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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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사자대면(四者對面)
46# 사자대면(四者對面)
“이 손 당장 놓지 않으면 가드를 부르겠어요!”
“어이, 아가씨!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해?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잠깐 얘기 좀 해보자는 거잖아.”
“그러니까 싫다고 했잖아요!”
“아니, 그러지 말고…….”
소란의 원인은 멀리서 보기에도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자와, 그 여인의 손을 잡고 희롱하는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의 실랑이였다. 대충 두 사람의 표정과 언행을 보면 어찌된 일인지 쉬이 짐작이 갔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으레 있을 법한 일이었다.
‘어떡하지?’
선두에서 소란과 마주한 신소율은 갈등했다. 주변 사람들은 여인이 도움을 청하는데도 괜한 일에 말려들기 싫은 것인지 멀찍이 떨어져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도와야 해.’
고민은 짧았다. 신소율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앞으로 나섰다. 저 험상궂은 남자의 얼굴과 이성빈의 얼굴이 겹쳐 보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저 여자를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팽배했다.
물론 나름대로 상황을 분석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우선 저 남자는 늑대왕이 아니었다. 사전에 들은 늑대왕의 외견과 남자의 인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유명인도 아닌 것 같았다. 큰 권력을 가진 유명인이었다면, 여자가 저리 강하게 반발하지는 못할 테니까. 게다가, 이런 소란이 일어났으니 대기 중인 가드들도 금방 출동할 터. 명분은 자신에게 있었다.
‘가드가 오기 전까지 잠시 시간만 끌면 돼.’
“실렌 언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어어? 소율아, 너 설마…….”
“저런 걸 모른척할 수는 없잖아요.”
씹어뱉듯이 말한 신소율은 실렌이 말릴 새도 없이 인파를 헤치며 걸어갔다.
“이봐요! 당신!”
“어엉? 이건 또 뭐야?”
여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남자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신소율을 보자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렸다.
“휘유~! 아가씨도 상당한데?”
신소율은 남자의 경박한 휘파람 소리에 더더욱 안색을 굳혔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요?”
“손? 무슨 손? 이 손? 아니면 이 손?”
능글맞은 남자의 음성을 놀림 받았다고 여긴 것일까. 신소율은 까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으득! 그 여성분 잡은 손, 놓으란 말이에요!”
“아아, 진작 말하지. 똑바로 말 안하면 헷갈리잖아.”
남자가 장난스럽게 손목을 놓아주자, 지금껏 그에게 붙잡혀 있던 여인은 몸서리치듯이 그의 곁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신소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말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 신소율은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 어쩐지 즐거운 듯한 사내의 음성이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봐, 아가씨! 다 잡은 물고기를 놔줬으니, 이젠 어떻게 책임질 거야?”
“뭐라고요?”
조금 전까지 실랑이를 벌이던 남자는 아직도 모르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방금 그 여자 말이야, 소매치기라고.”
그렇게 말한 남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자, 경악한 신소율은 자기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소, 소매치기?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요!”
“왜 말이 안 돼? 응?”
“방금 전에 분명히…….”
추행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려던 신소율은 불현듯 피해자인 여인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는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구경꾼들은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기만 할 뿐 선뜻 나서서 도와주려는 자는 없어보였다.
“여기 분들도 다 봤다구요. 당신이 손목을 잡고…….”
“그건 그 여자가 도망치려고 해서 붙잡은 것뿐이야. 그만 인정하라고. 그 여자가 떳떳했으면 왜 바로 도망갔겠어? 안 그래?”
“그, 그건…….”
남자의 당당한 태도에, 신소율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호의로 나섰다가 이런 식으로 궁지에 몰릴 줄이야. 험상궂은 남자가 미녀를 핍박하는 것만 보고 멋대로 상황을 판단한 것이 실수였다. 설령 정말로 남자가 여인을 추행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사라진 마당에 그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구경꾼들은 어쩐 일인지 그녀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 무어라 수군대기만 했다.
“쯧. 완전히 잘못 걸렸군.”
“누가 아니래. 건드려도 하필 와일드팽(Wild fang)을 건드리다니…….”
“얼굴도 반반한데… 안됐어, 정말.”
웅성거림 속에 섞인 말소리를 들은 순간, 신소율은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예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사내 또한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을 들었는지 히죽,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하하하하! 아가씨, 들었나? 이 몸이 바로 그 유명한 와일드팽 님이시라구!”
“와일드팽…?”
신소율이 그런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그 기색을 알아챈 남자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나 참,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깝깝한 아가씨군. 뭐, 상관없겠지. 어쨌든 방금 전 일로 난 상당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거든. 범인도 도망갔으니, 범인을 도운 아가씨가 대신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어? 자, 이리 오라구.”
“앗.”
이죽거리던 남자가 손을 뻗어오자, 신소율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내빼 그 마수에서 벗어났다. 허탕을 친 남자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호오. 제법인데. 그래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만.”
“이익! 순순히 당신 뜻대로 따를 줄 알아? 억지 부리지 마!”
“어쭈! 이제 반말까지? 이봐, 억지는 아가씨가 부리는 거 아냐?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그냥 조용히 따라와. 크게 해코지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저 조용한 곳에서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래.”
“웃기는 소리!”
건들거리는 남자의 태도를 참지 못한 신소율이 앙칼지게 소리치며 몸을 날리려는 찰나,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소율아, 그만.”
“아, 아저씨…….”
구경꾼 사이를 뚫고 나타난 남자는 노구덕이었다. 그 뒤로 나머지 일행들의 모습도 보였다. 노구덕의 찌푸려진 눈살을 본 신소율은 고개를 푹 숙이며 사납게 일으켰던 기세를 갈무리했다.
