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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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스트(Joust)
6# 주스트(Joust)
주스트 장소인 크래들타운 외곽의 언덕 위에는 상당한 인파가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 이름 모를 잡지나 지역 일간지 기자부터 시작해서 주변 군소 클럽의 관계자들, 무소속 스카우터, 그리고 호기심에 이끌려 발걸음을 한 대부분의 군중들까지. 결과야 어찌됐든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약속 시간인 정오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은 상태. 그 시각 공증인 자격으로 주스트에 입회하게 되는 드리안은 주스트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의외의 인물과 따로 자리를 가졌다.
“어서 오십시오. 드리안 님.”
훤칠한 키에 호쾌한 인상을 지닌 중년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근육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에 떡 벌어진 어깨가 한눈에도 바위처럼 단단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그는 바로 이번에 주스트에 출전하는 레드 고르곤 측 헌터 중 하나인 임혁진이었다.
드리안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됐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런 자리에 악수는 무슨. 피차 그럴 사이도 아니잖나. 그건 그렇고, 주스트에 연맹 지부의 인물이 참석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건 무슨 소린가? 공증인이 나만으로는 부족했나?”
자존심이 상한 듯 꽤나 톤이 올라가 있는 음성이었다. 임혁진은 내민 손을 멋쩍게 거둬들이며 뒷통수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신중을 기하자는 클럽 오너(Owner)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도 말단인지라 자세한 건 모릅니다.”
“흥. 소심하기는.”
레드 고르곤 클럽의 수뇌부를 향해 힐난조로 말하는 드리안이었지만,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더 이상 뭐라 하지는 못했다.
주스트는 헌터, 혹은 클럽 간 대립, 갈등이 일어났을 때 사용되는 강력한 ‘분쟁조정 수단’ 중 하나다. 연맹과 위원회 등이 인정하는 공신력을 가진 이를 공증인으로 세우고, 자체적으로 정한 룰에 따라 대결을 행하여, 그 결과에 따라 승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이런 소규모 주스트의 경우 공증인은 한 명 정도면 족하지만, 이번에 레드 고르곤은 가까운 연맹 지부에 속한 또 한 명의 공증인을 내세웠다.
이건 드리안으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망할 놈들. 내게 사전 통지도 없이 이런 짓을 하다니.’
그는 만에 하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만에 하나 일이 꼬이기라도 한다면 은밀히 레드 고르곤 수뇌부를 몰살시켜서라도 김정인을 빼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연맹의 인물이 개입하게 되면 그로서도 함부로 움직이기 곤란해진다. 허나 이미 벌어진 일을 물리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드리안은 쓰린 속내를 감추며 화제를 돌렸다.
“뭐, 됐네. 지금 그런 얘기나 하려고 자넬 부른 게 아니니까. 자네……. 오늘 시합, 자신 있겠지?”
“절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상대는 완전히 초짜라고 하던데요. 걱정 마십시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절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법이다. 신중을 기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 하지만 사자는 토끼를 잡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 않나. 난 자네의 최선을 원해. 한 치의 방심도 없이, 만전의 상태로 상대를 하란 소리야.”
“명심하겠습니다. 주스트 중에 죽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불행하게도.”
섬뜩한 한기가 녹아든 목소리였다.
“어설픈 연기로 산통을 깨는 일이 없도록 하게.”
“걱정마시라니까요. 그보다 추천은 언제쯤이면 되겠습니까?”
“일이 끝나면, 다음 여름 이적시장 때 상위 클럽에 추천을 넣도록 하지.”
“후후.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두 사람이 있었던 곳에는 우묵하게 밟힌 낙엽들만이 있을 뿐,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끌벅적한 인파와 가판대를 목에 걸고 호객하는 먹거리 장수들, 경기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상좌(上座)에 올라 인사를 나누는 드리안을 비롯한 관계자들. 스퀘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 무대에 서게 된 일행의 마음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신소율은 살짝 달아오른 볼을 연신 어루만지며, 콩닥콩닥 맥동하는 심장을 추스렸다.
“어휴우우……. 너무 긴장돼요. 언니는요?”
평소 침착함을 고수하던 윤희지였지만, 완드를 쥔 손이 달달 떨리는 것은 신소율과 다를 바 없었다.
“휴……. 나도 그래.”
“그래요? 사람 많은 데는 익숙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 사람 상대로 마법을 쓰는 건…… 처음이니까.”
“아아. 그 말이었구나…….”
유사시를 대비한 심판이 있긴 하지만, 결투라는 게 애들 장난이 아닌 만큼 불의의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주스트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은 그녀들로서는 마음에 납덩이가 얹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이길 수 없을지 몰라. 드리안 씨나 임유진 씨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도록 해.”
