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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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녹스의 폐허
“이봐.”
“응?”
낮고 중후한 목소리에 기나긴 상념에서 깨어난 노구덕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른 사람은 골렘소환사 장상기였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아, 별 거 아니야. 그런데 왜?”
뭔가 못마땅한 눈으로 노구덕을 바라보던 장상기는 툭 내뱉듯이 말했다.
“왜냐니? 도착했으니 불렀지.”
“아아.”
멋쩍게 볼을 긁적인 노구덕은 가까이 보이는 폐허의 입구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장상기와 그 옆의 노엘을 비롯한 나머지 헌터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몇 분 뒤, 폐허의 입구에 당도한 노구덕은 나직한 탄성을 내질렀다.
“후. 이곳이 녹스의 페허로군. …별로 볼 건 없구만.”
말이 폐허지, 그 실상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숲이었다. 근처에 찾아볼 수 있는 도시의 흔적이라고는 폐허의 입구라 칭해지는 하수도의 출입구뿐이었다. 그나마도 레귤러의 힘으로 유지되지 않았다면, 진작 우거진 수림에 먹혀 버렸을 터.
“이건 뭐, 녹스의 폐허가 아니라 녹스의 하수구라 해야 되겠군.”
“으으. 하수구라니. 듣기만 해도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아. 안 그러니, 두식아?”
“네? 냄새는 안 나는데요…”
“으이구,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멍청아!”
짝짝.
두어 번 손뼉을 마주치는 것으로 쑥덕대는 헌터들의 이목을 한데 모은 노구덕은 폐허에 들어가기에 앞서 탐사대 편성에 들어갔다.
“진형은 기본적으로 종진(縱陣)을 유지합니다. 첨병에는 저와 나타샤 헌터, 그 뒤 선두로는 이두식, 우종백 헌터, 중앙에는 장상기, 노엘, 김진솔 헌터, 후미에는 실렌, 치프니르가 뒤따르고… 후방 커버는 도리안 헌터가 맡아주시면 될 것 같군요.”
“네.”
“알겠습니다.”
헌터들의 대답을 들은 노구덕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각자 장비 점검을 하고, 십 분 뒤에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이상이 있거나 특이사항이 있으신 분은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헌터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제각기 장비와 소모품 등을 점검하는 사이, 노구덕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의 나무 그루터기 옆에 주저앉았다.
“정작 지시를 내린 사람이 점검은 안하고 놀고 있다니. 자격 미달이로군.”
“귀찮다. 이번만 좀 넘어가자. 어차피 형식적인 건데 뭘. 그러는 넌?”
장상기는 노구덕의 불퉁한 물음에 피식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 옆에 솟아 있는 나무뿌리에 걸터앉았다.
“네가 멍때리고 있을 때 끝내 놨다. 그건 그렇고, 하나 묻자.”
“뭘?”
“얼마 전에 회의실에서 따로 모임을 가졌다며? …무슨 모임이었냐고 물어보면, 알려줄 거냐?”
노구덕은 금방 장상기의 의중을 알아챘다. 그가 말하는 모임이란, 신생(新生) 벌레교단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모임이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임유진, 신소율, 소피아, 허문수 같이 클럽의 중진을 맡고 있거나 노구덕의 총애를 받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클럽 내부에서는 노구덕의 그들을 모아 놓고 모종의 지시를 내렸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나 더하자면, 모임에 지명 받지 못한 헌터들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았다. 특히 권도현이나 장상기 같은 경우에는 모임에 참석한 나타샤나 가이탄, 실렌 보다 아이리스에 더 오래 있었고, 오너인 노구덕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니 그럴 만도 했다. 차라리 무슨 모임인지, 거기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공표라도 하면 속이라도 시원하련만, 그것도 아니니 답답하기도 했을 터.
장상기가 이렇듯 조심스레 묻는 것도 노구덕의 속내를 알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노구덕은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참, 도현이와는 얘기 끝냈는데… 상기에게는 미처 말을 전하지 못했군.’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간 막심이나 치안청 등의 일로 이리저리 바빴기 때문에 이쪽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었지만, 사실 노구덕도 나름대로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노구덕은 적반하장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너 말 잘했다. 인마, 내가 안 그래도 너한테 그거 말해주려고 몇 번 찾아갔었다. 아냐?”
