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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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새로운 적
김정인은 선선히 노구덕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알겠습니다. 방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느 한쪽이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걱정 마라. 나도 죽자고 날뛸 생각은 없으니까… 뭐, 네 실력을 감안하면 거기까지 가지도 않겠지만.”
노구덕은 이어서 덧붙였다.
“…이걸로 정말 끝난 거다. 너와 나 사이엔 아무 것도 없는 거야. 다음엔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을 거다.”
김정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것은 노구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를 이곳에 끌어들인 게 김정인이긴 해도, 처음 1년 동안 그는 아이리스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레드고르곤과 벌인 주스트에서도 그랬고, 마녀의 산에서도 그랬으며, 박준혁의 습격에서도 그랬다. 노구덕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긴 했지만, 김정인의 활약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거기에 더해 김정인은 아이리스에 100m의 이적료까지 안겨주고 떠났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지만, 클럽 차원에서 보자면 큰 보탬이 된 것이다.
그에게 김정인은 장차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빚이라니. 찜찜하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노구덕은 이번 기회에 마음의 부채를 확실히 없애버리고자 한 것이다.
그건 김정인도 바라던 바.
“예. 그러죠.”
그렇게 아이리스를 사이에 둔 전임 리더와 후임자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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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렇게 무모한 짓을 벌일 줄은 몰랐어요.”
소피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김정인에게서 이번 일의 주모자가 비트레이 오너라는 것을 전해 듣고는,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성공할 뻔했잖아요? 소드시커가 때맞춰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실렌의 말에, 소피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후유우… 그건 모를 일이죠. 이쪽도 남은 카드는 있었으니까요. 어차피 지난 일이긴 하지만… 설사 그 계책이 성공했다고 해도 문제죠. 십존을 끌어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 정도인가요?”
“십존이란 건 그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이니까요. 그들은 개개인이 클럽에 속해 있긴 하지만, 그건 명목상일 뿐, 실제로 그들의 지위는 소속 클럽의 오너를 웃도는 수준이에요. 한 명 한 명이 연맹에서 인정한 영지를 가지고 있고, 그 땅은 오로지 그들의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치외법권 지역이죠. 퀸즈가든처럼요.”
“그렇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즉석에서 판결을 내릴 줄은 몰랐어요…….”
“그들의 영역 내에서, 십존은 왕이나 다름없죠.”
십존의 별명에 유독 ‘왕’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연맹, 그리고 위원회에게 있어, ‘십존’이라 불리는 최강의 헌터들은 만약을 대비한 최종병기였다. 지금이야 스퀘어 전역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이레귤러라는 이상현상이 존재하는 이상, 언제 ‘재앙급’ 카름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 실제 스퀘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작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주기로 대륙의 지형을 바꿔놓을 정도의 힘을 지닌 카름들이 출현하곤 했다. 십존이란 존재들은 바로 그런 최악의 괴물들을 처리하기 위한 보험이었다.
말하자면, 지금 십존이 누리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최종병기에 걸맞는 대우라는 것이다. 부족함 없는 대우를 해줘야 나중에 일이 터졌을 때 군말 없이 차출에 응할 테니까.
“…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재앙급 카름은 20년 전, 북부 지구에서 수천 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기가스(Gigas)였죠.”
“아, 맞아요. 거기서 십존 세 명이 죽었다고…….”
“뭐어, 그런 거죠. 음, 얘기가 잠깐 샜네요.”
졸린 듯 나른하던 소피아의 음성이 진중하게 돌변했다.
“그러니까… 십존이란 사람들은 목줄이 풀린 사냥개라는 거예요. 어지간히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연맹에서는 간섭하지도, 간섭할 생각도 없죠. 유라 언니가 김정인 헌터에게 굳이 배후를 캐묻지 않은 것도, 어차피 늑대왕이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테고요. 늑대왕을 비롯한 십존은 남의 계획에 이용당하는 걸 그냥 참아줄 정도로 성격 좋은 이들이 아니거든요.”
“그럼 비트레이 오너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호기심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갖은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주던 소피아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글쎄요… 늑대왕은 유라 언니만큼 기분파인지라…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언니가 와일드팽과 얼마나 깊은 사이냐에 따라 다르겠죠?”
“에엥? 비트레이 오너는 미망인 아니었어요?”
