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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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두각(頭角)
진심이 된 마누라. 누굴 지칭하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근래에 정체가 밝혀져 딕툼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임유진을 말하는 것일 터.
‘임유진 헌터와 대련이라니? 허어….’
허문수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임유진과 ‘제대로 된’ 대련을 할 수 있는 헌터는 아이리스 내에 없었다. 그나마 하는 대련이래봤자, 붉은 봉황의 간판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광염의 마력을 봉인한 채, 순수한 전투기술만을 겨루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페널티를 가진 임유진을 상대로, 대련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헌터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임유진 개인이 지닌 무력이 대단하단 뜻이다.
그런데 지금 노구덕의 행색을 보라. 통돼지 바비큐처럼 형편없이 구워져 있는 것이, 임유진에게 당해도 호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허문수는 흉하게 타버린 그의 몰골에 주목했다.
‘변한 것은 두 아이뿐만이 아니었군. 어쩌면 오너가 더…….’
도대체 실종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허문수는 어쩌면 공개된 사실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괜히 나서서 캐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아이리스에서의 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몰골로 돌아다니는 건 미관상 좋지 않네. 언뜻 보기에도 썩 괜찮은 상태는 아니지 않나. 얘야, 뭐하느냐?”
“아, 네!”
멍하니 서 있던 실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노구덕의 몸에 치유 주문을 걸었다. 허문수가 굳이 실렌을 지목한 것은, 조금이라도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치유 주문을 거는 실렌을 마뜩찮은 얼굴로 쳐다보던 노구덕은, 후다닥 그가 있는 곳으로 뛰어오는 기척을 느끼곤 구겨져 있던 표정을 활짝 폈다.
“소율아!”
“아저씨! 나 좀 살려주세요!”
“으응?”
어미를 만난 새끼고양이처럼 노구덕의 품에 포옥 안긴 신소율은, 바로 지척까지 따라붙었던 발소리가 우뚝 멈춰 서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안전지대 세이프!”
“너, 두고 보자.”
바득바득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는 나타샤와, 그럴수록 더욱 품에 파고드는 신소율. 영문을 모르는 노구덕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소율아, 뭔 일이야? 나타샤 헌터, 무슨 문제라도?
질문을 받은 두 사람은 동시에 노구덕의 의문을 일축해버렸다.
“별일은 아니에요, 오너.”
“별거 아니에요. 그냥 가벼운 해프닝? 아, 아저씨,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요? 헤엑?”
그제야 흉측하게 달아오른 노구덕의 몰골을 알아차린 신소율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노구덕과 살짝 거리를 두었다.
“꼬, 꼴이 왜 이래요? 무슨 인체의 신비전이라도 찍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아문 편인데…….”
“누가! 누가 이랬어요?”
앙칼지게 목청을 높이는 것이, 노구덕을 이리 만든 장본인을 만나면 바짝 곤두세운 손톱을 사정없이 휘두르기라도 할 모양새였다.
물론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손톱 하나 까딱하지 못할 테지만… 마음만은 기특했다.
“임유진.”
“……? 뭐라고요?”
“우리 첫째 마누라 말이야. 네 언니이기도 하고.”
잠시 넋이 나가있던 신소율은 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렸다.
“아, 아니… 유진이 언니가 이랬다고요? 왜요? 나도 모르는 새에 어디서 네 번째 여자라도 만든 거예요?”
“…뭔 소리야. 단순 대련이었어.”
노구덕은 화들짝 놀란 신소율과 나타샤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또다시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끝마친 노구덕은 팔순 노인이라도 된 것처럼 지그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터진 순두부처럼 짓물러 있던 그의 피부는 탱탱한 본래의 색을 되찾은 상태였다. 경이적인 그의 재생력과 필사적인 실렌의 치유 주문 덕분이었다.
“…잡담은 이만 하고, 다들 회의실로 모이도록 해. 공표할 내용이 있으니까.”
“겨우 그거 전하려고 그 몸으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냥 사용인을 시키면 될 걸.”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처음 마주친 사용인이 내 모습을 보고 바로 기절해버리더라. 다음으로 만난 사용인은 오줌을 지려버렸고.”
움찔!
오줌을 지렸다는 말에 누군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아, 그랬구나.”
