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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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딕툼의 맹주
“그럼, 다른 파벌에 있던 사람도 받아주시는 겁니까?”
질문을 던진 것은 전(前) 연맹 위원 로드리게즈의 파벌에 속해 있던 오너였다.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이미 마티아스 님의 파벌을 제외한 다른 두 파벌에서는 여러분을 포기했습니다. 그만한 대사건에 휘말렸으니,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선택지는 두 가지 뿐입니다. 마티아스 님의 파벌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무소속으로 남거나. 만약 무소속으로 남으실 경우… 이번 사건에서 마티아스 님의 비호를 받긴 어려울 겁니다.”
“…….”
오너들은 침묵을 지켰다. 노구덕의 말은 권유도 뭣도 아니었다. 파벌에 들어오지 않겠다면 이번 사건의 죄를 물어 숙청하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노구덕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상이 마티아스 님의 전언입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파벌에 들어온다면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하실 수 있다는 거니까요. 마티아스 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소중한 한 표지, 여러분을 강권해서 수하로 만들겠다는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너들의 중간에 끼인 스벤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시종일관 마티아스를 방패로 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이 그의 심기를 고려해 줄 필요는 없었다.
문득, 한 사람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진양 파벌의 말단으로 있던 오너였다.
“…여기까지 왔다면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 아이리스 오너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마티아스 님의 파벌로 들어가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환영합니다. 어떤 불이익도 없는 대우를 약속드리지요.”
한 명이 나서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저도…….”
회의에 참석한 모든 오너들이 노구덕, 정확히는 마티아스 파벌에 들어갔다. 예상대로였다. 한번 파벌에 발을 들였던 자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무소속으로 남는 길을 택할 리 없었다.
이제 서부지구의 중도시, 딕툼은 오롯이 연맹 위원 마티아스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들. 그러면 음, 연판장이 필요하겠군요.”
그러자 임유진이 테이블 위에 길쭉한 종이를 펼쳐놓았다. 하얀 종이에는 대략적으로 마티아스의 파벌에 가입했음을 인정하는 맹세와 함께, 몇몇 지켜야 할 조항들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었다. 조항이라고 해봤자 그리 엄격한 것은 아니어서, 충분히 허용범위 내에 드는 것들이었다.
“이건…….”
“그저 여러분들의 다짐을 문서화하여 남겨 놓고 싶은 것뿐입니다. 돌려가면서 읽어보시고, 사인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아, 사인은 가급적 피로 써주십시오.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출혈이 걱정되신다면 지장을 찍어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문서에 피로 서명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진위여부를 가리는 데에는 피만한 게 없었으니까. 오너들은 손끝에 상처를 내는 것이 영 께름칙한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별다른 의심 없이 연판장에 서명을 했다.
스벤을 뺀 모든 이들이 연판장에 서명을 하자, 노구덕은 테이블 한 바퀴를 돌아 자신에게 온 연판장 끄트머리에 피를 내어 서명을 함으로써 의식을 마무리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건 제가 보관하도록 하죠.”
노구덕은 12명의 핏물이 찍힌 연판장을 곱게 접어 다시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모여 있는 오너들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파벌의 장을 맡아 딕툼을 관리하게 된 아이리스 오너 노구덕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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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노구덕이 향한 곳은 아이리스의 클럽 홀 지하실이었다. 클럽 홀의 지하실은 대개 창고 용도로 사용되지만, 그 중 가장 구석진 방은 데모나의 개인연구실로 쓰였다. 아무래도 주특기 중 피의 주문과 해부학이 있다 보니, 남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지하실 구석이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정작 데모나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데모나의 실험실에 들어가니, 마침 팔짱을 끼고 있는 데모나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진척이 더딘 것인지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뭐야? 구더기, 여긴 왜 왔어?”
“……?”
난데없이 화풀이를 당한 노구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소피아, 미리 말 안했어?”
“아뇨. 분명히 전했어요.”
데모나를 똑바로 쏘아보며 대답하는 소피아. 노구덕이 다시 얼굴을 쳐다보자, 데모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난 노예나 창녀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아.”
“단순한 심술이구만. 그럼 안 되지.”
