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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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교단의 유산
“…사정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거의 사백 년 전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아직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이…….”
“아니. 놈은 살아있네. 절대 죽을 놈이 아니야.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모르겠나. 게다가 교단의 교황은 대대로 다음 세대에게 다섯 번째 각인을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계승되어왔네. 놈이 죽었다면 그 후인이라도 살아있겠지. 다섯 번째 각인을 가지고서…….”
울펜은 감정이 들끓는 눈으로 노구덕을 쳐다봤다.
“자네를 지목한 건 그 때문이네. 교황만이 가질 수 있는 다섯 번째 각인을 제외하면… 통상적으로 충왕각인은 네 개가 한계. 하지만 자네는 문외자(門外者)임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각인을 새긴 상태지. 자네의 그 괴이할 정도로 뛰어난 재생력… 각인의 그릇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이야.”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재능. 노구덕이 헌터로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뒤 처음으로 접해보는 절찬이었다.
그 솔직담백한 찬사가 와 닿은 것일까. 견고하게 굳어져 있던 노구덕의 결심이 다시금 버드나무가지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위원회도 아니고 다 늙어빠진 교황이라면 한번 해봄직 할 것 같은데.’
교황 발레기우스를 얕잡아 보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자그마치 충왕각인을 다섯 개나 지닌 자다. 어쩌면, 정말 최악의 경우 프라임리그에 군림하는 십존(十尊)과 비슷한 반열에 있는 괴물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사백 년을 넘게 살아 온 인간이라고 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괴물일지라도, 시스템을 등에 업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위원회에 견주어 본다면 새 발의 피처럼 작아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언제까지 죽여 달란 말도 없고 말이야… 뭣하면 먹튀를 하는 것도…….’
시커먼 속내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노구덕의 귓전에, 울펜의 늙수그레한 음성이 날아와 꽂혔다.
“자네라면 교황각인 없이도 다섯 개의 각인을 다룰 수 있을 거야. 내 장담하지. 입문이 많이 늦긴 했지만, 그 간극은 교단의 비전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고.”
노구덕의 관자놀이 부근이 움찔 하고 떨렸다. 다섯 개의 각인을 다룬다? 그러면 교황과 동급이란 소리 아닌가. 물론 이런 허무맹랑한 단순계산으로 실력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솔깃하고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어쩌면 천재일우의 기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결국 노구덕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건 충분히 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정말 그게 답니까? 교황만 없애 주면 교단의 정수를 넘겨주겠다고요? 다른 조건은 없습니까?”
“그렇다네. 어떤가? 생각이 좀 바뀌었나?”
꼭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 쉽게 머리를 흔드는 울펜. 발레기우스를 언제까지, 어떻게 죽여 달라는 부가 조건도 없었다. 노구덕은 이미 마음을 정했음에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려 못내 찜찜한 기분이었다.
“으음… 좋습…….”
“…안돼요.”
밤바람처럼 스산하게 깔린 음성과 함께, 갑자기 유령처럼 튀어나온 은색의 단검이 울펜의 목덜미에 와 닿았다. 금방이라도 주름진 목덜미를 그어버릴 듯 한기를 머금은 단검은 노구덕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망고슈였다. 그것은 신소율이 항상 패용하고 다니는 두 애검 중 하나인 글래시어.
“소, 소율아? 너 어떻게 여기에……?”
“허어.”
탄식하는 울펜의 바로 뒤, 어둠 속에서 떠오른 신소율의 하얀 얼굴은 전에 없이 단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정말…! 다 큰 어른이 이런 유치한 꼬임에 넘어가면 어떡해요? 뻔한 수작이잖아요.”
“허허… 이보게, 아가씨. 유치한 꼬임이라니?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 건가?”
신소율은 나풀대는 종잇장도 잘라버릴 듯 예리한 빛을 내뿜는 글래시어를 더욱 바짝 들이댔다.
“당신, 움직이지 마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그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이게 꼬임이 아니란 말예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으니까 발뺌하지 마요. 세상에 그렇게 상대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딱 봐도 사기꾼이네.”
“노구덕에게 조금 유리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교황 발레기우스는 아가씨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네. 오히려 만전에 만전을 기해도 부족한 상대지. 그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라 생각하네만.”
