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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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발칙한 신인
49# 발칙한 신인
어느 날 저녁, 일과를 마친 노구덕은 세 사람을 호출했다. 임유진과 소피아, 그리고 데모나. 언제나 노구덕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두 여인은 금방 호출에 응했지만, 늘 그렇듯이 실험실에 처박혀 있던 데모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초췌한 얼굴을 드러냈다.
탁.
신경질적인 손동작으로 문을 연 데모나는 두 여인과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던 노구덕을 보자바자 버럭 성질을 냈다.
“뭐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네가 오면 되잖아!”
언행 하나하나에 짜증이 듬뿍듬뿍 담긴 걸 보니 이번에도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었던 모양. 노구덕은 대체 데모나가 지하에 처박혀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물어본다고 순순히 대답해 줄 위인이 아니었다. 알려줄 거면 진즉에 알려줬겠지.
“아, 하던 일 방해해서 미안하다. 아주 중요한 얘기라서 말이야.”
“중요한 얘기?”
“그래. 여기 유진이나 소피아도 같이 들어야 하는 얘기라서… 마음 넓은 네가 좀 이해해 줘.”
“…흥. 시시한 얘기라면 가만두지 않겠어.”
“시시하지 않으니까 걱정 마라.”
데모나는 퉁명스레 코웃음을 치며 가장 가까운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데모나와 함께한 지도 거의 2년 차. 슬슬 그녀를 다루는 데 있어 완숙미가 엿보이는 노구덕이었다.
덜커덕.
“…….”
뭔 소리가 나나 했더니, 데모나의 근처에 앉아있던 소피아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은 채 자기 의자를 살짝 들어 옆으로 옮기는 게 보였다. 데모나는 또 그쪽은 보지도 않는다. 하여튼 개와 원숭이보다 사이가 나쁜 두 사람이었다.
반면, 임유진은 한층 야윈 데모나의 몰골을 보며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데모나, 실험도 좋지만 좀 쉬어가면서 해. 요새 먹는 양도 줄었던데…….”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겨. 쓸데없는 참견하지 마.”
“응…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비스킷 해 줄게. 참, 우유도 가져다 줄까?”
“…설탕 두 스푼 넣어서.”
“그래, 알았어.”
가희를 바라볼 때의 그것처럼 포근하게 미소 짓는 임유진과, 뭔가 못마땅한 듯 콧잔등을 찡그리고 있는 데모나. 이 둘을 보고 있자면 꼭 까칠한 사춘기 소녀와 젊은 새엄마를 보는 것 같다.
‘저 녀석, 우유는 싫다고 하지 않았나?’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라 생각하며, 노구덕은 무게를 잔뜩 잡은 채 말문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절대 밖으로 새 나가서는 안 되는 사안이야. 될 수 있으면 묻어 두고 싶은 얘기지만… 내가 가장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털어놔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 이곳에 모인 여성진들은 노구덕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의 반려 임유진, ‘신뢰’와는 조금 다른 의미지만, 피의 권속으로 이어져 심령까지 연결되어 있는 소피아… 사실, 데모나는 조금 애매하긴 했다.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노구덕은 데모나를 믿었다. 애당초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던 데다가, 그녀가 아이리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런 그녀를 믿지 않는다면 누굴 믿으랴.
만에 하나라도, 데모나가 딴마음을 먹는다면 그건… 데모나의 탓이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자신을 탓해야겠지. 노구덕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율이가 들으면 섭섭하겠는 걸요?”
“으음, 소율이와 실렌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야. 그래서 부르지 않았어. 뭐, 그 녀석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러면 그 두 분과 같이 실종됐을 때의 일이겠네요.”
“역시 똑똑한데.”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핵심을 짚어낸 소피아를 추켜세운 노구덕은 낯빛을 진중하게 굳혔다.
“내가 실종됐을 때 어떤 노인을 만나서 오리지널을 얻은 것까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그 사람이 오래 전 스퀘어에서 번성했던 벌레교단의 사람이라는 것도. 이건 그 노인에게 들은 말인데… 솔직히 아직까지도 온전히 믿기는 힘든 얘기야. 어디까지나 ‘가설’로 생각하고 들어줘.”
