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29)
0129 / 0777 ———————————————-
30# 이교도의 마을
‘망했다.’
너무 갑작스런 공격이었던지라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열없어진 노구덕은 스리슬쩍 시선을 내리 깔았다. 신소율과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지를 뚫고 나올 것 같던 분신도 어느새 그 기세를 잃고 풀이 죽어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흐응… 이제와서 시치미 떼 봤자 소용없어요. 방금 표정으로 다 드러났으니깐.”
“…….”
하긴, 노구덕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외통수였다.
“아저씨.”
신소율은 달착지근한 숨결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그녀의 눈동자는 달빛을 비춘 거울처럼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나… 사실은 아저씨랑 실렌 언니가 할 때 그 방문 앞에 있었어요. 히힛. 이쁨 받고 싶어서 찾아갔다가 때아닌 불륜 현장을 목격했지 뭐예요?”
“소율아, 사실은 말이다…….”
“쉿.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얘기도 다 들었거든요. 실렌 언니가 아저씨를 유혹하려 한 것도, 이상한 페로몬을 먹인 것도요.”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따로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녀의 음성에서는 별로 화난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난 별로 상관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실렌 언니랑 섹파로 지내든, 아니면 아예 써드로 받아들이든… 애초에 나도 억지로 끼어 든 거니까 실렌 언니를 탓할 자격은 없죠. 유진이 언니는 모르겠지만요.”
“너…….”
“그러니깐 숨기지 말아주세요. 미리 알고 있는 거랑 모르는 채로 있는 거… 꽤 차이가 크다구요? 유진이 언니한테 말을 못하겠으면 나한테 털어놔요.”
신소율은 애잔한 빛이 감도는 얼굴을 들어 그의 두꺼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이거는 상! 아저씨가 항상 고생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이해해주는 거예요. 알았죠?”
“…녀석.”
노구덕은 힘주어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것저것 준비한 변명거리는 많았으나, 구차하게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말을 꺼내더라도 그녀의 진심을 더럽히는 짓거리로만 여겨졌다.
사실 실렌은 그에게 있어서도 계륵 같은 존재였다. 남 주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품 안에 끌어들이기엔 별 감정이 없는 여자. 스스로도 그녀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해 일부러 메이슨을 상대로도 실험해 봤지만, 역시 자기가 처녀를 가진 여자를 딴 놈팡이에게 주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탐욕스러운 돼지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임유진이나 신소율에게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일부러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그녀의 처우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 따지고 들면 그게 그거겠지만…….
그 이기적인 행동이 신소율에게 상처가 된 것 같아 무척 미안했다.
“미안하다. 유진이도 그렇고, 요새 너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구나.”
“헷.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오너들에게 이런 로비는 흔한 거잖아요. 앞으로 한두 번 겪을 일도 아닌데 익숙해 져야죠.”
배시시 웃으며 하는 말에 뼈가 있음을 감지한 노구덕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뭐,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야 고맙고.”
“윽! 그렇게 나올 거예요? 유진이 언니한테 다 일러버린다?”
“유진이는 착하니까 다 이해해 줄 거야.”
“우와~ 뻔뻔한 것 좀 봐! 아저씨 얼굴 가죽이 왜 이렇게 두꺼워졌어요?”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신소율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게다가 좀 전에 단추를 끄른 상의가 살짝 풀어진 탓에, 그 틈바구니 사이로 작게 솟은 젖가슴이 풋풋하고도 요염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또다시 아랫도리가 뻐근해진 노구덕은 팔을 뻗어 그녀의 탄력 있는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신소율은 눈을 흘기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천천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그러면서도 새침하게 콧방귀를 뀌는 것을 잊지 않았다.
“…흥. 이 색마. 발정 난 오크.”
“엥? 그거 칭찬 아니냐?”
“하여튼 능글맞기는. …벗기지 마요. 오늘은 생리 중이라 안된단 말이에요.”
생리라니! 이미 이무기가 벌떡 일어나 용트림을 하고 있던 노구덕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거짓말! 너, 생리 날짜 지났잖아?”
“와,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대? 미안하게 됐네요. 이번 달은 조금 늦게 시작해서… 지금은 거의 끝났어요.”
