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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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의뢰
쿠우웅!
이진주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그건… 저, 저는 라이오넬에…….”
“이게 보자보자 하니깐! 야!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러면서 무슨 염치로 부탁을 하는 건데? 우리가 네가 하라면 해야 하는 쫄따구야? 어?! 어부부붑…!”
소파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던 신소율이 기어코 크게 한방 터뜨려 버렸다. 처음부터 이진주를 좋게 보지 않았던 만큼, 그녀의 부탁이 무척이나 아니꼽게 다가왔던 모양.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여긴 신인 헌터와 예의를 갖춰 협상을 하는 장소다. 그런 장소에서 고성을 지르며 날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구덕은 신소율의 입을 막고 조용히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임유진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에 임유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분들도 잠깐만… 나가주시겠습니까.”
“네에~?”
“자자, 실렌 헌터, 어차피 여기 앉아서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밖에서 뭐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리지요.”
가이탄이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실렌의 소매를 잡아 이끌며 밖으로 나가자, 방 안에는 노구덕과 이진주, 단 둘만 남게 되었다.
“…….”
신소율에게 따끔한 일침을 당한 이진주는 절로 동정심이 생길 정도로 크게 풀이 죽어 있었다. 동물로 비유하자면 비에 흠뻑 젖어 모든 기력을 잃어버린 새끼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방금 전 신소율 헌터의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이에 비해 참을성이 살짝 부족한 녀석이거든요.”
“아뇨… 그 분 말씀이 옳아요… 제가 나빴지요….”
“박지현 헌터를 위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던 거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정말 드릴 게 없는 걸요…….”
그건 당연하다. 이제 갓 드래프트를 통과한 헌터가 가진 게 뭐가 있겠는가. 살짝 고개를 든 이진주는 이내 뭔가 결심한 듯, 야무지게 다문 입술을 열었다.
“…제가, 아이리스에 가겠어요. 그걸로… 지현 언니를 구할 수 있다면요.”
“허어….”
그녀가 이렇게까지 결연하게 나설 줄은 몰랐던 노구덕은 내심 감탄했다. 선망하던 라이오넬과 김정인을 저버릴 정도라니… 적어도 그녀가 박지현을 위하는 마음은 진짜였다.
손쉽게 스펠 스나이퍼를 영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노구덕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네…? 마, 마음이 바뀌신 건가요…?”
노구덕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문득, 사람을 너무 쉽게쉽게 믿어버려 말 한마디에 갈팡질팡하는 이 아가씨를 보고 있자니 장난기가 샘솟았다.
“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리스에 오는 것 말고… 그 몸으로 대가를 치르는 건 어떻습니까?”
“모, 몸이라뇨……?”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지.”
갑작스런 반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내뺀 이진주는 음흉하게 변한 노구덕의 눈과 시선을 마주치자, 고양이를 앞에 둔 생쥐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으…….”
짧게 신음을 내뱉은 이진주는 이윽고,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저, 저로 괜찮으시다면… 우으…….”
장난으로 던진 요구가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줄 몰랐던 노구덕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한번쯤 거절하거나 화라도 내야 정상 아냐?’
“이진주 헌터, 잠깐.”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노구덕이 미처 상황을 수습하기도 전, 이진주는 테이블에 이마를 깊게 처박은 채, 어깨를 흐물흐물 들썩거리며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허어엉… 으어어어엉…….”
“…휴, 이진주 헌터, 뭔가 오해가…….”
졸지에 애를 울려버린 못된 어른이 된 노구덕은 되도 않는 장난을 친 자신을 탓하며 그녀를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쾅!
“그, 그건 절대 안돼요! 나, 나이가! 나이가……!”
“유진아, 진정해! 나이가 문제가 아니잖아!”
“아저씨! 저딴 어린애의 어디가 좋다는 거예요! 이 로리타! 변태! 저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난입한 세 여인을 본 노구덕은 조용히 얼굴을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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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이 사력을 다한 변명으로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버린 상황을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참내, 농담할 일이 따로 있지. 밖에 아내들을 세워두고 그런 조크를 해요? 어이가 없어서.”
“미안하다.”
“맞아요. 얼른 유진이한테 사과하세요.”
“유진아… 미안하다.”
