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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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울지 말아요
솔직히 말하면, 두 무기를 놓고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 차이가 명백했다. 아이시클과 글래시어도 나름 좋은 무기이긴 하지만, 일부러 교단 안가에 비치해 놓은 위도우메이커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방어 쪽이 다소 취약해지긴 한다지만, 위도우메이커가 발휘하는 공격력은 그 약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그럼에도 쉽사리 위도우메이커를 택할 수 없는 건, 속정이 많은 그녀의 성격 탓이었다.
“정말. 평소엔 야무지면서 또 이런 건 약하다니깐. 뭣하면 클럽 창고에 두거나 방에 보관하는 게 어떠니?”
“…그래야 할까봐요.”
“나라면 중고무기상에 팔겠지만.”
“그건 싫어요.”
단호히 도리질을 친 신소율은 뭔가 생각난 게 있는지, 옆에 걸터앉아 있는 실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니,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응?”
“실렌 언니는 아벨(Abel) 교단의 사제죠? 근데 종파가 다른데도 벌레교단의 주문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실렌은 이내 신소율이 던진 질문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난 또 뭐라고. 헌터들이 가진 신성 재능은 일반적인 의미의 신성력하고는 조금 달라. 풀이하자면 ‘믿는 힘’이랄까. 믿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 염원의 힘이 강하면 신성이 발현하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그럼 아벨 교단의 주문과 벌레 교단의 주문을 비교하면 어때요? 사실 그때 언니가 감탄하는 것만 봐서는 그다지 감이 안 잡혀서요.”
처음만 하더라도 줄에 걸린 빨래처럼 늘어져 기운이 없었던 실렌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볼 때마다 싱글벙글. 이게 다 울펜이 건넨 그 낡은 서책의 힘이었다. 따지자면 교단의 유산에 혹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순수한 의미로 그 서책이 지닌 가치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책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조금 지친 듯 했던 실렌의 얼굴이 물망초처럼 활짝 피어났다.
“아벨의 사제인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야. 아벨 교단이 스퀘어에서 가장 많은 사제를 거느리고 있긴 해도, 그건 다른 교단과는 달리 초보 헌터들을 위해 기초 주문을 완전 개방했기 때문이거든. 한마디로 양만 많을 뿐이지, 주문의 질은 좀 떨어지는 편이야.”
신소율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쩐지 타 교단에 비해 아벨 교단의 사제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벌레교단의 신성주문은… 뭐랄까, 아주 호전적이야. 특히 몇몇 주문은 도저히 신성주문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방식이라 약간 꺼림칙한 기분은 있어. 예를 들면 인주(人柱) 주문이라던가…….”
“인주… 인간 기둥이요?”
신소율은 아미를 찡그렸다. 인주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불길한 의미 때문이었다.
“응. 인간을 제물로 삼아 주문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거야. 인신공양 같은 거지. 피의 주문의 일종이라 보면 돼.”
“하긴, 이 교단은 피의 주문을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제가 드래프트 시험을 친 곳도 이 교단과 관련이 있는 곳이었거든요. 백골탑이라고… 벽에 수백 구의 시체가 묻혀 있는 기분 나쁜 곳이었죠. 그러고 보니 그 시체들을 인주로 썼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음… 벌레교단의 성향을 보면 그럴 것 같긴 해. 이 서책은 굉장하지만, 백번양보해도 여기 교단이 선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죠?”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두 사람. 기실 교단을 대표하는 비전인 충왕각인만 봐도 인간의 생혈로 각인을 유지하는 수법. 벌레교단은 엄밀히 따지자면 그 속성이 악(惡)에 가까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집단이었다.
그러나 벌레교단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그 유산이 그녀들을 한층 더 강하게 해준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실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헌터에게, 교단의 도덕성은 별 고민거리가 되지 못했다.
신소율이나 실렌의 성향은 따지자면 선(善)에 가깝지만, 그전에 그녀들은 모두 실력향상을 갈구하는 헌터. 충왕각인처럼 지속적으로 산제물을 먹여야 하는 마물이 아닌 이상, 도덕적 잣대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었다.
물론 두 사람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나간 것은, 곧바로 돌입하기엔 본 주제가 상당히 민감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작위적인 대화와 어색한 침묵. 빙빙 겉도는 상황에서 선수를 친 것은 연장자인 실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네?”
“그렇잖아. 평소에 신성력에 관심도 없던 애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제야 교단의 선악을 따지는 것도 우스워. 우리, 영양가 없는 말장난 말고 진솔한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떠니?”
“…….”
