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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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나이트메어(Nightmare)
56# 나이트메어(Nightmare)
최악의 언데드. 그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이 풍기는 스산함에, 신소율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넘겼다.
“그럼 저거…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아무리 절대방어가 걸렸다고는 하지만,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
신소율에 이어 가이탄이 의견을 제시했지만, 데모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소용없다고. 라이프베슬은 리치의 생명을 담아두는 그릇이야. 지금 저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운은 리치의 모든 힘이 유형화된 것이라 보면 돼. 괜한 힘을 소모하느니, 이후에 나타날 리치를 상대하면서 베슬을 없애는 게 차라리 나아. 게다가…….”
“…리치만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저 붉은색 덩어리들도 상대해야 될 테지.”
이어진 그녀의 말은 파티원들의 얼굴에 깔린 불안한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데모나, 저 붉은 핏덩이들은 뭐지?”
“아마 블러드 퍼핏(Blood peppet)의 일종인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몰라.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리치를 보는 것도 처음이니까.”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건가.”
그때, 홀리필드를 유지하고 있던 실렌이 다급히 소리쳤다.
“홀리필드의 지속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무슨 대책 좀 세워 봐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약해진 홀리필드를 겹겹이 둘러싼 핏덩어리, 블러드 퍼핏은 어느새 작은 난쟁이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이며 팔의 표면이 촛농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불안정한 모양새인지라, 꽤나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하나 같이 입을 쩍 벌리고 시커먼 목구멍을 드러낸 놈들은 듣기에도 거북한 괴성을 흘리며 금방이라도 안으로 밀고 들어올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끼이이이–!”
“끄그그그!”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노구덕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나와 가이탄, 신소율 헌터가 실렌, 데모나를 중심으로 삼각진을 이루고, 박지현 헌터가 틈새를 커버합니다. 그리고 유진이는…….”
노구덕은 살짝 말끝을 흐렸다. 임유진에게 힘든 임무를 맡기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봐도 이게 최선이었다.
“…나머지 블러드 퍼핏들을 상대해줘.”
“네, 맡겨주세요.”
임유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노구덕의 지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블러드 퍼핏 또한 언데드의 일종. 게다가 그 몸체를 이루는 것은 끈적이는 핏물이었다. 제 아무리 수가 많다 해도 빛과 화염이 어우러진 신성한 불꽃, 광염을 다루는 임유진의 상대가 될 순 없었다.
아마 그 불길만 몸에 두르고 있어도 접근조차 하지 못할 터. 놈들에게는 상극이나 다름없었다.
“타합!”
임무가 부여되자, 임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홀리필드 밖으로 뛰쳐나가며 맹렬하게 팔을 떨쳤다. 그러자 불꽃의 날개로 화한 그녀의 팔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이 폭포수처럼 강하게 분사되었다.
화르르륵!
“끼기기기기기긱…!”
불꽃에 휘감긴 핏덩어리들은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광했다. 그렇잖아도 끔찍한 형상에, 피칠갑을 한 몸덩이가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수포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니 그 흉측함이 비할 데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놈들!”
“이야압!”
임유진이 맹위를 떨치는 사이, 나머지 파티원들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견고히 삼각대형을 구축한 노구덕과 가이탄, 신소율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블러드 퍼핏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실렌이 신성 주문으로 적절하게 지원을 하며 파티원들을 돕는 중이었다.
다행히 블러드 퍼핏들은 생김새만 위협적일 뿐, 개체 하나하나의 힘은 해골 병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었기에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 물량이 끝이 없다는 것. 검붉게 빛나는 라이프베슬은 마치 화수분이라도 된 것인 양, 핏덩이들을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화르륵!
또다시 불길을 일으켜 블러드 퍼핏들을 숯덩이로 만들어버린 임유진은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저걸 처리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이 정도 숫자를 상대하다 보면 지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아직 진정한 상대인 리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때였다. 갑자기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블러드 퍼핏들의 압박이 약간 느슨해진 것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놈들의 대부분을 홀로 상대하고 있던 임유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수가… 줄고 있어?’
