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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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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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또…….”
열심히 말을 이어가던 에이전트는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실내의 분위기에 진땀을 흘렸다.
‘젠장! 이래서 독대를 하자고 했던건데……!’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생각해보니 독대를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다를 건 없어보였다.
그의 타겟인 임유진의 표정은 설명을 듣는 내내 미미한 변화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의 오랜 에이전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저건 마음이 전혀 동하지 않았을 때나 나오는 표정이었다.
속으로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어쨌거나 프로로서 맡은 일은 완수해야 했다.
“…급료는 빅리그 최고 수준을 약속드립니다. 계약기간은 최대인 5년을 무조건 보장하구요.”
“됐어요. 더 들을 것도 없네요. 이만 돌아가 주세요.”
“예?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십니까? 자, 잠시만……!”
“세영아~? 손님 나가신다.”
“네.”
임유진이 고개를 젓자 마자 이어진 소피아의 낭랑한 목소리. 어버버거리던 에이전트는 앳된 소녀의 팔에 질질 이끌려 퇴실했다. 작은 몸집에도 성인 남성을 가볍게 다루는 소녀의 완력을 본 임유진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피아 씨, 세영이가 힘이 저렇게 셌나요?”
“네에. 의외로 근력 쪽에 재능이 있더라고요. 세희와는 달리 근접계열로 성장할 것 같아요.”
사탕 파이프를 문 입술을 뻐끔거리며 대꾸한 소피아는 한쪽에 서 있는 다른 소녀를 향해 가볍게 턱짓을 해 보였다. 에이전트를 끌고 나간 소녀와 닮은 구석이 많은 소녀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끄덕이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차례의 인원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다.
“정말, 마지못해 상대해 준다곤 하지만 진짜 귀찮은 인간들이네요. 그렇죠?”
“이제 몇 명 남지 않았으니까요. 나머진 제가 알아서 상대할 테니, 소피아 씨는 이만 들어가 쉬세요.”
“우후후. 그럴 순 없죠. 아이리스의 단장으로서 직무를 저버릴 순 없잖아요.”
“하지만…….”
무어라 더 말을 하려던 임유진의 음성은, 단호하게 도리질치는 소피아에 의해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정말로 괜찮다고요.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세요. 세희야아~! 다음 분은 언제오시니?”
건재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짐짓 큰 목소리를 내는 소피아다. 하지만 임유진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그녀의 눈 밑에 서린 짙은 그늘을 놓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푸석해진 피부와 윤기를 잃은 머리카락 등. 소피아의 몰골은 일부러 두껍게 덧칠해 놓은 화장으로는 이제 가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해져 있었다.
‘후우… 비축해둔 수혈팩이 전부 떨어졌으니… 이제 거의 한계일 텐데…….’
‘피의 권속’이 된 탓에, 오로지 노구덕의 피로만 배를 채울 수 있는 소피아다. 노구덕이 탐사를 나갈 때면 만일에 대비해 비축분의 수혈팩을 만들어 두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다 떨어진지 오래. 흡혈귀의 특성상 굶는다고 쉽게 죽지는 않을 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임유진은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울 텐데도, 애써 의젓한 태도를 보이는 소피아를 보며 흔들리는 각오를 다잡았다.
‘소피아 씨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잖아. 내가 무너져서는 안 돼.’
노구덕이 자리를 비운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하다못해 그것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기껏 마음을 다잡았건만 기분이 다시 울적해졌다.
아이언 골렘의 추적에 실패한 뒤, 놈이 전해줬다는 정체모를 서신에 기대를 걸었지만, 서신에 적혀 있던 두 달이란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부터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오너를 잃은 아이리스는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사방에서 견제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나마 발 빠르게 막심과 회동을 가진 소피아 덕분에 공식적인 파벌의 이탈은 면했지만, 그 또한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클럽의 불안한 미래는 소속 헌터들의 충성심마저 흔들어 놓았다. 아직까진 대놓고 이적요청을 하는 사람은 없으나, 누군가 첫 주자가 되면 이후 우후죽순으로 요청이 밀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첫 주자가 있기는 있었다.
