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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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교단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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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대륙에는 국가가 없다. 왕도 없다. 이 광활한 대륙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대, 중, 소로 나뉜 자치 도시들과 그 도시를 통제하는 연맹,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원회 뿐.
처음부터 이 대륙에 국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럽과 헌터, 위원회와 연맹이라는 지배 시스템이 구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륙은 타 차원과 마찬가지로 국가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고, 그를 떠받드는 신하와 백성들이 있었으며, 영토를 다투는 전쟁도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 평범한 역사의 순환이 뒤틀리게 된 것은 사백년 전, 최초의 카르믹 뮤턴트, 통칭 ‘카름(Kar’m)’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지금껏 대륙에 살던 그 어떤 생물과도 궤를 달리하는 카름들은 등장과 동시에 무차별적인 파괴와 살육을 일삼았다. 고도로 단련된 인간이 아니면 상대조차 불가능한 놈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재앙의 현신이나 다름없었다.
커다랗게 펼친 날개로 창공을 검게 물들이는 드래곤, 거대한 해일을 부르며 바다를 뒤집는 크라켄, 천둥벼락을 내리며 대지진을 일으키는 타이탄 등, 그간 이야기 속에서나 전해지던 신화시대의 괴물들이 대륙 각지에서 출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며 그로 인한 물적 피해는 미루어 세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계속되는 참사 속에서 당시 스퀘어를 지배하던 아홉 왕국, 즉 구왕조(九王朝, Nine dynasty)는 특단의 조치를 결의했다. 아홉 개로 분산된 대륙의 힘을 하나의 체제와 제도 아래 묶는, 이른바 ‘대통합(Great union)’. 전 대륙의 힘을 하나로 모아 카름들과 맞서 싸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리하여 각국의 주요 기구와 고위 관료, 장군들이 중부의 왕국 시온(Zion)에 모여 하나의 거대 연합기구를 창설하니, 그것이 곧 ‘연맹’의 최초 모태가 된 전쟁기구 ‘리뎀션(Redemption)’이었다.
리뎀션의 창설은 카름에 대한 반격의 서막이었다. 온 대륙들의 인재들이 총집결한 연합기구는 기상천외한 전략과 가공할 주문들을 마구 쏟아냈으며, 도저히 격퇴할 길이 보이지 않았던 강력한 카름들도 하나, 둘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전쟁은 인간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하던가. 한계를 모르고 끝없이 나아가던 스퀘어의 기술은 마침내, 타차원의 전력을 본토로 끌어올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헌터’라 불리는, 타차원에서 온 인간들은 스퀘어 본토의 인간들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수많은 전사자가 속출하는 이 대륙에 있어서, 타차원에서 온 속성전력(速成戰力)은 신이 내려준 은총이요, 불리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였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자네가 들어 온 이 세계의 역사일 테지.”
“예. 말씀하신 것에 덧붙이자면 이후에 구왕조는 위원회로, 연합기구 리뎀션은 연맹으로 개편되었고, 유입된 수많은 헌터들을 통제하기 위해 ‘클럽’과 ‘리그’가 생겼다는 것 정도군요.”
딱히 이곳의 역사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기본 지식은 상식으로 알아두는 편이 좋지 않은가. 노구덕이 울펜의 설명에 짤막하게나마 답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덕이었다.
“그렇지. 그럼 자네, 이레귤러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무작위로 방출된 카르마가 주변 지역을 오염시키는 현상이지요. 그게 같은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이어지면 레귤러, 단발에 그치면 이레귤러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거네. 무작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카르마가 누출되는 게 이레귤러지. 그런데 말이야, 혹시 이건 알고 있나?”
“……?”
“여태껏 대륙 각지에 퍼져 있는 대도시에 단 한 번도 이레귤러가 일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 말이네. 아니, 정정하지. ‘구왕조’의 기반이 되는 대도시는… 이레귤러를 겪은 역사가 없네. 바꿔 말하면 ‘위원회’의 직할 도시는 이레귤러의 무작위 선정에서 빗겨나가 있다는 거야.”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던 노구덕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일단 이레귤러가 일어나면 그 지역은 아수라장이 되지. 헌터를 제외한 원주민과 동식물… 심지어 자연환경마저 오염되어 괴물로 변해버리니까. 이레귤러가 등장한 지 사백년, 그 긴 역사 속에서 대도시에 이레귤러가 일어난 적은 단 세 번이었네. 세 사례 모두 엄청난 참극을 낳았지만, 그 세 개의 도시들은 모두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이었어.”
