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08)
0208 / 0777 ———————————————-
53#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53#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저… 언니…?”
“네?”
생소한 호칭에 놀란 임유진이 고개를 돌리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박지현이 보였다.
“안되나요? 임유진 씨나 임유진 헌터는 너무 호칭이 길어서요. 딱딱하기도 하고….”
“아, 괜찮아요. 박지현 헌터가 먼저 그렇게 불러준다면 저는 환영이에요.”
“고마워요. 언니도 그냥 지현이라고 불러주세요. 말도 놓으시고요. 연배도 많으신데.”
“…….”
미소 짓고 있는 임유진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방금 전의 결례를 알 리가 없는 박지현은 무신경하게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그 옷차림은 뭐죠? 아까부터 남정네들의 눈길이 너무 쏠려서… 솔직히 좀 불편한데요.”
“…음, 미안해. 이건…….”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임유진은 어색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 그녀는 여관의 웨이트리스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가슴어림을 흰 천으로 덧댄 상의는 대담하게도 가슴 윗선의 계곡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타이트하게 조인 허리띠 아래의 다소 통이 큰 치마는 허벅지의 절반만을 가릴 정도로 길이가 짧았다. 말인즉슨, 엉큼한 바람이 한번 불기라도 하면, 뭇 남자들이 눈호강을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치마란 소리다.
임유진의 성격에 이런 복장이 체질에 맞을 리 없다. 치마 아랫단을 꾹 잡고 있는 두 손도 그렇고, 아래로 드러난 맨살이 어지간히 어색한지 몇 번이고 다리를 비비적거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임유진이 이런 파렴치한(?) 복장을 입게 된 것일까. 그것은 순전히 실렌과 노구덕의 검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 이 아니라, 어디선가 박지현과 임유진을 주시하고 있을 배성길 일당을 방심시키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박지현에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임유진은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이… 이 근처에 클럽에서 운영하는 가게가 있거든. 어제도 거기서 숙박했고. 그런데 오늘 웨이트리스 한 명이 탈이 나서 못 나오게 되었다나봐. 그래서 잠깐 일손을 돕느라…….”
“오오. 언니 같은 미인이 웨이트리스를 한다면 매상이 쭉쭉 올라가겠네요. 그래도 옷은 갈아입고 오시지.”
“그, 그게 일에 워낙 열중하다보니… 옷을 갈아입으면 늦을 것 같아서… 미안.”
임유진이 발갛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박지현은 난처한 기색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는 괜찮아요. 저기 불알달린 것들이 더러운 눈깔로 쳐다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
그녀의 목소리는 주변에도 다 들릴 만큼 컸다. 그러자 멈춰 서서 임유진과 박지현의 미모를 감상하던 몇몇 사내들이 낯짝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지만, 박지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창대를 훙훙 돌려댔다. 불만 있으면 덤벼보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덕분에 곤란에 빠진 것은 임유진이었다. 박지현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배성길 일당을 만나기도 전에 괜한 이들과 시비가 붙을 것 같았다.
“지현아, 도시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안 돼.”
“창을 돌리는 것도 소란이에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란 것, 알잖니.”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올린 임유진이 짐짓 엄한 눈초리를 보내자, 박지현은 마지못해 창대를 돌리는 것을 멈추었다.
“완전히 싸움닭 같은 여자잖아?”
“얼굴은 봐줄만 한데… 쯧, 저래서는 제명에 못 죽지.”
멀찍이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임유진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호전적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박지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적당한 투쟁심은 실력향상에 큰 밑거름이 되지만, 그것이 만용으로 이어진다면 목숨을 앗아가게 마련.
‘아마 일 대 일로 패배를 경험한 적이 없는 거겠지.’
저건 자만심이라고 봐도 된다. 임유진은 가까운 시일 내에 박지현의 콧대를 한번 꺾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이번 탐사에는 그 역할에 딱 알맞은 사람이 있었다.
‘연상인 나보다는 비슷한 연배인 소율이가 제격이야.’
이제 2년차 헌터인 신소율의 실력은 드래프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취월장했다. 본래 가지고 있던 바탕도 나쁘지 않은데다가, 임유진과 나타샤라는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이었다. 암살자치고는 성미가 조금 급하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박지현과 승부를 벌인다면 오히려 그 점이 강점으로 작용할지도 몰랐다.
