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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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선전포고
50# 선전포고
라이오넬의 김정인이 먼저 선수를 쳤다.
뜻밖의 사실에, 노구덕과 임유진의 얼굴에 심각한 빛이 감돌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동부 지구. 라이오넬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스턴 리그에 속한 라이오넬은 지명 순위도 프라임리그 바로 뒷순위. 무엇보다 김정인과, 소피아의 뒤를 이어 라이오넬의 새 단장이 된 하태경은 클럽을 프라임리그로 올리는데 지대한 정성을 쏟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이번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스펠 스나이퍼’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아는 사람인가 봐요?”
“별로 좋은 쪽은 아니지요.”
“호… 쓸데없이 원한 관계를 만들 사람으로는 안보였는데.”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박지현. 그녀가 본 김정인은 첫인상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다.
노구덕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와는 이리저리 꼬인 게 많아서 그렇지, 김정인이라는 놈은 상당히 괜찮은 남자였으니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박지현 헌터? 괜찮으시다면 스펠 스나이퍼… 이진주 헌터의 속사정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어… 음, 어려울 건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 일을 내 입으로 말하기엔 좀…….”
“네? 그치만 방금 라이오넬 측에는…….”
노구덕은 가볍게 손을 들어 의아하게 되묻는 임유진을 제지했다. 똑똑한 그녀였지만 의외로 이런 쪽의 분위기 파악에는 약한 면모를 드러내곤 했다.
찰그랑.
그는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공간 마법이 걸리지 않은 천연 가죽 주머니가 테이블 표면에 맞닿으며 묵직한 소음을 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박지현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헤, 꼭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소중한 정보를 맨입으로 들을 수야 없지요. 박지현 헌터의 시간을 사는 값이라 생각해 주시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박지현은 생글생글 웃으며 잽싸게 주머니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임유진. 설마 박지현이 원한 게 금전적인 대가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노구덕이 봤을 때, 박지현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었다. 이진주를 위하는 건 위하는 거고, 박지현은 내일 모레면 당장 이 회장을 떠나 스퀘어에서 홀로 살아가야만 한다. 만족할 만한 오퍼가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는 돈은 땡길 수 있을 때 땡겨두는 게 좋았다. 더군다나 이진주에 관한 말 몇 마디를 한다고 해서 그녀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녀가 좀 더 속물적인 인간이었다면, 자기가 이진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라도 해서 돈을 쓸어 담았겠지. 이 정도면 차라리 양반에 속했다.
그런 면조차, 순진한 구석이 있는 임유진으로서는 예상 밖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귀여운 거지. 으허허….’
기승전임유진으로 마무리를 지은 노구덕은 내심 흐뭇하게 웃었다.
“저… 노구덕 씨?”
툭. 툭.
임유진이 팔꿈치로 톡톡 건드린 덕에 정신을 차린 노구덕은, 바로 앞의 박지현이 기괴한 것을 보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헛기침을 하여 상황을 무마했다.
“커험! 아이리스 오너라고 불러주십시오.”
“아, 네…….”
“그럼, 얘기를 들어볼까요.”
“네네.”
방금 전, 노구덕의 헤벌쭉한 낯짝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지, 꺼림칙한 얼굴로 대답한 박지현은 느릿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주는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애였어요. 준비의 방이라고 하죠? 거기,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대기하면서 기초 장비를 고르는 방 말이에요. 네, 거기서 기다란 스태프를 골랐는데… 충격파(Shock wave)가 내장되어 있는 스태프였죠. 그 작대기를 들고 무슨 총을 쏘는 것처럼 자세를 취하더라고요. 긴장도 거의 안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별난 애구나 싶었죠. 딱히 주변 조원들하고도 말도 하지 않았고요.”
“…….”
“드래프트 장소는 오솔길이 기다랗게 나 있는 어떤 숲이었어요. 아, 영상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요. 숲 속에서는 커다란 들개, 늑대, 야생 원숭이… 별의별 짐승들이 튀어나왔죠.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 실전은 처음이라 다들 힘겨워했어요. 제대로 포지션을 잡고 역할 분담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죠. 진주만 빼고요.”
