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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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복귀
59# 복귀
딕툼에 위치한 아이리스 오너의 집무실. 노구덕이 탐사를 나간 지금, 비어 있는 그 집무실은 오너 대리가 사용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오너가 부재 시, 그 권한을 이어받는 것은 클럽의 단장. 그런 이유로, 집무실 안은 평소와 같은 희미한 오크 노린내가 아닌 달착지근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쮸웁.
“흐으으으…….”
파이프 속에 담긴 무언가를 쪼옥 빨아들인 소피아는 눈썹을 잘게 떨며 좀비가 흐느적거리듯,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노곤하게 풀린 눈자위와 끈적이는 숨소리. 어딜 봐도 단순한 액상사탕을 빨아먹고 있는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문득, 눈만을 위 아래로 움직이며 기계적으로 서류를 훑어 내리던 표정에 미미한 변화가 찾아왔다.
“흐으응… 이거 뭔가…….”
나른하게 퍼져 있는 얼굴에 짙은 의혹이 깔리려는 찰나, 집무실 문이 세찬 비명을 지르며 활짝 열렸다.
탕!
“이모!”
“…저는 이모가 아니랍니다.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소피아 이모!”
“네, 네. 하여튼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죠.”
막무가내식 호칭에도 익숙한 듯 대꾸하는 소피아. 여전히 그녀는 서류뭉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이미 밖에서 미미하게 다다다 달려오는 소리를 감지했을 때부터, 이런 전개는 그녀의 상정 내라고 할 수 있었다.
변화가 있다면, 물고 있던 파이프를 슬며시 책상 아래로 내린 것 정도였다. 허나, 그녀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방문자에게는 그조차도 너무 눈에 띄는 동작이었다.
난폭한 방문자, 임가희는 새초롬하게 눈을 빛내며 소피아가 걸터앉아 있는 책상으로 총총히 다가섰다.
“이모! 그거 나도 한입만 먹어볼래!”
“이건 애들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애들’이라는 말에 임가희는 양 볼을 개구리처럼 빵빵하게 부풀렸다. 애가 애 취급 받는 걸 싫어하는 건 어떤 애나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잖아도 커다란 눈망울을 왕방울 만하게 치켜 뜬 것이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소피아의 신경은 오로지 서류철에만 쏠려 있었다.
“나도 이제 열 살인데!”
“그러니까 그런 걸 애라고 해요. 다른 말로는 꼬맹이. 알겠죠?”
여전히 건성건성한 대답.
“그럼 세영이, 세희 언니는 어른이야?”
“흠, 뭐 그 정도면… 반 어른, 반 꼬맹이 정도 되겠네요.”
“히잉… 그거 먹어보고 싶은데…….”
가희가 파이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소피아는 재빠른 손동작으로 책상 밑의 서랍장에 파이프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열쇠로 걸어 잠그기까지. 탁 소리를 내며 파이프가 서랍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전면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자 여전히 무심하게 서류철을 보고 있던 소피아의 얼굴에 쓰디 쓴 고소가 어렸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약은 하면 안 되지.’
마약까지는 아니지만, 소피아 전용의 파이프에 담긴 액상 사탕에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지구로 치면 일종의 항우울제라고 할까. 아니면 담배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절대 애들의 손에 닿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물론 이건 노구덕에게는 비밀이었다. 어쩌면 이미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단내가 너무 심한가? 향이 없는 종류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네.’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메모지에 ‘무향 사탕 구매 고려.’라는 짤막한 글귀를 적어 넣은 소피아는 그제야 서류를 내려놓았다. 경험상, 상대를 해주지 않으면 저 꼬맹이는 몇 시간 동안이나 이곳에 죽치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왕림하셨나요? 꼬맹이 주인님.”
“꼬맹이 아냐.”
“그럼 작은 주인님이라고 불러드릴까? 아니면 줄여서 작주?”
어린애라도 자길 놀리는 거라는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가희는 분한 눈빛으로 소피아의 싱글거리는 얼굴을 똑바로 쏘아봤다.
“씨이! 내 이름은 가희야! 임.가.희!”
“그쪽 관례에 따르면 임가희가 아니라 노가리…가 아니라… 임가희, 예쁜 이름이네요. 정말 예쁜 이름이야.”
