만 보도록 할까.’
도시의 치안청에 인맥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연줄이었다. 노구덕은 기회를 봐서 딕툼의 치안청에 자기 사람을 꽂아 넣을 속셈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능력과 경력이 되는 인물로. 다행히 그는 그 역할을 해 줄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괜찮겠지. 대쪽 같은 성격에 나름 의리도 있었고…….’
찰나지간 훗날의 청사진을 그려 본 노구덕은, 막심의 마음이 바뀔세라 냉큼 대답했다.
“그런 자리에는 절대 빠질 수 없지요.”
“그렇지? 아, 소피아 님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후후. 말씀은 감사하지만 공식석상에 나서기엔 상황이 조금 여의치 않네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죠.”
소피아의 완곡한 거절에 막심은 안타까운 입맛을 다셨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돌아서는 막심의 뒤에서, 소피아는 노구덕을 향해 미리 약속된 수신호를 보냈다.
‘주인님. 예약된 방에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천천히 놀다 오세요.’
그러자 노구덕은 눈짓으로 한쪽 구석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실렌을 가리켰다.
‘저 여자도 데려가.’
‘네에.’
소피아의 챙모자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노구덕은 천천히 막심의 뒤를 따라 중앙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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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이 살롱 내에 마련된 자기 방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대여섯 시간이 지난, 한참 늦은 저녁이었다.
“응?”
“이 나쁜 인간!”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날아오는 베개를 잡아챈 그는, 가느다란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실렌과 마주했다.
“뭐야? 베개싸움이라도 하려고? 아, 밥은 먹었지?”
“하! 어, 어이가 없어서!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사람을 무슨 짐짝처럼 취급해 놓고……!”
“떽떽거리지 마. 난 너 때문에 블랙 랩터와 척을 졌다고. 알아?”
“읏….”
그 상황을 뻔히 눈 뜨고 지켜보았으니 모를 리 없다. 잠깐 주춤하던 실렌은 이내 눈을 매섭게 뜨고 반박했다.
“어차피 그러려고 온 걸 내 탓으로 돌리지 마요! 나한테 소속이 어딘지 확실히 하라면서 살롱까지 끌고 온 게 누군데요!”
“이야. 안 넘어가네.”
“으윽!”
비로소 놀림을 당한 걸 깨달은 실렌의 얼굴이 홍시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갑을(甲乙) 관계가 명확하니 아무리 화를 내봤자 그녀만 손해였다. 하지만 이런 취급을 받고 순순히 물러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내가 아쉬운 입장이라지만… 이러면 내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어.’
“아무튼! 오늘 일은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나 피곤한데 바가지는 나중에 긁으면 안될까?”
“잘도 그런 말을…!”
“쓰읍!”
“헉!”
노구덕이 흉악하게 인상을 쓰고 쳐다보자, 실렌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뼛속까지 각인된 죽음의 공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흑… 또, 또 나와 버렸어…….’
찔끔 새어나온 오줌에 속옷이 살짝 젖어버렸다. 엉거주춤 다리 사이를 오므린 실렌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노구덕을 노려보더니, 팔로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로 가버렸다.
구석에서 쿡쿡 어깨를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소피아는 실렌의 모습이 사라지자, 제 주인에게 묘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우후훗. 제 후배가 들어올 날도 머지않았네요.”
“후배?”
“노예 2호요.”
그녀의 실없는 소리에 피식 입가를 터뜨린 노구덕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얘기가 어찌 됐는지나 말해봐. 암상하고는 만났어?”
“네에~ 당연하죠. 제가 누구예요?”
“네가 누구긴. 내 노예 1호지.”
좀 전에 했던 농담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소피아는 양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우우!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그럼 아이리스의 여우?”
소피아는 그가 붙여준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비스듬하게 꼬았다.
“칫. 좋을 대로 부르세요. 경과보고나 하죠.”
노구덕이 막심의 뒤를 따라다니며 인맥을 넓히는 동안, 소피아도 마냥 방에서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살롱의 모처에서 막심의 이름을 빌려 암상조직의 간부와 만남을 가졌고, 주인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어왔다.
“느낌이 좋아요. 생각했던 대로 이쪽 암상조직은 노예판로의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주인님이 소유한 유통망으로 그쪽 경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잘하면 퀸즈가든에서 한 발 걸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아주 좋아하던데요. 아, 물론 그 사람 딴에는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지만요.”