“뭐? 언제?”
“언제긴 언제야. 내가 요새 엄청 바빴던 것 알지? 짬을 내려면 늦은 저녁 밖에는 없는데… 한 두어 번 갔었나? 그때마다 방을 비워두고 어딜 간 거야?”
“음……. 그랬다면… 미안하다.”
도리어 추궁을 당한 장상기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노구덕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최근 늦은 밤에 개인실을 비운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노구덕은 거봐라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흐흐. 제수씨 방에 간 거냐?”
“제수씨라니…….”
“자식이 시치미 떼기는. 노엘 씨 말이다.”
말을 못하고 입술만 파르르 떠는 꼴을 보아하니,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간밤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나 했더니 노엘의 방에서 둘이 만리장성을 쌓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재미가 들린 노구덕은 음흉한 미소를 띠며 장상기를 더 몰아붙이려다, 점검을 마친 헌터들이 하나 둘 입구 앞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고는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일어섰다.
“복귀하면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자. 네가 보채지 않아도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래.”
기실, 모임에서 장상기를 제외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늦게 행복을 찾은 녀석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일 순 없지.’
이것이 노구덕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임에 참여한 다른 이들이 덜 소중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선택의 기회를 주었고, 그들 스스로 교단의 세례를 받는 길을 택한 것이었으니 적어도 후회는 없을 터였다.
다만 장상기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와 노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즉, 서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이었다. 장상기야 교단에 들어오라고 하면 흔쾌히 들어올 인물이지만, 노엘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장상기의 교단 가입을 일단 보류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반면, 권도현의 경우는 그와는 많이 달랐다.
탐사를 떠나기 몇 주 전, 노구덕은 오랜만에 권도현과 단둘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근래 김진솔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듣고 싶었고, 여타 다른 기관의 연구개발 진척상황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등을 알고 싶기도 했다. 물론, 진정으로 중요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의 기관장치가 과연 빅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가?
아이리스는 빅리그를 넘어 프라임리그를 목표로 삼고 있는 클럽이다. 그리고… 아직 극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지만, 이번 계획이 잘 되면 빅리그 진출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빅리그 레귤러에서 출현하는 카름들 중에는 미들리그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괴물들도 있었다. 통상 오우거의 네 배에 달하는 괴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트윈헤드오우거는 평범한 축에 끼는 놈이었고, 거대한 비룡의 일종인 와이번(Wyvern), 수백의 해골들과 망령군단을 소환하는 리치(Lich) 등 척 보기에도 강하다 싶은 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곳이 빅리그의 레귤러였다.
그래도 지금의 아이리스 전력이라면, 아주 상대 못할 정도의 괴물들은 아니었다. 장비를 더 강화하고, 교단의 비전을 연마한 헌터들이라면 빅리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터.
하지만 함정과 덫, 기관장치를 주특기로 삼는 권도현은 그것이 힘들었다. 장비의 재질을 통째로 바꿔 강력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방편일 뿐, 발리스타에 소모되는 화살, 창 등과 같은 소모품을 강화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했다. 더군다나 아이리스의 재정이 아무리 풍족하다고 해도 그런 소모품을 무한정 지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권도현 또한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김진솔과의 콤비플레이, 아이리스의 막대한 예산지원으로 미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했으나, 빅리그에서까지 통용될 수는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족할만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권도현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다른 클럽으로 이적하게 될 예정이었다.
‘…도현이라면 다른 데 가서도 잘 하겠지. 아,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머리를 마구 흔들어 복잡한 상념들을 떨쳐낸 노구덕은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헌터들을 보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흐흠! 자, 준비가 되었으면 어서들 들어갑시다. 이번 탐사도 아무쪼록 별 탈 없이 끝났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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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에 진입한 헌터들은 코를 찌르는 악취에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지하수와 각종 침전물, 오물이 뒤섞여 졸졸 흐르는 수로에서는 썩은 치즈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으으읍! 두식아, 누나 토할 것 같아….”
“헉!”
