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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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전복(顚覆)
40# 전복(顚覆)
조재광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한없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아…….”
누군가 허탈하면서도 안타까운 탄성을 토해냈다. 그것을 기점으로, 셀 수 없는 목소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수정이… 가짜라고?”
“그럴 줄 알았지!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부려?”
“우우우–! 안 내려가고 뭐하냐! 꼴도 보기 싫으니 꺼져라!”
아이리스에게 기만을 당했다 여긴 군중은 성난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단상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하지만 몰아치는 격랑 속에서도, 임유진은 깊이 침잠한 닻처럼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 막심을 비롯한 트로이카의 수장들은 그녀의 평온함을 허세로 단정지었다.
그도 그럴 게, 헌터하우스의 대표자가 공식적으로 영상수정이 가짜라고 선언한 마당이다. 아이리스가 판정에 불복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묘수였군, 묘수였어.’
막심은 다시 한 번 카라케스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카라케스의, 헌터하우스의 영상관리부를 매수한다는 대범한 한 수가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소심한 그였다면 절대 이런 무리수를 던지지 못했으리라.
‘정말로 영상수정을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것도 끝났군.’
아이리스의 패인이라면, 트로이카의 역량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 딕툼에 깊이 뿌리를 내린 트로이카의 영향력은 공신력의 상징인 헌터하우스를 쥐고 흔들 정도로 막강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지.”
우두커니 서 있는 임유진에게 들으라는 듯 말한 카라케스는 뭉툭한 지팡이 끝으로 단상을 가리켰다.
“헌터하우스 측은 뭐하는 거요? 감히 영상수정의 모조품을 제출하고, 말도 안 되는 매도로 딕툼 전체를 모욕한 저 여자를 이대로 두고 볼 셈이오?”
“옳소! 당장 체포하시오!”
“우우우우! 끌어내려라!”
성난 군중에 떠밀리다시피 하여 임유진에게 다가온 조재광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원칙적으로는 카라케스의 말이 맞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붉은 봉황. 그 위명을 고려하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여인이 아니었다.
“임유진 헌터,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이상하네요.”
“예?”
단상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맑고 또렷했다.
“너무 빨리 나오셨어요. 시간을 보면 영상수정을 재생해 보신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근거로 영상수정이 가짜라고 판단하시는 거죠?”
“허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헌터하우스의 판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건가!”
“대답해 주세요.”
카라케스와 막심이 단상 아래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임유진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들의 말을 흘려버렸다. 그녀의 노골적인 무시에 발끈한 카라케스는 늙은 얼굴에 푸른 힘줄을 바짝 세웠다.
“뭐하는 건가! 어서 저 여자를 연행하지 않고!”
마치 하수인을 부리는 듯한 명령조의 말투에, 조재광의 얼굴 근육이 미미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딕툼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카라케스의 지시다. 게다가 이미 거액의 돈까지 받아먹은 이상, 그에게 거부할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가시죠. 만약 반항을 하신다면, 연맹의 이름으로 수배가…….”
“영상수정 속에 담긴 마법코드를 대조해 보신 건가요?”
“임유진 헌터.”
“하긴, 뭐 상관없겠네요. 어차피 그건 가짜였으니까.”
임유진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던 조재광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움찔하며 제자리에 섰다.
“뭐…라고? 가짜…?”
“네. 가짜요. 제가 가짜를 제출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시는 거죠? 꼭 ‘진짜’를 ‘가짜’로 바꿔치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네요.”
“……!”
냉소 가득한 그녀의 말에, 조재광은 비로소 자신이 추태를 보였음을 자각했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그는 단상 위에 있었고, 아직도 많은 눈들이 이 대치국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 왜 저래?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냐?”
“설마…… 정말로 증거조작을?”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술렁임을 들은 순간, 조재광은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헌터하우스 쪽에 큰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가드(Guard)! 끌어내라!”
미리 대기 중이었던 듯, 우람한 덩치의 사내 둘이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단상위로 뛰어올랐다. 그들은 헌터하우스에 소속된 헌터들로, 탐사가 아닌 현상수배자들이나 리버들을 잡아들이거나, 각종 무력이 수반된 집행을 도맡아 하는 자들이었다. 일종의 헌병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편했다.
거친 헌터들을 상대로 집법을 수행하는 이들이니만큼, 이들은 해당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뛰어난 실력의 가드들을 등에 업은 조재광은 금세 기세가 등등해졌다.
“뭣들 하나! 어서 저 여자를… 아, 아니? 이… 이봐! 무슨 짓… 허, 허억! 다, 당신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조재광의 배후로부터 접근하던 두 명의 가드가 임유진이 아닌, 조재광의 양 팔을 강하게 붙잡은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헌터하우스가 있는 방향을 시작으로, 하얀 제복을 입은 가드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회장 전체를 에워싸는 것이 아닌가. 그 수가 족히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
“뭐, 뭐야? 가드들이 왜 여길 포위해?”
“어디 가드들이지? 딕툼의 문장이 아니잖아?”
잘 조련된 군견처럼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포위망을 형성하는 가드들의 모습에, 오히려 천여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크게 움츠러드는 모양새였다. 한 명 한 명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는 흰 제복의 가드들은 이곳 딕툼의 가드들이 아니었다.
그러다, 제법 식견이 있는 누군가가 가드들의 쌍검이 교차하는 가드들의 문양을 알아보고는 경악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오라클(Oracle)이다! 연맹 소속 백전대(百戰隊), 오라클이야!”
“뭐?”
“히익!”
