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87)
0187 / 0777 ———————————————-
46# 사자대면(四者對面)
“…나보고, 이걸, 주워 보란 건가?”
바득 깨문 이빨 사이로 흘러나온 말이 띄엄띄엄 끊어질 때마다 강렬한 분노가 전해졌다. 그가 누구던가. 십존의 일좌인 늑대왕의 동생으로, 폭급한 성정으로 말미암아 ‘난폭한 송곳니’라는 별명을 얻은 남자다.
한번 꼭지가 돌아버리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들소 같은 인간. 그가 이런 모욕을 받고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크, 와일드팽이 열 받은 것 같은데.”
“어서 가요.”
구경꾼들 중에는 혹여 불똥이 튈라 자리를 빠져나가는 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와일드팽을 도발한 노구덕은 그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한 신색을 유지했다.
“주워서 확인해 보는 게 어렵습니까? 뭣하면 대신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이 늙은이가… 누굴 비렁뱅이로 알아!”
쾅!
그가 한번 발을 구르자, 땅이 움푹 꺼지며 깔려 있던 돌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가벼운 무력시위를 선보인 와일드팽은 두 눈에서 활화산 같은 광망을 쏟아내며 쌓아두었던 분노를 표출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디 감히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 크르릉!”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던 눈알이 짐승의 그것처럼 노랗게 물들었다.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던 근육질 상체에는 핏빛 털이 숭숭 돋아났으며, 얇은 입술 사이로 송곳과도 같은 이빨이 길쭉하게 자라났다. 터프한 전투방식과 파괴적인 힘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전투종족, 라이칸스로프의 변이가 시작된 것이다.
노구덕은 그에 맞서 전투 태세를 취했다. 다소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이었지만,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와일드팽이 라이칸스로프라는 것도 예상했던 바. 그가 멤버 대부분이 라이칸스로프로 이루어져 있는 클럽 루나틱스의 리더, 늑대왕의 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 원, 돈을 달래서 줬더니 이젠 아주 생트집을 잡는군. 대체 뭘 어떡하라는 건지.”
“뭣이?”
더 이상 경어쓰기를 그만 둔 노구덕은 황당해하는 와일드팽을 향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이 그렇잖소. 소매치기를 당했다. 10만 골드를 손해 봤으니 그걸 물어내라. 아, 물론 당신이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증거도 없는데다, 그 여자가 소매치기라는 것도 오로지 당신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만, 어쨌든 난 당신의 명성과 입장을 존중해 그 가당찮은 요구를 들어줬소. 근데 뭐요? 돈을 줬더니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잖소. 그것도 여왕의 정원에서 말이지. 결국 이게 당신의 목적이었던 거요? 늑대왕의 동생, 위명이 자자한 와일드팽은 겨우 이따위 날강도 같은 인간이었나?”
“어, 어……. 그으으…….”
노구덕의 비판은 마치 혓바닥에 모터를 달아놓은 듯 신랄했다. 그의 말은 두서없이 쏟아낸 듯해도 그 논리가 짜 맞춘 듯 정연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설득력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와일드팽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질대로 행패를 부리다 크게 일침을 먹은 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붕어처럼 입술을 붙였다 뗐다 하고 있었다. 뭐라 말은 하고 싶은데, 사고가 완전히 정지해서 짐승 같은 울음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잠시 후, 많은 군중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심하게 달아올랐다.
“…할 말은 다 했냐? 늙은이, 입을 잘못 놀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살기가 듬뿍 배인 음성이었지만, 노구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지.”
오히려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기까지. 구경하던 이들은 노구덕의 두둑한 배짱에 놀라면서도, 도대체 그가 뭘 믿고 저러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헌터도 아니고, 겨우 미들리그 클럽의 오너라지 않은가. 반면 상대는 늑대왕의 동생이란 타이틀을 버리더라도 그 본인부터가 빅리그 클럽의 리더를 맡고 있는 쟁쟁한 헌터였다.
“햐, 기개 하나는 대단하군. 저 오크가 누구라고 했지?”
“글세… 아이… 뭐시기 클럽의 오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이리스. 아마 아이리스라고 했던 것 같아요.”