멀거니 지하수로를 보고 있던 이두식은 살갗에 닿는 나타샤의 매끄러운 피부감촉에 헛숨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났다.
“저, 저리 가세요.”
“뭐야? 너, 연약한 여자가 쓰러지는데 그게 할 말이야?”
“죄…송합니다.”
대체 뭐가 연약하고 뭐가 죄송한지 모르겠지만, 곰 같은 덩치의 이두식이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인에게 연신 굽신거리는 광경은 나름대로 진풍경이라 할 만했다.
‘이것 참, 요새는 사내연애가 유행인가? 아니, 저쪽은 연애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두식이 녀석, 왠지 불쌍하군.’
사내연애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노구덕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곤란을 겪고 있는 이두식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타샤 헌터, 이리 오십시오. 그쪽은 선두진입니다. 저와 첨병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네, 금방 갈게요. 두식아, 누나 다녀올게. 바이!”
“…예.”
이두식은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나타샤가 심히 부담스러운 것 같았지만, 감히 그녀의 시선을 외면할 배짱은 없는 듯, 마지못해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 녀석 미래도 알 만하군. 가만, 세영이도 두식이를 좋아하는 눈치던데… 기 센 여자가 좋아하는 타입인가?’
흡족한 낯빛으로 살랑살랑 걸어오는 나타샤의 모습은 꼭 사냥감을 입에 꽉 물고 있는 암사자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노구덕은 그녀를 보며 새삼 순종적인 자신의 두 와이프, 임유진과 신소율이 근래 보기 드문 천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노구덕의 곁에 선 나타샤의 얼굴은 어느새 조금 전까지 헤실거리던 기색이 싹 사라져 있었다. 차갑고 비정한 암살자 본연의 얼굴로 돌아간 그녀는 어두컴컴한 지하수로 전면을 날카롭게 훑으며 말했다.
“…그런데 오너, 첨병을 두 명이나 세울 필요가 있나요? 아, 편성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니에요.”
“음. 평소라면 저도 선두진에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번 탐사는 조금 특별해서요. 첨병이라고는 해도… 저는 찾아야 할 게 따로 있으니, 나타샤 헌터만 믿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대답이었다.
“흐응. 뭔진 모르겠지만, 신도로서 명을 받들어야겠죠. 맡겨 두세요.”
작게 콧소리를 낸 나타샤는 더 깊이 캐물을 생각은 없는지, 안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력을 한껏 돋운 그녀의 안력은 한밤중이라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다니는 날벌레의 종류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거기에 암살자 특유의 육감과 직감력이 더해지면, 첨병으로서는 후미를 맡고 있는 도리안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데려오길 잘한 것 같군. 첨병은 나타샤에게 맡겨도 되겠어.’
사위를 샅샅이 살피며 나아가는 나타샤의 모습에 마음을 놓은 노구덕은 꽁꽁 뭉쳐두었던 감각을 널리 퍼트리기 시작했다. 육안과 마력감지에 의존하는 나타샤의 능력과는 달리, 파동 및 진동으로 멀리 떨어진 사물의 움직임마저 감지할 수 있는 ‘파리의 초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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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이야.. 핵 떡밥이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놀라운 예상들을 하시는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카론느 / 이참에 노구덕 완전히 바퀴벌레 카름이 되어버리는 건가요?
장마와방 / 코멘 감사합니다!
한약삐약 / 그렇군요… 일한다… 작가..
북치네 / 옙 감사합니다
아마도그럴껄 / 전편 추천이라니! 허리를 굽혀 감사드립니다
월병인 / 어차피 소피아 머리가 노구덕 머리니까요! 사실 노구덕이 아무리 머리굴려봤자 소피아 수준에 못 미치기도 하지요.. 범인과 천재의 차이는..
호야[虎夜] / 그런 측면도 있겠죠? 머리 굴리는게 소피아 역할이니..
슈퍼테크닉 / 해답지는 아직 미공개 하겠습니다!
Blood╋Moon / 해답지는 나중에!
은신설야 / 그러게 말입니다 ㅠㅠ 그러나 아무리 많이 굴려봤자 소피아만 못하다는게 함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