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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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혼백이 달아나도록 놀란 것은 옆에서 구경만 하던 박지현도 똑같았다. 박지현은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은 눈으로 배성길을 부려 전장 정리를 하는 신소율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정말… 귀신은 아니겠지?’
신소율이 보여준 움직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 그녀가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 현역 조폭으로 활동했던 쌍칼 배성길이다. 박지현도 나름대로 근방 양아치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지만, 배성길과 진심으로 싸운다면 승산은 낮았다. 재수 없고 음흉하지만, 최소한의 기량은 갖춘 인간이라는 소리다.
그런 배성길이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완벽하게 패배했다. 아니, 칼을 많이 휘두르기는 했지만, 저 솜털이 보송보송한 여자애의 털끝하나 스치지도 못했다. 방금 전의 싸움은 저 여자애의 말마따나 진지한 승부가 아니라… 일방적인 농락이었다.
많이 쳐줘야 겨우 자신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인데…….
‘아냐. 임유진 헌터… 언니처럼 동안일 수도 있어.’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박지현은 희미한 기대를 담은 눈으로 임유진을 쳐다보았다.
“언니…….”
“응?”
“쟤, 아니, 저 사람은 몇 살이에요?”
박지현의 질문을 받은 임유진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답을 해주었다.
“소율이 말이니? 음, 이제 스물둘. 해가 바뀌면 스물셋이네.”
“나, 나보다 어리잖아!”
쉬이 믿기 힘든 듯, 머리까지 세차게 흔들며 소리치는 박지현. 참고로, 그녀의 나이는 신소율보다 두 살 위로, 소피아와 동갑이었다.
“근데도 저렇게 강해요? 말도 안 돼…….”
망연자실하는 박지현을 앞에 둔 임유진은 조금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소율이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건 사실이지만, 비슷한 연배 중에는 소율이보다 강한 헌터들이 많아. 고작 스물다섯의 나이에 차기 십존으로 거론되는 사람도 있는걸.”
그녀가 언급한 사람은 물론 ‘소드시커’라 불리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정인이었다.
“네, 네에?”
기초 지식이 꽤나 빈약한 박지현이라도 십존은 알고 있었다. 수만, 어쩌면 수십만을 헤아리는 헌터들 중에서도 최강이라 손꼽히는 열 명의 강자들. 그 영광의 권좌에 오르면 부와 명예, 무소불위의 권력이 보장된다고 하던가. 모든 헌터들이 도달하고자 열망하는 최고의 지향점… 그것이 십존이었다.
그런데, 고작 이십대 중반에 차기 십존으로 손꼽히는 인간이라고? 도대체 어떤 괴물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리스는 아직 미들리그 클럽이야. 그 위로 빅리그, 웨스턴리그, 프라임리그… 강하다는 말을 입에 담기엔 아직 많이 멀었어.”
“…….”
임유진의 뼈 있는 말에, 박지현은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사무치도록 깊이 절감할 수 있었다.
‘겨우 미들리그 수준의 헌터를 보고 와~와~ 소리가 나와? 하. 동네 애새끼들도 아니고… 네 수준은 고작 그 정도니?’
임유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임유진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지만, 적어도 박지현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신소율의 전투력은 미들리그 수준을 뛰어 넘은지 한참이었지만… 박지현이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뭔 얘기해요? 아까부터 귀가 간질간질한데… 혹시 내 얘기? 응?”
“…….”
산뜻한 내음을 솔솔 풍기며 걸어온 신소율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는 박지현을 마주 대하자 한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배성길은 내 사냥감이었어.”
나타샤의 밑에서 뛰고 구르며 쾌활한 성정이 살짝 거친 쪽으로(?) 변화된 신소율이다. 데모나와 나타샤를 제외하면, 그 성질머리는 아이리스의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박지현의 딴지를 그냥 넘길 리 만무했다.
“배성길? 아… 저 아저씨 이름이 배성길이었지. 그런데 초면에 웬 반말?”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신소율은 웃기지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한번 세차게 뀌더니, 곧바로 반말로 응수했다.
“흥. 윗사람 대접을 받고 싶으면 실력으로 증명하라고. 초짜 주제에 무슨 헛소리람?”
“뭐얏?”
사태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임유진은 전혀 말릴 생각이 없는 듯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박지현의 프라이드를 한번 눌러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임유진은, 오히려 박지현과 신소율의 충돌을 내심 반기고 있었다.