낮게 혀를 찬 노구덕은 데모나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스크롤에 피를 받아왔어. 추출을 하고 싶은데… 아, 그리고 주문을 쓰는데 도움도 좀 받고 싶고.”
“하…….”
세차게 코웃음을 친 데모나는 언제나처럼 비스듬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녀는 새빨간 혀로 보랏빛 입술을 적셨다.
“좋아… 대강 사정은 들었어. 하지만 무료봉사는 사절이야.”
“당연하지. 뭘 원해?”
“너나 저 흡혈귀의 정보망으로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별로 힘든 일은 아냐.”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간단히 데모나와 합의를 본 노구덕은 품에서 작게 접힌 종잇장을 꺼냈다. 방금 전, 헌터하우스에서 서명을 받은 연판장이었다. 그는 그것을 데모나와 자신 사이의 테이블에 넓게 펼쳐놓았다.
“꽤 공을 들였는걸. 보존 마법이 걸린 스크롤이네.”
마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데모나는 한눈에 스크롤에 걸린 비밀을 꿰뚫어보았다. 연판장처럼 중요한 문서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보존 마법을 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 스크롤에 걸린 보존 마법은 그 종류가 조금 달랐다. 보존 마법이 걸린 것은 종이 자체가 아니라 서명란의 일부. 그것도 액체가 종이에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 이중 코팅이 되어 있는 방식이었다.
그 증거로, 데모나가 위쪽에 걸려 있던 보존 마법을 거둬내니, 종이에 스며든 것처럼 보였던 오너들의 서명이 금방 뽑아낸 생피처럼 찰랑거렸다. 물론 서명의 형태는 유지한 채였다.
숙련된 솜씨로 핏방울들을 채취한 데모나는 그 냄새를 슬며시 맡아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촉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대부분이 늙은 아저씨들의 핏방울이니 어련할까.
“그래서 이 냄새나는 것들로 뭘 하고 싶은데? 저 계집애는 거기까진 말해주지 않았어.”
“이보세요, 마녀 씨. 웬만하면 호칭은 좀 통일해주지 그래요? 창녀, 노예, 흡혈귀… 이번에는 계집애인가? 너무 헷갈리지 않아요?”
“틀린 말은 없잖아?”
“틀리고말고요. 저는 이래봬도 아직 싱싱한 처녀거든요.”
“벌려서 보여줘 보든가.”
“흐응… 그러면 또 창녀라고 매도할 셈이죠? 그 수법은 안 통해요.”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본 노구덕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무슨 어린애들도 아니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이 둘은 왜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지… 가운데에 낀 입장으로서 골치가 아팠다.
“그쯤 해 둬. 시시한 일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바로 시작하자.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세례의식의 보조야.”
방금 발언으로 노구덕의 진실한 속셈이 드러났다. 그는 이 연판장에 서명한 12명의 오너들에게 약식 세례의식을 행할 속셈이었다. 본래 세례의식, 정확히 심령차력술이라 불리는 주술을 행하기 위해선 이 정도의 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지만, 노구덕에게는 믿는 바가 있었다.
그 비장의 무기는 다름 아닌 데모나가 가지고 있는 특성, ‘만성빈혈’이었다. 만성빈혈에는 피의 주문에 한하여 주문의 효율을 늘려줌과 동시에, 혈액의 소모량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전자는 데모나의 혈액에만 적용되는 효과지만, 후자는 그 주체가 데모나이기만 하면 촉매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효과였다.
노구덕의 설명을 들은 데모나는 살짝 콧잔등을 찡그렸다.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 분 가량이 지난 뒤, 데모나는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확실히 가능성은 꽤 높네. 어디까지나 약식이고. 심령차력술이란 건 처음 들어보지만, 피시술자의 혈액으로 개미알을 만드는 주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
다른 때라면 몰라도, 주술에 관해서 의견을 개진할 때의 데모나는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전문가였다. 노구덕은 듬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탁한다.”
“하나 걸리는 거라면, 주문의 주체가 내가 아니란 점이겠지. 그건 내가 적당히 보조를 맞추면서 커버해 줄 테니 실수만 하지 마.”
“당연하지.”
“…그런데, 겨우 약식으로 그 녀석들을 묶어둘 수 있는 거야? 내가 알기로 그 정도로 구속력이 강한 주술은 아닌데?”
