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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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벌레교단 vs 마녀회
57# 벌레교단 vs 마녀회
파앗!
임유진을 대동한 노구덕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고풍스런 석조 벽면으로 둘러싸인 어느 방이었다. 방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침대와 테이블, 진열장 등이 구비되어 있는데다 낡고 두꺼운 서적들이 사방에 어지럽게 깔려 있어, 서재나 연구실 용도로 쓰이는 방임을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돌침대 위에는 먼지가 짙게 깔려 있었다. 손으로 대충 먼지를 걷어낸 노구덕은 어디선가 가져온 큼지막한 로브를 침대에 덧대고, 그 위에 임유진을 눕혔다. 임유진은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임유진의 상세를 살핀 노구덕은 침대 한 귀퉁이에 걸터앉아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일단 어떻게든 구해내긴 했는데…….”
쓱쓱. 노구덕은 손가락 두 마디로 미간을 문질렀다. 경황 중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어도, 박준혁과 임유진의 정사 장면이 가져다 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물론 임유진이 과거가 그러하다는 것은 그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임유진은 그에게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과거사를 얘기해 주었다. 박준혁과 어떻게 해서 관계를 가지게 됐는지,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희가 박준혁의 딸이라는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서운하거나 딱히 배신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 알고는 있다.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속이 꽉 막힌 듯한 이 답답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동굴 속에서 보았던, 그놈의 몸을 꽉 끌어안고, 반쯤 풀린 눈으로 달뜬 신음을 내지르던 임유진의 얼굴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염병할……. 저 껌댕이의 영향이 나한테도 미치는 건가…….”
노구덕은 서서히, 땡볕 아래 노출된 얼음덩어리처럼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심연의 늪을 노려보았다. 방금 전, 그와 임유진이 빠져 나왔던 ‘소울 트랩’이 만들어낸 악몽의 세계였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임유진을 구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우연과 행운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소울 트랩은 대상의 내면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최악의 악몽을 끄집어내어, 대상의 정신이 완전히 마모되어 버릴 때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악몽을 반복시키는 가혹한 주문이다. 그리하여 의지를 상실하고, 백치가 된 영혼은 심연으로 더럽혀져 마침내 망령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악몽의 감옥은 당연히 대상의 의식 세계에 기반한 것. 주문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주문을 굴복시키거나, 외부의 누군가가 악몽의 감옥에 직접 들어가 대상의 의식을 일깨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후자 또한 자칫하면 조력자마저 심연에 갇힐 우려가 있었기에 거의 쓰이지 않는 방법이었다. 과거 대륙 중부에서 마녀회가 한창 번성했을 당시, 소울 트랩이 정신계 주문 중에서도 유별나게 악명을 떨친 것도, 이처럼 해주(解呪)가 지극히 까다롭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구덕은 의도치 않게도 두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킴으로써 임유진의 소울 트랩을 해제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조건이란 다름 아닌 벌레교단의 ‘심령차력술’과 데모나가 건넨 ‘주술 가면’.
노구덕이 가지고 있는 ‘추기경의 홀’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신도들의 영력이 담긴 ‘개미알’이 담겨 있었고, 거기에는 당연히 임유진의 것도 있었다. 아예 권속이 되어 텔레파시까지도 가능한 소피아와의 유대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개미의 군집체를 형상화한 심령차력술은 충왕각인과 함께 벌레교단의 주류(主流)를 대표하는 최고의 비전. 소울 트랩을 속여 넘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울 트랩 주문이 임유진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노구덕을 또 다른 ‘임유진의 의식’으로 인지하여, 의식 세계로의 접근을 허용했다는 뜻이다.
만약 행운이 거기서 그쳤다면 정신계 주문에 대한 면역이 없는 노구덕도 꼼짝없이 휘말려 버렸을 테지만, 그에게는 데모나에게서 받은 주술 가면이 있었다. 심령차력술이 벌레교단의 대표적인 비전이라면, 주술 가면은 마녀회의 숱한 도구 중에서도 최고의 정수라 할 만했다.
마녀가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정식 마녀의 증표로써 받게되는 것이 이 ‘주술 가면’이었다. 마녀로서의 탄생과 끝을 함께 하며, 그 평생의 영력이 깃든 가면은 소지하고만 있어도 정신계 주문에 대해 강력한 저항력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영적인 존재들로부터의 위협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밖에도 주술 능력을 보조해주는 등, 마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노구덕은 바로 이 주술 가면 덕분에 소울 트랩 속에 들어왔으면서도 그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노구덕이 아니라 다른 일행이 소울 트랩에 갇혔다면, 임유진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었을 터. 그야말로 우연과 우연, 거기에 또 다른 우연이 재수 좋게 겹쳐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기적을 이루어낸 장본인, 노구덕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임유진이 소울 트랩에서 나온 뒤에도 여전히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탓이었다.
