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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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밀회(密會)
52# 밀회(密會)
칸다무어(Kanda moor)는 동부의 주도, 에덴의 근방에 붙어 있는 대표적인 교역도시다. 옛날에는 칸다(Kanda)라는 귀한 약초의 자생지로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약초는 온데간데없고 약초 교역으로 발달한 도로와 시설 등의 인프라로 새로이 발돋움한 도시였다.
동부의 여러 도시들을 연결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먹고 사는 도시인만큼, 칸다무어는 교역을 위해 다양한 상품들을 짊어지고 온 상인들은 물론이고, 각 지역 특산품을 상시 취급하는 상설시장도 크게 들어서있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런 시장에는 빠질 수 없는 상품이 있다. 바로 노예. 특히 칸다무어는 2, 3일 거리에 ‘거울의 숲’이라 불리는 대삼림을 끼고 있어, 그곳에 사는 수인(獸人)과 엘프 등의 유사인종들이 노예로 팔려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말하자면 지역 특산품인 셈.
“그런데 요새는 영 불경기란 말이지.”
칸다무어에서 거의 십년 째 노예상을 운영하고 있는 랄로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적거렸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물이 별로 없으니… 원. 옛날처럼 인간사냥꾼 녀석들이 득실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의 투덜거림에는 근심이 깊게 배어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불경기 탓이다.
사람을 상품처럼 사고 파는 게 노예장사다. 말만 통하면 뭐든지 시킬 수 있는 게 노예이니만큼, 언제나 수요는 많았다. 여자는 성노, 남자는 일꾼… 굳이 이런 식으로 압축하지 않아도, 여기저기 찾아보면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언제나 노예를 선호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공급이다. 요새는 매물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유괴해서 노예로 팔 수도 없는 것이, 일부 암상 녀석들처럼 인신매매를 하다 걸리는 날에는 일족이 참형으로 다스려진다. 특히, 몇 다리 건너 알고 지내던 노예상 일당이 거울의 숲의 엘프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패가망신하여 광장에 목이 걸린 이후로는, 농담으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녀석들조차 사라졌다.
이제는 낯짝조차 희미해진 그 일당의 얼굴을 떠올린 랄로는 크게 콧바람 소리를 냈다.
“멍청한 놈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그렇지, 십존의 영역에 발을 들이나 그래?”
사실, 요 몇 년간 계속된 불경기는 거울의 숲을 권역으로 삼은 ‘십존’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사정이 어려워 자기 몸을 팔거나, 일족에서 죄를 지은 자들을 노예로 넘기는 엘프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이 ‘십존’이 등장한 이후로는 그 빈도수가 눈에 띌 정도로 확 줄어버렸다. 공개적으로 어떤 선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내부에서 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망할, 지가 십존이면 십존이지, 왜 남의 장사에 찬물을 뿌리는 거야?”
“십존…? 십존이 무슨 행패라도 부렸나?”
“어이쿠!”
넋 놓고 중얼거리던 랄로는 카운터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길! 요 입이 방정이지! 드, 들었을까?’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듣지 않았으면 십존 어쩌구하며 묻지도 않았을 터, 랄로는 상대방이 요 근래 칸다무어 주위를 돌아다닌다는 십존의 밀정이 아니기 만을 바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헤헤… 그게 말입지요, 근처에 행패를 부리는 건달패중에 이름이 김십존이라는 놈이 있어서… 아휴, 말도 마십시오. 그놈이 얼마나 악질이냐면…….”
“푸훗!”
문득 사내의 옆에서 숨을 참는 듯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되도 않는 변명을 지껄이던 랄로는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슬쩍, 곁눈질로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 어헉? 총수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이군. 랄로.”
남자의 정체를 깨달은 랄로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불쑥 점포를 찾은 거한은 그가 속한 노예상조직의 총수를 역임하고 있는 사내였다. 듣기론 스퀘어 전역에 백 개가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다던가.
“후와아… 총수? 뭔가 어마어마한 느낌이네. 그게 오너 직함이에요?”
“그래. 실제 일은 소피아가 거의 다 하지만.”
“이거 하랴, 저거 하랴… 소피아 씨도 참 고생이 많네요. 나라면 머리가 터져버릴 텐데.”
“대단한 녀석이지.”
이상의 대화를 미루어보면 알 수 있듯, 사내의 정체는 노구덕이었다. 옆에서 쫑알대는 여자는 실렌. 두 사람이 다른 이들을 놔두고 노구덕 아래에 있는 점포에 방문한 것은 모종의 이유 때문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랄로의 점포는 공식적으로 노구덕의(이전에는 소피아가 운영했던) 노예상 조직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로, 그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일종의 ‘직영점’이라 할 수 있었다. ‘올빼미’ 최형래의 노예상처럼 음지에서 활동하는 정보조직과는 별개의 세력인 셈.