“와, 이 사람 되게 웃기네. 기껏 구해줬더니 하는 말 좀 봐.”
신소율의 비아냥에 박지현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녀도 알고는 있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린다는 걸.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지 않던가. 자기보다 어린 여자애가 이토록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일평생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박지현에게는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저열한 질투라고 해도 좋고, 열등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최소한 신소율과 한번 직접 부딪치지 않는 한, 박지현은 이 현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나도 단련이라면 손에 피가 맺히도록 했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박지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구였다면 그녀의 ‘상식’이 조금쯤 통용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이곳은 스퀘어. 단련시간이 강함의 정도를 결정하는 척도가 될 순 없었다.
그걸 깨닫기 위해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한번 거하게 싸워서, 시원하게 깨지는 수밖에. 이건 임유진이 노리는 것이기도 했다.
“핫. 네 도움이 없었어도 저 자식쯤은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어. 게다가, 난 도와달라고 한 적 없거든?”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네. 이봐, 당신. 꼬우면 덤비라고. 그걸 원하는 거 아냐?”
“바라던 바야.”
장창을 두 바퀴 팽그르르 회전시킨 박지현은 창대 끝으로 바닥을 쿵 소리나게 찍었다. 반면, 신소율은 박지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임유진을 쳐다봤다.
“유진이 언니, 괜찮죠?”
“응. 너무 심하게 하면…….”
“에헤이, 걱정 마세요. 저 정도는 식후 운동거리도 안되니까.”
자신을 깔아뭉개는 듯한 그녀의 말에, 박지현의 얼굴은 굴욕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마지막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신소율이 벗어둔 투명망토를 가리켰다.
“…원한다면 저 장비를 걸치고 싸워도 좋아.”
“헹,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지. 발가벗고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말은 잘하네. 어디 그 실력이 입담 반이라도 되는지 보자.”
“볼 새도 없을 걸. 유진이 언니? 심판 좀 봐주세요.”
“알았어.”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마주 서자, 그 사이에 선 임유진은 가볍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머리 위에 걸려 있던 그녀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뚝 떨어졌다.
“이야압!”
선수필승(先手必勝). 박지현은 어느 때나 통용되는 그 고사를 되새기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들었다. 모든 기운을 일점(一點)에 모은 그녀의 창은 눈부신 섬광이 되어 신소율의 가슴을 관통했다.
“됐…! 제길!”
기쁨으로 차오르던 박지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손 끝에 걸리는 감각이 무척이나 공허했기 때문이다. 허상을 벤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박지현은 생각할 것도 없이 앞으로 뛰어들어 몸을 굴렸다.
“어? 그냥 가볍게 터치만 할 생각이었는데.”
박지현이 서 있던 곳에 홀연히 나타난 신소율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명백한 조소에, 박지현의 이마에 선명한 십자혈관 마크가 돋아났다.
“크으읏!”
한바탕 흙바닥을 뒹굴고 일어난 박지현의 몰골은 진창에 빠진 당나귀처럼 형편없었다. 그러나 이글거리는 두 눈과는 반대로, 그녀의 이성은 차갑게 가라앉은 채 좀 전의 공방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어.’
창끝에 신소율의 몸이 걸린 순간, 공격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벤 것은 신소율이 남긴 껍데기, 잔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 순간 이미 신소율은 귀신처럼 뒤로 돌아가 있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신소율의 움직임이 자신의 인지한도를 벗어났다는 것. 그것이 순수한 육체적 능력이든, 마법적 능력이 곁들여진 술수이든 간에, 일대일 대결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놓친다는 건 치명적인 페널티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쉭!
바쁘게 염두를 굴리던 박지현은 바로 머리 위쪽에서 섬뜩한 파공음이 울리자, 감각적으로 몸을 뒤로 내뺐다. 급히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곳에 단검 하나가 깊숙하게 박힌 채,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소율이 사용하는 쌍검 중 하나였다.
“단검 하나. 이 정도면 납득하겠지?”
“무슨…….”
신소율은 답답하다는 듯 한 차례 가슴을 치더니,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단검, 하나로, 정면에서, 싸워주겠다고. 이 정도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
“……!”
일순 멍한 표정을 지은 박지현은 빠드득 사납게 이를 갈아붙였다. 이렇게 대놓고 병신 취급을 하는데, 화가 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잠자코 구경을 하던 임유진까지 ‘소율이가 저렇게 얄미운 캐릭터였나?’하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으니까.