“칫. 정인 오빠는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우린 아니라구요.”
한편 노구덕은 옆의 잡담에 낄 생각조차 못하고 상념에 빠져있었다.
‘2승. 최소 2승은 거둬야 하는데…….’
노구덕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나마 기대를 걸어 볼 만한 것은 남은 세 명이 어떻게든 두 번 이상 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구덕은 무책임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바늘구멍을 뚫어볼 참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시선은 대기석에 앉은 직후부터 줄곧 건너편의 대전 상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주스트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지금부터 첫 번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순서는 김정인부터였다. 담담히 일어선 김정인은 저벅저벅 시합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의 상대는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거한이었다.
곱슬머리의 거한을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저쪽 신참은 영 비실비실해 보이는걸. 아마 해럴드가 이기겠지?”
“불구가 되지 않으면 다행일걸. 듣자하니 이곳에 온지 겨우 한 달이라던데, 2년차인 해럴드를 무슨 수로 이겨? 소문으로는 근력 재능이 Lv3이라고 하더라고.”
“헐. Lv3? 에이, 설마.”
관객들 가운데서 흘러나온 대화를 들은 것일까? 거한, 해럴드의 굵은 입술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는 지렁이 같은 힘줄이 꿈틀거리는 팔을 들어 김정인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보이고는, 도발적으로 까딱였다.
“헤이, 비실이. 너도 지구에서 왔다며? 나도 마찬가지야. 미국에서 왔지. 그래도 동향이니까 적당히 봐줄게. 팔 하나 선에서 끝내주지. 자, 어서 덤벼. 칼질 한 번 할 기회는 줄 테니까.”
“그거 고마운 소리군.”
무덤덤하게 대꾸한 김정인은 검 손잡이의 손을 댄 채, 쏘아진 화살처럼 내달렸다. 예상의 범주를 한참이나 웃도는 접근 속도에 눈을 부릅뜬 해럴드는 급히 배틀액스를 가슴팍으로 당겨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그보다 김정인의 발검(拔劍)이 한발 더 빨랐다.
반월을 그리는 하얀 섬광이 해럴드의 가슴을 얇게 저미고 지나갔다. 다행히 늦었다 싶었을 때 바로 몸을 내뺐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피부만 베이는 선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게 베인 가슴어림에서 핏물이 흘러내리자, 해럴드의 눈이 뒤집혔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에게 일격을 허용하다니!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하겠단 생각은 이미 저만치 날아갔다. 놈에게 왜 자신이 ‘개망나니’라 불리는지 똑똑히 보여줄 참이었다.
“이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광포한 울림과 함께 육중한 배틀액스가 아래에서 위로 짓쳐들었다. 그러자 김정인은 반대로 위에서 아래를 향해,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자세로 검을 내리쳤다. 육중한 배틀액스와 가느다란 장검의 정면충돌.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었다.
끔찍한 사태를 예견했는지, 관중석에서 다급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미친놈! 피할 생각은 안하고!”
“아아아! 저 사람 죽겠어!”
까아앙!
두 개의 쇠붙이가 충돌하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눈을 질끈 감은 관중들이 곧 보게 될 참혹한 광경에 마음의 준비를 하며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떴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하게 짓이겨진 김정인의 시체가 아니라, 이를 악문 채 한쪽 무릎을 꿇은 해럴드였다.
“뭐, 뭐지? 어떻게 된 거야?”
“해럴드가 무릎을 꿇었잖아!”
해럴드는 멍청한 낯빛으로 얼얼함이 가시지 않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놈의 검이……. 마치 공성추를 받아 낸 느낌이었어. 이놈은 초짜가 아냐. 놈은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자다. 속았…….’
김정인은 해럴드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방금 전 충돌의 여파로 허공으로 튕겨져 나온 그는, 가볍게 몸을 회전하여 착지한 후 그 반동으로 재차 돌격을 감행했다. 번개처럼 휘둘러진 칼끝이 이번에는 해럴드의 두터운 허벅지를 노렸다. 해럴드는 어기적거리며 배틀액스를 들었지만, 이번에도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젠장할!”
허벅지에 붉은 실선이 새겨지고, 피부가 툭 갈라지며 핏물이 새어나왔다. 해럴드는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에 전념했으나, 김정인의 속도를 따라가기엔 무리였다. 그의 배틀액스는 김정인의 검보다 항상 한 박자 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온몸이 거미줄 같은 실선으로 뒤덮였다. 혈인(血人). 상처에서 스며 나온 시뻘건 핏물을 전신 가득 뒤집어 쓴 해럴드의 모습은 혈인 그 자체였다.