신소율은 통통하게 물이 오른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잠깐 하고 싶은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그녀는 나지막한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하고 싶은 말이라기 보다는… 저, 언니에게 직접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내게 듣고 싶은 것…?”
그녀는 자못 도전적인 눈으로 실렌을 응시했다.
“명확하게 말해주세요. 아저씨랑 무슨 관계예요?”
단도진입적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말에, 이번에는 실렌이 당황한 얼굴로 말을 꿀꺽 삼켰다.
“관계라니…?”
“저 다 알고 있어요. 그날 언니랑 아저씨가 그… 관계가지는 것도 들었구요. 제가 알고 싶은 건 언니의 입장이에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그녀의 말에, 실렌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에게 꼬리를 친 격이었으니, 신소율이 한참 동생이라곤 해도 보기가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으윽, 그걸 다 들었단 말이야?’
창피함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애써 가라앉힌 실렌은 납처럼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미안해. 그때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해서라도 클럽에 남고 싶었거든…….”
“…그게 끝?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관계를 가진 거예요? 그럼 이제 다시 그럴 일은 없겠네요?”
어쩐지 안심하는 듯한, 하지만 여전히 의혹을 지우지 못한 기색으로 확인 차 물어오는 신소율.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려던 실렌은 어째서인지 바로 즉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후 한참만에야 실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안그래도 의구심 가득하던 신소율의 눈을 가로로 쭉 째지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글쎄? 그건 모르지.”
“…뭐라고요?”
실렌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천천히 뒤로 쓸어넘기며, 신소율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여전히 홍조의 여운이 남아 있긴 해도 이전의 떳떳치 못한 기운은 거의 걷어낸 얼굴이었다.
“이미 충성 맹세까지 한 마당이잖아? 나한테도 오너는 첫남자야. 그리고 나도 딱히 오너가 싫진 않거든. 겉으로 보면 별로 매력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회적 지위도 있고, 재력도 있고. 나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해.”
“이익! 그게 뭐예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저씨 옆에 들러붙겠다고요? 절대 안돼요!”
“사랑? 음, 그건 잘 모르겠네. 그런 로맨스는 연애소설에나 나오는 거 아닐까? 그래도 소율이 네 생각처럼 지저분하게 엉겨 붙지는 않을 거야. 오너와의 관계를 콕 찝어서 말하라면… 그래, 섹스파트너 정도 되겠네. 아니면 간혹 가다 찾는 숨겨둔 애인?”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바락 고성을 내지르는 신소율과 차분하게 그것을 받아넘기는 실렌의 눈이 맞부딪치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실상 실렌이 신소율에게 이리 배짱을 부릴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못한 형편이라 하더라도,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에게는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이 여인의 심리였다. 신소율 또한 실렌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실렌은 별안간 기묘한 미소를 띤 채, 씩씩대는 신소율을 향해 말했다.
“소율이는 순정파구나. 이렇게 화를 낼 정도면, 그만큼 오너를 사랑한단 거겠지?”
“흥! 당연하죠!”
“그럼 내가 보는 앞에서 입맞춤도 할 수 있을까? 홋홋.”
“이… 입맞춤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실렌의 얼토당토 않은 말에 그녀가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하는 사이, 그녀들이 머무르고 있는 석실 밖 복도에서, 투박한 발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낮고 굵은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가 이리 시끄러워? 소율아! 혹시 실렌 못 봤… 아, 여기 있었구만.”
“안녕하세요. 오너. 수련은 끝나셨나요?”
“아저씨?”
실렌은 성큼성큼 석실로 들어온 노구덕을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 반면,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신소율은 노구덕과 실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벙벙해 했다.
금방 훈련을 마치고 왔는지, 웃옷을 탈의한 노구덕의 상체는 굵은 땀방울이 여기저기 맺혀 있었다. 공기를 빵빵하게 채워 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체 근육은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함께 후끈한 열기를 발산했다.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 육체를 보자, 신소율은 가슴이 절로 콩닥콩닥 뛰었다. 당장이라도 저 너른 품에 안겨 얼굴을 묻고, 시큼한 땀 냄새에 정신없이 취하고 싶었다. 저쪽에서 얄미운 미소를 짓는 실렌만 아니었다면, 바로 실행에 옮겼을지도.
‘흥. 언니가 그래봤자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구요.’
은근한 과시욕이 생긴 신소율은 살짝 거만한 표정으로 어디 보라는 듯 노구덕의 팔짱을 끼었다.
“응? 이 녀석아, 땀 많이 흘렸으니까 너무 달라붙지 마라.”