“그 교황이란 사람이 얼마나 강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언제까지 죽여 달라는 조건도 없잖아요. 막말로 아저씨가 백년 뒤에 약속을 지키거나, 아니면 아예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어쩌면 상대가 자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르죠.”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
허탈하게, 하지만 내심 찔리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노구덕을 향해 살짝 혀끝을 내밀어 보인 신소율은 글래시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울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울펜의 낯빛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해 보였다.
“아가씨 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내 배를 갈라 속을 보여줄 수 없는 이상, 결국 평행선만 달릴 뿐. 이래서는 끝이 없지.”
“그래서요?”
“나도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라네. 이해해주게.”
“무슨…?”
쿠우웅! 쿵! 쿠구궁! 꾸르르르릉!
울펜의 의미심장한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석실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뒤흔들리며 바깥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지진에 하마터면 정말로 울펜의 목을 베어버릴 뻔한 신소율은 그의 굽은 등을 팔꿈치로 짓누르며 다급히 소리쳤다.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어르신!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두 사람의 다그침에도, 울펜의 안면을 덮은 자글자글한 주름은 미묘한 변화조차 없었다. 그는 숨을 내쉬듯 편안하게 말했다.
“안가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폐쇄했네. 방금 소리는 아가씨가 들어온 입구가 통째로 무너지는 소리지.”
“……!”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뜬 신소율의 입술이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사색이 된 노구덕은 울펜의 지저분한 옷가지를 꽉 붙잡았다.
“염병할!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군!”
“그렇지. 자네 대답과는 상관없이 이럴 작정이었네. 자네가 충왕각인을 발동한다 해도 완전히 무너진 입구의 잔해를 치우려면 최소한 한 달은 걸릴 거야. 작업 중에 입구의 나머지 부분이 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거고… 재수 없으면 매몰될 수도 있겠지.”
“이 미친 늙은이가!”
“다소 과격한 수단을 쓴 건 유감이네. 하지만 내 제안에 거짓은 없어. 이보게, 노구덕. 잘 생각하게. 여기서 날 그냥 죽이는 것과… 무너진 입구를 천천히 개척해 나가며 교단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인지를.”
빠져나갈 수 없는 지독한 덫이었다. 노구덕은 어금니가 부러져라 꾹 깨물며 울펜을 노려보았다. 모든 상황이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길. 약속을 안 지키면, 유산이고 나발이고 당신 목부터 비틀어 버리겠어.”
“아저씨!”
비로소 원했던 대답을 들은 울펜은 털복숭이 수염을 들썩이며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네.”
그렇게 세 사람… 아니,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실렌까지 합친 네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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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펜의 은신처에 강제적으로 갇혀버린 지 첫 날. 울펜은 바깥에 남아 있는 아이언 골렘을 이용해 노구덕과 신소율, 실렌이 처한 상황을 코놀룽가에 남아 있는 아이리스 탐사대에게 전해주었다. 통로가 무너졌어도 외부의 아이언 골렘은 조종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거대한 아이언 골렘이 세밀한 서신까지 작성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당장 나갈 방법이 없는 그들로서는 울펜의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리스에 급하게나마 서신을 전달한 노구덕과 신소율은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도 있었다. 바로 얼떨결에 끌려와서 푹 자다가 깨어난 실렌이었다.
신소율에게 대강의 사정을 들은 그녀는, 한 달이 넘도록 석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완전히 망연자실해서는 두 시간이 넘도록 넋두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흑…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데…….”
“언니.”
“오너, 저 인간하고 엮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힘내요. 겨우 한 달이잖아요.”
“저 늙은이가 우릴 고이 보내준다는 보장이라도 있니? 통로를 무너뜨린 게 누군데!”
실렌을 위로하던 신소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말을 해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녀는 지금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였다.
‘이토록 심약하던 언니가 아니었는데… 요새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신소율은 꿈에도 몰랐다. 요 몇 달 간이 실렌의 지난 생애에서 가장 최악의 나날이었다는 것을. 평생에 한 번 뿐인 첫경험은 강간이나 다름없었지, 오너에게 목줄기가 잡혀 죽을 뻔한데다 오줌까지 지리고, 살롱에서는 블랙 랩터와 제대로 척을 지게 되었다. 이후로는 온통 노구덕의 눈치만 보는 나날……. 그동안 그녀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멀찍이서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울펜이 낮게 혀를 차며 다가왔다.
“쯔쯔… 사제 아가씨가 이렇게 주눅 들어 있으면 어떡하나.”
“…와.”