그 뒤, 노구덕은 울펜에게 들었던 ‘세계의 성립’에 관한 이야기를 약 수십여 분 가량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과거 구왕조로 유지되었던 스퀘어 대륙에 이레귤러라는 이상현상이 일어나 카름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출현하고, 이후 그 이상현상이 구왕조와 적대하던 단체들의 본거지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것,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러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얽힌 교단의 비사까지…… 노구덕의 말을 듣는 내내, 세 여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로서도 실로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니까.
마침내, 노구덕의 긴 설명이 끝났다. 충격에 빠진 여인들 가운데 가장 먼저 패닉에서 벗어난 것은 소피아였다.
“…주인님 말씀대로라면 위원회가 이레귤러를 통제해서, 대륙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거군요.”
“내 말이 아니라 그 노인… 울펜 영감의 말이지.”
“얼핏 듣기엔 황당무계한 가설이지만… 일리는 있어요. 아니, 왜 지금껏 이레귤러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희한하기만 하네요.”
고정관념이란 역시 무섭다니까. 소피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임유진. 그녀는 전의에 불타는 눈으로 작은 주먹을 꼭 쥐어보였다.
“…그러면 싸워야 할 적이 더 늘었다는 거군요.”
“아아, 발레기우스… 그 교황 말이지? 그거야 뭐, 울펜 영감과 약속은 했지만, 영감도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했으니까. 천천히 해도…….”
그러나 임유진은 안심이 되지 않는 듯,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찾아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울펜이란 분도 그것 때문에 은둔하고 계셨던 거잖아요.”
“에이, 그건 기우야. 그놈들이 무슨 수로 내가 교단의 후계자라는 걸 알고 찾아…….”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노구덕은 일순 어버버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울펜이 지나가듯 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교단에는 ‘동류’를 알아볼 수 있는 주문이 있었다. 울펜이 노구덕이 충왕각인의 사용자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도 이 주문 덕분이었다.
“염병할! 이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이런 등신! 쪼다 같으니라고!”
“구, 구덕 씨?”
“유진이 네 말이 맞아. …휴우, 놈들이 먼저 우릴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교단에는 같은 신도를 찾을 수 있는 주문이 있으니까. 무슨 자신감으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지…….”
노구덕은 맨들맨들한 대머리를 쿵쿵 치며 자책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까지 조용한 걸로 보아 놈들이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그러나 발레기우스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불확실한데다, 그들이 이미 노구덕을 찾아내고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그건 의미 없는 자위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곳 딕툼에는 그에게 세례를 받은 신도들만 수십여 명이지 않은가. 꼭 노구덕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신도들로 인해 정체가 탄로 났을 수도 있었다.
“괜찮아요.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대비하면 되죠.”
“…미안해. 명백한 내 실수다.”
“멍청하기는.”
“윽.”
임유진에 의해 위로받았던 마음이, 데모나가 툭 던진 말에 다시 한 번 찢겨나갔다. 노골적으로 한심한 눈초리를 보내던 데모나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번 드래프트, 참가할 거지?”
“응? 갑자기 드래프트는 왜?”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음, 가긴 가야지. 나한테는 ‘눈’도 있으니까 의외의 월척을 건질지도 모르고.”
벌써 한 해가 거의 저물고 있었다. 즉, 신참 헌터들의 드래프트가 가까워진 것이다.
미들리그 클럽인 아이리스는 픽업기간 7일 중 후반기 3일 동안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넉넉한 기간이 주어지는 빅리그 이상의 클럽들에 비하면 열악한 조건이었으나, 마지막 날 단 하루만 협상을 할 수 있었던 스몰리그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피아가 만들어 놓은 스카우터진도 있으니, 저번처럼 오린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면 동부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게 어때?”
“타 지구 드래프트에 참가하라고?”
노구덕이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에, 옆에서 소피아의 볼멘 음성이 들려왔다.
“데모나 주.인.님? 그건 곤란하네요. 이미 서부 드래프트에 대한 조사가 거의 끝난 상황이란 말이에요. 이제 와서 바꾼다는 건…….”
“너한테 묻지 않았어.”
“…칫.”