“늑대왕이 무슨 짓이라도 했나?”
“아, 그게 아니라… 거울의 숲에 늑대왕이 자리잡은 뒤로 노예 매물이 확 줄어버려서… 요새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이 듭니다.”
랄로의 하소연을 들은 노구덕은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거울의 숲은 수인과 엘프의 땅. 라이칸스로프인 늑대왕이 권역을 선포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장사에 차질이 생긴다면 생각을 달리 해봐야 할 문제였다.
‘늑대왕… 이놈도 참 가지가지 하는군.’
혹시 거울의 숲의 노예들을 독점하려는 것이 아닐까? 수인들은 제쳐두고, 엘프들의 미모야 정평이 나 있으니… 호색한인 늑대왕이라면 영 가능성이 없는 소리만도 아니었다. 노구덕은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소피아와 상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임시방편으로 지원금을 보내도록 하지.”
“어이쿠! 그래주신다면야 저야 감읍, 또 감읍할 따름입니다!”
“겉치레는 그만하면 됐고, 알아보라는 건 어떻게 됐지?”
“아! 그건 별실에 준비해 놨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노구덕은 가볍게 손을 들어, 갑자기 열성을 다해 접대에 임하려는 랄로를 제지했다.
“됐네. 가는 길은 알고 있으니까. 자네는 여기서 손님을 맞아야지.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예… 그래야지요….”
시무룩하게 답하던 랄로는 노구덕의 옆에 달라붙어 있는 실렌을 보더니 양 손바닥을 비비며 다시금 되도 않는 아부를 떨었다.
“헤헤. 그런데 사모님이 참 미인이십니다.”
“어머, 정말요?”
“정말이고 말고요! 제 직종을 아시잖습니까. 제 안목을 걸고 말씀드리건대, 여태껏 많은 미녀들을 봐 왔지만, 사모님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결단코 없었습니다!”
“아이, 좋아라. 호호호!”
한숨을 쉰 노구덕은 주거니 받거니 잘도 노는 실렌과 랄로 사이에 끼어들었다.
“랄로. 우린 이만 가도록 하지. 별실 열쇠는 따로 없나?”
“예! 여기 있습니다!”
랄로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은 노구덕은 히죽히죽 웃고 있는 실렌을 데리고 점포 안, 깊숙한 곳에 마련되어 있는 별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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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이용해 별실 문을 따고 들어온 노구덕은 눈앞의 테이블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더니, 뜬금없이 주문을 했다.
“해 봐.”
“네?”
“유진이한테 들었어. 언령 능력이 더 발전했다면서? 아무거나 한번 보여줘.”
그의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실렌은 이내 눈매를 초승달처럼 곱게 말더니, 살살 눈웃음을 쳤다.
“고작 그거 보겠다고 여기 데리고 온 거예요? 난 뭔가 찐~한 걸 기대했는데.”
“좀만 지나면 앙앙 우는 게 말은 잘한다. 저번에는 어땠더라… 엉덩이로…….”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괜한 말을 꺼내서 본전도 찾지 못한 실렌은 크게 한숨을 지으며 양 손을 들었다. 어째 부모님 앞에서 꼬맹이가 재롱잔치를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지만, 뭐 어떠랴. 그보다 더한 것도 경험한 마당에.
“어둠을 밝히는 인도의 빛. 라이트(Light)!”
짧은 영창이 끝나자 그녀의 손이 반딧불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었다. 통상적인 횃불보다는 조금 약한 밝기를 가진 마법의 빛. 탐사를 할 때에 횃불 대용으로 많이 쓰이는 범용적인 주문이었다.
별로 놀랄 것도 없는 주문이었기에, 마법의 빛을 바라보는 노구덕의 얼굴은 일절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겨우 이게 끝이야?’라는 느낌의 실망감 정도일까.
하지만, 아직 실렌의 주문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움직여라. 더 환하게, 더 크게.”
주문이랄 것도 없는 조악한 명령. 그러나 그 ‘말’에 담긴 힘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의 손에 덧씌워진 마법의 빛이, 그 손을 떠나 민들레꽃처럼 동그란 형태로 허공에 떠오른 것이다. 이전보다 더욱 강한 광채를 머금고서 두둥실 떠다니는 빛의 덩어리는 꼭 커다란 솜사탕을 보는 것 같았다.
기존의 실렌이 언령을 쓰던 방식은 주로 ‘영창의 축소’에 있었다. 예컨대, 치유 주문을 쓴다면 긴 장문의 주문을 읊지 않고 언령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솔직히 말해, 언령의 올바른 사용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랬던 실렌이, 기초단계이긴 해도 그의 앞에서 신성주문과 언령을 조합, 발현시킨 것이다. 눈앞의 이 구체는 그 결실이었다.
