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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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고대의 유적
헌터 일을 겸하는 괴짜 오너가 아닌, 상당한 무력을 보유한 헌터로.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 이런 몸놀림을 보여주었던 건 배성길을 제압할 당시의 신소율 정도 밖에 없었다.
“처음이라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요.”
“예… 죄송합니다.”
가이탄의 위로를 받은 박지현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구덕에게 야단을 맞아서라기 보단, 겨우 좀비 따위를 처치하고 방심한 스스로의 안일함이 견딜 수 없이 창피한 그녀였다.
“그나저나 갑자기 좀비라니… 이 방에 뭔가 있는 걸까요?”
“꺅! 언니! 이리 와 봐요!”
임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 느닷없이 신소율이 방방 뛰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보물상자 발견!”
신소율이 발견한 것은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철제상자였다. 별도로 눈에 띄는 잠금장치는 보이지 않아, 그냥 손잡이를 잡고 위로 올리면 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발견했으니까 내가 열어봐도 되죠? 네? 아저씨이잉~!”
상자를 발견한 신소율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모름지기 이런 유적을 탐험하는 진정한 맛은 상자 까기(?) 아니겠는가. 초입부터 보물상자가 나올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묘한 기대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윽.”
그 애교가 상당히 거북스러운 듯,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박지현의 뒤에서 걸어 나온 노구덕은 일단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 기다려라. 데모나, 상자에서 뭐 느껴지는 거라도 있어?”
“마법이나 주술적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제가 보기에도 별다른 위험 요소는 없는 것 같아요.”
파티에서 가장 주문, 마력 분야에 능통한 데모나와 임유진의 보증을 받은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의 눈짓을 받은 신소율은 싱글벙글 웃으며 묵직한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히고 그 안을 살피더니, 맥이 쪽 빠진 소리를 냈다.
“…애걔……. 짜다, 짜.”
잔뜩 실망한 얼굴을 한 신소율이 들어 보인 것은 주먹만한 헝겊주머니였다. 안에서 들리는 짤그랑거리는 소리로 봐서는, 동전을 담아두는 주머니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였다. 줄을 풀어 주머니 안을 확인한 신소율은 더욱 시무룩해져서는 주머니를 노구덕에게 내밀었다.
“…은화 열 닢 정도 있네요. 축하드려요. 장작값은 건지셨네요.”
그걸 보고 있던 실렌이 기가 찬 듯이 말했다.
“…더 없니? 저 커다란 상자에 달랑 이 주머니 하나가 끝이라고? 말도 안 돼.”
“실렌 언니, 이 절망에 사무친 표정 안 보여요? 정말 이게 끝이라고요…….”
눈에 띄게 실망하는 두 사람을 두고 쿡쿡 웃는 임유진과, 별 감흥이 없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데모나. 그리고 덩달아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는 박지현이었다.
“하하… 벌써부터 보물상자를 발견하면 탐사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자자, 어찌됐든 성과가 있으니 천천히 가도록 하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다음 방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금세 실망을 털어낸 일행은 이어서 다음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전 방과 똑같은 구조를 가진 똑같은 방이었다. 하지만…….
“해골이다!”
“디바인 아머!”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일곱 마리의 해골이었다. 이후로도 처음의 좀비 네 마리는 장난이었다는 듯, 수많은 언데드들이 탐사대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떤 방에는 해골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 차 있어, 방에 들어가기조차 힘든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좀비, 해골, 크라울러 같은 최하급의 언데드인데다가, 강해봐야 거기서 가끔 녹슨 무기나 들고 나오는 병사(Soldier) 수준인지라 탐사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적들의 수준이 낮아 박지현의 경험치를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정도니까.
“별 거 없는데요?”
“그러게. 너무 쉬워.”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돼. 주의해야할 망령들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어.”
임유진은 슬슬 느슨해지려는 기미를 보이는 신소율과 실렌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의 중앙에서 걷고 있던 데모나의 표정이 일변했다.
“구더기, 멈춰.”
