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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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래들타운(Cradle town)
4# 크래들타운(Cradle town)
작은 해프닝을 뒤로 하고, 일행은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일행이 커다란 테이블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멍하니 있는 사이, 여인은 큰 솥에 펄펄 끓는 야채죽을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솜씨 좋게 썰린 각종 채소들이 둥둥 떠 있는 야채죽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갈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여인은 각자의 그릇에 야채죽을 듬뿍 담아 나눠주면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임유진.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아버지가 프랑스인인 혼혈이었다. 나이는 스물아홉으로 11년 전에 드래프트를 통과하여 스퀘어에 들어왔다고 했다. 드래프트 기수로 따지면 까마득한 대선배인 셈이었다.
11년차의 임유진은 일행이 이제 갓 드래프트를 통과한 신출내기임을 알고도 전혀 얕잡아 보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크게 반가워했다. 그녀는 자신이 떠난 뒤의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싶어 했다. 붙임성이 좋은 신소율이나 아는 것이 많은 윤희지는 그런 그녀와 금세 친해져서는, 몇 번 말이 오간 뒤에는 금방 언니, 동생하며 말을 편하게 했다.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어디 가수가 어떤 배우랑 이혼을 했다느니, 어디 브랜드에서 신상이 나왔는데 반응이 참 좋았다느니, 스퀘어에 오기 전까지는 무슨 스타일이 유행이었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전부였는데, 아는 게 없는 남자들은 낄 엄두도 못 내고 묵묵히 야채죽만 후르릅 들이켰다.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던 임유진은 문득 쓸쓸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렇구나. 여긴 11년이나 흘렀는데 거기는 아직 3년밖에 지나지 않았네.”
“언니도 3년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요. 누가 언니를 스물아홉으로 보겠어요? 와, 피부 고운 것 좀 봐.”
“얘는. 빈말이라도 고맙구나.”
“소율이 말이 맞는데요, 뭘. 비결이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희지 너까지 왜 그러니? 아무렴 현역 연예인만 하겠니?”
이젠 숫제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는 끝도 없겠다 여기 드리안은 짐짓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박혀 있는 남자들에게 생각이 미친 세 여인은 조금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책맞았죠? 이렇게 말이 통하는 애들을 만난 게 너무 오랜만이라…….”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적봉, 자네에게 하고 싶은 부탁이 있는데.”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몰라도, 드리안은 첫대면부터 지금까지 임유진을 ‘적봉’이라는 헌터 시절의 별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쪽’일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안 것일까. 그녀의 선 고운 얼굴에 내키지 않아 하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죄송하지만, 헌터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듣지 않겠어요. 저는 이미 은퇴했고, 복귀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아이도 있고요.”
“글쎄……. 그래도 한번 들어보는 게 어떤가? 직접 싸워달란 소리는 안 할 테니.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닐 거야.”
임유진은 여전히 마뜩찮은 얼굴이었지만, 나름 안면이 있는 드리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이 초짜들을 좀 봐줬으면 하는데.”
“…전투 훈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이들은 실전 경험이라고는 드래프트가 고작인 생초짜들이야. 이 많은 인원을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겠나. 그러니 여기 머물 동안만이라도 자네가 신경을 좀 써줬으면 하네. 물론 맨입으로 해달란 소리는 아니야. 사례는 충분히 하겠네.”
신소율은 대놓고 짐덩이 취급을 하는 드리안의 말이 영 거슬리는지 몸을 뒤척였으나, 그쪽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임유진은 문득 의문이 생겼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잠깐만요.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요. 스카우터가 헌터들을 훈련시킨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지명을 받지 못한 건가요?”
“아, 그건 아니야.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드리안은 김정인과의 거래를 통해 이들 4명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된 일과, 그 계약 내용을 최대한 간추려서 설명했다. 물론 김정인이 Lv6의 재능을 가진 헌터라는 사실이나, 말할 필요가 없는 몇몇 사실들은 제외했다. 스카우터가 발탁한 헌터들의 저널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심하면 극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법. 적어도 드리안이 자의로 김정인의 정보를 흘릴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임유진의 눈은 드리안이 아니라 김정인을 향하고 있었다. 듣고 보니 이 기묘한 일행이 만들어진 이유가 저 사내에게 있었다.