“…호오.”
노구덕은 무심결에 손을 뻗어 구체를 어루만지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손은 그대로 빛을 통과해버렸다. 실체가 없는 빛을 이리저리 쳐다보던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등불보다 훨씬 쓸만하겠어.”
“…그건 칭찬인가요?”
“그럼, 칭찬이지. 이것 말고 다른 건?”
“원리는 제 염원을 주문에 스며들게 하는 거예요. 따라서 장비나 신체에도 일시적인 신성주문을 거는 게 가능해요. 땅에 걸면 회복지대를 만들 수 있고… 오너에게 응용하자면 특정 부위의 재생력을 일정 시간 동안 극대화시킬 수 있죠.”
그녀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머무르자, 노구덕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쪽 재생력은 그렇잖아도 차고 넘쳐. 그런데 설마 이 솜사탕처럼 이것(?)도 멋대로 둥실둥실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호홋.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이 라이트 주문의 경우엔 제가 만들어낸, 자유의지가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제 임의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오너의 그 물건은 제 의지가 범접할 수 없어요. 언령능력이 더 강해진다면 모르겠지만.”
“더 강해져도 그런 쪽에는 쓰지 마라.”
의미심장한 충고를 남긴 노구덕은 색다른 주문을 했다.
“그거 말인데… 디바인 라이트(Divine light)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지?”
디바인 라이트. 일명 신성한 빛. 어느 교단에나 있는 파이어볼 수준의 기초 주문이지만, 저급 언데드를 퇴치하는 데에는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주문이다.
“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가능할 것 같아요. …바로 실전에 쓰시게요? 설마, 저보고 전면에서 디바인 라이트로 길을 밝히라는…?”
“그런 멍청한 짓은 안 해. 디바인 라이트를 언령으로 다룰 수 있다면, 박지현에게 집중해 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형이니까.”
한마디로, 언데드가 많이 나오는 곳이니 초짜인 박지현을 디바인 라이트로 보호해달라는 부탁이다. 확실히 공격용의 디바인 라이트를 온몸에 두를 수 있다면,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에는 그만한 갑옷이 없을 터.
“그러면 디바인 아머(Divine armor)가 되겠네요. 그런데… 보호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다른 좋은 주문도 많은데, 왜 하필 디바인 라이트예요? 예를 들면 홀리 아머 라든가, 신의 방패라든가…. 대(對) 언데드 주문이라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공격과 보호를 겸할 수 있으니까. 박지현 성미에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
“흐음, 손맛을 보게 해줘서, 영입 미끼를 던지실 생각?”
“그것도 있긴 하지. 하지만 이건 그냥 조미료에 불과해. 박지현은 반드시 아이리스에 오게 되어 있어.”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셧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파트를 두 편으로 나누다보니 좀 애매한 부분에서 끊겼네요…
유키노시타유키 / 개ㅆ…
장마와방 / 어멋? 무슨 숫자 말씀이시죠?
월병인 / 동감합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사람 입장따라 보면 확연히 다르게 보일 수 있죠. 다만 이진주가 박지현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본문에 나와있듯 노구덕이 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호전적인 성격으로 일을 그르칠 수가 있기 때문에… 음, 이건 이진주 입장에서는 좀 딜레마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가식적썩소 / 김정인은 대놓고 여자가 모이는 타입이라, 윤희지 이진주에 이어 더 만들지도… 모릅니다.
북치네 / 감사합니다!
asd메이지 / 둘다 세상 모르는 어린애죠. 박지현은 너무 저돌적인 뇌근육이고, 이진주야 뭐..
우낄푸핫 / 소피아는 오늘도 열심히 아이리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신설야 / 이노무 외모지상주의가 참 문제예요 정말
임대가르시아 / 감사합니다!
호야[虎夜] / 가식적썩소님한테 안걸리고 잘 넘어갔다 싶었는데… 여기서 걸리고 마네요.. 오타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주야 뭐, 차후 어찌될지 이미 정해놓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차차 지켜보도록 하죠!
l가을하늘l / 이 정도로 암이 생기시면 아니됩니다 ㅠㅠ
콜마 / 모티브를 어디서 따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러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붙여 놓은게 이렇게 됐네요… ㅎㅎ
오덕군자 / 구더기가 아직 독기가 부족합니다. 배떄지가 불렀죠. 하지만 그 말로를 아는 작가 입장으로서는 지금이라도 여유를 누리게 놔두고 싶네요..
hohokoya1 / 감사합니다!
벌레 / 야덕..? 떡덕?
四兩發千斤 / 위선이라기 보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는 거라 보시면 될듯.
thelastshelter / 의욕은 가득한데 방법을 모르는.. 아직은 답답한 유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