기실 임유진이 악몽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정신계 주문의 특성상 그 후유증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구덕이 보이는 반응은 상당히 조급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임유진의 얼굴에 초조한 눈빛을 보내던 노구덕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기 보다는 일단 이곳이 어딘지부터 파악할 요량이었다.
노구덕은 우선, 뭉툭하게 튀어나온 문고리를 잡고 잡아당겨 보았다.
철컥, 철컥!
흉폭한 눈알을 부릅뜬 사자 머리가 꽉 물고 있는 문고리는 거친 쇳소리만을 일으킬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으응!”
충왕각인까지 발동해서 있는 힘껏 잡아당겨 보았지만, 여전히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문과 씨름하던 노구덕은 그의 노력을 비웃듯이 버티고 선 문짝을 노려보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이것도 마법인 모양이군. 아니, 이곳 자체가 마법으로 이루어진 공간일 수도 있어.”
어지간한 주문은 그 근력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노구덕이다. 이 방의 문이며 그 주변의 벽들이 그의 괴력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기껏 그곳에서 빠져나왔더니만… 또 정체모를 곳에 갇혀버린 신세라니. 다른 사람들은 잘 하고 있을는지…….”
걱정과 한탄이 어우러진 투덜거림을 내뱉던 노구덕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으로 워프한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장소일 테지. 혹시 이곳에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방을 빠져 나가든, 유진이의 상태를 되돌리든.”
리치가 나타나기 전에 소울 트랩 안으로 뛰어든 노구덕은 마녀의 리치가 출현했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소울 트랩을 해제하고 탈출한 곳이 이 방이라는 점, 그리고 방 내부의 가재도구나 분위기가 서재, 혹은 연구실에 가깝다는 점이 그에게 어떤 확신을 심어주고 있었다.
“여기 글자도 그 마녀의 암어인지 뭔지로 되어 있으면 낭팬데…….”
혼자 중얼거리며 가장 가까이 있던 책들을 뒤적이던 노구덕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행히도, 책의 내용이 그가 읽을 수 있는 대륙공용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노구덕이 책 무더기를 휘휘 파헤치며 방 안을 어지럽히는 동안, 임유진은 여전히 텅 빈 동공으로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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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과 임유진이 수수께끼의 방에 갇혀버린 그 시각, 남은 일행들은 이름 모를 마녀가 현신한 리치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죽어! 이 빌어먹을 해골바가지야!”
번쩍!
허공을 격하고 나타난 작은 그림자에서 두 줄기의 은빛 섬광이 번뜩였다. 섬광을 뚫고 자태를 드러낸 것은, 칼날 주위를 훙훙거리는 질풍으로 에워싼 두 자루 단검이었다. 곧이어, 질풍을 머금은 두 개의 칼날이 현란하게 춤을 추며 반경 2미터의 공간을 날카로운 예기로 순식간에 가득 채워버렸다.
“호호호! 제법…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아이구나! 광대로 딱이겠어!”
깡! 까가가가가가가강!
그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신소율의 맹렬한 공격은 리치를 둘러싼 보호막 주위에 수백의 불똥만을 만들어냈을 뿐, 단 한 번의 공격도 유효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내 안에서 비롯된 붉은 성령이여! 날카롭게, 아주 날카롭게 벼리어진 촉으로 적도를 심판하라!”
이번에는 수십 발의 핏빛 화살 세례가 리치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그러자 신소율의 맹타에도 꿈쩍 않던 리치의 보호막이 벌떼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를 토해내며 크나큰 떨림을 보였다. 그러자 시종일관 여유롭게 다물려 있던 리치의 턱뼈가 작게 들썩이며, 시커먼 눈구멍이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실렌을 향했다.
“호오? 고리타분한 사제 주제에 신성력이 깃든 피의 주문이라…? 꼭 예전의 그 녀석들을 보는 것 같구나. 아니, 사실은 조금 반갑기도 해. 입에 담기에도 혐오스러운 벌레 녀석들이지만…….”
“효과가 있어! 지금이야!”
가느다란 팔뚝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며, 박지현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서 있던 실렌은 푸른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떨치면서 크게 부르짖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핏물로 만들어진 원형의 마법진이, 오른손에는 신성력과 언령으로 만들어낸 빛의 구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망할 계집이… 감히 내가 말하는데…….”
