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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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사자대면(四者對面)
그녀는 서리여왕 하유라가 등장했을 때부터 줄곧 그녀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지금 하유라가 노구덕을 쳐다보는 눈빛은… 부수기 좋은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의 그것이었다.
마침내, 하유라의 판결만이 남았다. 밋밋한 표정으로 양측의 말을 듣고 있던 서리여왕. 이윽고 무겁게 닫혀있던 하유라의 말문이 열렸다.
“결과적으로 둘 다 이렇다 할 확증은 없단 소리군. 좋아… 가리발디, 너희 쓰레기를 데리고 내 땅에서 꺼지도록 해.”
“과하하핫! 호의, 고맙게 받지!”
하유라는 껄껄 웃어 젖히는 가리발디 쪽은 일별도 하지 않고, 곧바로 노구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너. 오크 늙은이. 너는 내 땅에서 소란을 피운 죄로 5년 형이다. 5년 간 내 정원에서 노역해라.”
“헉!”
“말도 안 돼!”
실렌을 헛바람을 들이켰고, 신소율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으며, 소피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역시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것일까. 소피아는 어질어질한 이마를 짚었다.
‘주인님, 글렀어요. 계산 착오예요.’
‘…그런 것 같다.’
곧바로 노구덕의 대답이 들려왔다. 노구덕도 아무 대책 없이 그냥 나선 것이 아니었다. 와일드팽과 실랑이를 벌이기 전부터 그와 소피아는 텔레파시로 수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큰형님과 함께 도망치세요.”
씩씩거리는 콧바람에 뒤를 돌아보니, 잔뜩 흥분한 이두식이 굳게 말아 쥔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천하의 서리여왕을 상대로 시간을 벌겠다는 말을 저리 쉽게 하다니. 우직한 이두식답다고 해야 하나. 소피아는 새삼 그의 무식함과 배짱에 감탄했다.
“이두식 헌터, 대단한 의기지만 마음만 받겠어요.”
“하지만 이대론 큰형님이…!”
“어차피 이두식 헌터가 나서봤자 몇 초의 시간벌이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일이 더 꼬여버리겠죠. 지금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잠깐만 참아 봐요, 좀.”
마지막 말은 이두식뿐 아니라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는 신소율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두식과 신소율이 머쓱하게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소피아는 후드를 더욱 깊이 눌러쓰며 염두를 굴렸다. 오늘따라 햇빛이 너무 따가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계산이 틀어졌다. 처음 와일드팽과 신소율이 다툴 때만 하더라도, 소피아는 상황을 충분히 타개할 자신이 있었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그녀는 노구덕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동시에 곧바로 고래끼리 싸움을 붙여 새우가 빠져나가기 위한 전략을 짰다.
우선, 서리여왕과 늑대왕은 십존 중에서도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절세미녀인 서리여왕과 호색한인 늑대왕이 사이가 좋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터. 게다가 늑대왕은 말썽쟁이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편이라, 동생이 단독행동을 할 때면 언제나 감시자를 붙여두곤 했다. 말인즉슨, 와일드팽에게 뭔가 트러블이 일어난다면 곧 늑대왕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반면, 프라이드가 높은 서리여왕 하유라는 자신의 영지 내에서 다른 사람이 날뛰는 것을 두고 볼 정도로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상대가 사이가 나쁜 늑대왕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와일드팽이 난동을 부린다는 보고를 받는 즉시 늑대왕의 출현을 예감하고 움직이겠지. 소피아는 거기까지 예상했다.
이런 큰 판을 벌리지 않으면, 와일드팽이란 사내를 떨쳐낼 수 없다. 그 정도로 집요한, 찰거머리 같은 사내였다. 특히 여자가 얽힌 일에 대해서는.
두 거물을 불러들였다면, 남은 것은 팽팽한 대립구도를 만드는 일이다. 노구덕이 와일드팽을 도발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와일드팽과 벌인 대결에서 패색이 짙었던 것도 모두 동정을 사기 위한 의도된 연출이었다. 소피아는 노구덕이 충분한 명분과 여론의 옹호를 확보한 이상, 늑대왕을 싫어하는 서리여왕이 그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짐작했다. 서리여왕 하유라에게 있어, 영내에서 날뛴 늑대왕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버리고 쫓아낸다는 것은 더없이 매력적인 선택지일 테니까.