“…저는 괜찮아요. 다른 뜻이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겉보기엔 별로 괜찮아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는 게 어딘가. 노구덕은 다시 한번 진심어린 사죄를 담아 세 여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결단코 다른 뜻은 없었어. 애가 너무 굳어 있는 것 같아서 정말로 그냥 가볍게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을 뿐이야.”
“뭐… 믿어 줄게요. 아무리 발기찬 오크라지만 아저씨가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닐 테니까.”
어째 신소율의 말투가 점점 선머슴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것도 나타샤의 영향일까?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노구덕은 나머지 두 사람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자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겨우 농담 한마디에 한 시간을 넘도록 시달리다니… 사람은 이래서 평소 행동거지를 잘 해야 하나 보다.
그때, 복귀하는 이진주와 동행시킨 가이탄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등장했다.
“하하하… 오너, 그러게 평소 처신을 잘 하셨어야지요. 오죽하면 부인 분들이 저리 닦달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진주 헌터는 무사히 복귀했습니까?”
“예. 담당 스카우터에게 확실히 인도했습니다.”
협상을 하는 방에서 담당 스카우터가 대기하고 있는 회장까지 가는데 무슨 일이 생기겠냐마는, 이진주란 캐릭터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워낙 불안불안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가이탄까지 붙인 노구덕이었다. 더욱이 그의 쓸데없는 장난질로 한바탕 눈물샘을 쏙 비운 직후 아니던가. 신중을 기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저는 그 애 부탁 들어주는 거 별로예요.”
이진주의 얘기가 나오자, 금방 싫은 내색을 하는 신소율이다. 아무래도 이진주가 단단히 밉보인 모양이었다.
“왜? 대가를 안 받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빚으로 얹어 둔 것뿐이잖아요. 나중에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받겠다는 확증도 없고… 솔직히 그 애가 그냥 쌩까면 어떡하려고요?”
신소율이 괜히 볼멘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노구덕은 이진주에게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나중에 그녀 또한 노구덕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는 것으로 거래를 끝마쳤다. 이진주를 좋게 보지 않는 그녀로서는 이런 두루뭉술한 형태의 계약이 마음에 차지 않을 수밖에.
“쌩까다니… 녀석, 말투하고는.”
“지금 말투가 문제예요?”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장래가 촉망되는 녀석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 두는 건 생각보다 나쁜 게 아니야. 장기 투자라고 생각해.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값진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거야 걔가 순순히 약속을 지킬 때의 일이죠.”
“너도 옆에서 들었잖냐. 진주는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야. 단지 세상 경험이 너무 없어서 물정을 모를 뿐이지.”
신소율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댓 발 내밀면서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신소율을 납득시킨 노구덕은 다른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다른 인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뒤늦게 합류한 가이탄이 손을 들었다.
“오너, 그러면 그, 박지현 헌터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박지현 헌터는 어차피 차후에 작업을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유진이가 추천한 인재를 눈 뜨고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이진주 헌터의 의뢰를 받은 건 겸사겸사라고 할까요.”
“작업이라니… 어감이 불순해.”
옆에서 다시 툴툴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노구덕은 무덤덤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는 이번 드래프트가 끝나고 곧장 마녀회의 유적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박지현 헌터가 목적지를 생뚱맞은 곳으로 잡게 되면 우리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지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 박지현 헌터를 만나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제안이요?”
“예. 유적 탐사에 동행을 권할 생각입니다. 동행인으로 참가해서 경험도 쌓고, 실제 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배울 수 있고… 그녀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기회일 테지요. 영입을 따로 조건으로 걸지 않는다면, 박지현 헌터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일행들은 대체로 노구덕의 계획에 찬동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임유진이 직접 추천했다는 대목이 가이탄이나 실렌의 마음을 움직인 듯했다.
“박지현 헌터는 언제쯤 만날 생각이세요?”
“마침 오늘이 드래프트 마지막 날이니까… 저녁이 좋겠군. 내가 직접 그쪽 스카우터에게 얘기를 할게. 짧은 전언이라면 별 문제 없을 거야.”
“오너, 이럴 거면 차라리 이진주 헌터를 영입하는 게 낫지 않았어요? 아까 들어보니까 그런 말도 오간 것 같던데. 그편이 김정인 헌터도 물 먹일 수 있고… 좋잖아요?”
