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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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집으로
시퍼렇게 날이 선 손칼이 노구덕의 복부를 절반 이상 파고들었다. 소피아에게 피를 먹이느라 언제나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비틀쉘이 해제된 때문이었다.
“아아아앗!”
“데모나! 뭐하는 짓이야!”
“데모나 언니!”
여러 비명이 동시에 뒤엉키고, 쏜살같이 움직인 임유진이 데모나를 노구덕에게서 떼어냈다. 그러자, 그의 복부에서 흘러내린 핏방울들이 바닥으로 방울져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데모나는 떨쳐냈지만, 복부에 박혀있는 손칼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야단법석을 떠는 주변의 반응과는 달리, 노구덕의 얼굴은 비교적 침착했다.
그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임유진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는 데모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복부에 살짝 힘을 주자, 깊이 틀어박혀 있던 손칼이 저절로 스르륵 밀려나와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갈라진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데모나는 태연자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확인을 했을 뿐이야. 구더기는 맞는 것 같네.”
“뭐, 뭣?”
그녀의 말을 듣자, 노구덕을 포함한 모든 이들은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난데없이 복부를 찔렀단 말인가?
꾸욱.
어찌나 기가 막혔는지, 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데모나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데모나는 와락 찡그린 얼굴로 그녀를 돌아봤다.
“힘 좀 빼지 그래? 내 어깨를 부술 생각이 아니라면.”
“너… 너란 애는 정말!”
“요란 떨지 마. 진짜 구더기라면 고작 이 정도에 당할 리 없잖아. 안 그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내가 너희처럼 속편하게 울면서 안겨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것의 눈’이라고. 좀 더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그래?”
뒤의 말은 임유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는 말이었다. 그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자,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하이 스카우터의 눈! 그렇구나. 그래서…….’
임유진은 바보가 아니다. 노구덕이 하이 스카우터의 눈을 이식했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사실.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모조리 몰살시켜버릴지도 모르는 시한폭탄.
노구덕이 사라진 두 달 동안 그가 어떤 일에 휘말렸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이리스 내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시체가 되었다고 해도… 주술적 처리를 가한 그의 눈은 썩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것이 위원회나 연맹, 혹은 그 산하조직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들이 노구덕의 신원을 알게 된다면, 아이리스의 파멸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하이 스카우터의 눈’에 얽힌 사실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노구덕의 탈을 쓴 누군가가 그의 행세를 할 수도 있단 소리였다.
“…음, 그래서, 이제 확인이 됐냐?”
난데없이 칼침을 맞은 사람치고는, 노구덕은 꽤나 평온한 낯빛을 띠고 있었다. 그 역시 ‘파리의 초감각’으로 데모나가 속삭인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으니까.
누구보다 금기 연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데모나다. 이렇게라도 확실히 확인을 하지 않고서는 안심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 말대로, 그깟 손칼에 찔려봐야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
“이거 놔.”
“으, 응.”
거칠게 몸을 틀어 임유진의 손을 뿌리친 데모나는 평소처럼 도도하게 노구덕을 바라보았다.
“네가 진짜 구더기라는 건 믿겠어. …저 흡혈귀의 꼴을 보니 성급한 짓을 한 것 같네.”
데모나는 아직도 바닥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피아를 경멸하는 눈으로 힐끗거렸다. 노구덕이 본인이 아니라면, 그와 권속을 맺고 있는 소피아가 저런 추태를 보일 리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노구덕을 찔렀던 데모나로선 미처 보지 못한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그간 어디서 뒹굴었는지 설명을 해 주실까?”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방금 전에 불미스런 일이 있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이었다.
실렌과 신소율은 그런 둘을 보며 어느 동네의 말 많은 아낙네들처럼 수군거렸다.
“…소율아? 저 두 사람, 원래 저러니?”
“아저씨가 데모나 언니한테 구박을 많이 받긴 했죠. 이제는 뭔 짓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네요.”