거의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와서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서리여왕 하유라는 와일드팽과 늑대왕의 무례를 눈감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노구덕에게 5년의 노역을 지시했다. 전혀 그녀답지 않은 일. 나름대로 서리여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소피아조차 전혀 생각지 못한 반전이었다.
서리여왕은 대체 왜, 어떤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소피아는 그녀의 번들거리는 눈을 본 순간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악취미를 잊고 있었어.’
서리여왕 하유라는 단순히 노구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정확히는 1년 전에 벌레만도 못했던 오크 늙은이가, 자신과 같은 반열인 늑대왕의 눈빛을 받아낼 정도로 발전한 것이 거슬린 것일 테지.
하유라는 오로지 타고난 재능, 그것 하나만으로 십존의 반열에 오른 드문 케이스의 헌터다. 그녀가 강해지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다른 십존의 절반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다소 어이없지만, 이건 그녀의 자부심이기도 했고, 오만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 환경 때문일까. 그녀는 노력가를 경멸했다. 그녀의 취미 중 하나는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의 절망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소피아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는 바로 그것, 서리여왕의 악취미였다.
서리여왕의 눈에 비친 노구덕은 ‘무던한 노력가’였다. 볼 것도 없었던 벌레 같은 인간이, 와일드팽과 힘싸움을 벌이고, 늑대왕의 기세를 받아낼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까. 그 노력이 5년의 노역으로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고상한 취미를 가진 서리여왕에게 있어, 그건 더없이 즐거운 놀이였다.
거절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럴 리 없겠지만, 내 땅에서 내 명령에 불복한다면 즉참이다. 절대 살려두지 않아.”
나는 이쪽도 나쁘지 않다. 희미하게 미소 띤 얼굴을 보아하니, 서리여왕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묵묵히 그녀를 응시하는 노구덕. 찰나 간 머리를 굴려보던 소피아는 그럴싸한 답이 나오지 않자,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제가 나설게요.’
‘묘책이라도 있냐?’
‘휴우… 협상카드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요. 교섭이 실패하면… 전력으로 도망치세요.’
결국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답이 도주라니. 이래서야 이두식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자조하던 소피아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 협상을 해보기도 전에 실패를 생각하다니, 나답지 않네.’
그녀가 준비한 카드는 과거, 서리여왕의 조언자로서 일할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하유라의 약점들이었다. 그러나 즉흥적이고 막무가내인 면이 있는 하유라에게 그것이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 도리어 그녀의 화를 돋울 가능성도 있었다.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이젠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실패할 확률이 높은 거냐?’
‘반반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낮을 수도 있어요.’
노구덕은 잠깐 뜸을 들인 뒤에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음, 일단 애들한테 먼저 물러나라고 전해줘라.’
‘주인님은요?’
‘난 도망치지 않아. 도망칠 수도 없고.’
‘네에? 협상이 실패할 수도 있단 말예요.’
‘까짓것, 그러면 5년간 머슴살이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때 기회를 봐서 탈출할 수도 있는 거고.’
‘차라리 제가 대신 남을게요. 제가 주인님 대신 노역을 하겠다고 하면, 유라 언니가 마음을 바꿀 지도 몰라요.’
‘어차피 내 피가 없으면 살지도 못하는 녀석이 무슨 수로 5년을 버텨? 너, 이번 기회에 콱 죽으려고 그러지?’
이 마당에 이런 시시한 농담이라니. 소피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건 클럽에 남아도 똑같잖아요…….’
‘아니. 내 피야 비축분도 있고, 네가 밖에 있으면 어떻게든 혈액 정도는 전달할 수 있을 거다. 네가 할 일은 나 대신 노역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좋은 머리를 굴려서 날 빼낼 방도를 짜내는 거야. 정 안되겠다 싶으면… 내가 나올 때까지 클럽을 부탁한다.’
‘주인님…. 그런 소리 마세요. 일단 협상부터 해 볼 테니까요.’
‘그래, 어쨌든 시도라도 해 보는 게 낫겠지. 혹시 실패하더라도 약속은 지키리라 믿는다. 내 권속이니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우우웃!’
소피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던 노구덕은 몸을 덮쳐오는 둔중한 충격에, 형편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대답이 늦어.”
시간이 없었다. 짜증이 섞인 하유라의 얼굴을 본 소피아는 서둘러 후드를 벗고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때였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내 발로 갈 테니까, 이것 좀 놔줘!”
웅성웅성.
저 멀리서 웬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하이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신소율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이 목소리는…!”