“에이, 부.부. 사이에 그까짓 땀이 대수람? 그나저나 실렌 언니는 왜 찾았어요?”
실렌 쪽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유난히 부부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신소율이었지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노구덕은 두 여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리없는 전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 그게 말이지. 울펜 영감이 잠깐 벌레 채집을 한다고 자리를 비워서… 실렌에게 디저트를 맡겨놨다고 하던데?”
“디저트요?”
“아! 맞다… 죄송해요, 오너. 바로 전해드려야 했었는데 소율이랑 잠깐 수다 좀 떠느라 까맣게 잊었지 뭐예요.”
실렌이 자기 이마를 콕 치며 정말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숙이자, 노구덕은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잖게 말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나저나 오늘 디저트는 뭐지?”
“뭐, 매번 똑같죠. 소금 약간에 후추, 동굴버섯을 넣어서 간을 맞춰봤어요.”
“호오… 기대되는걸.”
둘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던 신소율의 볼이 불만스레 빵빵해졌다. 노구덕이 온 김에 실렌과 자신의 격차를 똑똑히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그녀의 체면만 구겨지지 않았는가.
‘씨잉… 돌아가면 유진이 언니한테 요리부터 배우든가 해야지.’
우걱우걱! 쩝쩝!
불현듯 게걸스레 쩝쩝거리는 소리가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는 신소율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녀의 머리 바로 위, 노구덕의 입이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쳐든 신소율은 곧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미간에 잔주름을 잡으며 얼굴을 돌렸다.
“그걸 꼭 지금 먹어야 돼요?”
“쩝쩝… 그럼 어쩌냐. 배고파 죽겠는데…….”
노구덕이 오독오독 씹어 먹고 있는 음식은… 미트볼처럼 한 덩어리로 엉겨 붙은 왕파리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두꺼운 입술 표면에는 미처 안으로 입성하지 못한 왕파리의 날개며 구부러진 날개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한창 소녀다운 감수성이 강할 나이인 신소율로서는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역겨운 장면. 스리슬쩍 팔짱을 풀고 그의 품을 빠져 나온 그녀는 살짝 되바라진 어조로 물었다.
“…맛있어요?”
“그냥저냥 먹을 만하다. 양념 맛으로 먹는 거지, 뭐.”
“으엑….”
울펜과의 맨 투 맨 수련에 돌입한지 이제 일주일, 본래 쇠심줄 신경을 자랑하는 노구덕은 이제 끼니를 벌레로 때우는 것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 특히 비위가 약한 신소율에게는 여전히 구토를 유발시키는 광경이었다.
신소율은 슬금슬금 노구덕과 거리를 벌리더니, 어느새 다섯 걸음 정도를 훌쩍 떨어져 있었다. 파리, 바퀴벌레, 벼룩… 그 징글징글한 벌레들을 꾸역꾸역 먹어대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사랑하는 그이라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걱우걱 씹어 먹다가 이빨 사이로 무언가 톡톡 터지는 기성이 들릴 때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때, 어느 순간 그녀의 등 뒤로 다가온 실렌이 입술을 귓가에 가까이 가져다 대며 작게 속삭였다.
“…안 할 거니? 지금이 아니면 무효야.”
“뭐, 뭘요?”
“입.맞.춤. 말이야. 사랑한다며? 그럼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혹시 모르지, 소율이가 과감히 키스를 한다면 포기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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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사랑의 힘을 시험당하는 소율이…
파토스 / 코멘 감사합니다! 찍!
코드표 / 취존합니다!
hohokoya1 / 지금 연참할 형편이 못돼서 ㅠㅠ 매일 연재라도 지켜야지요!
은신설야 / 그렇죠 곰벌레 되는 순간 리그 씹어먹을듯…
호야[虎夜] / 통수 너무 좋아하셔!
마선 / ㄷㄷㄷㄷ 댓글 감사합니다!
트릭스타 / 테라포마즈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나중에 시간이 되면…
벌레 / 곰벌레는 아예 눈에 보이질 않으니 ㅠㅠ
카론느 / 원류가 드루이드다보니 영적 친화력을 쌓으려는 의도긴 한데… 그렇습니다. 축약하자면 바퀴벌레력이로군요…
장마와방 / 곰벌레는 너무 오버밸런스!
ㅇㅇm9 / 주인공의 고통이 전해지는군요..
이상향을꿈꾸며 / 눈에 보이질 않아서 이곳 사람들은 존재도 모를 거여요 ㅠㅠ
MrX / 테라포마스 바퀴인간들은 고릴라 닮았더군요 얼굴이 ㅎㅎ
누구셧더람 / 쿠폰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