한편, 흥미진진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신소율이 기세를 죽이며 물러나자 다소 맥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재미없게. 당신은 또 누구야? 이 아가씨 아버지라도 되나? 아니, 얼굴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이 아가씨 남편입니다.”
노구덕의 담담한 대꾸에 남자는 얼이 빠진 듯, 한동안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노구덕은 남자가 뭐라 말하기 전에 빠르게 선수를 쳤다. 이미 실렌을 통해 상황은 알고 있었다. 오면서 대충 본 것도 있었고. 저 남자가 정말 와일드팽이라면, 가급적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전 서부지구 미들리그의 클럽 아이리스의 오너 노구덕입니다. 먼저 소율이가 앞뒤 사정 재지 않고 나선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소매치기를 당하셨다고 들었는데, 피해액수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저희 측에서 배상을 해 드릴 테니…….”
“…10만 골드. 내가 피해 본 금액이다. 물어낼 수 있겠어?”
와일드팽의 나직한 발언에, 주위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10만 골드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얼토당토않은 짓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10만 골드의 현금을 들고 다닐 리 없었다. 이런 말을 잘도 지껄이는 걸 보면, 와일드팽은 원만한 합의를 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게 분명했다.
노구덕은 미간을 좁히며 재차 물었다.
“10만 골드라고요?”
“으으으! 10만 골드라고? 애초에 그걸 들고 다닐 수 있기는 해? 이 사기꾼…!”
“소율아,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 아저씨! 저 인간이…!”
“가만히 있으라니까.”
“…네….”
어지간한 실수라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넘어가는 노구덕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신소율은 죄스러움과 서러움이 뒤엉킨 복잡한 얼굴을 한 채, 입을 꾹 다물고 물러났다.
실렌은 분한 듯 이를 악물고 있는 신소율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위로했다.
“네가 참아. 가드들이 아직까지 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저 사람은 진짜 와일드팽이 틀림없는 것 같으니까… 억울하더라도 참는 게 나아.”
“대체 와일드팽이 누군데 그래요?”
“십존의 일인이자, 루나틱스의 리더인 늑대왕의 동생이죠.”
후드를 쓴 채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소피아가 그녀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소피아는 걱정스런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늑대왕 못지않은 호색한이기도 해요. 이런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 호랑이를 피해 도망쳤는데 표범을 만난 꼴이네요. 이빨이 아주 날카로운 표범이요.”
“그럴 수가…….”
낯빛이 하얗게 변한 신소율은 망연자실하여 말끝을 흐렸다. 비로소 자신이 범한 실수의 무게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소피아는 그런 신소율을 탓하기보다, 주위를 둘러보며 끊임없이 상황을 모면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소매치기란 여자가 도망간 것도 그렇고… 와일드팽의 고압적인 자세도 마음에 걸려. 너무 공교롭잖아. 왜 하필 와일드팽이 이곳에 있는 거지? 어쩌면 이건… 애초부터 우릴 노린 함정일지도 몰라.’
제 3자의 개입. 아직은 의혹에 불과했지만, 소피아는 거의 확신했다. 이건 아이리스, 혹은 노구덕을 노린 함정이라고.
그녀가 알기로, 와일드팽은 늑대왕의 동생이란 후광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남자이긴 해도 아주 개망나니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라. 뻔뻔스런 낯짝을 들이밀고 10만 골드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주인님이 미들리그 클럽의 오너라고 소개한 직후에 금액을 언급했어. 일부러 미들리그 수준에서 도저히 지불하지 못할 금액을 부른 거야.’
소피아가 이 상황이 함정이라 확신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금액. 그러나 늑대왕과 와일드팽 자신의 이름값으로 밀어붙인다면 아주 못 받아낼 것도 없는 금액. 배상 얘기가 나오자 바로 금액을 부른 것만 봐도,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게 분명했다.
‘게다가 증인도 없으니…….’
증인은 많았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증인이다. 개중엔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보고 있던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굳이 늑대왕의 반대편에 서는 위험을 감수할 리 없잖은가.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장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와일드팽이 저리 오만방자하게 나가는 것도 이런 상황을 상정했기 때문일 테고.
와일드팽은 노구덕을 앞에 세워두고 커다란 덩치를 흔들며 킥킥대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일시불이 아니면 받지 않아. 그 돈은 당장 쓸 데가 있는 급전이었다고. 후흐흐흐….”
“10만 골드라…….”
“어때? 늙은이, 배상할 수 있겠어? 정 능력이 안 되면 저 여자에게 대신 갚으라고 해도 좋아. 처녀가 아니라 가치는 좀 낮겠지만, 저 정도면 그래도 꽤… 쳐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와일드팽은 손가락을 들어 노구덕의 뒤에 서 있는 신소율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혓바닥으로 입술을 싹싹 핥는 게 아주 맛있는 먹잇감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대놓고 모욕을 당한 신소율은 꽉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치욕을 참아냈다. 이 세계는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계. 그녀는 오늘 그 법칙을 뼛속 깊숙하게 새기고 있었다.
“뭐해? 빨리 결정하라고. 이 몸은 바쁘단…….”
“여기 있습니다.”
“어?”
툭.
신나서 이죽거리던 와일드팽은 멍청한 얼굴로 발 앞에 떨어진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갈색의 품질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는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는 물품이 분명했다. 아직 사태파악이 안된 그의 귓가에, 노구덕의 서늘한 음성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10만 골드. 현금으로 확실히 드렸습니다. 바로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
우두커니 발 아래 떨어진 주머니를 내려다보던 와일드팽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방정맞은 웃음소리도 멈추었다. 땅 아래를 바라보고 숙여진 그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 개자식이……!’
그의 생애 다시없을 굴욕이었다. 늑대왕의 동생 와일드팽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작 미들리그의 오너에게 거지 취급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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