“그 와일드팽이 설마 돈만 보고 움직였을 리가요. 돈이라면 넘쳐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실렌. 그때, 이두식과 함께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신소율이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 소피아 씨는 언니랑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질문을 받은 소피아는 잠깐 멈칫하더니, 신소율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네에… 맞아요. 그건 왜 묻는 거죠? 신소율 헌터.”
“지금 들어보니까 그 사람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
얼굴 근육을 파르르 경직시킨 소피아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평소처럼 가벼운 어조로 답변을 얼버무렸다.
“…기분 탓이겠죠. 언니와 제 사이는 신소율 헌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쁘거든요. 후후.”
“흐으음……. 그런가?”
“그래요. 그런 쓸데없는데 할애할 신경이 있으면, 오늘 신소율 헌터의 경솔한 행동부터 반성할 시간을 갖는 게 어때요? 자숙하세요, 자숙.”
“우우으…….”
끙끙대는 신음성에 이어 ‘역시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나직한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김정인도 울고 갈 날카로운 언변으로 신소율을 침몰시킨 소피아는 소리죽여 웃다가 반짝 눈을 빛냈다.
“아, 시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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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간의 대치. 노구덕은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한 느낌이었다. 레귤러에서 아무리 강한 카름들을 만났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든지 파고들 틈이 있었고, 한두 번 정도는 주먹질을 성공시킬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와 마주한 김정인은… 도저히 공략법이 보이지 않는 철옹성이었다.
‘젠장, 역시 만만치 않군. 괜한 호기를 부렸나.’
노구덕은 혀를 차며 눈매를 좁혔다. 그의 전투방식은 ‘무투’에 가깝지만, 그에겐 이두식처럼 ‘무투’에 관한 재능이 없었다. 그 말은 곧, 천부적인 격투 센스의 부재… 즉, 달인과의 싸움에서 노출된 약점을 간파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약점을 ‘파리의 초감각’으로 어느 정도 보완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노구덕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정(靜)적인 상대와의 전투경험이었다.
그리고, 검술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 김정인은 그 상대로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첫 상대로는 지나치게 강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
‘직선 도약으로 정면 돌파를 해볼까? 아니면, 페이크를 한 번 하고 옆구리를 노려? 허어… 뭘 해도 카운터를 당할 것 같은데…….“
검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2년 간 숱한 전투경험을 쌓아온 노구덕이다. 핏빛 마검의 끝을 땅에 늘어뜨린 채, 비스듬히 서 있는 김정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잘 벼리어진 한 자루의 검이었다. 어딜 만져도 살을 베어버릴 것 같은 시퍼런 예기를 품은 검.
“흐흐흐…….”
한쪽에서 구경하고 있던 실렌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한 순간, 노구덕은 웃었다. 왠지 모르게 자조가 섞인 웃음 소리였다.
‘내가 언제부터 정정당당한 승부를 했다는 거냐. 정신 차려라, 노구덕. 주스트 시합 때, 그리고 박준혁과 싸울 때 어떻게 했는지 떠올리란 말이다.’
고춧가루, 독…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게 자신 아니었던가. 이제 조금 강해졌다고, 저 넘치는 재능을 가진 녀석과 정면에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기고만장한 것도 정도껏이지,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정인이 녀석과 승부를 내는 건 오늘이 아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경험이다. 져도 괜찮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싸워보는 거다. 마지막에 웃기 위해서.’
각오를 새로이 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노구덕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땅을 박찼다. ‘개미의 근력’과 ‘벼룩의 도약력’이 더해진 다릿심은 단숨에 김정인과의 거리를 좁혔다. 마치 축지법을 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온다!’
쐐액!
기다렸다는 듯 참격이 날아왔다. 노구덕은 급히 돌진을 멈추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섬광을 눈으로 봤을 리 없다. 충왕각인, ‘파리의 초감각’으로 감지한 것이다.
벼락같은 검기가 간발의 차로 스쳐지나가며, 가슴팍이 따끔해졌다. 직접적으로 맞닿은 것이 아닌데도 김정인의 검기는 ‘비틀쉘’로 보호되는 피부를 손쉽게 갈라버렸다. 노구덕은 새삼 그 예리함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탓!
놀라운 힘으로 급정지를 한 노구덕은 지체 없이 땅을 발로 찼다. 그러자 땅거죽이 깊게 패이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우와! 비겁하다…….”
정곡을 찌르는 실렌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노구덕은 그것을 깨끗이 무시했다. 아니, 그는 주변의 목소리 따위는 듣지도 않고 있었다. 그의 온 신경은 눈앞의 김정인과, 방금 발차기로 벼룩처럼 튀어 오른 돌조각에 쏠려 있었다.