“가만, 아이리스?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아! 생각났다! 아이리스라면……!”
한편, 뒤에서 노구덕이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던 신소율과 이두식 등은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특히, 자책감에 휩싸인 신소율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었다.
“나, 나 때문이야…… 소피아 씨, 제가 나서서 말려볼게요!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을 테니까…!”
“이미 늦었어요. 면전에서 저런 모욕을 받은 이상, 와일드팽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겨진 체면을 바로 세우려고 할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주인님을 무력으로 눌러버리는 거겠죠.”
소피아의 냉정한 대답에, 신소율은 숨 막히도록 답답한 신음을 흘렸다. 폐부가 이물질로 꽉꽉 들어차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만약 이 일로 노구덕이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리라.
“그, 그럼 어떡하죠?”
“소율아, 좀 진정해. 지금은 오너를 믿는 게 최선이야.”
“그래, 큰형님을 믿어.”
“으으윽….”
실렌과 이두식의 말은 조금의 위안도 되지 않았다. 손톱을 잘근잘근 짓씹던 신소율은 여차하면 싸움에 끼어들기 위해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굳게 말아 쥐었다.
“허튼 짓 하지 말아요. 신소율 헌터가 나설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태평한 소리가 나와…….”
콰앙!
신소율의 말은, 앞에서 터져 나온 굉음에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먹먹한 귀를 부여잡고 전면을 바라보자, 대로 한가운데서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우와아아악-!”
“후랴아압–!”
야수와 오크는 양 손바닥을 맞댄 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힘싸움을 하고 있었다. 좀 전의 굉음은 두 사람이 충돌했을 때의 충격파인 모양이었다.
“허어, 육체 접촉으로 충격파를 만들어 내다니…….”
“아니, 와일드팽은 그렇다 쳐도 저 오크는 뭐지? 전직 헌터인가?”
“그럴 수도…….”
놀란 것은 주위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노구덕과 직접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와일드팽 또한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굉장한 힘에 크게 경악했다.
‘이 늙은이가……!’
그의 라이칸스로프 속성은 웨어울프. 이두식처럼 힘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웨어보어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그래도 라이칸스로프 중에는 수위에 꼽히는 근력을 자랑하는 종족이었다. 순수한 힘만으로 따지면 오크조차 비할 바가 못 되는 종족. 그런데도 이런 엄청난 반탄력이라니.
‘근력 재능이 높은 놈인가? 나름 믿는 카드는 있었다 이거로군!’
놀람도 잠시, 이내 와일드팽의 두 눈이 잔혹한 빛으로 물들었다. 상대가 믿는 바가 있다면 그 믿음을 깨부수면 그만이다. 그는 자기가 질 거라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푸후후… 잔재주는 있다만, 그래봐야 미들리그에서나 통하는 장난질일 뿐이지. 수준 차라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마!”
우두둑!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기음이 들리며, 반인반수에 가까웠던 모습이 완연한 웨어울프의 형태로 변하였다. 붉은 털을 가진 짐승의 얼굴을 한 와일드팽은 특유의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며 조소했다.
“다리 째로 땅에 박아주지.”
“크우우웃!”
쿵!
그 선언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압력이 밀려들었다. 완벽한 웨어울프의 폼이 발산하는 괴력은 단숨에 팽팽한 균형을 깨뜨렸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압박을 이기지 못한 노구덕은 이내 괴로운 신음을 내지르며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큰형님!”
“아저씨!”
이두식과 신소율의 애타는 음성이 들려왔지만, 노구덕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보였다. 그의 부들부들 떨리는 팔은 위에서 짓누르는 와일드팽의 힘에 대항하는 것만도 벅찼다. 이대로 가다간 양 팔이 부러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더욱이 와일드팽이 겨우 양 팔로 끝낼 위인이던가?
안달하며 마음을 졸이던 신소율은 더는 참지 못하고 칼을 빼들었다.
“안 되겠어. 내가…….”
“나서지 말아요. 다 됐으니까.”
“뭐가 다 됐다는 거예요? 아까부터 영문 모를 소리만…!”
“소율아, 저기 봐!”