데모나가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자, 노구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에게 정식 세례를 권유하는 건 무리수야. 약식이긴 해도, 누가 나를 해하려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고. 아직까지는 그 정도면 충분해.”
심령차력술의 경지가 높아지면, 세례의식을 마친 휘하 신도들과 심령이 통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힘을 빌어 쓸 수 있게 되지만, 노구덕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심령차력술은 겨우 걸음마 단계. 그러나 오너들의 변절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 정도면 문제없었다.
“딴마음을 먹으면 ‘개미알’의 색이 변하니까.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지.”
노구덕은 어느새 꺼낸 ‘추기경의 홀’을 장난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홀 안에서 작게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십여 개의 ‘개미알’. 일찍이 그에게서 세례를 받은 임유진, 신소율, 실렌, 이두식, 가이탄, 허문수, 나타샤 등의 피로 응고된 개미알이었다.
홀 자체가 그의 심령과 연결된 주술 도구이기에, 노구덕은 홀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의 알이 있는지, 어떤 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모조리 알 수 있었다.
“…그래… 그러면 문제는 없겠지. 달리 필요한 건?”
“없어. 피와 이 홀만 있으면 돼.”
“좋아. 술식을 알려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주술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데모나였으니, 그냥 술식을 알려주기만 했는데도 어느 시점에서 자기가 끼어들어야 할지, 노구덕이 어디까지 주문을 진행해야 할지 척척 짚어냈다. 그 정밀도와 세심함은 공학계산기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노구덕은 새삼 데모나의 재능을 실감하며, 별 탈 없이 열 한 개의 개미알을 손에 넣었다. 연판장의 서명자는 12명. 노구덕을 제외하면 11명이었으니 모든 오너들의 개미알을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다만 약식으로 만든 영향인지, 이전에 홀에 들어있었던 개미알들에 비해 그 크기가 절반 밖에는 되지 않았다. 쌀알의 절반 크기이니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 노구덕은 신기하게도 그 큼지막한 손가락으로 개미알들을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마치 자철석에 철가루가 달라붙는 것 같았다.
모든 개미알들을 홀에 집어넣자, 홀 안에서 들리는 짤그락 소리가 한층 커졌다. 한순간에 총량이 두 배는 늘어난 것이다.
뿌듯한 기분에 몇 번이나 홀을 흔들어 보던 노구덕은, 짜증어린 데모나의 한마디를 듣고서야 머쓱한 얼굴로 딸랑이 흔들기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데모나를 보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참… 데모나, 그거 말인데……. 도와줄 수 있을까? 마침 적당한 재료를 구했거든.”
“그거?”
“왜, 그거 있잖냐. 저번에 얘기한…….”
슬며시 이동하는 노구덕의 시선을 쫓던 데모나는 구석에 새침하게 서 있는 소피아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아, 카르믹스톤으로 흡혈귀를 진화시킨다… 그 혈청을 뽑아 저 계집애에게 먹인다는 거였지? 흠… 좋아. 나도 그쪽에는 흥미가 있으니까. 단 역시 조건을 걸어야겠어.”
“조건?”
“저 계집애는 나에게 평생 존대를 해야 해. 그리고 호칭은 주인님으로 해줬으면 좋겠네. 노예는 노예다운 게 좋은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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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슬슬 소피아 업글 시기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은신설야 / 아.. 닉네임이 안뜨는 거였군요. 공백이 아이디인줄 알았네요! 하지만 저는 리플을 보고 은신설야님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월병인 / 울펜의 은신처에서 소율이와 실렌이 나눈 대화도 그렇지만, 실렌과 노구덕은 아직 서로에게 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상황에 따라 어찌어찌 들어온 케이스죠. 그게 독자분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것 같네요!
마선 / 감사합니다!
호야[虎夜] / 오타였습니다! ㅠㅠ 오리가슴도 아니고 오라가슴이라니…
MrX / 후… 아직 갈길이 너무 머네요..
移대줎 / 그렇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ㅠㅠ
스르오 / 말씀하신 그 순간 데모나 등장!
가연을이 / 소피아와 대립각을 세우며 등장빈도가 늘어나게 되는데… 뭐 예전부터 사이가 안좋긴 했지만요!
북치네 / 옙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