‘우선 한 발!’
적절한 높이로 튀어오른 돌멩이를 포착한 노구덕은 그대로 초강력 스파이크를 꽂았다.
팡! 슈웅!
“……!”
무시무시한 근력으로 내리쳐진 돌멩이는 그대로 총탄으로 변해 김정인에게 쏘아졌다. 김정인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침착하게 돌멩이를 검면으로 쳐냈다.
그러나, 방금 전 쏘아진 돌멩이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전면의 노구덕이 여러 번 발을 구르더니, 정신없이 튀어 오른 돌멩이들을 마구 날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팡! 팡! 팡! 팡! 팡!
노구덕이 일으킨 흙먼지가 안개가 되어 사방을 자욱하게 뒤덮고, 기관총 세례처럼 무자비하게 돌팔매질이 난무했지만, 김정인의 철통방어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멩이들을 튕겨냈다. 그런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일정했다.
‘이, 괴물 녀석!’
충분히 반격할 수 있을 텐데도 막기만 하고 있다. 노구덕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여유였다.
‘더 놀아주겠다는 거냐! 그러면 나야 고맙지!’
중거리전도 먹히지 않았고, 시야를 가려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근접전. 노구덕은 가이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숙련된 검사는 근접전에 강하지만, 의외로 초근접전에는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마치 태풍과도 같지요. 무투가가 검사를 이기기 위해선 태풍을 뚫고 그 ’눈‘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눈에 도달하려면… 발밑을 노리는 게 좋습니다.’
과연 ‘숙련된 검사’의 범주에 김정인도 포함될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려면 그나마 주위가 흙먼지로 덮인 지금이 호기였다.
노구덕은 돌멩이 몇 개를 마저 쏘아보냄과 동시에 훌쩍 몸을 날렸다. 돌멩이를 페이크 삼아, 본체는 아래에서 깊숙하게 슬라이딩 태클을 들어간 것이다. 어찌 보면 울펜의 은신처에서 그를 상대로 신소율이 보여줬던 수법과 상당히 흡사했다. 당시 노구덕은 이 수법에 꼼짝없이 미간을 내줘야만 했었다.
하지만, 김정인은 노구덕이 아니었다. 그는 순식간에 노구덕의 페이크를 간파했다.
깡! 깡!
어렵지 않게 선두의 돌멩이들을 쳐낸 김정인의 검은, 직각에 가깝게 방향을 틀며 지면을 수평으로 휩쓸었다. 검날의 높이, 방향을 보아 아래에서 태클을 들어오는 노구덕을 얇게 포로 뜨기 딱 좋은 위치였다.
영락없이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는 돼지와 같은 꼴이었다.
“흐럅!”
그때, 별안간 힘찬 기합성이 터지며, 노구덕의 거구가 껑충 가운데로 뛰어올랐다. 아래쪽을 파고 들던 슬라이딩태클이 한순간 중단을 노리는 드롭킥이 된 것이다.
그 믿기지 않는 움직임에, 관중석이 크게 술렁였다.
“파, 팔 힘만으로 몸을 띄웠어!”
“…저게 가능해? 두식 오빠, 저거 할 수 있어요?”
“…아니. 바로 하라면 못할 것 같은데.”
상식 밖의 괴력을 이용한 회심의 일격이었으나, 김정인은 그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노구덕의 손바닥이 땅을 짚는 순간, 어느새 바닥을 쓸고 있던 검은 중단에 나타나 있었다. 마치 그의 행동을 한발 앞서 예견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김정인의 발밑이었으니까.
양발이 검면에 닿으며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귀신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김정인의 검. 그 실체를 드디어 붙잡아둔 것이다. 비록 양발을 희생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이 바로 바라마지 않던 기회였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쉬익!
굳게 쥐어진 주먹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 손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조금 전, 돌팔매질을 하며 손에 숨겨두었던 자갈이었다. 목표는 무방비상태로 드러난 김정인의 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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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지에 나와있듯, 당일날 올라오지 않고 별도로 임시공지도 없다면, 다음날 새벽이나 아침쯤에 올라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자러…
아, 십존의 지위에 대해서 궁금해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본문에 작게나마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타 작품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자면, 음.. 원피스의 칠무해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조금 권한이 더 강한 칠무해? 정도 되려나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