뭔 말을 하나 했더니… 신소율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 실렌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앙칼지게 치켜뜬 눈으로 울펜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울펜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뒤집어 쓴 듯 두 여인의 따가운 눈총을 꿋꿋이 견뎌냈다. 그는 허리춤에 맨 자루에 손을 넣고는, 낡아빠진 서책 하나를 실렌을 향해 들이밀었다.
“읽어 보게.”
“……?”
퀴퀴한 가죽 덮개로 둘러싸인,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두께를 가진 서책. 겉에 제목도 저자도 적혀 있지 않은 밋밋한 책이었다. 의아한 얼굴로 책을 받아 든 실렌은 대수롭지 않게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첫장의 글귀를 접한 그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
“이, 이건!”
첫 페이지를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이 사시나무처럼 몹시 떨렸다. 이윽고 그녀는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서책의 내용을 훑어 내리기 시작했다.
“시… 실렌 언니? 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래요?”
놀란 신소율의 물음마저 무시한 채 서책을 탐독하던 실렌이 책을 덮은 것은,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나서였다. 서책의 마지막 장까지 낱낱이 살핀 그녀는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울펜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훑어본 감상은?”
“…대단해요. 이런 종류의 신성주문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방어, 보조 계열의 주문이 주류로 자리 잡은 현 주문체계에 획을 그을만한 주문들이에요. 아, 물론 그쪽 계열도 뛰어나지만 이건… 신성력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니. 어지간한 파괴마법보다 윗줄이라고 할 만해요. 정말 대단… 아니, 이건 혁신이야. 아아…….”
그녀가 경탄과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내자, 울펜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래봬도 벌레교단은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뼈대 있는 교단. 교단의 신성주문이 겨우 이삼백 년 만에 자리 잡힌 조악한 주문들에 뒤질 리가 없잖나. 자, 다 봤으면 다시 이리 주게.”
“네, 네?”
울펜이 손을 뻗자, 눈을 커다랗게 뜬 실렌은 반사적으로 서책을 품 안에 깊숙이 끌어안았다가,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품 안에 있는 서책은 그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보물. 특히나 사제라면 이 책을 얻기 위해 목숨마저 불사를 만한 값어치가 있는 서책이었다. 그런 보물을 겨우 맛보기만 보고 넘기라니… 이건 목이 타는 자에게 겨우 물 한 방울만 찔끔 흘린 것처럼 잔인한 일이었다.
“뭐 하나? 이리 달라니까.”
“우으으…….”
미치도록 아까웠지만, 가지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가지고 싶었지만, 사방이 막혀버린 이 석실에서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 실렌은 끝내 짐승처럼 앓는 신음을 내며 서책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놓게.”
“끅.”
…어지간히 미련이 남았는지,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서책의 귀퉁이를 끝까지 놓질 못하는 그녀였다.
울펜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묘한 미소를 띠었다.
“정 이 책을 가지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지.”
“꺽! 켈록, 켈룩! 지, 진짜요? 정말인가요?”
경기를 일으키며 기침을 토하는 실렌의 눈이 며칠을 굶은 거지처럼 번뜩였다.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이 뒤집힌 게, 저 상태로 봐서는 울펜이 짖으라고 지시라도 하면 꼬리를 흔들며 개 같이 짖어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울펜은 뼈마디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사람을 가리켰다.
“이 서책 또한 교단의 유산. 유산을 얻으려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차기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발등에 입을 맞추게. 그리하여 그가 허락을 한다면, 이 서책을 양도 받을 수도 있겠지.”
“……!”
실렌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저러다 목뼈라도 삐끗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 그러나 그녀는 목의 안위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울펜이 가리킨 방향으로 급히 발걸음을 서둘렀다.
“엉?”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향하는 곳에는, 막 창고에서 식량이 담긴 자루를 꺼내온 노구덕이 멍청한 낯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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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페관수련..
은신설야 / 감사합니다! 좀 더 일찍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느린시간 / 코멘트 감사합니다~
랜슬럿 듀 락 / 코멘 ㄳㄳ
카론느 / 더 드세요!
에보커 / 이번 기회에 멀리뛰기 한번으로 좀 성큼 나아가면 좋겠네요
애독자C / 더 노력하겠습니다 ㅠㅠ
호야[虎夜] / 하하..130편 가량이 지나서 풀었네요 ;
사고뭉치00 / 잡히지 않으려면 연중은 절대 없어야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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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OfDark / 넵 감사합니다!
트릭스타 / 아직 한참 멀었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