선두에서 나아가고 있던 노구덕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망령들이야.”
스아아아… 스아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스산한 호곡성이 들려오며 주변의 공기가 서서히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임유진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언데드 중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망령 무리가 출현한 것이다.
망령(Wraith)은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타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개체다. 한마디로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헌터라면, 특별한 도구가 있지 않은 이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거기에 생기를 빨아먹는 칠링 터치(Chilling touch)와, 사람의 의식을 앗아가는 빙의 등의 정신공격은 아차 하는 사이에 파티를 궤멸로 이끌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망령들은 언뜻 보기에 반투명한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골격 주변에 아른거리는 푸른 빛무리에서 전해지는 망령 특유의 냉기는, 놈들이 일반적인 해골과 궤를 달리하는 존재임을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임유진 헌터를 제외한 근접계열은 뒤로 물러납니다! 실렌!”
“턴 언데드!”
미리 주문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실렌은 곧바로 턴 언데드를 시전했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성스러운 백색의 빛무리가 해일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키에에에엑—!
빛의 파도에 휩쓸린 망령들은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턴 언데드의 백색 빛줄기가 스칠 때마다, 놈들의 뼈마디가 잘근잘근 부서져나가는 것이 육안으로 확실히 보일 정도였다. 과연 대표적인 언데드의 천적 주문이라 할 만했다.
-그으으으…….
백색 섬광이 걷혀나간 뒤에 드러난 놈들의 형상은 첫 출현 때와 비교해 볼품없을 정도로 초라해져 있었다. 반투명한 골격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하게 변했고, 그조차도 거의 너덜거리는 걸레짝이나 다름없어,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면 픽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저씨, 끝낼까요?”
“조심해라. 힘을 거의 다 잃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빙의를 시도하려 악착같이 달려들거야.”
“해골바가지들이 그래봤자 내 털끝도 못 스쳐요. 차앗!”
자신만만하게 외친 신소율은 섬뜩한 예기를 흩뿌리는 위도우메이커를 들고 망령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생기가 철철 넘치는 젊은 처자가 본 망령들이 눈을 뒤집고 달려든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힘이 빠질대로 빠진 놈들은 마력 사용에 능숙한 신소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새끼 양떼 무리에 굶주린 암사자가 뛰어든 꼴이랄까.
-키잇! 키이익!
순식간에 마지막 남은 망령의 머리를 절단내버린 신소율은 사뿐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끄읕~!”
“수고했다.”
“헤헤… 더 칭찬해줘도 되는데.”
“네가 애냐? 그만 까불고 네 자리로 돌아가.”
“쳇. 쫀쫀하다, 쫀쫀해.”
전날의 앙금은 완전히 털어버린 듯, 평소와 다름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 망령 무리가 출현했지만, 실렌과 임유진이 주축이 된 탐사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망령들을 처치했다. 데모나가 한가득 준비한 턴 언데드 스크롤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나마 까다로웠던 적이라고 한다면, 중간 중간 병사 급을 넘어선 전사(Warrior), 기사(Knight) 급의 언데드들이 출현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평범한 좀비, 해골에 비해 까다롭다는 것이지, 엄선한 실력자들로 구성된 탐사대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전리품 습득도 순조로워서, 스무 개가 넘는 석실을 휩쓸고 다녔을 즈음에는 제법 가치가 있는 장비들도 몇 점 건질 수 있었다. 마녀회의 유적인 만큼 전리품 중에는 고대에 사용되었던 반지, 목걸이 등 귀금속류가 상당히 많았는데, 덕분에 파티에 속한 여성진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음은 물론이었다.
“이건 척 보기에도 성스러워 보이는 게, 딱 사제용 귀걸이 같아 보이지 않니?”
“뭔 소리예요? 마녀회에 사제용 귀걸이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가끔 이렇게 티격태격 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순탄한 탐사였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이 유적의 구조가 길이 명확하지 않은 미로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음… 괴물들이 점점 강해지는 걸 보면 길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우리가 어디쯤 온 거지? 혹시 지금까지 방 몇 개를 거쳐 왔는지 기억하는 사람 있습니까? 대충 서른 개 쯤 되는 것 같은데…….”