암살자에게 전면전으로 패한다면 그만한 수치가 없을 테니까.
‘소율이는 잘 하고 있으려나… 지금쯤 그 사람들에게 붙었을 텐데…….’
“언니, 약속 장소가 어디라고 했죠?”
잠깐 딴생각을 하던 임유진은 옆에서 들려오는 박지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 이쪽이야.”
++++++++++++++++++++++++++++++
임유진과 박지현이 뭇 사내들의 발을 본의 아니게 멈춰 세우며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그녀들의 뒤를 쫓는 은밀한 시선이 있었다. 박지현이 칸다무어에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그 뒤를 밟으며 기회를 엿보던 배성길 일당이었다.
“히야… 죽이는데.”
“저 웨이트리스?”
“그래. 저 가슴 좀 보라지. 저기에 코 박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는 저 엉덩이 한번만 만져봤으면…….”
임유진의 황금 비율 몸매에 넋이 나간 이종명과 한광훈은 노구덕이 들었으면 눈알이 뒤집어질 음탕한 농을 주고받았다.
임유진에게 눈독을 들이던 건 조금 뒤에 있던 배성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살랑거리는 엉덩이를 스산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그는 독사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말했다.
“걱정 마라. 저년도 질리도록 맛보게 해 줄 테니.”
“저, 정말입니까, 형님?”
“알고 있겠지만 처음은 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숫처녀도 아닐 텐데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죠.”
그러자 한 구석에서 스태프를 꼬나들고 있던 마법사 김태석이 신중론을 제기했다.
“형님, 저 여자는 대체 누굴까요? 거의 한 시간째 박지현에게 붙어 있는데…….”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여관 웨이트리스를 길잡이 삼아 잠깐 빌린 거겠지. 여기가 좀 넓으냐.”
이종명과 한광훈은 배성길의 의견에 동조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그 두 사람은 임유진의 정체가 뭐든 간에 일단 무조건 잡고 보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세심한 성격인 김태석은 어쩐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시 저 여자가 알바라도 뛰는 헌터라면 어떡하죠? 솔직히 웨이트리스를 하기에는 외모가 너무 예쁘지 않습니까.”
“이봐, 김태석이. 사내새끼가 무슨 그리 겁이 많아? 정 불안하면 빠지든가. 차례가 빨리 돌면 우리야 좋지.”
“맞아. 나중에 안 준다고 삐치지나 말라고.”
“뭐, 뭐라고…!”
자고로 남자란 동물은 겁쟁이란 말에 민감한 법이다. 두 사람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김태석의 말상인 얼굴이 한순간 시커먼 분노로 물들었다.
“그만, 그만.”
일행이 삐걱댈 기미를 보이자, 배성길은 혀를 차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태석이 말도 일리는 있어. 웨이트리스라고 하기엔 너무 고운 여자야. 의심할 만하지.”
우선 김태석의 의견을 두둔하여 그의 체면을 세워준 배성길은 곧바로 그를 설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태석아, 그건 어디까지나 저 여자가 웨이트리스일 때의 얘기다. 어쩌면 얼굴로 먹고 사는 창녀일 수도 있지. 아니, 그편이 확률이 높아. 그리고 말이야, 만에 하나 저 여자가 헌터라도 별 상관은 없다고 본다. 능력이 부족해 웨이트리스나 콜걸 일을 뛰는 여자라면 실력이야 뻔하지. 외모와 실력이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그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김태석은 마지못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달릴 거 다 달린 건장한 남자다. 임유진과 박지현에게 음심이 동한 건 마찬가지였다. 헌터라도 여자는 여자.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이 순식간에 뇌리를 덧칠했다. 초짜 헌터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전형적 고정관념이었다.
“…듣고 보니 형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자자, 기분 풀고. 종명이나 광훈이도 그래. 즐기기 전에 우리끼리 다퉈서야 쓰겠어?”
심장에 독을 품은 인간이었지만, 이럴 때의 배성길은 영락없이 인자한 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래. 그럼 된 거야. 남자들끼리 뒤끝은 남기지 말자고. 서운한 거 있거들랑 오늘 저 계집들을 품으면서 다 털어버리자.”
“형님, 저것들… 성문 방향으로 가는데… 도시 밖으로 나갈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다시 시선을 돌려보니, 과연 동쪽 성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두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좋아… 토끼들이 제 발로 둥지를 나가는군. 사냥을 시작해 볼까.”
