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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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전복(顚覆)
‘함정이다!’
노구덕의 예기치 않은 등장. 막심은 본능적으로 임유진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자 얼굴 한가득 반가운 기색이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임유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노구덕의 등장은 이미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다는 뜻.
공개 설명회의 기획부터 임유진의 도발, 노구덕의 늦은 등장…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치밀하게 만들어진 덫이었다. 바로 그와 카라케스, 이진양의 트로이카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뚝. 뚝.
썩은 고목처럼 문드러진 표정을 하고 있는 카라케스와, 늘상 여유만만이던 두꺼비 얼굴에 굵은 땀방울을 수도 없이 매단 이진양… 막심을 비롯한 3인은 그 어느 때보다 크나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야.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마티아스 님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다른 것은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다. 완전히 수세에 몰렸지만, 이런 판이라도 뒤엎어 모두 없던 일로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개입으로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대도시 칼립스의 연맹 위원 마티아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거인(巨人)이 오라클 소속 백전대를 이끌고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일을 끝내려는 생각을 갖고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의 칼날은, 지금으로선 트로이카 삼인방을 향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였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세 사람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살 길을 모색했다. 이렇게까지 몰린 이상,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티아스 님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놔야 한다.’
그 일을 떠맡을 사람은 오래도록 그의 산하에서 딕툼의 표밭을 관리해왔던 막심밖에 없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설득이 실패하면… 난 죽는다. 끝장이야. 물러설 곳이 없어.’
막심은 필사의 각오를 다지며 마티아스 앞에 나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끼어든 노구덕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허, 어딜 가는 겁니까?”
막심은 능글맞은 얼굴로 그를 제지하는 노구덕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이, 이놈이? 감히 어딜 가로막느냐! 저리 비키지 못해?”
“아직 이쪽 턴이 안 끝났다고. 조용히 다시 돌아가 주실까?”
“이 무례한 놈이!”
막심이 염소수염을 바르르 떨며 고함을 질러대자, 첫 등장 때부터 웃음을 매달고 있던 노구덕의 얼굴이 백팔십도 뒤바뀌었다.
“이 영감이 그새 노망이 났나?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안 돼?”
“뭐, 뭐라고?”
“대우해 줄 때 가만히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야. 이미 끝난 게임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말고. 응?”
“크으으윽…!”
급격히 혈압이 올라갔는지, 막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살아생전 이런 모욕은 결단코 처음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노구덕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막심은,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도 그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노구덕과 주먹다짐을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다진 육포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
“아주 저자의 양아치가 따로 없구나! 오너의 품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쥐새끼 같은 녀석…!”
“푸흐… 후흐하하하!”
“마, 마티아스 님!”
노구덕에게 독설을 쏟아내던 막심은 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티아스가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입을 닫았다.
배를 잡고 한참이나 폭소를 이어가던 마티아스는, 찔끔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미안하군. 쥐새끼를 닮은 자네가 아이리스 오너에게 쥐새끼 운운하는 게 너무 웃겨서 그만……. 꼭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더군. 그러게 그 염소수염은 좀 깎으라고 하지 않았나.”
“…….”
대놓고 놀림을 당했음에도, 막심은 벙찐 얼굴로 입술만 뻐금거릴 따름이었다. 전신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처럼 하얗게 질려버린 그의 얼굴은 텅 비어버린 그의 머릿속 상태를 말해주는 듯했다.
터벅터벅 걸어온 마티아스는 노구덕의 떡 벌어진 어깨에 척 손을 얹으며 살갑게 말했다.
“자네도 참 독하군. 아무리 그래도 한때 의형으로 모셨던 사람한테 노망이라니? 얼굴이 좀 삭아서 그렇지, 레인저스 오너는 아직 창창한 나이란 말이야. 노망이란 말은 저기 세인트나이츠 오너에게 어울리는 것 아니겠나?”
“오오… 과연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흠… 대충 정해졌군. 레인저스 오너는 쥐새끼, 그리고 그 옆에는 노망난 늙은이… 저기 정무문 오너는 뭐가 좋을까?”
“얼굴만 봐도 답이 나오는군요. 두꺼비는 어떻습니까?”
“어울리기는 하는군. 그런데 그냥 두꺼비는 좀 심심하지 않나? 떡두꺼비, 독두꺼비, 대왕두꺼비… 뭐가 좋을까? 뭐, 아무거나 상관없을 것 같긴 하군.”
공터에 천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는 무척이나 조용하여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단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모두 빠짐없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아마 누군가가 은밀하게 음성증폭 마법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바짝 얼어있는 군중과 트로이카 삼인방을 가볍게 훑은 마티아스는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의자 하나를 붙잡고 엉덩이를 깊게 밀어 넣었다.
그는 박수를 치며 노구덕을 재촉했다.
“자자, 아이리스 오너. 관객들이 지루해하는군. 이제 배우들도 다 모였겠다, 자네가 준비한 패들을 슬슬 꺼내보지 않겠나? 레인저스 오너 말로는 내가 잘못 알고 있다는데… 그 두 사람을 보고도 그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하군.”
“흐흐… 바라던 바입니다.”
따악!
노구덕은 단상 아래, 대기하고 있던 아이리스 헌터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가이탄, 이두식, 나타샤, 신소율은 2인 1조가 되어 각기 한 사람을 데리고 단상 위로 올라왔다.
헌터들의 손에 이끌려 단상에 오른 두 사람의 행색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 사람이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결박되어 있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정신없이 두리번거리고 있기는 해도 신체에 어떤 구속도 하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노구덕이 단상 위로 끌어올린 두 사람. 그들은 바로 과거 트로이카와 막심의 하수인이었던 오레돈과 메이슨이었다.