“아휴, 무섭다, 얘.”
짬이 되지 않아 끼어들지도 못하고 있던 안세희, 안세영 자매는 서서히 두 여인의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진짜 냉정하네요.”
“으응?”
“데모나 언니 말이에요. 그나마 아저씨한테 미운 정은 있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두 달 만에 보자마자 칼로 찔러서 확인을 해요? 아무리 아저씨의 재생력을 믿고 있다지만……. 으, 저 언니는 역시 무서워요.”
“그래? 흐음….”
실렌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냉정하다고…? 글쎄… 진짜 냉정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난 저 여자가 조금 다른 의미로 무서운데.’
만약… 노구덕이 정말로 본인이 아니라 가짜였다면? 복부가 찔린 정도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가 가짜였다면, 그 가짜가 대응할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정체가 탄로난 가짜가 가장 먼저 취할 일은 무엇일까?
어차피 죽는 마당, 인질을 잡거나 한 사람이라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이라면, 가장 위험한 것은 가까이 있던 데모나였다. 그녀가 육체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니, 십중팔구 가짜와 같이 죽거나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데모나 정도 되는 여인이 이런 가정을 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달려들다니……. 아니면, 다른 어떤 대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도 그리 생각했지만… 가까이 할 여자는 아니야.’
복잡한 심경이었지만, 실렌은 굳이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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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금방 알려졌다. 사용인들 편으로 사실을 전달받은 소속 헌터들이 죄다 몰려오는 바람에 또 한번 소동이 벌어졌지만, 노구덕은 금방 사태를 정리하고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탐사를 나갔다 정체모를 아이언 골렘에게 습격을 당했다. 겨우 그 손에서 탈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부상이 깊어 복귀에 시일이 걸렸다.’
이것이 노구덕이 대외적으로 내세운 해명 시나리오였다. 이미 실렌, 신소율과도 입을 맞춰놓았기에 의심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미리 귀띔을 받은 임유진은 바로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살짝 서운한 눈치였지만, 현명한 여인답게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하고는, 채근하지 않고 헌터들이 노구덕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바람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소피아는 그로부터 한 시간 가량이 지나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나친 수음(手淫)으로 기진맥진한 그녀는 한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정작 그 본인은 지친 몸보다,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흑역사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바람에 두 달 반 만에 개최되는 정식 회의도 두 시간 정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고 거쳐, 마침내 오너 겸 1군 리더를 맡고 있는 노구덕이 자리한 정기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예비대인 3군을 제외한 1군과 2군의 멤버들이 거의 빠짐없이 자리해, 넓은 회의실이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1군과 2군을 구분하지 않고 참석한 이들의 명단을 대충 쭈욱 훑어보면,
각각 1군과 2군의 리더인 노구덕, 임유진을 포함해 신소율, 실렌, 이두식, 허문수, 장상기, 노엘, 김진솔, 권도현, 데모나, 치프니르, 가이탄, 닉, 나타샤, 도리안, 우종백, 장정민 등의 헌터들이 있었고,
행정부의 수장으로 단장 소피아를 비롯한 안세희, 안세영 자매가 있었다.
“크흐흠! 모두 오랜만에 보는군요. 반갑습니다.”
노구덕은 짧은 인사로 회의를 시작했다. 불과 수 시간 전에 해명의 시간을 가진 때문인지, 이번에는 별다른 소요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단 오너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부분의 헌터들은 적잖이 안심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우중충했던 낯빛들이 하나같이 밝게 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실 겉으로만 조용하다 뿐이지, 몇몇 이들의 두뇌는 고요한 얼굴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휴우, 다행이다. 에이전트 제의는 거절해야겠어. 이적 건은 없던 걸로 해야지.’
‘공개입찰이니 뭐니 하던 소문이 돌던데… 이제야 좀 조용해지겠군.’
‘흐음, 오너를 습격했던 아이언 골렘의 정체는 뭘까?’