들개가 된 사내들은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쥔 채, 음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빛냈다.
++++++++++++++++++++++++++++++
도시 밖으로 나온 임유진과 박지현은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쉼 없이 걷기를 반복하자, 묵묵히 임유진의 뒤를 따르던 박지현도 참을성이 바닥나버렸다.
“언니,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죠?”
“으음, 앞으로 조금만 가면 될 것 같아.”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레파토리인데… 삼십분, 한 시간 뒤에도 그 말 또 하시는 거 아니죠? 설마… 말로만 듣던 유인납치?”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니! 핫!”
펄쩍 뛰면서까지 정색을 하던 임유진은 치마 아랫단이 바람에 펄럭이자 황급히 손을 내렸다. 그 아슬아슬한 광경을 지켜보던 박지현은 쿡쿡 웃으며 가볍게 도리질을 했다. 이런 여자가 납치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농담이에요. 계속 걷다보니 너무 지루해져서 장난 한번 해봤어요. 마음 쓰지 마세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조금만 걸으면 돼.”
“네이, 네이.”
어째 박지현에게는 연장자로서의 권위(?)가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화를 내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임유진은 그저 보이지 않게 한숨을 푹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기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내내 옷차림에만 신경을 쓰느라 박지현을 챙길 겨를이 없기도 했고, 많이 걸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이제까지 불평불만 없이 따라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조금만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 했나봐.”
“아뇨. 뭐, 그럴 수 있죠. 그나저나 캠프라니… 기대되는걸요.”
박지현이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그녀가 일행들이 먼저 출발해 도시 근방에 캠프를 꾸렸다고 둘러댔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허점이 많은 시나리오였지만, 박지현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전적으로 임유진을 신뢰하는 것인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어쨌거나 타겟이 속이기 쉽다는 건 이쪽에는 이점인지라, 임유진은 한결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슬슬 때가 된 것 같은데…….’
임유진은 힐끗, 드러나지 않게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방금 전까지 지나온 길. 양 사이드로 수풀이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도로였다.
인적이 드문 가도, 사방에 깔려 있는 은엄폐하기 좋은 초목, 그 사이를 정처 없이 방황하는 아리따운 두 명의 여인. 굶주린 들개 떼가 습격하기 딱 좋은 상황 아니던가. 그런데 도시를 떠날 때부터 꼬리에 들러붙은 녀석들은 도통 달려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유진의 감각은 수풀에 웅크리고 있는 네 사내의 기척을 또렷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그때,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박지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언니, 잠깐 소변 좀… 괜찮죠?”
“응? 아, 으응.”
“죄송한데 망 좀 봐주세요.”
“너무 멀리가면 안 돼.”
“이런 길가에서 뭔 일이야 있겠어요?”
대수롭잖게 대꾸하고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박지현. 점점 멀어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임유진은 또다시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스퀘어란 세계를 아직 모르니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리버요, 카름이고, 그런 불시의 습격에 죽어나가는 헌터들이 부지기수다. 박지현이 과연 그걸 알기나 할까?
임유진은 역시 풋내기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놈들이 습격을 한다면 지금이 적시, 박지현의 호위역으로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박지현 성격은.. 삼국지 장비라고 할까요. 꼭지 돌아가면 보이는게 없고, 무모하고, 저돌적이고, 다혈질이고… 뭐, 그런 성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MrX / 아뇨.. 대단할거까진.. 어떻게 하면 마음껏 74를 할까 고민하다가 나온 설정인데요…. 달달한거! 참고하겠습니다.
은신설야 / 허흠.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커허험
저녁노을로 / 부족한 작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코멘트를 보니 내일은 연참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북치네 / 그러믄입죠 아직도 많이 굴러야 합니다
에보커 / 너무 두근대시면 감당하기 힘드십니다. 천천히 숨을 내쉬세요
향향공주 / 전학..??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셧더람 / 사실 해금을 한다면 누굴 먼저 타겟으로 잡아야할ㅈ ㅣ고민중입니다
우낄푸핫 / 네. 적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소피아 에피소드입니다.
호야[虎夜] / 응애애애~! 그리고 건강한 오크 아기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현용 / 일단은 고려대상이고, 차후 어찌될지는 지켜보면 아실듯!
14C2A58H2 / 그리드와의 관계가 어떻게 끝나느에 따라 바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