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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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벌레의 왕
33# 벌레의 왕
‘바위 피부(Stone skin)’란 기술이 있다. 신체 어느 부위를 마음먹은 대로 딱딱하게 굳혀 도검이 박히지 않게 하거나 공격을 튕겨내는 기술로, 근접 전투를 하는 무투계열 헌터라면 꼭 익혀야 할 기술 중 하나였다. 전반적으로 무예가 크게 발달한 남부 지구에서는 이와 비슷한 원리로 머리를 단련하는 철두공(鐵頭功), 피부를 고루 단단하게 하는 철포삼(鐵布衫), 신체 내외를 금강석과 같은 수준으로 연마하는 금강불괴(金剛不壞) 등이 있었다.
이처럼 필수로 여겨지는 기술이지만, 모든 헌터들이 바위 피부를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퀘어는 재능의 세계, 당연한 말이지만 이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능이 필요했다.
통상적으로 바위 피부를 익히기 위한 최소 기준은 Lv2 근력 재능, Lv1 마력, 혹은 이능 관련 재능이란 게 정설이었다. 특정 부위에 힘을 집중해 경도를 높이고, 체내의 마력을 흘려보내 철갑과 같은 단단함을 발현한다. 이것이 바위 피부의 기초 원리였다.
“…나는 마력 재능이 없는데. 주술 재능은 있지만… 이건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서.”
“잔말 말고 계속 듣기나 해요.”
“…응. 그래.”
날이 잔뜩 선 신소율의 말에 노구덕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바위 피부에 대해 언급한 건, 이 터틀쉘(Turtle shell)이라는 기술이 바위 피부의 상위버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명칭 그대로 거북이 등껍질을 뒤집어 쓴 것처럼 막강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해요. 바위 피부의 위력은 주스트에서도 확인했죠? 최종배 그 인간이 썼었잖아요. 무려 정인 오빠의 검을 가볍게 튕겨냈었죠.”
“그랬지.”
최종배. 주스트에서 김정인에게 팔을 잃어버리고, 아이리스를 흔들기 위한 소피아의 장기말로 쓰인 레드 고르곤의 헌터. 임유진에게 찝쩍대던 것도 그렇고, 시합 중 신소율에게 몹쓸 짓을 한 전적이 있기에 이미 고인이 되었음에도 달가운 이름은 아니었다.
“피부뿐 아니라 뼈와 근육까지 강화시켜 주지만, 저널 시스템을 모르는 교단의 인물이 창안한 기술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재능이 필요한지는 미지수예요.”
“바위 피부의 상위버전이라며. 보나마나 마력 재능이 필요하겠지. 아무래도 내가 익히기엔 좀…….”
“쓰읍. 말 끊지 말랬죠.”
“미, 미안하다.”
지은 죄가 있는 터라 노구덕은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얼마간 노구덕을 지그시 노려보던 신소율은 다시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자세히 읽어 보니까 꼼수를 부릴 수 있겠더라고요. 바위 피부에 마력 재능이 요구되는 건 체내 마력을 움직여 피부를 강화하기 위함이죠. 터틀쉘도 비슷해요. 다만 이건 한 군데에 마력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에 퍼트려 신체 강도를 높이는 거라서, 최소 Lv2 이상의 마력 재능이 필요할 거예요.”
“음….”
“하지만 아저씨는 마력 재능이 필요 없잖아요. 마력 대신 근육을 움직여 신체를 강화할 수 있죠. 머슬컨트롤 말이에요. 거기에 킹스콜피온의 갑각, 충왕각인까지 더하면 마력 없이도 충분히 터틀쉘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세 번째 충왕각인이자 줄기 각인인 ‘바퀴의 적응력’ 각인이 자리 잡으면서, 불안정했던 킹스콜피온의 갑각은 노구덕의 신체 일부처럼 자연스레 녹아들게 되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등줄기에서 뽑아낸 갑각으로 상체를 완전히 뒤덮을 수 있을 정도.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하체까지 포함해 전신을 갑각으로 무장할 수 있을 터였다.