“크우아아아아아아!”
해럴드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굴려 필사적으로 김정인의 그림자를 쫓았다. 그는 이제 방어는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틀액스는 여전히 김정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신을 뒤덮은 검흔에서 지독한 쓰라림이 전해졌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상처 입은 자존심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두 동강을 내줄 테다!”
우우웅.
도끼날에 붉은 기운이 서리며 살아있는 듯한 공명음을 토해냈다. 그와 함께 해럴드의 광기어린 눈에서 검은자위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눈알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얇게 저민 포 같았던 상처들이 저절로 맞물리며 봉합되고, 땀처럼 흘러내리던 출혈도 멎었다.
“후후. 저놈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저 데미지를 입고 광폭화(Berserk)라니.”
지루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드리안은 이제야 흥미가 좀 생긴다는 듯, 엉덩이를 들고 앞으로 당겨 앉았다.
김정인은 마냥 상대가 변신(?)을 끝마치길 기다려 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무언가 위험한 직감이 뇌리를 스친 순간, 이미 그의 검은 뇌에서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상대의 팔을 베고 있었다. 그의 특성, 전투본능(Combat instinct)이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였다.
‘될 수 있으면 피륙의 상처로 끝내고 싶었는데…….’
날카로운 검날이 해럴드의 어깨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이대로 힘을 주어 그어버리면 어깨가 절단되리라. 김정인은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빈틈이, 해럴드에게 반격의 여지를 제공하고 말았다.
“크화하하핫! 잡았다! 이 쥐새끼!”
검날이 파고든 어깨 근육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강하게 수축되었다. 김정인은 아차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으나, 그의 검은 바위에라도 박힌 듯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어깨에 힘을 준 것만으로 진검을 붙들어 맨 것이다. 광폭화로 인해 철근보다 단단해진 근육과 성난 파도처럼 몸 안을 내달리는 혈류(血流)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공격을 허용한 것부터가 해럴드의 노림수였다. 그는 큰 목소리로 광소를 터뜨리며 김정인을 붙잡아 양 팔로 감싸 안았다. 자기 몸 안쪽으로 배틀액스를 휘두를 수는 없으니, 이대로 김정인의 허리를 또각 부서뜨릴 속셈이었다.
함정에 빠져 핀치에 몰린 김정인은 완전히 낭패한 기색이었다. 그 옆에서 심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김정인 헌터! 빨리 항복 선언을 하세요!”
“하앙보옥? 그렇게는 안 되지!”
유리구슬 같은 눈이 이글거리는 살심으로 물들었다. 해럴드는 활화산 같은 분노를 담아 김정인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니, 주려고 했다.
콰앙!
두 사람 사이에서 난데없는 폭음이 터졌다. 몇몇 관중들은 폭발이 일어난 줄 알고 재빨리 얼굴을 가렸으나, 기대했던 파편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파편은커녕 불꽃이나 빛이 번쩍이지도 않았다.
“뭐지? 어디서 폭발음 같은 게 들린 것 같았는데…….”
“자, 잠깐! 저길 봐!”
누군가가 크게 기함하며 시합장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상황이 정반대가 되어 있었다. 해럴드의 괴력에 허리가 부러질 줄 알았던 김정인은 멀쩡한 몸으로 우뚝 서 있었고, 마지막에 승기를 잡았던 해럴드는 허옇게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있었다. 누가 봐도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린 모습이었다.
관중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열세를 뒤집고 승리한 김정인에게 커다란 환호성을 안겨 주었다.
“우와아아아아! 신참이 개망나니 해럴드를 이겼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광폭화까지 쓴 걸 내 눈으로 봤는데!”
“남은 시합이 재밌어졌구만!”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에도 시합장을 걸어 나오는 김정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멍청한 놈. 자기가 전력을 다하라고 말해 놓고는……. 아직도 멀었어.’
방심했다. 방심해서 함정에 빠졌고, 결국 폭경(爆經)마저 쓰고 말았다. 아예 처음부터 승기를 가져갔을 때, 해럴드가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더 거칠게 몰아쳐서 끝내야 했다. 상대를 가볍게 보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던 안일한 생각이,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다.
“꺄아아! 진짜 이겼어! 이겼다고! 정인 오빠 짱!”
“정인아, 수고했다!”
“정인 씨, 고생했어요.”
크게 자책하는 그 속을 알 리가 없는 일행은 호들갑을 떨며 그를 맞았다. 김정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털썩 자기 자리에 앉았다.
다음 시합은 윤희지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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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좋은데 / 항상 추천 감사드립니다 ㅠ
티렌 / !? 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