열을 태워 없애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비슷한 숫자가 몰려들었던 녀석들이, 약간이긴 하지만 점점 그 머릿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임유진은 곧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붉은 안개로 뿌옇게 뒤덮여, 그 형체가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던 라이프베슬의 주변이 눈에 띄게 선명해진 것이다.
저게 의미하는 것은 하나, 라이프베슬의 형성이 거의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방어막이 일시적으로 크게 약해질 때야.’
직접 리치를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었다. 라이프베슬이 형성되는 동안 모든 마력이 집결된 그 보호막은 절대방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하지만, 베슬의 형성이 끝나고 그 마력이 다시 리치에게 전이되는 순간에는 보호막의 강도가 급격히 약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대부분의 리치는 라이프베슬을 이처럼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데모나가 이런 유형의 리치를 처음 본다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임유진은 과감하게 도박을 선택했다. 감지되는 어마어마한 마력량으로 보아, 곧 있으면 등장할 리치는 못해도 상급의 괴물이 분명했다. 그런 상대를 어떤 피해도 없이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차라리 리치가 나타나기 전에 라이프베슬을 부서뜨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지금 바로 움직여야 돼.’
방어막이 약해지는 건 한순간 뿐, 지금 바로 이 타이밍 밖에 없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임유진은 그야말로 천공에서 내리꽂히는 번개가 되어 라이프베슬이 있는 쪽으로 쇄도했다. 가히 섬광과도 같은 빠르기를 자랑하는 기술, 에버 플래쉬였다.
팟!
흡사 시간이 멈춘 듯, 광속의 빠르기에 전혀 반응을 하지 못하는 블러드 퍼핏의 물결을 뚫고 그녀가 도달한 곳은, 끓는 주전자처럼 사이한 기운을 뭉클뭉클 내뿜고 있는 라이프베슬의 바로 앞이었다.
가까이서 본 라이프베슬은 블러드 퍼핏들을 양산해 대는 근원답게 기괴하고 비틀린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리저리 흉측하게 찌그러진 냄비 같달까.
물론 임유진은 한가로이 라이프베슬의 자태를 감상할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라이프베슬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 희미하게 변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 임유진은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한껏 마력을 주입한 단검을 휘둘렀다.
서걱!
광염의 마력을 담은 칼날은 너무나도 손쉽게 방어막을 분쇄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라이프베슬을 깨끗하게 양단해 버렸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끓어오르던 라이프베슬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블러드 퍼핏 용액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검게 변색되자, 임유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설마 했던 도박이 깔끔하게 성공한 것이다.
“됐어!”
라이프베슬의 파괴는 곧바로 전장에 영향을 미쳤다. 들개떼처럼 달려드는 블러드 퍼핏들을 정신없이 찌르고, 베어내고, 뭉개버리던 파티원들은 십년은 굶은 아귀처럼 악착같이 덤벼들던 녀석들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까맣게 변해버리자 일순 어리둥절한 얼굴들을 했다가, 이내 임유진이 라이프베슬을 베어버린 것을 보고는 크게 반색했다.
“꺄악! 역시 유진이 언니야!”
“유진이가 해냈어!”
파티원들 중에서도 특히 방방 뛰며 좋아하는 두 사람, 신소율과 실렌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보인 임유진은 조금 지친 듯한 낯빛으로 돌아섰다. 마력을 많이 소모했다기보다, 전투가 끝난 직후 갑자기 긴장감이 풀려버린 탓이었다.
“유진아, 잘했어.”
전투 내내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것인지, 노구덕은 누구보다 앞서서 달려오며 퉁방울만 한 눈을 쉴 새 없이 굴리며 임유진의 몸을 샅샅이 훑고… 아니, 살피고 있었다. 다른 남자가 그랬다면 굉장히 기분 나쁠 만한 눈짓이었지만, 상대가 자신의 배우자였기에 그녀는 오히려 기꺼운 마음이었다.