누군가의 입에서 오라클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대다수 사람들의 안색이 도화지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그것은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있던 클럽 오너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대륙을 들여다보는 백 개의 눈, 오라클. 연맹 산하의 전투조직 중 하나로 그 인원은 언제나 오백을 유지하며, 각 지구별로 정확히 100명이 할당되어 임무를 수행하기에, 다섯 분대 중 하나를 따로 칭할 때는 달리 백전대라고도 불리는 조직이다. 대외적으로는 연맹의 무력을 상징하는 세 개의 조직 중 하나이자, 명이 떨어지면 설사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냉혹하게 목을 벨 수 있는 전투기계들로 이루어진 무자비한 집단이었다.
오라클의 하얀 제복은 냉혈과 철두철미함의 상징. 그런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것은, 이곳에 한 인물이 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잘 익은 수박처럼 쪼개진 인파 한 가운데서, 양 옆에 두 명의 오라클 단원을 대동한 채, 싱글싱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등장하는 사내. 바로 강철의 도시 칼립스의 연맹 위원 마티아스였다.
“카, 칼립스 연맹 위원…!”
“저… 저 사람이?”
천여 명의 군중이 모두 숨을 죽이고 마티아스가 단상 위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쥐 죽은 듯한 정적. 평소라면 모르되, 대도시의 연맹 위원이 고유권한을 발동해 백전대를 소집했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지금이라면 마티아스의 한마디에 목이 뎅겅 베여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마티아스의 예기치 못한 등장에, 그 위세 높던 트로이카 삼인방도 황망히 자리에 일어나 예를 취하기 바빴다. 특히, 마티아스를 직속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막심은 이 순간 똥줄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티아스 님이 내게 사전 통보도 없이 오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예감 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감히 마티아스의 면전에서 그것을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막심은 푸르죽죽하게 굳어져 가는 얼굴색을 감추느라 진을 빼야만 했다.
“마티아스 님! 이곳에는 어쩐 일로…?”
“그야 용건이 있어서 왔지. 매우 흥미로운 제보가 들어와서 말이야.”
‘흥미로운 제보?’
카라케스와 이진양, 막심은 바쁘게 주판알을 튕기며 마티아스가 몸소 왕림한 까닭을 가늠해보았다. 사실, 마티아스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일을 상기하면, 일부러 짐작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조재광의 체포, 거기에 생각이 미친 삼인방의 낯짝이 동시에 급변했다.
“요, 용건이라면…….”
“여기 헌터하우스가 아주 썩을 대로 썩었다더군.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묵었길래 칼립스에까지 그 냄새가 진동하는지, 맛이나 좀 보려고 왔지.”
“…….”
그대로 얼음이 된 세 사람을 일별한 마티아스는 삼인방을 그대로 지나쳐 단상 위에 올라갔다. 단상 위에서 오만하게 군중을 내려다보는 마티아스의 태도는, 그야말로 왕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건만, 괜히 그의 위엄에 주눅이 들었는지 절로 머리를 숙였다.
마티아스는 삽시간에 익은 벼로 가득 찬 밭이 되어버린 회장을 내려다보더니, 가까이 있는 VIP석을 향해 슬쩍 손을 뻗었다. 트로이카와 관련이 되어 있는, 사실상 딕툼의 거의 모든 오너들이 모여 있는 좌석이었다.
“너, 너, 너… 에이, 뭐가 이리 많아? 귀찮군. 저것들 모두 일단 포박해.”
“예.”
보아하니 옆에 대동한 사내가 오라클의 부대장쯤 되는 모양이었다. 짧게 대답한 사내는 수하 몇 명을 이끌고 VIP석에 난입했다.
“마, 마티아스 님! 이게 무슨…! 컥!”
맨 앞에 있는 오너 한 명의 복부를 군홧발로 차버린 사내는 철가면을 두른 듯한 얼굴로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죽이지만 마라. 반항하는 자들은 적당히 다져놓아도 좋다. 필요하다면 팔다리 하나쯤 자르는 것도 좋겠지.”
“알겠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너들은 사내의 무자비한 명령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들도 느낀 것이다. 여차하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연맹 소속으로 위명이 높은 오라클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사내들은 불과 눈 몇 번 깜박할 사이에, VIP석에 앉아 있던 오너들을 좌판대에 깔린 굴비처럼 줄줄 엮어 놓았다.
“나머지는 헌터하우스 녀석들을 데려와. 감히 연맹의 이름을 욕되게 하다니… 괘씸한 것들.”
마티아스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백전대원들이 헌터하우스 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너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제압당한 직원들이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줄지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이 정말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헌터하우스 쪽은 이미 마티아스가 등장하기 전부터 제압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거니 서 있던 삼인방은 해쓱한 낯빛이 되어 마티아스에게 몰려갔다.
“마티아스 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무엇을?”
“전부, 전부 말입니다! 제가 제대로 설명해 드릴 테니…!”
사색이 된 막심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며 변명하는 찰나, 묵직한 저음의 음성이 그의 말을 단칼에 끊어놓았다.
“쯔쯧. 그러다 숨 넘어가겠습니다, 형님. 오래오래 사셔야 할 분이 그러시면 안 되지.”
무척이나 귀에 익은 목소리에, 막심을 비롯한 삼인방의 고개가 동시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대면한 순간, 그들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시퍼렇게 변하고 말았다.
“너, 너는…!”
“아, 나도 편히 눈 감고 싶었는데, 자꾸만 형님 얼굴이 아른거리더라구. 그래서 요단강 건너기 전에 형님 얼굴이나 잠깐 볼까 해서 이렇게 돌아왔지. 흐흐!”
되도 않는 농을 건네며 넓적한 입술을 음흉하게 비트는 사내. 그는 녹스의 폐허에서 변종 트롤에게 당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노구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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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아… 거의 11시 55분 정도에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조아라에 안들어가지더니 이제야 들어가지네요..
12시 세이프 실패… 죄송합니다 ㅠㅠ
바로 임시 공지 올리겠으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