‘…데모나.’
며칠 전의 밤, 데모나는 짐을 싸들고 임유진의 방을 찾았다. 그리고 놀란 얼굴을 한 임유진에게 건넨 첫마디.
‘곧 떠날 거야. 너라면 인사 정도는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데모나?’
‘권속을 맺은 흡혈귀가 살아있는 걸 보면 아직 죽지는 않았겠지. 어쩌면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서신에 쓰여 있던 두 달도 지났고.’
‘아무런 단서가 없잖아. 어떻게 그이를 찾겠다고?’
‘늑대의 후각을 써 볼 거야. 저번에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구더기가 근접해 있다면 난 느낄 수 있어. ‘눈’에 기운을 심어뒀으니까.’
‘눈? 아… 그것 때문에 가려는 거니?’
‘그래, 맞아.’
데모나가 노구덕에게 눈을 이식해 주었단 사실은 임유진도 알고 있었다. 주술적 가치로 본다면 ‘하이 스카우터의 눈’은 더없이 귀중한 재료. 데모나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해는 갔다. 노구덕이 죽어있다면 그 눈이라도 뽑아올 여인이 데모나였으니까.
하지만… 여인의 육감이랄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것뿐이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
‘잠깐만! 잠깐 기다려.’
그때 왜 갑자기 손이 움직였던 것인지, 임유진은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 꼭 데모나를 잡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직감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그녀를 놓친다면, 데모나도… 노구덕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그날 딕툼을 떠나려던 데모나는 임유진의 간곡한 설득과 완강한 요청에 의해 열흘의 말미를 두고 아이리스에 남았다.
그것이 8일 전의 일. 데모나는 그 뒤로 개인실에 틀어박혀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틀 뒤에 데모나가 또 나가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임유진이 다른 문제로 고민하는 사이, 안세희의 안내를 받아 다음 방문자가 들어왔다. 비대하리만치 뚱뚱한 체구와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번들거리는 면상. 마치 단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노구덕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사내였다.
사내는 임유진을 보자 잘 접히지도 않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저는…”
뭐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듯 했지만, 세 겹으로 두툼하게 접힌 그의 뱃살에 심기가 상한 임유진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심하네.’
노구덕과 첫 섹스를 할 때, 그의 몸이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그녀는 기억하고는 있을까? 같은 돼지라도 콩깍지가 씌인 눈엔 전혀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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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봐! 기다리시오! 무려 5대 리그라고! 아무리 붉은봉황이라지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어디에도 없다고…! 꿰엑! 수, 숨 막혀!”
질질질.
“아휴우, 똑똑하기도 해라. 이젠 말하지도 않아도 척척이네?”
소피아는 안세영의 손에 끌려 나가는 뚱보 사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굶주림과 피곤으로 점철된 얼굴은 더 이상 방문자를 들일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 기색을 읽은 임유진은 미리 선수를 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해요. 열 명은 채웠으니, 레인저스 오너도 뭐라고 하진 못할 테죠.”
하루 최소한 열 명의 에이전트는 만나줄 것. 그것이 아이리스를 파벌에 남기는 대신, 막심이 내건 조건이었다. 무작정 빗장만 걸어두고 있으면, 그 또한 아이리스를 보호할 명분이 없다나. 어차피 허울 좋은 소리에 불과했지만.
“이번에 회동을 가지면 열다섯으로 제한을 늘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봐야 변하는 건 없는데.”
“겨우 한 달일 뿐이에요. 제가 안 움직인다는 걸 안 이상, 목표를 변경할지도 모르죠.”
오너의 계속된 부재로 아이리스가 해체되고, 엑소더스(Exodus)가 벌어진다면 이적시장의 최대어는 단연코 임유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에 눈독을 들일만한 헌터가 그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유진이 염려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그녀가 남는다고 해서, 다른 헌터들 또한 그런 충성심을 보이란 법은 없으니까.