데모나가 시선도 주지 않고 단칼에 말을 잘라버리자, 소피아는 마뜩찮은 혓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데모나, 미안하지만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네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클럽이 타 지구 드래프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헌터하우스에 ‘지명권 교환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면 헌터하우스에서 해당 지구에 지명권을 교환하고 싶은 클럽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상호 간 교환이 성립되면 지명권이 교환되는 방식이었다. 물론 같은 수준의 리그에 속한 클럽이어야만 했다.
즉, 아이리스가 동부 드래프트에 참가하려면 동부 쪽에 서부 드래프트에 참여하고 싶은 미들리그 클럽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보기엔 간단하지만, 실제 그 절차는 꽤나 까다롭고 번잡했다.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소피아가 싫은 티를 팍팍 풍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이유라면 있어. 동부 쪽에 반드시 가야 할 일이 생겼거든.”
“가야 할 일?”
“그래. 마녀회(魔女會)… 그 유산이 있는 곳을 알고 있어. 마침 연구도 막바지니, 그곳에 가서 남아있는 비전을 가져와야 돼. 하지만 혼자서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영 어색한 듯, 데모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끝을 흐렸다. 무턱대고 동부 지구에 가야한다며 강요를 할 줄 알았던 데모나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도움을 청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무심코 그 모습이 꽤나 귀엽다고 생각하던 노구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미친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가만, 마녀회라면 울펜 영감이 말했던 단체잖아.’
울펜이 과거 구왕조와 대립했던 무력집단 중 하나로, 북부의 발할라, 남부의 어비스 쉬라인과 함께 언급했던 중부의 마녀회. 중부를 주름잡았던 단체의 유산이 왜 동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모나가 그 오리지널을 얻을 방법을 알고 있다면 드래프트를 포기해서라도 기꺼이 가야만 했다.
도박성이 짙은 드래프트에 비하면, 이쪽은 고배당이 거의 100% 보장된 투자였으니까.
‘그나저나 뭔 연구를 그렇게 하나 했더니, 이 유산에 관련된 것이었나 보군.’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노구덕은 힐끔, 눈을 돌려 소피아와 임유진을 쳐다봤다. 소피아는 마녀회의 유산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짐작했는지 체념한 표정이었고, 임유진은 무조건 데모나를 도와야 한다는 눈빛을 줄기줄기 뿜어대고 있었다.
노구덕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들어줘야지. 우리가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니고. 그런데 그 유산이 있는 곳, 얼마나 위험한 거냐? 될 수 있으면 자세히 듣고 싶은데.”
승낙을 받아낸 데모나는 살짝 경직된 얼굴을 풀었다.
“그곳에 있는 오리지널은 마녀회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받던 비전이야. 당연히 침입자에 대한 보안도 철저해. 최대한 위험이 덜한 루트로 갈 수는 있지만, 전투를 피할 수는 없어. 아마 가디언들은 대부분 언데드들로 이루어져 있을 거야.”
“언데드라고?”
“그래. 그곳에 있는 마녀회의 유산은 네크로맨시(Necromancy)와 관련한 사술이니까.”
“…마녀회, 이름값하네요.”
“언데드가 주류라면, 제가 도움이 될 거예요.”
실없이 중얼거리는 소피아와, 자신에 차서 나서는 임유진. 드래프트 때의 언데드들이 불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상기하면, 임유진의 저 자신감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광염의 지배자’란 클래스를 가졌으며, 불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동행한다면, 의외로 쉽게 유적을 클리어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시기도 적절했다. 트로이카가 없어진 지금, 아이리스는 딕툼에서 리그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탐사에 필요한 인력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단 뜻이었다.
계산을 마친 노구덕은 머리를 끄덕끄덕 움직이며 말했다.
“좋군. 그럼 유적 탐사도 고려해서 인원을 편성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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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휴재 죄송합니다! ㅠㅠ
제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월~토 가게를 하기 때문에 일요일 밖에 개인 시간이 안나서요. 사적인 용무는 주로 일요일에 몰아서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분은 연참으로 채울 예정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ㅠㅠ
이번 드래프트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부제 참조!
그리고 드래프트 다음 에피소드는 데모나가 파워업을 할 것 같군요… 본격 흑마법사 겸 주술사 겸 네크로맨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