“다, 다 얘기했잖아! 뭘 더 얘기하란 건데!”
그러는 동안에도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막 걸음을 돌려 떠나려했던 늑대왕도, 노구덕에게 대답을 종용하던 서리여왕도 우뚝 멈춰 선 채 비명이 들려오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의문의 여인은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빽빽거리는 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옴에 따라, 긴장된 낯빛으로 몸을 움츠리는 남자가 있었다. 바로 와일드팽이었다. 그는 도로록 눈알을 굴리며, 여인이 다가오는 방향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으으윽!”
이윽고, 인의 장막을 뚫고 의문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것처럼 동행자도 함께였다. 그리고 그 동행자는,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 아주 익숙한 남자였다. 당장이라도 여인을 향해 달려들 듯 했던 신소율은 동행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팽팽히 전신 근육을 긴장시키던 이두식도 마찬가지.
무엇보다 가장 놀란 사람은 노구덕이었다. 그는 턱이 목젖에 닿을 듯 벌어진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으로 전면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김… 정인?”
“정인 오빠…….”
여인을 끌고 나타난 수수께끼의 남자는 다름 아닌 라이오넬의 김정인. 요즘 한창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드시커’ 김정인이었다.
대체 김정인이 여기 왜 나타났단 말인가. 얼떨떨해 하면서도 강한 의구심을 품은 노구덕이었지만, 김정인은 그와 한가롭게 얘기를 나눌 생각은 없어보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하게 됐습니다. 라이오넬의 김정인이라고 합니다.”
여인과 함께 등장한 김정인은 서리여왕 하유라와 늑대왕 가리발디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요~ 자네가 그 김정인이군! 빅리그 유망주들 중에는 차기 십존에 가장 가까운 남자라지?”
“과분한 평가입니다.”
스스럼없이 김정인과 대화를 나누는 늑대왕에 비해, 한번 일면식이 있던 서리여왕은 한 겹 살얼음이 깔린 듯 싸늘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돌멩이, 여긴 무슨 볼일이지?”
무슨 말인가 싶어 미간을 좁히던 김정인은, 이내 하유라가 이전에 했던 말을 상기하고는 고소를 머금었다. 과거, 하유라는 김정인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넌 쓰레기가 아냐. 잘 크면 프라임 밑에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 되려나?’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1년 전 김정인에게서 받은 인상이 강렬했다는 뜻이리라.
“증인을 데려왔습니다.”
“증인?”
김정인은 엄동설한을 연상케 하는 하유라의 강렬한 기세를 덤덤하게 받아냈다.
“예. 이 분은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사건의 당사자입니다. 지금부터 이 분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주실 겁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소피아가 실수를 했네요. 소피아도 사람이란 말이야!
네 명이 대면했군요. 십존 두 명과.. 차기(?) 십존 두 명..
가식적썩소 / 오타지적 없는게 좋은거긴 한데… 뭔가 허전해요 ㅎㅎ
불타는고기 / 하유라는 그렇게 순수(?)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북치네 / 장 담글뻔 했네요!
㈜지나가는?곰딩이 / 맘 놓고 늑대왕 스탯을 읽어볼 상황이 안나오네요 ;;
호야[虎夜] / 그게 현실이 되었고..
은신설야 /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굽신굽신
에보커 / 그렇습니다. 밉상 두 명입니다.
영천화 / 중요 에피 2개쯤 지나면 그래도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아요
우낄푸핫 / 나름 카드는 있었긴 했죠…
광견사마광 / 일단 히어로급이 되어야 안티든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주요 에피 2개쯤 지나면 뭐라도 될 것 같습니다
無限火龍 / 아직 멀었습니다…
파우누스 / 쥔공이 1 강해지면 적은 10으로..
whomi / 하유라의 성격이 참 배배꼬였어요
작은꿈 / 개인적 트라우마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거겠죠 ㅠㅠ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ㅂㅈㄱㄷㅂ241 / 어떻게 될까요?
콜마 / 흡혈귀는 가능하지만 라이칸은 글쎄요… 그리고 다른 종족으로 바뀌면 외형은 유지되어도 종족특성을 잃게 됩니다. 소피아도 흡혈귀가 되면서 하이엘프의 특성을 잃어버렸죠. 노구덕이 힘을 숨긴걸 알아채시다니 예리하시군요!
마녀예린 / 노력하겠습니다 ㅠㅠ 8월이 상당히 바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