“쉽게 움직일 사람은 없어 보이니 아직은 괜찮아요. 탐사도 제대로 하고 있고요. 순위가 한 단계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낙관적인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죠.”
“최악의 상황이요?”
“네. 아이리스의 공개입찰 말이에요. 엊그제 레인저스 오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헌터 하우스에서 아이리스를 상장한단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임유진의 얼굴색이 급변했다.
“고, 공개입찰이요?”
“놀랄 일은 아니죠. 아이리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만한 사람이 없는 이상, 리그에 참가 중인 클럽의 주인을 오래도록 비워둘 순 없잖아요? 이런 경우 해당 클럽은 연맹의 관할로 넘겨지고, 연맹은 다시 헌터 하우스를 내세워 경매를 진행해요. 하지만, 이곳 파벌의 주인들은 경매까지 가길 원치 않는 모양이에요. 제 정보통에 따르면, 아이리스를 인수하기 위해 다수의 클럽이 컨소시엄(Consortium)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컨소시엄까지 구축했단 것은 이미 아이리스 인수를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주인을 잃은 아이리스를 뒤흔드는 것은 겉으로 몰려오는 에이전트들뿐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클럽의 목줄을 끊기 위해 서슬퍼런 칼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임유진은 초조하게 탁자를 두드리며 소피아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럼 어떡하죠?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정당한 행정집행이에요. 규정에도 명시되어 있고요. 막을 명분은 없어요.”
“그럴 수가…….”
망연자실한 임유진이 고개를 떨어뜨리려는 찰나, 소피아의 나른한 음성이 그녀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살짝 뜸을 들이는 그 목소리가 임유진의 애간장을 타게 만들었다.
“무슨 방법이요?”
“그건…….”
달칵.
막 답을 하려던 소피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문소리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이런 말이 새어나가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임유진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답을 듣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그녀는 아쉬운 낯빛으로 소피아의 어깨너머,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을 살폈다.
“저… 저희가 뭔가 방해했나요?”
조그맣게 속삭이는 듯이 물어오는 이들은 안세희, 안세영 자매였다. 대기중이던 방문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온 모양이었다.
임유진은 언제나 그렇듯 온화한 미소를 띠고 두 자매에게 가까이 오란 손짓을 보냈다.
“방해라니? 당치도 않아. 오늘도 수고했구나. 여기 앉아서 차라도 마시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하는 것만 봐도 판이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매였다. 언니인 안세희가 약간 소심하지만 여성스러운 성격이라면, 한 살 터울의 동생인 안세영은 평소엔 싹싹하지만 사람에 따라 사나운 성질을 드러내곤 했다. 이렇듯 물과 불처럼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야무지고 성실하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헌터로서의 재능 또한 차고 넘쳐, 이제는 소피아의 업무를 도우면서 아이리스에 소속된 헌터들에게 한두 수 지도를 받기도 하는 그녀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그녀들이 가장 선망하며, 잘 따르는 사람은 고아원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아이들을 보살펴 준 임유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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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해당 편은 제외하고 오늘 두 편이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여관집아들 / 첫코 감사합니다!
Big하비 / 응원 감사합니다!
windcircle / 쿠폰 감사합니다! 코멘도 주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북치네 / 넵 감사합니다
카론느 / 아, 죠우지가 뭔지 궁금했었는데.. 찾아보니 테라포마스의 바퀴벌레였군요 ㅎㅎ
프리맨 / L양 동영상? ㅎㅎㅎ
ljsulee / 저도 검색해보고 알았습니다
장마와방 / 반격의 시간
가식적썩소 / 항상 감사합니다 ㅠㅠ 연참할때면 유독 오타가 느는듯 합니다..
트릭스타 / 이탈할 멤버가 있을까요?
그눈건 / 구더기! 화가 난다!
Liviera / JAM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