“…겨우 그 정도로 음모론을 펼치기엔 근거가 너무 빈약한 것 아닙니까?”
한창 설명에 열중하고 있던 울펜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래? 그럼 이건 어떤가? 카름이 등장하고 수십 년, 구왕조는 대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모든 이들이 그 뜻에 따른 것은 아니었어. 특히 왕국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힘과 권력, 재력을 갖추고 있던 세력의 반발이 컸지. 그도 그럴 게, 그들이 주장한 대통합은 구왕조 이외의 세력조차 자신들의 휘하에 뭉뚱그려 넣겠다는 것이었거든. 한마디로 구왕조를 제외한 다른 세력의 정통성은 모두 없애버리겠단 소리였지. 연합기구를 빌미로 모든 것을 징발하겠다니, 누가 그런 정신 나간 명령을 따르겠나?”
노구덕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울펜의 주장은 그가 알고 있었던, 도서관의 자료에 남아 있던 역사서의 내용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것이었다.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통합은 합당한 명분과 합리적인 물자 징수를 토대로 한 이상적인 결의안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그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울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스퀘어에는 왕국만 있었던 게 아니네. 대륙 서부에서 세를 떨치고 있었던 벌레교단을 포함해서 동부, 중부, 남부, 북부에도 각자의 이상과 기치를 내건 세력들이 왕국과는 별개로 카름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지. 우리 교단도 서부의 왕국 군다르와는 오랜 앙숙지간이었지만, 카름들이 나타난 이후 묵은 감정은 접어두고 참 열심히도 싸웠네. 그런데 지금 그들은 다 어디 있는가?”
“…….”
노구덕이 알 턱이 없었다. 울펜도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곧바로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북부의 발할라(Valhalla), 남부의 어비스 쉬라인(Abyss shrine), 중부의 마녀회(魔女會)……. 대충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로군. 자네는 이 단체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사서 쪼가리 말고, 이 단체들이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걸 본적이 있느냔 말일세.”
“…없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모두 잊혀진 이름들이니까. 자네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모두 고유의 비전을 가지고 강력한 군세를 구축하여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던 세력이었네. 구왕조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겠지.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군다르와는 피비린내 나는 항쟁의 연속이었으니까.”
노구덕은 입 안이 바짝 가물어 텁텁한 느낌이었다. 지나친 긴장 탓이었다.
“설마, 그 강대한 세력들이 모두 궤멸되었단 말입니까? 구왕조… 아니, 위원회에 의해서?”
“궤멸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네. 그들은 산 채로 박제된 거야. 지금도 각 지구의 레귤러에는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네. 자네가 말한… 마굴의 티라녹이란 교우(敎友)처럼 말일세. 이레귤러에 당하면 그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괴물이 되어 같은 시간대를 영원히 살아가는 거지.”
실로 무서운 이야기였다. 또, 쉽사리 믿지 못할 이야기이기도 했다. 노구덕은 이러다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니, 현 상황만 봐서는 이미 한 발을 깊숙이 담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로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듣지를 말 걸…….’
구왕조, 위원회……. 겨우 미들리그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그가 감당하기엔 듣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흐르는 단어들이었다. 노구덕은 이를 악물고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발목을 부여잡기 위해 애를 썼다.
‘더 들으면 안 돼. 이건 다단계보다 더한 물귀신 작전이다.’
“…거절하겠습니다.”
“천운으로 살아남지 못했다면, 나 또한 혼 없는 카름이 되어 갱도를 배회하고 있었겠지. 카름이 된 고위직들 중 일부는 노예로 생포되어 고유의 비전을 몽땅 토해낸다던가. 크크… 애초에 놈들은 그걸 노렸던 거야.”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위원회가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레귤러를 조작한다니요. 그런 말을 밖에서 하면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당할 겁니다. 죄송하지만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울펜은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것도 모자라 손사래까지 치는 노구덕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더 들어보고 결정하는 건 어떤가?”