성난 황소처럼 한바탕 콧김을 내뿜은 박지현은 거칠게 창대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개소리 좀 작작…….”
들어 올려진 창대가 부웅! 한바퀴 회전하더니, 채찍처럼 호선을 그렸다.
“…해!”
그러나, 낭창낭창 휘어지며 쇄도하는 창을 바라보는 신소율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쇠도리깨처럼 강맹한 창대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한 자루뿐인 위도우메이커를 들어 정면에서 맞섰다.
깡! 까드드드드드득!
쇠와 쇠가 맞부딪치며 첨예한 불꽃이 튀겼다. 묵직한 일격을 검면으로 받아낸 신소율은 그 상태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검면과 창대가 거칠게 마찰하며 듣기 거북한 소음을 쏟아냈다.
“이익! 익!”
위에서 내리누르는 입장인 박지현은 신소율을 단검째 짓뭉개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창과 단검의 대치국면은 요지부동,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팔 하나로 창대를 막아내고 있는 신소율 쪽이 조금씩이지만 창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박지현은 경악하다 못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 괴물 같은……!’
이건 이미 기술의 싸움이 아니라 순수한 완력의 대결이었다. 그런데도 지고 있다니. 아래에서 막는 쪽과 위에서 누르는 쪽, 어느 쪽이 유리한 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 자신은 중량에서 우세한 장창, 상대는 가벼운 단검이 아닌가. 모든 면에서 이점을 먹고 들어가는데도, 도리어 밀리고 있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크으읍…! 큭……!”
창대를 꾹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릅떠지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하느라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반면, 신소율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 있어 보였다. 가느다란 팔이 살짝 떨리고 있기는 해도, 말할 정도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박지현… 헌터라고 했지? 믿기 힘들겠지만 이게 현실이야. 여긴 지구가 아니라구. 평범한 대학생이던 내가, 지구에서 한가락 했던 당신을 이길 수 있는 곳이란 말야.”
“으으으……!”
“요 2년 간, 나도 죽을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지구에서는 성장에 ‘정도’라는 게 있지만, 여기는 달라. 재능만 있다면 한없이… 그래, 이런 팔로도 놀라운 힘을 낼 수 있다고. 지구에서의 고정관념… 빨리 버리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어버릴걸?”
“그런… 인정…….”
“인정 못한다고? 고집이 보통이 아니네. …뭐, 상관없겠지. 살다 보면 인정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금은 일단… 좀 맞자. 왜,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잖아.”
퍼억!
명치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지며,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박지현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어쩐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신소율의 하얀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지만, 부제의 미친개는 사실 박지현이었습니다.
박지현이 느끼는 감정은.. 뭐 그런거죠. 전교 1등만 하던 애가 해외로 대학을 갔는데, 자기보다 한참 어린 중고딩이 공부를 더 잘하는?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강해지기 위한 노력의 총량을 따졌을 때, 박지현이 신소율보다 위인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신소율에 비해, 박지현은 어렸을 때부터 무도를 시작했거든요. 자부심이 남다른 것도 그때문이죠. 하지만 지구에서의 노력과 스퀘어에서의 노력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성장의 정도가 다르니까요. 박지현의 불운이라면, 늦게 헌터 입문을 했다는 거겠죠..
아무튼, 오랜만의 연참에 저도 기분이 좋네요. 좋은 밤 되세요.
내일도 연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은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야[虎夜] / 거봐! 하면 되잖아! 연참…!
레츠고고 / 넵! 코멘트 감사합니다!
†아마테라스† / 코멘트 감사합니다!
은신설야 / 잠을 좀 줄이니 연참이 되더군요..
가식적썩소 / 이번편은 오타가 없었나요? 다행입니다….
14C2A58H2 / 뭐, 자세한 처우는 다음편에.. 예상하시는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듯합니다.
월병인 / 재롱잔치라는 표현을 딱 쓰려다 말았는데, 꼭 그런 기분일 겁니다. 하하..
북치네 / … 노력하겠습니다. 연참..이요..
Tantania / …??? 그렇게 두 아이의 엄마가..
장마와방 / 후.. 연참 코멘트들을 보니 어깨가 무거워지는군요…
임대가르시아 / 오늘도 한번 도전을 해볼까요.. 코멘트 감사합니다!
말랑말랑조랑말 / 꿀잼이라니.. ㅎㅎ 감사합니다!
우낄푸핫 / 지금 얘가 사실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 상태라… 박지현을 상대로 거하게 스트레스를 푸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