“그, 그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싫어요. 평소에도 뻑뻑한데 지금 하면 분명 안쪽이 다칠 거라고요. 민감한 데에 상처라도 나면 책임질 거예요?”
책임지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래도 차마 그녀를 상처 입히면서까지 욕구를 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해갈의 기쁨을 누리기 직전, 기껏 당도한 오아시스가 신기루임을 알았을 때의 심정이 이러할까. 맥을 잃고 움츠러든 노구덕의 표정이 어지간히 불쌍했는지, 미안해하던 신소율은 양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고 꿇어앉았다.
“너무 그러지 마요. 대신 입으로 해 줄 테니까….”
“크윽! 역시 우리 마누라가 최고…….”
쿵!
난데없이 들려온 묵직한 굉음은 창 밖, 마을의 목책이 뭔가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마을 중앙의 종루에서 요란한 타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갱도의 카름이 목책 외곽에 출현했다는 의미였다.
막 노구덕의 발기한 남근을 입에 머금으려던 신소율은 킥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엉~ 날이 아닌 것 같네요.”
“…빨리 쌀 테니까 해 줘.”
“어휴, 괜한 미련 남기지 말고 어서 일어나요. 지금 마을이 위험한 마당에 그 짓을 해야겠어요?”
하다못해 한참 어린 그녀에게 충고를 듣고 마는 노구덕이었다. 그는 별 수 없이 바지를 추슬러 입었다. 가랑이 사이로 바짝 선 것도, 완전히 사그라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남근이 덜렁이는 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아저씨, 서둘러요.”
“이런 젠장할! 하여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 같으니라고. 싹 다 족쳐버리겠어.”
흥분해서 튀어 나온 송곳니 사이로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때보다 전의에 불탄 노구덕은 급히 신소율과 함께 일행이 모여 있을 숙소의 로비로 향했다.
++++++++++++++++++++++++++++++
쿠웅! 쿵!
돌벼락. 말 그대로 돌벼락이었다. 수박만한 바위 덩어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목책을 강타하는 광경은, 흡사 투석기로 성벽을 공략하는 공성전을 연상케 했다.
목책에 바위 세례를 퍼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돌거인이었다. 암석 카름의 외형은 목책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일행의 눈에도 상당히 익숙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장상기의 스톤 골렘과 완전히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판박이는 무슨. 그냥 스톤 골렘이잖아. 어디 보자… 흠, 여섯 기인가.”
“아니요. 저쪽엔 조금 다른 녀석도 보입니다. 저 녀석까지 합치면 일곱 기로군요.”
임유진을 제외하면 아이리스 헌터 중 가장 안력이 뛰어난 도리안이 여섯 기의 스톤 골렘의 뒤편을 가리켰다. 사위가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그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형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이언 골렘(Iron golem)입니다. 아무래도 저놈이 스톤 골렘들을 지휘하고 있는 개체인 것 같습니다.”
“광산을 원형으로 삼은 레귤러답군. 스톤 골렘 여섯에 아이언 골렘 하나라…….”
“일단 내가 나서서 놈들의 공격을 막아보지. 이대로 가다간 목책이 뚫리겠어.”
방패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장상기였다. 목책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가져다 붙이긴 했지만, 기이한 열기에 휩싸인 그의 눈을 보니 골렘 연구가로서의 열정에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좋아. 이 기회에 네 골렘과 저 녀석들 중 어느 쪽이 더 센지 보도록 하자고. 노엘 헌터, 상기의 보조를 부탁드립니다.”
“맡겨주세요.”
“해보나 마나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히 이기는 건 내 골렘들이다.”
노구덕이 덧붙인 말이 자존심을 건드린 듯, 불퉁하게 한소리를 내뱉은 장상기는 마력석을 가득 움켜쥐고 노엘과 함께 목책 아래로 내려갔다.
“도리안 헌터는 주위의 정찰을 부탁드립니다. 아이언 골렘 말고도 다른 녀석들이 출현할지도 모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어차피 상대가 저런 골렘들이라면 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권도현의 육중한 발리스타 정도라면 모를까, 도리안의 얇은 화살촉으로는 단단한 암석이나 철광석을 뚫기 어려웠다. 힘을 다한다면 관통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 차라리 그 넓은 시야를 활용해 근방을 정찰하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세 사람을 내보내고 나니, 이제 남은 인원들을 배치할 차례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스톤 골렘들의 뒤에서 장군처럼 버티고 있는 아이언 골렘.