“32개의 방을 지나쳤어요.”
“아, 고마워.”
임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구덕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데모나에게 말을 걸었다.
“데모나, 어때? 맞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아마도.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느껴지던 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줄곧 느껴지던 것? 그게 무슨 소리야? 엉?”
데모나는 대답이 없었다. 잘만 걷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멈춰선 채,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한쪽 벽면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난데없는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진 일행은 데모나가 보고 있는 벽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거미줄만 있을 뿐, 그밖에 특이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있어.”
“데모나?”
그나마 감지능력이 뛰어난 임유진과 노구덕이 벽면을 훑었지만, 역시나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돌의 감촉뿐이었다.
“대체 뭐가 있다는…….”
“피해!”
콰아아앙!
데모나가 날카로운 외침을 토해냄과 동시, 줄곧 일행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던 벽면이 산산이 터져나갔다. 그 바람에 벽과 가장 근접해 있던 노구덕은 뾰족한 돌 세례를 온몸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오너! 신의 가호!”
다행히 실렌의 순발력이 빛을 발했다. 적절하게 나타난 황금빛 장막은 거칠게 쏟아지는 돌 세례를 빈틈없이 차단했다.
모두가 황금 장막 안에서 안도의 숨을 토해내려는 찰나, 입술을 질끈 깨문 데모나는 황급히 양손을 떨쳐내며 소리쳤다.
“이 멍청이들아! 뭘 멍하니 있는 거야! 끈끈이 덩굴(Sticky vine)!”
콰드드득!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데모나의 트레이드마크인 덩굴 식물이 소환되었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여전히 뿌연 먼지 탓에 제대로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뭔가 있어요!”
“이익! 쇼크웨이브!”
급한 성질머리를 억누르지 못한 신소율이 재빨리 충격파를 쏘아 보냈다. 뭐가 됐든 간에 일단 시야부터 확보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녀가 쏘아 보낸 강렬한 바람줄기는 순식간에 널리 퍼져나가며 일행 쪽으로 밀려들어오던 먼지 구름을 반대쪽으로 걷어냈다.
“잘했어! 헛!”
신소율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던 노구덕은, 휑하니 드러난 무너진 벽면 사이로 하얀색의 거체(巨體)가 드러나자 급한 숨을 들이켰다.
3m가 족히 넘어가는 거구와 짤막한 몸통, 기다란 사지. 그리고 뼈의 군집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놈은 데모나가 소환한 덩굴 줄기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노구덕은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2년 전, 드래프트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저 괴물은 과거 그를 거의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었다. 아니, 만약 시기 적절하게 김정인이 놈을 끝장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본 골렘(Bone golem)!”
당시의 치 떨리는 고통을 기억해 낸 노구덕은 두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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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명절이 코앞이라 그런지 연휴를 앞두고 주변 회사들이 단체 회식이 잦네요. 가게 하는 동안 좀처럼 글 쓸 기회가 없었습니다.. 라는 변명입니다.
오늘은 부디 12시 이내에 올릴 수 있기를…
엣지미만잡 / 우훙… 감사합니다~!
장마와방 / 구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임대가르시아 / 항상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 ㅠㅠ
은신설야 / 아마 이번 에피소드에서 대충 가늠하실 수 있을듯! 마침 적절한 스파링상대가!
말랑말랑조랑말 / 꿀잼 감사합니다! 건필할게욧!
트릭스타 / 어.. 저게 사망플래그가?!
boxon / 지금 자빠뜨리면 눈알이 터질지도…
우낄푸핫 / 걱정 감사합니다만 지금 이미 코가 훌쩍거리고 있습니다.. ㅠ
북치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꼭! 이라는 의미없는 다짐을 해봅니다
누구셧더람 / 코멘트 감사합니다! 노력할게요!
hohokoya1 / 나쁜 여자? 에 은근히 매력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군요
희망의불씨 /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혼이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