노구덕의 해명을 들은 신소율은 바로 납득해버렸다. 좀 전의 모습만 해도 지옥에서 갓 튀어나온 악마처럼 흉측했는데, 막 훈련장을 나선 직후라면… 어지간히 간담이 큰 사람이라도 놀라자빠졌을 게 분명했다.
“하여튼, 난 분명히 전했다. 다른 분들도 한 시간 내로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알겠네.”
“알았어요. 오너.”
“아! 같이 가요! 그런데 유진이 언니는 어디 간 거예요?”
“어디 가긴. 사용인들이 그 꼴이 됐는데 뒤처리 할 사람은 있어야 할 거 아냐. 다른 헌터들에게도 소식을 전해야 하고.”
‘저, 저게…….’
나타샤는 교묘하게 노구덕의 곁에 붙어 클럽 홀로 향하는 신소율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언젠가는 저 여우 꼬리처럼 살랑이는 엉덩이 한 가운데에 정의의 응징을 가하리라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분을 삭이는 가운데,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잠깐만, 네 번째 여자라고? 오너 마누라가… 유진 씨하고 저 건방진 꼬맹이 말고 더 있었나?’
가볍게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녀는, 이내 신소율의 말이 헛나온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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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텀을 두고 소속 헌터들에게 소집령을 발동한 노구덕은 막간을 이용해 근래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소피아에게 중간 경과를 보고 받았다.
“치안청과 암상의 비밀동맹은 큰 차질 없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치안청 내에서 에드먼드 부청감의 파벌이 드디어 하딘 청감의 세력을 앞질렀다고 해요. 겨우 한 달 만에 이룬 성과치고는 대단히 고무적이죠.”
“암상 쪽은?”
“그쪽이야 뭐… 원래부터 우세한 세력이 우리와 손을 잡은 거니까요. 볼 것도 없죠. 예전의 지분이 육 할 정도였다면, 지금은 거의 팔 할 정도까지 올라온 상태예요.”
“흠, 사실상 암상 쪽은 끝났다는 건가.”
“그렇죠.”
치안청, 정확히는 에드먼드 부청감의 세력과 암상이 비밀동맹을 맺은 뒤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계획은 순풍에 돛을 활짝 편 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단 하나의 허술한 구석도 허투루 넘기지 않은 소피아의 뛰어난 지모(智謀) 덕분이었다.
하지만 노구덕은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직 성급하게 낙관하기에는, 통제가 되지 않는 몇 가지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멜릭은 어때? 잘 적응하고 있어?”
“네에. 멜릭 대장님이라면 아주 잘 적응하고 계세요.”
변수, 그 첫 번째는 역시 새로이 딕툼의 치안 대장으로 임명된 멜릭이었다. 강직한 성격을 가진 그가 암상의 편의를 봐주라는 상부의 지시를 언제까지 따를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기도 했던 노구덕이었다.
그러나, 소피아는 오히려 이번 인선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어차피 그런 조건을 알고도 치안 대장직을 수락한 멜릭이다. 모든 일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처음 한 번이지, 두 번째가 아니었다. 신념을 굽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소피아는 멜릭의 그 신념이 가족보다 우선한다고 보지 않았다.
더군다나, 멜릭에게는 나름대로 자기합리화를 위한 명분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에드먼드가 말했던 ‘고통받는 시민들을 위해 트로이카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계획의 목적, 그리고… 가족이었다.
“멜릭 대장님의 사모님도 바뀐 환경에 아주 만족하고 계세요. 주기적으로 취향에 맞는 선물도 보내고 있고요. 아이들 장난감 세트는 덤이죠.”
“호오, 꽤나 치밀한데?”
“우후후. 자고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들 하니까요.”
윗선에 밉보여 외부 출장이 잦았던 멜릭은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을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비로소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아 기뻐하는 처자식을 외면할 수 있을까? 노구덕과 소피아가 보기에, 멜릭은 그럴 수 있는 인물이 못되었다.
“…다 좋은데, 그래도 조금 찝찝하군.”
“어쩔 수 없죠. 멜릭 대장님을 이용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건 그렇지.”
씁쓸하게 대꾸한 노구덕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막심은 어떻지? 아직도 팔자 좋게 퍼질러져 있나?”