나가 있으라고 보내놨더니, 밖에서 정말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몇몇 일행들의 머리가 끄덕여지는 걸 보니, 다들 그걸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노구덕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녀석을 물 먹이는 건 좋지만,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기껏 새 삶을 살아보려는 애를 희생시킬 수야 없지. 그리고, 별 의욕도 없는 애를 영입해 봤자 그 재능을 얼마나 살릴 수 있겠어? 쓸데없는 짓이야.”
“호오, 오너… 그렇게 안봤는데, 의외로 신사적인 면도 있네요.”
“그럼 지금부터라도 그 이상한 시선을 고쳐 놓으면 되겠군.”
제법 대범하게 말은 했지만, 이진주가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정인이 놈이 이것까지 예상을 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김정인이 괜히 이진주를 자신한테 보냈을 리 없을 테니까. 노구덕이라면, 이미 마음을 정해 놓은 이진주를 강제로 영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생각하면 정말 열 받지만… 그래도 이게 맞는 거다. 그리고 이쪽도 잘하면 박지현을 영입할 수 있고…….’
애써 자위를 해 보지만, 그래도 김정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의 ‘기대하겠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좀처럼 귓속에서 떠나지 않고 메아리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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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전의 노구덕만큼이나 심란한 사람이 있다. 느닷없이 아이리스로부터 탐사 동행 제의를 받은 박지현이다.
“저기, 굉장히 감사한데요… 저는 혼자서…….”
“아, 수행에 뜻을 둔 박지현 헌터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래도 탐사의 기본 정도는 알아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헌터가 돌아다녀봤자… 솔직히 민폐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박지현 헌터가 원하는 수행은 그런 겁니까? 경험을 쌓는답시고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것?”
“아… 아뇨. 그건 아니에요.”
“지구에 있을 때도 가끔 보곤 했습니다. 무전여행이 벼슬이라도 되는 양, 정에 기대어 식사와 잠자리를 요구하는 젊은이들… 박지현 헌터가 그런 사람들과 동류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그, 그게… 그래도 조건이 너무 좋아서요. 부담이 되니까…….”
“전도유망한 헌터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당장 아이리스에 오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클럽에 몸 담을 일이 생긴다면 우선적으로 아이리스를 찾아주십사 하는 겁니다. 박지현 헌터에게는 부담스러운 제안일지도 모르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그저 완성된 파티에 한 사람이 덤으로 참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별로 큰 부담은 아니니, 뭣하면 짐꾼역으로 쓴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난 협상이었다. 조금 전 있었던 만남을 떠올린 그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느꼈던 그대로, 마치 노구덕의 손 위에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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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진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지구에서 벙어리 히키였던지라 애가 너무 순진한 것뿐입니다.. 천연…
아직은 구더기가 착하죠? 곧 있으면… 휴.. 거대한 시련이..
호야[虎夜] / 동부지구는 라이오넬의 앞마당이지요
장마와방 / 그러다 임플란트 하셔야 합니다.. 조심하세요
코카콜라중독 / 그렇지요 결국 악연이 될 운명이었을 뿐
카시에 / 태클을 거는 듯했지만 결국 순리대로..
은신설야 / 넵 감사합니당
월병인 / 진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ㅠㅠ
†아마테라스† /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북치네 / 감사합니다!
그눈건 / 외쳐! 김정인 개xx!
개런티 / 쿠폰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모든 편마다 리리플을 달아드렸는데, 요새는 빈도수가 꽤 줄었어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콜마 / 아직 우리 구더기는 착합니다
우낄푸핫 / 소피아 츄릅츄릅이라.. 이후 에피소드는 아마 소피아 에피소드가 될 것 같습니다
향향공주 / 진주는 뭣도 모르는 애지요..
오덕군자 / 우리 진주 ㅠㅠ
슈퍼테크닉 / 하지만 구더기는 정정당당합니다. 아직까지는요..
hohokoya1 / 항상 감사합니다!
벌레 / ㅋㅋㅋ if 외전은 글쎄요.. 나중에 시가날때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가식적썩소 / 김정인이야 이제 워낙 강해져서, 어지간한 게 아니면 시련이라 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깊고깊은… / 그러면 구더기 자살할듯…
Ulpius / 공감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감성팔이일 뿐이죠…
Tantania / 그렇지요. 진주 입장에서는 또 절박한지라..
MrX / 흠 저 멤버에서 소피아가 빠졌군요. 혹시 일부러?
임대가르시아 / 항상 감사합니다! 진주는.. 다 주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