이진주의 소질은 정말로 특별했다. 나무줄기를 엮은 어설픈 스코프 같은 것을 만들어 스태프에 달아 놓고는 탄환처럼 충격파를 쏴대는데, 원래라면 넓은 반경으로 퍼져나가야 할 충격파 주문이 주먹만한 범위로 압축되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그건 영상수정을 감상한 노구덕도 굉장히 놀랐던 부분이었다. 드래프트 때부터 주문의 변이가 가능하다니… 검으로 굉장한 재능을 보인 김정인이 마법을 쓴다면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이진주… 어쩌면 Lv6의 마법 재능을 가진 헌터일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슬슬 스퀘어 세계에 떨어진지 2년 차. 이제는 노구덕도 Lv6이란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체감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가 ‘눈’으로 본 숱한 헌터들 중 어느 하나라도 Lv6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가? 김정인을 제외하면 전무했다. 그 대단한 십존, 서리여왕 하유라조차 Lv5에 머무르는데 그쳤으니까. 물론 김정인은 검술(C), 하유라는 만능(U)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고 보면 늑대왕이란 놈의 저널을 보지 못한 게 아쉽단 말이야.’
하지만 당시는 어쩔 수 없었다. 늑대왕이나 하유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는 상황에서, 수상한 낌새라도 보인다면… 최악의 경우 ‘눈’의 존재를 들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유라 때는 멋모르고 바로 ‘눈’을 사용했지만, 그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하유라는 당시 노구덕의 존재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렇잖아도 소피아에게 ‘눈’의 존재를 알린 후, 예민한 상대 앞에서는 절대 함부로 쓰지 말라는 충고를 들은 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요. 진주가 독보적으로 강하다는 걸 안 다른 녀석들이, 진주를 닦달하기 시작한 거죠. 진주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왜 정확하게 맞추지 않았느냐, 일부러 빗맞춘 건 아니냐… 별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으니까요. 그것도 사내새끼들이라고… 제가 나선 것도 가만히 보기 역겨웠기 때문이에요.”
이진주가 최후방에서 일행을 뒤따르게 된 것도 박지현의 제안이었다. 어차피 이진주는 마법사고,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원거리 저격을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안전을 확보한 곳에서 일행을 엄호하는 게 낫지 않냐는 주장이었다.
실제로는 짜증날 정도로 이진주를 쪼아대는 조원들의 행태를 참다못한 박지현이 그녀를 조원들에게서 떨어뜨릴 의도로 낸 고육책이었지만, 나름대로 타당한 논리를 갖추고 있어, 결국 그녀의 제안대로 이진주는 맨 끝에서 일행을 뒤따르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영상수정으로 그런 다툼은 보이지 않았는데……. 처음에 조금 삐거덕거리던 것 같기는 했지만요.”
“대부분 영상수정을 보신 분들은 진주 시점으로 보시니까요. 진주 대신 제가 욕을 들어먹은 건 당연히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죠.”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하긴, 시간이 넘쳐나지 않는 이상 누가 10명이나 되는 신인들의 영상수정을 다 돌려보겠는가.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나 싶었는데… 두 번째 사고가 터진 거죠. 들개 열 마리 정도의 습격을 막아낸 다음부터였나? 갑자기 진주의 엄호가 없어진 거예요. 뒤로 돌아가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더군요. 다른 놈들은 진주가 도망쳤다, 혼자 따라오게 두는 게 아니었다… 온갖 책임을 저한테 돌리더라고요. 기가 찼지만 별 수 있나요. 애는 없어졌고, 뒤로 돌리자고 한 게 저인데.”
당시의 짜증이 되살아났는지, 박지현의 팽팽한 이마에 옅은 주름이 새겨진 것이 보였다.
“진주의 엄호가 사라지니까 정말 힘들더군요. 아마 그 뒤로 세 명이 죽었을 거예요. 적들이 약할 때 차근차근 팀워크를 다졌어야 했는데, 진주에게만 의존하다보니 그게 너무 늦어버린 거죠.”
경이로운 신인이 속한 조 치고는 지나치게 사망자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원맨팀의 한계라고나 할까. 아니, 차라리 이진주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망자를 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그리고 뒷일은 아시다시피… 어찌어찌 보스까지 갔고, 제가 죽을 지경에 처했을 때 갑자기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난 진주가 실력을 발휘해서 절 구해줬답니다. 이래서 사람은 있을 때 잘해야 하나 봐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궁금한 건 그 뒷이야기입니다.”