또한, 노구덕은 실제로 가이탄에게 배운 머슬컨트롤을 ‘바위 피부’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적이 타격할만한 부위로 적시에 근육강도를 높여 방어력을 극대화하거나, 공격의 위력을 높이는 식으로. 예전에도 아이언 골렘의 공격을 버텨낼 때 양 팔의 근력을 강화한 적이 있었다.
“기본적인 재료는 다 갖추고 있어요. 마력을 빼더라도 그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단 말이죠. 오직 아저씨만 가능한 일이에요.”
오직 노구덕만 가능하다. 신소율의 이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무리한 머슬컨트롤이나 근력의 집중은 근파열, 근육염, 근수축 등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머슬컨트롤을 외면하거나 익히고도 잘 활용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부작용과 후유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구덕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재생자’ 클래스의 초인적인 재생력은 손상된 근세포마저 신속하고 말끔하게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바퀴벌레의 적응력으로 나머지 두 각인에 들어가는 ‘유지비용’을 감축한 현재로서는 몸에 걸린 부담감이 훨씬 덜한 상태. 일찍이 교단 무투술에 관심을 접었던 노구덕이었지만, 몸에 한결 여유가 생기니 살짝 구미가 당겼다.
“원리만 차용해 보라는 거지?”
“네. 잡다한 기술들은 하나로 묶는 게 편하잖아요? 아저씨한테는 이 터틀쉘이 딱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어요.”
“어휴, 이 이쁜 것.”
노구덕은 팔을 벌려 신소율을 껴안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어느 틈엔가 저만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어딜 다가와요? 저리 가요.”
“아직도 삐쳤냐?”
“네, 삐쳤어요. 그니까 언니한테 가서 좆이나 빨아 달라고 하지 그래요?”
“…….”
삐쳤다. 삐쳐도 단단히 삐쳤다. 노구덕의 너른 등에 식은땀이 한가득 맺혔다.
인과를 살펴보자면, 실렌을 괴롭히는 재미에 빠져 주위를 좀 더 살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사실, 자각하진 못하고 있었으나, 근래 노구덕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부하가 많이 걸린 상태였다. 원치 않는 세계로 끌려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살아남은 것이 어느덧 일년 하고도 반. 그간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알게 모르게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나름대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생활은 안정되었고, 어여쁜 마누라들도 둘씩이나 거느리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평화였다. 이전 오닉스의 화산에서 활약했던 임유진을 보고 느꼈던 불안감도, 강간하다시피 과격하게 실렌을 안은 것도 그러한 어두운 심리의 표출이라 할 수 있었다.
순종적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내들, 이미 조련을 끝낸 데다 각종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소피아… 누구도 받아줄 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할 곳이 필요했던 노구덕은 실렌을 그 타겟으로 삼은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지닌 원초적인 가련함은 그의 가학심리를 더할 나위 없이 충족시켜 주었으니…….
…변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속내일 뿐, 실렌에게 펠라치오를 시키다 그 현장을 신소율에게 딱 걸려버린 이 시점에서 대놓고 말할 것은 못되었다. 그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하. 누구는 자기 잘되라고 그럴듯한 기술까지 발견해서 들뜬 마음으로 가져왔건만… 정작 그 사람은 엄한 여자한테 좆이나 물리고 있다니……. 세상 참 부질없네.”
말마다 유독 좆을 강조하는 그녀다. 나타샤와 어울리면서부터 약간 입이 험해졌다는 걸 체감하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또 느낌이 다르다. 꼭 ‘좆 같은 새끼’라고 욕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할까.
“소율아,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 너무 쌓여 있어서 그만… 자제를 못했어.”
“기껏 한다는 변명이 고작 그거예요? 참 나, 쌓여 있으면 여기 버젓이 있는 아내한테 말해야지, 왜 언니한테 말해요?”
“넌 훈련 때문에 힘들잖아. 내가 한번 불붙으면 몇 시간은 그냥 넘기는 거 알면서…….”
금방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만 같았던 신소율은 잠깐 머뭇거렸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노구덕에게 밤새 시달린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마 그러고 나면 다음날 훈련은 공쳐야 할지도 몰랐다. 핑계인 걸 알면서도 당당히 받아준다고 받아칠 수 없는 건 노구덕의 정력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휴우. 이걸 불가항력이라고 해야 되나? …미안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하여튼 아저씨가 나빠. 정력만 괴물 같이 강해서는!’