“그래서 이쪽은 뭘 받기로 했지?”
“몇 가지 제안을 받아왔어요. 매춘, 도박, 고리대금업에 관련한 사업체 몇 곳의 소유권을 양도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여기, 사업체 목록이요.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고르시면 돼요.”
“어차피 네가 다 골라놨잖아. 그런 사소한 거 말고, 좀 화끈한 거 없어?”
노구덕의 심드렁한 대꾸에, 소피아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어요. 그쪽도 정무문과 오랜 기간 유착관계를 맺어왔으니, 한번에 그 관계를 뒤흔드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상인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말과 행동이 뒤바뀔 수 있죠. 그런 족속들이에요. 정무문과 가까이하는 것보다 아이리스에 붙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확실하게 선다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전폭적으로 밀어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은 이리저리 재보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죠.”
이쪽 방면에 도가 튼 소피아의 말이다. 노구덕은 인간적으로 그녀를 믿는 건 아니지만, 참모로서는 신용하고 있었다. 또,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녀의 말이 옳기도 했고.
“어쨌든 다리는 만들어놨다는 거군. 좋아. 지금은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그건 그렇고… 막심 그 노친네 말인데, 좀 이상하지 않냐? 솔직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암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수족이었던 메이슨이었다. 막심은 그런 인물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내쳐버렸다. 그것도 살롱의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비단 그만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소피아 또한 루비색의 눈을 반짝이며 맞장구쳤다.
“주인님도 느끼셨군요. 제 생각엔 레인저스 오너도 주인님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블래 랩터 오너를 조만간 숙청할 심산이었는지도 모르죠. 그와 결부시켜 가정하면… 이번에 블랙 랩터가 강등된 것도 단순한 불운이 아닐지도요.”
“…무섭구만. 우연을 가장해 헌터를 살해할 수도 있단 건가? 그 수단이 궁금하군.”
“한번 알아볼게요.”
노구덕은 입 안의 혀처럼 살갑게 구는 소피아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개과천선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만한 모습이었다.
“오늘 수고했다. 뭐 먹고 싶은 건 없냐?”
“네엣?”
“룸서비스로 제공되는 야식 중에 괜찮은 게 많아서 말이야.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받고 싶은 거라든가.”
노구덕은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오로지 그의 피로만 식욕을 채울 수 있는 소피아가 달리 바랄 음식이 뭐가 있겠는가.
‘피를 준다고 할 걸 그랬나.’
그런데, 피를 요구할 줄 알았던 소피아는 의외로 예상외의 대답을 했다.
“파이프를 사고 싶은데요….”
“…파이프?”
살짝 눈썹을 내리깐 소피아는 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네, 파이프요. 저번에 지하에 갇혔을 때 버리셨잖아요?”
“그랬지.”
“근데 앞으로는 이것저것 협상할 일도 많을 텐데… 제게 부족한 무게감을 채워주려면 그만한 아이템이 또 없거든요. 또 요새는 입이 심심하기도 하고…….”
하긴, 십 년이 넘게 물고 있었던 파이프를 빼앗겼으니 허전하기도 할 터. 노구덕은 흔쾌히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 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그래도 마약은 안된다. 담배도 안돼.”
“네! 그냥 물고 있기만… 아니, 사탕만 먹을게요! 액상으로요!”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소피아의 귀여운 모습에, 무심코 너털웃음을 짓고 만 노구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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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 속이는 관계.
카론느 / 전 왜 실렌만 보면 괴롭히고 싶죠?
장마와방 / 나쁜 남자는 실렌에 한해서…
hohokoya1 / 천천히 길들여야지요!
은신설야 / 주인공 구더기든 진짜 구더기든 구더기같은 뜻이로군요..
서스카렌 / 만고불변의 진리
슈퍼테크닉 / 끼룩끼룩?????? …???
가식적썩소 / 감사합니닷!
벌레 / 정치질에 도움되는 벌레도 있을까요?
Blood╋Moon / 소제목입니다. 하하
마선 / 느긋하게 편수 늘려나가면 좀 오르지 않을까요? 하렘은 뭐.. 천천히 가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