“참, 성격이 급하시네. 잠깐 물 한 잔 정도는 괜찮죠?”
“예.”
쩝쩝 입맛을 다신 박지현은 유리컵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두어 모금 들이켰다.
“…보스는 처치했고, 우리는 시험에 합격해서 회장으로 이동됐죠. 진주는 정신을 잃은 채였고요. 그런데 이 새끼들, 기절한 애를 앞에 두고 또 개소리들을 지껄이더군요. 보스 막타를 노렸다느니,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 와서 나타났냐느니… 미친놈들, 진주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박지현은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이를 갈았다.
“하루 뒤에 진주가 정신을 차리고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 들개들이 습격했을 때 있죠? 그때 후미로 돌아간 녀석들이 있었나 봐요. 진주는 도망치면서 녀석들을 상대했고요. 그러다 겨우 놈들을 처치했을 때, 체력과 마력을 너무 소모해서 탈진해 버린거죠. 일행을 늦게 뒤따른 것도 바닥난 마력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였고요.”
들을수록 한심한 이야기였다. 노구덕은 문득 그 조원이라는 녀석들의 면상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마법사를 탈진하도록 막 굴릴 생각을 했을까? 마력 탈진이라는 걸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놈들만 모여 있었던 것일까?
그가 있던 조만 하더라도, 최나연, 하태경, 윤희지, 황기종 등의 주문 사용자가 있었고, 하태경의 판단 아래 극심한 탈진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주문을 아껴가며 시험을 진행했었다. 그에 비하면 박지현의 조는… 모든 게 엉망진창, 이진주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조였으리라.
이진주의 실수라면, 순진하게도 처음부터 자신의 실력을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드러내 보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여튼… 진주가 정신을 차리니까 승냥이 같은 녀석들이 온갖 험담을 해대더군요. 심지어 일부러 조원들이 죽기를 기다렸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인간도 있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인간, 시험 도중에 죽은 여자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봐요. 쌍으로 꼴값을 떨더니만…….”
종합해 보자면 이런 이야기였다.
마력을 회복하고 가까스로 일행을 뒤쫓아 간 이진주. 마침 조원들은 보스 멧돼지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최선을 다해 조원들을 도왔다. 그리고 자신을 돌봐 준 박지현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있는 대로 힘을 쥐어짜내어 보스를 처치했다…… 하지만 기껏 도와준 조원들은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하며 비난을 한다. 아마 주모자는 애인을 잃었다는 그 남자겠지.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 스펠 스나이퍼가 감수성이 여린 소녀라면, 충분히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법 했다.
“꽂히는 클럽이 없다고 했나요… 웃기는 소리예요. 아마 퇴짜 맞은 누군가가 홧김에 내뱉은 말이 그렇게 와전된 것일 테죠.”
박지현은 잠깐 뜸을 들인 뒤, 살짝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이번 일로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됐어요. 아시겠어요? 클럽의 위상이나 크기를 따지는 게 아니에요. 진주는 지금도 그 더러운 녀석들의 험담에 괴로워하고 있다고요. 정작 자신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어쩌면 그 애는 드래프트가 끝나고 홀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정말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박지현이 이진주 본인이 아닌 만큼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증언은 지금까지의 이진주의 행보와 아귀가 들어맞았다.
“곤란하군.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어떻게 하면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거야 그쪽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겠죠?”
무심코 내뱉은 임유진의 혼잣말에, 박지현은 입매를 비틀며 피식거리는 소리를 냈다. 마치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한 속마음이 엿보이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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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월병인 / 노구덕 부들부들..
[玲][琿] / 하하.. 아직 모를 일이죠~
벌레 / 너무 여자라는데 중점을 두신 것 아닙니까!
은신설야 / 벌레님은 예전부터 자주 보이신 분인데요 ㅎㅎ
북치네 / 감사합니다!
호야[虎夜] / 잘생긴 남자?
zunny / 장애물 정도에서 그칠지 스틸을 할 지는..
불타는고기 / 김정인과 뜬금없는 원수지간?!
임대가르시아 / 헉.. 죄송합니다 ㅠㅠ 모데카이저 얘기가 나오길래 이전 호야님 댓글하고 착각했나 봅니다 .. 김정인은 어차피 조져야할 상대!
이벡러그 / 아직 앞일은 모르는거니 천천히 지켜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