“대단하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고작 갓 들어온 신출내기가 동료들까지 챙기겠다는 그 배포가 대단하단 소리에요. 어쭙잖은 동료애는 아닌 것 같은데…….”
임유진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김정인을 찬찬히, 속내를 낱낱이 살피려는 듯이 뜯어봤다. 마치 감정사가 물건을 정성 들여 품평하는 듯한 눈길. 어찌 보면 도발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태도였지만 김정인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내 ‘김정인’이라는 사내의 품평을 끝낸 임유진은 살짝 기울어진 머리를 바로 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가희야, 졸리면 먼저 들어가 잘래?”
“응. 나 잘래. 엄마는?”
“엄마는 나중에. 손님들이랑 얘기 좀 하고 갈게. 혼자 씻을 수 있지?”
“응.”
자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졸음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귀엽게 하품을 한 아이는 뒷문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나가는 것을 한없이 애정 어린 눈길로 응시하던 임유진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지나가듯 물었다.
“김정인 씨. 제가 당신을 죽이는 데 몇 초나 걸릴 것 같아요?”
“언니? 무슨 말을…!”
황망히 일어서던 신소율을 붙잡아 앉힌 윤희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서지 말란 뜻이었다.
“임유진 씨가 과거 유명한 헌터였단 것은 알고 있습니다.”
“2초. 2초면 김정인 씨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네요.”
“…….”
굴욕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김정인의 눈은 심유한 빛을 띤 채 깊게 가라앉아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1초가 아닌 건 당신이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제 실력이 그만큼 녹슬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곳에는 저보다 강한 괴물들이 즐비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드리안 님이 없다면 당신 일행은 한 달도 안돼서 몰살당한단 소리죠. 이래도 아직 자신이 있나요?”
말은 강한 훈계조였지만 임유진은 대선배로서, 경험자로서 진심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스퀘어를 만만히 보지 말라고. 이는 비단 김정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사실 반쯤은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 김정인과 드리안을 쫓아온 일행이었기에, 임유진의 충고가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대가 꺾이지 않은 사람은 있었다. 온갖 굴욕적인 언사를 들었음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은 김정인이란 사내였다.
“임유진 씨는 드리안 씨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
김정인이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자, 임유진은 무슨 소린가 싶으면서도 곧 그 말이 진심으로 묻는 것임을 깨닫자 상큼하게 눈썹을 치켜떴다.
“실없는 소리를 하는군요. 정히 궁금하면 대답해 드리죠. 스카우터는 대부분 현역을 은퇴한 헌터 출신들이죠. 은퇴했다곤 해도 그 실력이 어디가진 않아요. 만약 드리안 님이 제가 알고 있는 그 실력 그대로라면, 저는 절대 드리안 님을 이길 수 없어요.”
“늙은이를 너무 비행기 태우는군.”
졸지에 화제의 인물이 된 드리안은 스스로도 민망한지 볼을 긁적였다.
김정인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저도 한 달이면 임유진 씨를 이길 수 있겠군요.”
“뭐, 뭐라고요?”
임유진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몸소 표현하듯 할 말을 잃은 채 애꿎은 입술만 달싹였다. 구경만 하고 있다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드리안도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김정인을 노려보던 임유진은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 오만하군요.”
스산하게 치켜뜬 눈가에 붉은 기운이 이따금 내비치는 것이, 그녀 특유의 기운이 휘돌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나머지 일행은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몸을 들썩거렸다.
불안해진 노구덕은 옆의 신소율에게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러다가 우리 쫓겨나는 거 아니냐?”
“설마요.”
신소율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였다.
“어이! 유진아! 서방님 왔다!”
밖에서 들려온 걸걸한 사내의 음성에 임유진은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며 달갑잖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서 아른거리던 붉은 기운도 어느 틈엔가 안으로 갈무리한 그녀는, 차갑게 식은 솥을 안아들었다.
“안에서 기다리세요. 나오진 마시고요. 금방 돌려보낼 테니까.”
“남편 분 오신 것 아니에요?”
“남편 아니야.”
차갑게 대꾸한 임유진은 빈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아 솥 안에 담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집주인이 사라진 내실에 남겨진 일행은 누구하나 입을 여는 이 없이 침묵을 지켰다. 평소라면 어떤 주제가 됐든지 쉴 새 없이 재잘댔을 신소율도 조용하기만 했다.