분노어린 리치의 말은 이번에도 도중에 끊기고 말았다. 그녀가 둥둥 떠 있는 바닥 아래에 쩌적 금이 가더니, 돌연 바닥이 크게 갈라지며 가지를 뾰족하게 곤두세운 거대한 나무줄기가 위로 솟구친 것이다.
콰과과과–!
순식간에 리치가 있는 곳까지 다다른 거목의 줄기는 그대로 꼬치구이를 만들 기세로 힘껏 보호막에 가지를 들이박았다.
콰아앙! 콰앙! 꽈광!
한 번, 두 번, 세 번… 거목은 마치 사람이라도 된 듯, 다섯 개의 거대 줄기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보호막을 후려쳤다. 그 강렬한 충격에 이미 한 차례 핏빛 화살의 폭격으로 약화되어 있던 보호막은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으나, 리치는 오히려 기껍다는 듯 웃었다.
“그 나이에 이토록 훌륭한 고목 소환이라니… 제대로 배운 마녀로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분야가 다소 편중된 것 같지만… 그 정도 재능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주문도 쉬이 익힐 수 있겠지.”
“망상은 무덤 속에서나 늘어놓으시지!”
“그 야무진 성격도 참 마음에 들어. 네 스승은 누구더냐?”
데모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쫙 편 손가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자 리치의 보호막에 무시무시한 파상공세를 퍼붓던 거목이 갑작스럽게 가지를 펼쳐 보호막을 크게 에워쌌다. 이내 거대한 줄기에서 수십 개의 잔가지들이 뻗어 나오며 보호막을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우지직! 우직!
한계까지 우그러진 보호막과, 그 안에 갇혀버린 리치. 무슨 짓을 해도 흠집하나 없는 철벽방어가 뚫리기 직전이었다. 탐사대는 고생 끝에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어어업!”
“으으으! 뒈져어–!”
“야아아아앗!”
푸른 기운을 발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가이탄의 검, 검은 돌풍을 일으키는 신소율의 쌍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핏빛의 화살들…… 그야말로 탐사대의 혼신의 힘이 집약된,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마력과 마력의 연쇄, 그리고 충돌. 이는 자연스레 강력한 폭발로 이어졌다.
콰아아앙!
귀가 찢어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잿빛 먼지구름으로 뒤덮인 진원지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리치에 근접해서 일격을 날린 가이탄과 신소율이었다. 힘과 힘의 충돌로 일어난 충격파가 이들의 몸을 강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학… 학… 가, 가봐요! 빨리!”
핏기 없이 하얗게 탈색된 실렌은 이미 극도의 탈력감에 빠진 상태였다. 거의 모든 마력과 신성력을 소모해서,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사제의 이탈은 파티의 궤멸이나 다름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설령 역류를 일으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네, 네!”
가공할 폭발에 잠깐 멍하니 있던 박지현은 이내 까득 잇소리를 내며 신소율과 가이탄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전편 유진이의 ntr에 대해서는… 음..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을 던지려면 저에게!
kokoja / 첫코 감사합니다!
월병인 / 기억 NTR ㅋㅋㅋ 구더기 화났어요!
은신설야 / 으으으 예상하신 분들이 많네요.. 기대에 부응하기 벅찹니다 ㅠ
향향공주 / 외모가 안되니 성격이라도 좋아야…
가식적썩소 / 외쳐! EEE! 감사합니다! 오타수정했습니다!
소렐라 / 구더기의 심리적 타격을 좀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玲][琿] / ㅠㅠ 죄송합니다.. 좀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북치네 / 비가 오면 땅은 더욱 단단해진다지요?
카이-아레시안 / 가면 + 교단빨입니다 ㅎㅎ
cxz778 / 현명한 선택이군요 소환사님!
호야[虎夜] / 윗댓글을 보니 천명에 가까운 분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한따가리 / 그렇지요 지금이야말로 쥔공의 인덕을 보여줄 때!
으뜸볍신처리하기2 / 그 내성… 조만간! ..아닙니다.
Feel~ / 담편 올렸습니다!
김도리131 / 부들부들…
코드표 / 부부는 일심동체니까요!
희망의불씨 /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을듯…
광환마룡 / 구더기도 괴롭습니다 ㅠㅠ
콜마 / 촉수물은 아니었습니다..
밤에만심심 / 헉… 거의 7/1이나 .. ㅠㅠ NTR보다 고통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