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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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탐사, 그 후
58# 탐사, 그 후
“으으음…….”
“언니!”
임유진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언젠가, 실렌에게 깜박 속아 넘어가 ‘와니의 멜랑꼴리’라는 독한 와인을 만취할 때까지 들이켰을 때처럼 머리가 아팠다. 마치 큼지막한 공깃돌들이 머릿속에 꽉꽉 들어차서, 그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며 머리가 쿵쿵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니! 나 알아 보겠어요?”
“으… 소율이니…?”
“맞아요! 휴우, 다행이다!”
이번엔 신소율이 꺅꺅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시끄럽게 울려댔다. 임유진은 반쯤 뜬 눈을 살며시 찌푸리며 힘없이 손을 들어올렸다.
“소율아, 미안한데 조금만 조용히…….”
“아, 죄송해요, 언니. 제가 너무 방정맞았죠.”
금방 다소곳하게 앉은 신소율은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대로 임유진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여기는… 어디…?”
“아, 아직 마녀회의 유적이에요. 부상자도 있고, 대부분 많이 지쳐 있어서 오늘 하루는 유적에서 쉬고 가기로 했어요. 언니는 어때요? 몸은 괜찮아요?”
“응, 난 괜찮아….”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한 임유진은 천천히 머리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녀가 누워 있는 곳은 낡은 가죽으로 덮여있는 돌침대였다. 특수한 처리를 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약간 변색된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아주 좋았다. 덕분에 표면이 딱딱한 침대 위에 누워있었음에도 비교적 푹신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철제 등불하며, 바구니와 그릇이 여럿 놓여 있는 찬장 등의 가재도구를 보아하니 마녀들이 실제 생활을 하던 방인 것 같았다.
방을 둘러보는 그녀의 기색을 알아차린 신소율은 시끄럽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더라고요. 웬만한 건 다 있다니까요. 하긴 사람이 살던 데니깐 당연 한가…? 잘하면 클럽의 비밀 은신처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아저씨랑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에 흩어져 있어요.”
“흩어져 있어…?”
“네. 보스도 처리했고, 데모나 언니가 다른 위험 요소는 없는 것 같다고 했으니까요. 탐사가 끝났으니 쉴 사람은 쉬어야죠. 실렌 언니는 지금까지 쭉 자고 있고, 가이탄 아저씨도 부상이 심해서 그 신입이 시중을 들고 있어요. 아저씨랑 데모나 언니는 여기서 얻은 성과들을 분류하고 있고요. 그리고 나는 언니 간호 담당. 헤헷.”
혀를 장난스럽게 쏙 내밀며 말하는 걸 보니, 임무 선택에 상당히 불순한 의도가 끼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 귀찮고 방대한 분류 작업을 하기 싫었던 거겠지.
“…그렇구나.”
임유진은 적잖이 안심했다. 신소율이 이렇게 농땡이(?)를 피울 정도라면, 다행히 파티에 큰 피해는 없다는 의미일 테니까. 보스를 처리했다는 걸 보면, 그 전투의 와중에 여러 가지 그녀가 모르는 위험이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이번 탐사도 순탄하게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안도감과 동시에 찾아온 것은 깊은 자책감이었다. 탐사대의 가장 큰 전력인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그때’의 기억들. 몸은 소울 트랩에서 빠져 나왔지만, 그녀의 정신은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우으으…….”
“어, 언니? 왜 그래요?”
멍하니 있던 임유진이 돌연히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자, 신소율은 크게 당황해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잠시….”
“네?”
“소율아, 잠시만… 잠시만 혼자 있게 해 줄래…?”
“언니…….”
머리를 감싸 쥔 채, 갈색 머리카락을 귀신처럼 늘어뜨린 임유진. 자신을 보지도 않고 말하는 임유진을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신소율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불안한 상태의 임유진을 잠시나마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린 신소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조용한 발걸음으로 얌전히 문을 열었다.
“…하아.”
신소율은 방문을 닫기 전, 그 문틈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자, 잠깐 멈칫거리며 임유진이 있는 방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마침 얼굴에서 손을 뗀 임유진의 맨얼굴이 망막에 덩그러니 맺혔다. 빗줄기처럼 드리워진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과 회한으로 점철되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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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나의 지시에 따라 곰팡내 가득한 서적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노구덕은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은 이마를 훔치며 허리를 폈다.
“휴, 거의 끝나가는군.”
유적에 잠들어 있던 마녀회의 유산은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그렇다고 정말 산더미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는 말은 아니고, 부피와 양을 따졌을 때 그만큼 가치 있는 물건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위 ‘대박’을 친 것이다.
먼저, 서적들. 마녀회의 정수가 담긴 네크로맨시 서적들은 해골, 좀비 기초 언데드 제조법은 물론이고, 병사, 기사, 전사, 궁수와 같은 각종 병과와 지휘관급의 언데드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법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거기에 망령, 듀라한(Dullahan) 같은 희귀하고 강력한 언데드 제조법까지. 이건 경매에 나간다 해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강력한 오리지널이었다.
헌터와 노예를 대신해서 대리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언데드를 ‘제대로’ 실전에서 활용하는 집단은 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괴물들이 모여 있다는 프라임리그의 ‘판데모니엄’ 밖에는 없었으니까. 어쩌면 암암리에 다른 집단에서 언데드를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판데모니엄에 속한 소수의 마법사들뿐이었다. 이는 언데드를 공식전에서 쓰기 위해서는 위원회와 연맹의 정식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규정도 규정이지만, 실제로는 언데드 분야에 관한 연구가 극히 미약하다는 것도 언데드가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실정에 비추어 본다면, 이 오리지널의 존재가 밖에 알려질 경우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마녀회의 네크로맨시 비전은, 그만큼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보물은 가진 것만으로도 죄가 되지. 한동안은 입에 자물쇠를 달고 다녀야겠군.”