“아이고! 어르신, 사정이 딱한 건 알겠습니다만 저도 딸린 처자식이 있습니다. 토끼 같은 새끼와 여우 같은 마누라가 있는데 그런 위험한 모험은 할 수 없다고요.”
“위험한 모험이라니?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불이 뜨거운 걸 꼭 데여봐야 압니까? 척 보면 척 이지요. 보나마나 위원회와 대적해 싸우라는 소리 아닙니까? 어르신과 교단의 복수를 위해서요.”
노구덕은 몸을 옭아매는 거미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설령 울펜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건 아니었다. 위원회와 싸우라니. 그건 이 세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아무리 그가 강함에 목말라 있다고 해도, 어여쁜 마누라들을 두고 그런 미친 짓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충왕각인이 아니라 충왕각인 할애비를 준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할 바에는…….”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교단이 한창 성세를 누릴 때에도 왕조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어. 군다르와의 80일 전쟁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지. 교단 역사를 통틀어도 그러한데, 하물며 자네 한 사람에게 어떻게 위원회와 싸우라고 할 수 있겠나?”
노구덕은 화색이 감도는 얼굴로 울펜의 말을 받았다.
“그럼 제 거절을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아니. 내 청은 간단해. 교단의 마지막 교황 발레기우스를 죽여주게.”
“그러니까 거절한단…… 예?”
단호하게 그의 청을 뿌리치려던 노구덕은 말을 멈춘 채 무심코 귓구멍을 후비적거렸다. 그는 환청을 들었나 싶어 구부정하게 서 있는 울펜에게 되물었다.
“발레기우스… 그러니까 벌레교단의 교황 말입니까? 그를 죽여 달라고요? 아니, 왜 그런 부탁을?”
머리를 끄덕이는 그를 본 노구덕이 연이어 묻자, 울펜은 바닥까지 늘어뜨린 수염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자글자글한 얼굴에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퇴색하지 않은 새빨간 분노가 서려 있었다.
“증조부이신 혈왕께서 놈의 손에 명을 달리했기 때문이지. 놈은 교단의 배신자야. 교황이라 일컫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존재라네.”
“처음 혈왕에 대해서 말할 때, 마지막 교황 발레기우스의 유지를 잇는다느니…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은데…….”
“자네가 놈의 끄나풀일지도 모르니… 살짝 떠 본 거였네. 나이가 들수록 조심성이 많아지더군.”
“…….”
이러니저러니 해도 처음부터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은 것은 노구덕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울펜은 조금 겸연쩍은 듯, 수염 한 가닥을 비비적 꼬아대며 황당한 낯짝을 하고 있는 노구덕에게 말했다.
“이레귤러가 발생했던 총단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추기경 이상의 고위직뿐이었네. 총단에 살고 있는 신도들은 철저한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지. 외부로 출장을 나가는 것도 교황을 비롯한 추기경들이었고. 그런데, 마침 네 명의 추기경들이 모두 총단에 복귀한 그날… 기다렸다는 듯 이레귤러가 일어난 거야.”
“…….”
“다행히 사적인 용무로 총단 외곽에 있었던 증조부께서는 이레귤러의 빛에 휩싸이기 전 총단을 탈출할 수 있었지. 증조부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총단이 오염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네. 그런데 그때, 그분은 한 사람이 아비규환이 된 총단에서 멀쩡한 행색으로 걸어 나오는 걸 보고야 말았어. 당시의 교황, 발레기우스였지.”
울펜의 말에 따르면, 어찌된 일인지 발레기우스는 이레귤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온 헌터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총단의 위치가 발각되고, 모든 고위간부들이 모인 날 때마침 이레귤러가 일어난 점, 그리고 홀로 멀쩡한 교황…… 이상의 사실들로 하나의 진실을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교황의 배신을 눈치 챈 말레피고르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었고, 하늘이 울리고 땅이 진동하는 대접전 끝에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였다. 이후 아들이 있는 안가로 피신한 그는, 발레기우스에게 당한 상처로 인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울펜이 밝힌 교단 멸망에 관한 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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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 바로 나갑니다! 잘하면 저녁에 한편 더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잘하면..요. 기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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