소피아에게 격한 어조로 따지고 들던 신소율은 실렌의 부름에 고개를 홱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훗차! 훗차! 훗차!”
멀리서 거대한 푸른 깃발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 크기가 성인 두 명이 팔을 벌려 잇댄 것과 비슷한 깃발이었다. 그러나, 신소율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 것은 몰상식한 깃발의 크기가 아니었다. 바로 깃발을 들고 있는 기수(旗手).
“오, 오우거?”
믿을 수 없게도, 선두에서 깃발을 들고 쿵쿵거리며 행진하고 있는 이는 흉포한 카름으로 잘 알려진 오우거였다. 침을 줄줄 흘리는 튀어나온 주걱턱, 톱날을 연상케 하는 징그러운 이빨과 오크의 네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녹색 체구. 이렇게 보아도, 저렇게 보아도 놈은 분명한 오우거였다.
그리고, 그 괴상망측한 기수의 뒤를 따르고 있는 행렬이 있었다. 행렬이라고 해봐야 네 명의 남자들이 뒤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노예로 보이는 네 명의 남자가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운반하고 있는 ‘그것’을 본 신소율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가마잖아?”
그건 정말로 가마였다. 네 귀퉁이에 가마꾼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고, 몸체엔 한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등받이의자 비슷한 것이 달려 있는 기구. 그리고 네 명의 노예가 끄는 가마에는 얼핏 성장기의 소년으로 착각할 법한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오우거 기수와 네 명의 노예를 거느린 가마를 탄 남자. 일순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진 신소율이었지만, 그녀의 의문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풀려버렸다.
“늑대왕이다!”
“세상에, 저게 말로만 듣던 애완용 오우거야?”
“우와아아아아!”
늑대왕. 당대 최강이라 불리는 열 명의 헌터, 십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치고는 상당히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아니, 평범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유약해 보이기까지 해, 이 남자가 정말 그 늑대왕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마 우람한 동생과 비교되는 작은 몸집 때문이리라.
그러나, 신소율의 눈에 비친 늑대왕은 이곳에 모인 모두를 압도하는 거인이었다.
‘저, 저게 십존…….’
꿀꺽.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아니라, 고도로 단련된 몸의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허약해 보이는 외견에 속으면 안 된다고. 저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야수라고.
같은 십존이라지만, 풋내기 시절에 만났던 서리여왕 하유라와는 백팔십도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상대의 강함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하룻강아지에 불과했으니까.
“흐으으으…….”
옆에 있던 실렌도 늑대왕에게 위축된 것인지, 오한이 든 것처럼 팔을 얼싸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본 신소율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실렌이나 자신이 이토록 위협을 느낄 정도인데,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것일까? 이 정도의 기세라면, 기가 약한 이들은 거품을 물고 나자빠져야 정상이었다.
그때, 소피아의 경고성이 날아들었다.
“…조심해요. 이쪽에 의도적으로 위압을 집중시키고 있어요.”
과연, 그런 것이었나. 호인처럼 손을 흔들며 등장한 늑대왕은 역시 겉보기처럼 유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일단 이쪽에 위협을 가함으로써 경고를 보낸 것이겠지. 그렇게 납득한 신소율은 검 손잡이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명년 오늘 제삿밥을 먹게 될 수도. 그리고 지금으로선 늑대왕의 등장으로 그 확률이 대폭 상승했다고 봐야했다.
이 순간, 신소율은 어쩌면 다가올지도 모르는 최후를 상정하며 각오를 다졌다.
‘전부 내 잘못이야. 내가 무책임하게 나서지만 않았더라도… 그러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아저씨는 살리겠어.’
그렇게 그녀가 장렬한 다짐을 한 찰나, 또 한 번의 이변이 일어났다. 이번엔 늑대왕이 등장했던 곳의 반대쪽이었다. 군집해 있던 사람들 사이에 거센 소요가 일며,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확 갈라졌다.
그 사이로 왕림한 것은 눈부시도록 새하얀 빛 일색인 여인. 얼음보다 차가운 녹빛의 동공을 가진 이 땅의 여왕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술마신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가는군요! 하지만 전 일요일 못올린 것을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조만간… 올리도록 할게요.
스노우볼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다시 자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