“저 고철덩어리는 어떻게 할까…….”
임유진이 있었다면 고민하지 않고 그녀에게 처리를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 탐사대에 그녀는 없었다. 임유진은 현재 새로이 편성된 2군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1군과 2군의 전력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 보통의 헌터클럽에서 예비대격인 3군을 제외한 1군과 2군의 구분은 실력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로테이션에 따른 1번대와 2번대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아이리스에서는 실력이 출중한 헌터는 아무래도 1군에 몰린 경향이 있다 보니, 1군과 2군이 내는 성과(달성률)에도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노구덕은 그 점을 쇄신하고자 과감히 임유진의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아이리스 1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녀를 2군의 리더로 삼아 전력의 균등화를 이루겠다는 계산이었다. 그 노력의 결실인지는 몰라도, 리그 개막 이후 아이리스 1군과 2군의 탐사 달성률은 종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역시나 이럴 때면 어떤 카름이든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는 임유진의 빈자리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손패에서 최강의 조커가 빠진 셈이니까.
“어쩔 수 없군. 소율아, 저건 너랑 내가 잡아야겠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신소율은 웃음기 어린 얼굴로 시린 빛을 뿌리는 아이시클과 글래시어를 뽑아들었다.
“데모나, 너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뚫리는 곳이 있으면 바로 지원을 해줘. 실렌, 치프니르, 김진솔 헌터는 목책 아래로 내려가 전투지원을 합니다. 특히 진솔이는 상기의 골렘에 계속 강화 주문 걸어 주고.”
“넵!”
“네…….”
이제는 제법 큰 목소리도 낼 줄 알게 된 김진솔과, 어쩐지 힘이 빠지는 실렌의 대답을 들은 노구덕은 한쪽에서 믿음직스럽게 서 있는 이두식을 쳐다봤다.
“두식아.”
“예! 큰형님!”
“정령과 결합한 상기의 골렘이 강하긴 해도 일단 쪽수가 딸리니까 네가 가서 머릿수를 맞춰줘라. 여유가 있다 싶으면 우리 쪽으로 지원을 와도 되고. 판단은 네가 알아서 해라.”
“예! 알겠습니다!”
언제 봐도 듬직한 이두식이었다. 신소율이 체계적인 훈련으로 재능을 만개하는 엘리트라면, 누구의 지도도 없이 본능에만 의존한 전투로 강해지고 있는 이두식은 그야말로 스스로 사냥법을 터득하는 야수였다.
특히 실버나이트를 얻고 고질적인 광증을 해소한 이두식은,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아이리스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라 할 만했다. 단순 대련이라면 노구덕도 그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실제로 모의대련에서의 승률이 낮기도 했고.
이두식을 마지막으로 인원 배치를 완료한 노구덕은 짤막한 한마디와 함께 목책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가자!”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바쁜 아침 지각하지 마시고 하루 잘 보내시길!
리무카나 / 충왕전 궁극체가 목표입니다
호야[虎夜] / 그 대사요? 어느 대사를 말씀하시는건지… 그에 상관없이 변태는 맞지만요.
트릭스타 / 아앙?
Blood╋Moon / 걸려부렀네요! 하지만 쿨하게..
북치네 / 위기인듯 위기가 아닌듯 넘어가버렸습니다
에보커 / 얘도 살짝 능글맞아졌네요
은신설야 / 과도하게 감정이입 하신거 아닌가요? 하하;
장마와방 / 각인의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벌레 / 미약 설정은 너무 만능이라.. 역시 벌레 능력은 전투능력에만 국한된게 편할 것 같네요!
슈퍼테크닉 / 어.. 저 스포한 건가요? 못들은걸로 해주세요
dbss / ㄷㄷㄷㄷ 감사합니다!
카론느 / 운영이면 운영 탐험이면 탐험 구더기 바쁘네요
audduf11 / 리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