“…됐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용서해주는 거냐?”
“용서하고 말고가 어딨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걸.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언니랑 무슨 사이로 지내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고 싶을 때는, 적어도 여기선 나한테 먼저 말하란 말이에요. 알았어요?”
“명심, 또 명심하마.”
신소율은 큰소리로 답하는 노구덕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여간 대답은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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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율 덕분에 뜻하지 않게 머슬컨트롤과 킹스콜피온의 갑각을 융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노구덕은 곧바로 울펜을 찾았다.
그에게 신소율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말하자, 울펜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그 아가씨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네.”
“영감님 생각도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터틀쉘이라고 했지? 내가 무투 분야에는 그다지 지식이 없어서 확실한 조언은 못해주겠지만, 이론상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군.”
노구덕은 팔뚝에 찍힌 세 번째 충왕각인을 가리켰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 바퀴벌레 각인이 얼마나 ‘갑각화(甲殼化)’를 버텨줄 수 있냐는 겁니다. 멋모르고 남용하다가 카름이 되어버리는 일은 사양이니까요.”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건 중요하지. 우리 교단에서도 카름에 관한 연구나 이식 수술이 심심치 않게 자행되기는 했었지만… 글쎄, 성공 사례는 그다지 본 적이 없는 것 같군. 그나마 ‘화신(化神)’ 주문에 응용되는 정도였지.”
“요점만 간단히 말해주십쇼. 그래서 결국 해봐야 안단 겁니까?”
“이 경우엔… 그렇지. 미안하네.”
울펜이 못내 미안해하자 노구덕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영감님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니까요.”
그 말 속에 담긴 의지를 읽었음인지, 울펜은 비쩍 마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건투를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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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온 노구덕은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터틀쉘’이 수록되어 있는 서책을 탐독했다. 몇 장 되지 않는 짧은 내용이었지만, 젊었을 적 무협지에서나 보던 비급을 읽는 것 같아 모처럼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서책을 읽고 나온 첫마디는,
“이런 젠장!”
처음의 기대감 따위는 저 멀리 팔아먹은 욕지기였다.
“마력 없이는 그냥 반쪽짜리로군!”
문제는 이거였다. 머슬컨트롤로 마력을 대체한다는 신소율의 아이디어는 좋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피(外皮)를 강화할 수 있는 방편에 불과했다. 터틀쉘의 진정한 묘리는 외강내강(外剛內剛), 즉 안쪽도 바깥쪽도 모두 철옹성을 만드는 데 있었다.
머슬컨트롤에 대해 잘 모르는 신소율은 그저 막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여긴 모양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근육에도 엄연히 움직일 수 있는 근육(수의근, 隨意筋)과 그렇지 못한 근육(불수의근, 不隨意筋)이 있었고, 내장이나 심근 등은 거의가 불수의근이었다.
서책에서는 기상천외하게도 마력의 실을 불수의근에 연결하여 수의근처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었지만, 그 신묘한 기술도 마력 재능이 없는 노구덕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평범한 사람 수준의 마력 재능으로 체내의 세밀한 곳까지 마력의 실을 전달하고, 그것을 조종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노구덕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겨우 취약한 방어력을 보완할 수 있나 했더니, 이래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표면이 아무리 단단해봤자 그를 지탱하는 내부가 부실하면 무슨 쓸모란 말인가.
“그래서야 모래 위에 지은 성이지…… 잠깐만, 안이 부실하다고?”
우묵한 눈동자가 번쩍이는 불빛을 토해냈다. 별안간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진 노구덕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군!”
마력 재능이 없어도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지금 번개같이 머리를 강타했다. 드물게도 그의 두뇌가 밥값을 해낸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노구덕이 소피아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이전에 간략하게 리리플로 달아드린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설명과 묘사가 부족함을 통감하고 본편에 해설식으로 작게나마 덧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좋게 대하면, 다른 사람을 조금 덜 좋게 대하거나 나쁘게 대할 수도 있는 거지요. 실렌의 경우에는, 노구덕이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배출구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노예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관계… 실상 종속 관계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자살할 정도로 깜냥이 있는 여자도 아니고.. 아, 물론 그토록 가혹하게 괴롭히지는 않을 테지만요.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