“오! 왜 이렇게 늦었어?”
쫑긋. 모두의 귀가 약속이나 한 듯이 움찔거렸다. 일행의 신경은 오로지 바깥의 동정을 살피는 데 쏠려있었다.
“시간이 늦었어요. 돌아가 주세요.”
“이른 시간에도 도통 만나주질 않으니, 늦은 시간에 올 수밖에 없잖아?”
“낮에는 농장 일을 하니까요. 최종배 씨도 자경단 일이 있지 않나요?”
“오늘은 비번이란 말씀. 클럽 일도 없고 말이야. 그러니까 한 잔 어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그러니 돌아가세요.”
“아, 씨팔! 남편 죽은 지 10년이 다 돼간다며! 그 정도면 됐지, 평생 수절할거야? 아주 열녀 나셨네, 열녀 나셨어!”
가만히 이어지는 대화를 듣던 드리안은 대강의 상황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오호라. 저놈은 크래들타운을 연고지(緣故地)로 한 클럽 소속이로군. 자네들이 무슨 마음일지 짐작은 가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아.”
일행은 남자의 행패에 모두 불쾌한 낯빛이었다. 특히 여자인 신소율과 윤희지는 꼭 말아쥔 주먹을 부르르 떠는 것이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갈 기세였다. 둘 중 성미가 급한 신소율은 귀여운 얼굴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드리안에게 따져 물었다.
“저딴 놈을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신소율. 자네가 저놈을 응징할 실력이 되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좋아. 양아치 같아도 정식 헌터인 것 같으니까. 실력이 돼도 문제지. 그 도시의 연고 클럽을 건드리면 매우 귀찮아지니까.”
“이해가 안돼요. 연고 클럽은 도시의 주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렇게 행패를 부리다뇨.”
윤희지는 예쁜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분개했다.
“허어, 똑똑한 아가씨인줄 알았는데 순진한 면도 있군. 말했잖나. 이곳은 안정되지 않은 변경 도시야. 클럽이라고 해봐야 정규 리그에 소속되지도 않은 떨거지들이지. 배고프면 언제라도 도적떼로 돌변해도 이상할 것 없는 것들이야. 저 정도면 오히려 얌전한 수준이지. 그리고 미리 못 박아 두겠는데, 난 나설 생각이 없어. 나서서도 안 되고. 적봉도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냥 가만히들 있게나.”
그러는 동안 바깥의 소란은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너 나한테만 안 대주는 거냐? 엉? 뭐 이렇게 비싸게 굴어!”
“애가 자고 있어요. 조용히 해주세요.”
“맨날 애새끼 핑계 대지 말고! 네가 나한테 이럼 안되지. 그동안 여자 혼자 탈 없이 산 게 누구 덕분인데? 다 내가 뒤를 봐준 거야!”
“하아. 그런 건 처음부터 부탁한 적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씨팔! 은혜도 모르는 년이!”
짝!
거기까지였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노구덕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눈을 실처럼 가늘게 뜬 드리안이 나지막이 경고했다.
“그녀는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일부러 참고 있는 거야. 어쩌면 내일쯤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지. 이제 다 됐어.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거기에 재를 뿌릴 셈인가?”
노구덕은 턱밑까지 자라난 송곳니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드리안 영감. 이런 쪽에는 영 꽝이구만?”
“무슨 소리지?”
“다 됐다고? 모르는 소리. 내가 저런 놈들을 많이 봐서 아는데, 손이 나갔다는 건 이미 볼 장 다 봤다는 거야. 오늘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저놈은. 그러니까 차라리 이쯤에서 나서주는 게 도와주는 거지. 그리고……”
‘…유부녀가 아니라 과부라잖아!’
무심코 튀어나올 뻔한 본심을, 정말 간신히, 꾹 내리누른 노구덕은 그대로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 현관문을 발로 뻥 차버렸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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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魔 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히로인이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스포일 수도 있으니 ㅎ
티렌 님 잡몹보다 약한듯 합니다 언젠가는 쓰랄급이 될 수도 있겠죠…
woomee9 헌터는 다 여기서 살기로 한 사람들이죠 ㅎㅎ
울라리오 잘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소중한 코멘트 감사합니다
빙뢰(氷雷) 예 힘이 닿는데까지 달려보겠습니다
소녀가 좋은데 항상 시크한 추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