‘…어쩌면 딕툼 정계에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지도…….’
개인의 처지에서, 클럽의 관점에서, 혹은 흥미 본위에서의 속마음들이 제각기 꿍꿍이를 가진 가운데, 노구덕은 한층 힘이 들어간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 아이리스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건, 보고를 받아 알고 있습니다.”
“…….”
헌터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노구덕의 말을 경청했다.
별로 좋지 않다? 단순히 그런 말로 정의하기엔 부족했다. 현재 아이리스는 거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믿음직한 뒷배경이었던 레인저스 오너는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고 있고, 노구덕이 그와 호형호제하며 열심히 다져 놓았던 입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거기다 클럽이 공개입찰로 넘어가니 마니 하고 있는 통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업체들도 슬슬 발을 빼는 추세였다. 또한 소속 헌터들은 거의 대부분이 외부 에이전트의 은밀한 제의를 받아 유혹에 시달리는 상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란 말이 딱 맞았다.
집단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리더의 기량이다. 이 어려운 상황을 복귀한 오너가 어떻게 헤쳐 나아갈 것인가. 노구덕이 소속 헌터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아이리스의 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번 난관의 돌파가 필수였다.
말하자면, 현 상황은 그와 아이리스에 있어 중요한 터닝포인트인 셈이었다.
노구덕은 자리한 헌터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오너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웠고, 클럽은 두 달이 넘도록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의리가 없는 헌터들 같았으면 진즉 이적 요청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가라앉는 배에 계속 남아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모두 빠짐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래서 정말 고마웠다. 시간이 더 지체되었으면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리스의 영입정책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우선은 아이리스를 둘러싼 악재를 하나 둘 치워낼 생각입니다.”
노구덕은 잠깐 뜸을 들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헌터 하우스에서 아이리스를 공개입찰로 넘기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뭐, 그게 소문이든 사실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제가 돌아왔으니 말이지요.”
공개입찰 건은 이걸로 일단락되었다. 주인이 돌아왔으니 그 소유물을 멋대로 처분할 순 없다. 노구덕은 그렇게 가벼이 넘어가려는 듯 말했지만, 실상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애매하게 지나쳐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클럽을 인수하려고 컨소시엄까지 구축했다지? 잘됐어. 친절하게도 제 놈들이 피아식별을 확실히 해 주는군. 모두 아작을 내주마.’
옥석(玉石)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컨소시엄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은, 아이리스와는 명백히 적이라는 뜻. 노구덕은 한번 이를 드러낸 승냥이 같은 자들과 친하게 지낼 정도로 속 좋은 위인이 못되었다.
이미 제반 계획은 세워졌다. 그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 소피아는 기특하게도 그가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 철저하게 아이리스의 반격 준비를 끝내놓았다. 역시 5대 리그 중 하나, 이스턴리그를 호령한 최고의 책사다운 준비성이었다.
문득 노구덕은 입맛을 다시며 소피아 쪽을 곁눈질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칭찬 한마디라도 해줄 텐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소피아.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그녀라도 그런 치태를 보였으니…….
‘저건 좀 오래갈 것 같군.’
속으로나마 소피아를 위로한 노구덕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좌중의 주목을 모았다.
“…그리고 하나 더. 내일 아침, 공개 기자회견을 할 생각입니다.”
“기, 기자… 회견 말입니까?”
누군가 더듬더듬 물어오자, 노구덕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반등하려면 뭔가 큰 거 한 방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웅성거리는 헌터들을 두고, 그는 푹신한 상석 의자에 파묻히도록 몸을 기댔다. 두 달이 넘도록 생활했던, 등이 배기는 석실 의자에 비하면 이건 정말 천국의 안락함이었다.
그는 표정만큼이나 노곤한 어조로 덧붙였다.
“…내일, 폭탄을 투하해보면 확실해 지겠지요. 누가 우리의 적이고 아군인지 말입니다. 한번 느긋하게 지켜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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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다음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