두 번째 변수이자, 이번 계획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바로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호크 레인저스 오너, 막심의 행보였다.
“밀정이 보낸 정보에 의하면, 요새 자주 주인님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다네요.”
“흠. 보통 접대로 만난 상대에게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묻나?”
소피아가 말한 밀정이란, 다름 아닌 치안청 내에서 막심과의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고위 관계자였다. 그는 본래 치안청감 하딘의 수족이었으나, 암상과 동맹을 맺으면서 자금이 풍족해진 에드먼드의 파벌에 의해 거액으로 매수당한 상태였다.
하딘과 막심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에드먼드 부청감과 가진 회동이 알려지다보니, 여러모로 불안한 거겠죠. 그래서 더욱 하딘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것일 테고요. 최근 하딘과 가진 만남에서는 공개적으로 주인님을 비판했다 하더라고요.”
표면적으로, 노구덕과 에드먼드 부청감을 이어준 것은 누구도 아닌 막심 본인이었다. 그로서는 괜한 짓을 했다 싶을 터.
노구덕은 막심이 자기를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는 대목에 관심을 보였다.
“뭐라고 했다는데?”
“치안청감을 두고 부청감에게 알랑거리는 놈이라느니, 키워준 자신에게 소홀히 대한다느니… 뻔한 말들 아니겠어요?”
“흐흐… 기대했던 것보다는 양호하구만. 그 영감도 초조하긴 한 모양이야. …그래서 ‘낌새’는?”
노구덕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덩달아 소피아의 음색도 무척 신중해졌다.
“아직 별다른 징조는 보이지 않아요.”
“으음, 망할 영감 같으니. 그리 초조하면 얼른 움직여 줄 것이지. 말로만 떠들기는.”
“고용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수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만약 막심이 일을 꾸민다면, 그 결행일은 한 달 후… 정확히는 37일 뒤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꽤나 구체적인 수치인데?”
막심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노구덕의 의문 섞인 시선을 받은 소피아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 지, 인(天地人).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날이 바로 그날이거든요.”
“뭘 그리 말을 빙빙 돌려? 좀 쉽게 설명해 봐. 뭣하면 확 그냥…….”
노구덕의 위협적인 태도에 새빨간 입술을 삐죽인 소피아는 약간의 반항이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간단히 답이 나오는데… 너무 해답지에만 의존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발전이 없다고요.”
“어허, 난 해답지 먼저 보고 문제를 푸는 사람이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칫, 낮게 혀를 찬 소피아는 마지못해 노구덕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두루뭉술한 수수께끼를 내고 그 문제를 푸느라 끙끙대는 사람을 보는 것이 그녀의 소소한 취미 중 하나였지만, 상대는 그녀의 생사여탈권을 쥔 주인이었다.
“…휘유우우…. 제가 천지인이 맞아떨어진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생각해 보세요. 아이리스의 탐사 로테이션이 이어진다면, 37일 뒤에는 어느 팀이 탐사를 나서게 되죠?”
“어디 보자, 그 날짜라면… 유진이 팀인가? 아니… 내 팀이로군. 내가 리더야.”
“네에, 맞아요. 다음, 장소는요?”
“아마도 녹스(Nox)의 폐허… 아아!”
비로소 소피아가 말한 해답에 도달한 노구덕은 커다란 탄성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다.
녹스의 폐허. 딕툼 헌터 하우스 기준 S등급의 레귤러이자, 블랙 랩터의 1군이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괴물을 만나 주력 헌터 3명을 잃고 패퇴한 사고가 있었던 레귤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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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woels / 많이 발전했지요 ㅎㅎ
Spriggan / 좋은 생각이십니다! 근데… 그럼 너무 사기캐가 될 것 같네요 ㅠㅠ 구덕이는 모름지기 굴리는 맛이 있어야!
호야[虎夜] / FAIL..
Nuah / ㅎㅎ 코멘 감사합니다!
엠파이어3 / 돌아왔습니다!
소장로네 / 여기 있습니다!
콜마 / 이야.. 허물벗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럼 이제 완벽한 곤충이 되는건가요..
북치네 / 이번에는 어떻게 경황중에 잘 넘어갔네요.. 그녀의 엉덩이는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