“네… 당신도요.”
미소를 지으며 답하던 임유진은 문득 이상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앞에서 달려오던 노구덕의 표정이 시간차를 두고 급격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도에서 당황으로, 당황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유진아! 도망쳐!”
…절규로.
“네? 핫!”
무심결에 반문하던 임유진은 순간적으로 등 뒤에서 싸한 기운을 느끼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전투가 끝났다는 데에서 온 정신적, 육체적인 이완감 탓일까. 그녀의 대응은 평소보다 반 박자 느렸다. 그리고 그 반 박자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촤락! 촤라락!
검은색 촉수가 뛰어오르던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온 두 번째 촉수가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휘감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생물학적인 촉수라기보다, 매캐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가늘게 이어진 형상을 한 마력의 덩어리였다.
그 근원지는 반으로 갈라진 리치의 라이프베슬. 두 개의 절단면에서 각기 하나 씩의 촉수가 튀어나와 임유진을 기습한 것이다.
쩌어어억!
촉수를 뿜어낸 라이프베슬은 임유진에 의해 막 파괴되었을 때와는 완전히 판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뭉실뭉실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절단면이 크게 확장되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이, 꼭 거대한 심연의 일부… 혹은 우주에서 생겨난 블랙홀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심연에 비치는 깊고 깊은 어둠은,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무저갱과 다를 바 없었다.
“으으읏…!”
촉수에 붙잡혀버린 임유진은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마력을 있는 대로 전부 쥐어짜 냈을 때나 느껴질 법한 무력감이었다. 이래서는 피닉스의 기운은커녕, 한 줌의 마력조차 끌어올릴 수 없었다. 마력을 봉쇄당한다면, 천하의 붉은 봉황이라도 평범한 헌터 이상의 힘을 낼 순 없었다.
게다가, 그녀를 옥죄고 있는 촉수의 힘은 어설픈 근력으로 떨쳐낼 수 있을 정도로 약한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참담하게 물든 그녀가 젖 먹던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찰나, 어떤 아련한 음성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요염하게 간드러지면서도 교활함이 한껏 느껴지는 여인의 음성이었다.
‘호호호… 나의 소울 트랩(Soul trap)에 걸린 이상, 발버둥 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다. 어마어마한 마력을 잡아먹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거든. 영혼을 직접 공격하는 주문이기에 육신의 강함은 아무 소용이 없지.’
‘누, 누구…….’
‘이런… 무덤의 주인도 모르고 찾아왔단 말이니? 아주 무례한 녀석들이구나. 그러고 보면 그 인간이 조금 나은 건가?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난 다른 아이와 긴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으니, 귀찮은 방해꾼은 이만 사라져 주렴.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안 돼…….’
까맣게 먹칠이 되었던 시야가 다시 흐릿한 초점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정면에는 여전히 노구덕이 뛰어오고 있었다.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그야말로 찰나. 실제 시간은 불과 1, 2초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유진아!”
“유진이 언니!”
“임유진 헌터!”
파티원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도 이제는 희미하게 들려왔다. 의식이 약해진 것인지, 청각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임유진이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이 뒤쪽으로 급격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과, 노구덕이 그런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니, 이제는 시야도 완전히 사라져, 그 또한 지레짐작에 불과했다.
본능적으로 최후의 순간임을 직감한, 임유진은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노구덕이 제대로 보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부디 이번만큼은 꼭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오면 안돼요. 제발.’
그 간절한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의식은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뚝 꺼져버린 채, 끝이 없는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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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베슬은 훼이크! 사실은 소울 트랩이었다!
득템을 위해선 역시 굴러야 하겠죠..
어째 요 며칠간 새벽/아침 연재로 시간대가 고정된 느낌이네요. 명절이 지나면 다시 시간대가 원상복구 될 수 있으려나요…
독자 여러분도 부디 추석 잘 쇠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