수북한 책더미에서 시선을 돌린 노구덕은 이번엔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장비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유적 자체가 마법사들의 집단인 마녀회의 터전인 터라, 솔직히 장비 면에서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유적을 돌며 있는 대로 긁어 모아보니, 의외로 마법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비들이 꽤 쏟아져 나왔다.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만 봐도 그랬다. 대부분이 마법사용의 완드와 스태프였지만 검도 두 자루가 있었고, 작은 방패가 하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기다란 장창도 보였다.
그 이유에 대해, 데모나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좋은 장비를 쥐어주는 것도 언데드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지. 만약 리치가 여유를 부리지 않고 처음부터 고위 언데드에게 저런 마법물품을 장비해서 싸우게 했다면, 네가 오기 전에 누구 한둘쯤은 틀림없이 죽었을걸.”
그 외에도 십여 벌이 넘는 로브와 후드, 정교하게 세공된 장신구들을 무더기로 얻을 수 있었다. 하나 같이 마법 혹은 주술적인 힘이 깃든 물건들이었다.
헌터란 모름지기 이런 대박을 쳤을 때 보람을 느끼는 직업 아니겠는가. 마녀회의 유적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덕분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실렌을 제외한 탐사대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흥겨웠다.
일행중 물욕과는 가장 거리가 먼 가이탄만 해도 아직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대의 장비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뿌듯한 마음으로 정리된 성과들을 내려다보던 노구덕은 이내 그 몸을 돌려, 물건들을 살펴보는 가이탄의 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박지현에게 다가갔다.
“박지현 헌터.”
“예?”
노구덕은 멍한 눈을 깜박이는 박지현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혹시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게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네에…?”
잠시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듯, 빙글 눈을 굴리던 박지현은 갑자기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제가 뭘 했다고 감히!”
“활약상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박지현 헌터는 탐사대의 일원으로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탐사를 완수했습니다. 이 장비들은 당연히 아이리스 소속으로 공을 세운 헌터들에게 돌아갈 테지만, 탐사대원으로 직접 성과를 얻어낸 박지현 헌터는 누구보다도 최우선적으로 장비를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신소율 헌터나 가이탄 헌터와 겹치지만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장비를 지급하도록 하지요.”
박지현은 당황스런 빛을 지우지 못한 채, 노구덕의 얼굴과 바닥에 깔린 장비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형형한 예기를 발하는 병장기들은 마법 물품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가 봐도 대단한 성능을 지닌 무구들임을 알 수 있었다.
‘가지고 싶다.’
무인으로서 당연히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욕심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녀는 이번 탐사에서 본인이 납득할 수 있을 수준의 공을 세우지 못했다. 탐사대원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구경꾼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활약은 보잘 것 없기 짝이 없었다. 그런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던지… 탐사 와중에도 자괴감에 휩싸인 게 수십 번이었다.
박지현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노구덕은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까? 무사수행을 하겠다는 박지현 헌터의 계획 말입니다.”
“…….”
박지현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지금에 와서는 깊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번 유적 탐사를 거치면서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겨우 탐사 한 번에도 빌빌거리는 자신이 스퀘어 대륙을 혼자 돌아다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스퀘어의 괴물들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했고, 강력했다. 겁 없이 설치던 하룻강아지가 이제야 겨우 험한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리스로 오십시오. 아이리스에서라면 박지현 헌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습니다.”
박지현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녀는 노구덕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장, 제게…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이유가 뭐죠?”
“박지현 헌터는 아이리스에 없는 유형의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없는 유형의… 인재?”
박지현은 홀린 것처럼 그의 말을 곱씹었다. 노구덕은 슬슬 그녀가 넘어올 것 같자,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못을 박았다.
“예. 아이리스가, 제가 박지현 헌터에게 기대하고 있는 건…….”
“아저씨이–!”
“…크흠.”
진지한 열변을 막 토해내려던 노구덕의 안면근육이 살짝 구겨졌다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얘가 하필 이럴 때 끼어 들어서는…….’
“소율아, 지금은 좀….”
“아저씨! 유진이 언니가 일어났어요! 근데, 표정이 좀… 많이 안 좋아요….”
신소율을 엄하게 타이르려던 노구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다급히 몸을 틀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박지현에 대한 영입 건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박지현 헌터, 이 얘기는 내일 이이서 합시다.”
“네? 저기, 대장…….”
박지현은 황급히 자리를 뜨는 노구덕의 뒤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신소율이 아니었다.
“어허, 거기! 초짜 언니! 잠깐 스톱!”
“……?”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지, 지금은 안 돼. 그쪽은 오늘 하루 접근 금지야.”
영문 모를 소리에 박지현은 미간을 찡그렸다.
“뭔 소리야? 난 유진이 언니가 걱정 돼서…….”
“허허, 박지현 헌터.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좋겠네.”
여태껏 장비 관찰에 여념이 없던 가이탄까지 거들고 나서자, 박지현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노구덕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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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일요일분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술 먹고 들어온터라 조금만 잔다는 것이… 아침 다되어서 분량 마무리하고 올립니다. 속이 텁텁하군요.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자야겠습니다.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호야님 오타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