“마, 마스터 오레돈…?”
“저건 블랙 랩터 오너잖아?”
술렁술렁.
오레돈과 메이슨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자, 마티아스의 등장으로 잔뜩 경직되어 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커다란 소요가 일었다. 적어도 딕툼에서 살아가는 사람치고 두 사람의 얼굴을 모르는 자는 없었으니까.
모여든 언론인들 중, 감이 좋은 일부 기자들 중에는 다급히 본사에 지원요청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급합니다! 서기 몇 명 더 보내주세요! 한 자라도 놓치면 안 되니까! 아, 그리고 영상수정도 남아있는 건 전부 가져와요! 뭐? 이런 제길! 지금 이 마당에 수정 가격이 대수야? 책임은 전부 내가 질 테니까 하란 대로 해!”
“대박! 대특종입니다! 예, 예! 놀고 있는 놈들까지 모두 오라고 하세요! 지금 당장요! 내일이면 딕툼… 아니, 서부 지구 전체가 뒤집어질 겁니다!”
기자들이 부산을 떠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흥분이 고조된 얼굴로 단상 위를 응시했다. 그들 모두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의문 밖에 없었다. 도대체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는 것일까?
숱한 의문과 의혹을 담은 천여 개의 시선이 단상에서 헛기침을 하고 있는 노구덕에게로 쏠렸다.
“큼, 큼큼… 이거 좀 쑥스럽군.”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그도 난생 처음이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조그맣게 중얼거린 노구덕은, 이내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아이리스 오너 노구덕입니다. 츠하핫… 아마 어리둥절하신 분들이 많을 걸로 압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들 제가 죽은 줄로 알고 계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기 위해 숨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 기자회견장에서도 말했었지만, 저를 집요하게 노리는 세력들 때문에 잠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죠.”
노구덕은 말을 하는 내내 적개심 어린 눈빛으로 트로이카 삼인방을 응시했다. 그 눈빛이 뜻하는 바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했다.
“말도 안 되는 모함이오!”
“아이리스 오너는 레귤러에서 실종이 되었을 터! 이미 레귤러 안에 들어간 사람을 무슨 수로 습격한단 말이오!”
“우리 중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암살을 시도할 수 있었다면, 딕툼은 오래 전에 그 자의 손에 통일되었을 겁니다!”
노구덕의 눈을 애써 외면하던 삼인방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억울하다는 듯 항변을 했다. 노구덕의 옆에 서 있던 임유진은 그들의 뻔뻔함에 기가 찬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 한순간 철면피를 뒤집어쓰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면, 철면피가 아니라 오우거 가죽이라도 덮어 쓸 용의가 있었다.
게다가, 다급하게 둘러 댄 말 치고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레귤러를 임의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건, 이곳에 있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으니까.
삼인방의 궁여지책이 통했는지, 여러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하긴 그건 그래…….”
“아이리스 오너는 어떤 식으로 암살을 당할 뻔했다는 거지? 저들이 레귤러를 통제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노구덕은 피를 토하며 스스로를 변호하는 막심과 카라케스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의 말이 잠시 끊어졌다 이어지는 시점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아~ 물론 그러시겠지. 범인들이 나 범인이오! 할 리는 없을 테니까. 내가 살면서 그런 착한 범인들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준비한 게 있으니 똑똑히들 봐두시라고. 마티아스 님, 대령해도 되겠습니까?”
경극을 구경하는 관람객처럼 구석에서 킬킬거리고 있던 마티아스는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오케이.”
잠시 후, 마티아스의 지시를 받은 오라클 단원들이 헌터하우스 안에서 육중해 보이는 기계장치를 끌어냈다.
“저건… 헌터하우스의 재생장치잖아?”
“밖에 내놓아서는 안되는 물건으로 알고 있는데…….”
웅성이는 소리를 들은 마티아스는 이 사이로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손사래를 쳤다.
“규정상 외부에 보여서는 안 되는 물건이긴 하지. 다만 그 취지는 내부 장치와 코드를 보호하기 위한 것. 겉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이 경우는 내 권한으로 승인하도록 한다. 사람이 이 정도 융통성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마티아스 님. 본래 융통성은 고위 공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 중 하나라고들 하지요.”
“그런 말도 있었나? 흠, 듣기에 나쁘진 않군.”
‘저… 저 가증스러운 자식!’
막심은 마티아스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노구덕을 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완벽하게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대체 마티아스 위원과는 언제 접촉을 했단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구덕은 막심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영롱하게 빛나는 영상수정이었다. 영상수정을 높이 쳐든 노구덕은 대충 시선이 몰린 듯 싶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누구의 영상수정인 줄 아십니까? 1년 전, 공교롭게도 이번에 제가 갔던 ‘녹스의 폐허’에서 비슷한 불상사를 겪었던 클럽이 있었죠. 예. 맞습니다. 이 영상수정은 1년 전 블랙 랩터 탐사대의 대장을 역임하고 있던 박도훈 헌터의 것입니다.”
============================ 작품 후기 ============================
휴가 복귀했습니다.
차가 엄청 밀리더군요. 왕복으로 차 안에서만 대충 열 시간은 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휴가를 보냈네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답글을 건너뛰는 화는 제가 일하는 도중에 급히 올리거나, 시간이 없거나, 바로 다음편을 집필하고 있는 경우 입니다. 오늘은 3번째! 내일은 아마 연참이 되지 않을까요?
소장로네 님! 일부러 리플을 무시한 건 아닙니다! 그 화는 제가 일하고 있는 도중에 올라가서 답글을 건너뛰었던 편인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점을 풀어드리자면, 유진이가 다른 남자에게 당하다니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인즉슨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란 얘기지요. 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