“……?”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머리를 기우뚱하는 가희. 중얼거리는 음성이 작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소리 내어 발음해 보니 어감이 영 구리지 않은가. 자칫하면 어린애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뻔했다. 소피아는 평소처럼 무신경하게 내뱉을 뻔한 자신의 입버릇을 탓했다.
“하여튼, 저는 바쁘니 놀아줄 사람을 찾고 있거들랑 아래층으로 가도록 하세요. 세희나 세영이가 있을 테니.”
“세영이 언니는 너무 무서운데……. 그리고 언니들, 지금 아래층에 없어.”
“없다고요? 얘들이 어딜 간 거지? 벌써 일이 끝났을 리는 없을 텐데…….”
소피아가 안색을 굳히며 일어서려는 찰나, 어느새 책상 옆으로 다가온 가희가 그녀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모, 엄마랑 아빠는 언제와?”
“글쎄요… 아마 몇 밤 더 자면 오시지 않을까요.”
정기적인 탐사가 아닌, 난이도를 알 수 없는 유적을 탐사하는 일이다. 임유진이 함께한 만큼 무슨 큰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복귀 날짜를 가늠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애초에 그녀는 유적의 위치도 모르지 않던가.
하지만 가희는 소피아에게 물어보면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었을 거라 기대한 듯, 크게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아는 소피아는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였으니까.
“응… 알았어. 일 해, 이모. 방해하지 않을게. 구경만 할 거야.”
“…….”
소피아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내심으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방해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임가희가 있으면 사탕(?)을 먹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선뜻 그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토끼 귀처럼 처량하게 늘어진 작은 어깨가 눈에 밟혀서? 그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뭔가… 뭔가 더 깊은, 가슴 어림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정이 메아리치는 기분이었다.
“히유우… 알았어요.”
“이모, 고마워!”
결국 소피아는 가희의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구석에 마련된 푹신한 의자에 냉큼 몸을 묻었다. 이후로는 좀 전과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가희가 구경을 하고, 소피아는 서류를 쳐다본다.
꾸욱.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몇 분, 서류뭉치를 쥐고 있던 소피아의 손에 슬며시 힘이 들어갔다. 한번 의식을 하게 되자 계속 가희가 있는 쪽이 신경 쓰인 탓이다. 그렇다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도 없고.
‘이것들이 어딜 쏘다니는 거야?’
소피아는 만만한 안씨 자매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명색이 단장 보좌면 열과 성을 다해 상관의 편의를 봐 줘야 할 게 아닌가. 이런 시국(?)에 골칫덩이를 맡기고 농땡이를 피우다니. 나중에 단단히 손을 봐줄 참이었다.
잠시 후, 소피아는 더는 신경이 분산되는 걸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가희 님?”
“응!”
소피아가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기쁜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가희.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지, 소피아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놀아줄 사람이 없나요? 친구들은 어디 갔어요?”
“으응… 다들 학교에 갔는걸.”
“아하.”
이제까지 가희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소피아는 지금이 되어서야 겨우, 이 시간만 되면 가희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홀로 건물을 어슬렁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희의 친구들, 그러니까 고아원의 아이들은 아이리스에서 의식주를 도맡아 지원하고 있다. 지금은 그 규모가 커져 원래의 고아원뿐 아니라 고아원 십여 개, 지원하는 아이들 수만 400여 명에 달하는 ‘사업’이었다. 대외적인 총책임자는 임유진이었고, 실무진은 고아원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안씨 자매. 말인즉슨, 이 고아원 사업은 예전 소피아가 제안한 노구덕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전담 사업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업부에서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교육’. 당연한 말이지만 노구덕은 주기적으로 고아원을 순회하며 아이들 중에서도 쓸 만한 인재들을 선별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써먹으려면 일단 기본적인 읽기 쓰기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원주민인 아이들에게는 헌터들이 먹는 것과 같은 언어팩이 없었기에, 아이리스에서는 소학교 같은 것을 만들어 읽기, 쓰기, 산술과 같은 기초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 없이 자란 고아원 아이들과는 달리, 가희는 임유진의 선행학습 덕분에 읽고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기초 산술도 마찬가지. 그래도 처음에는 친구들을 만나러 몇 번 학교에 가기도 했지만, 금세 그 지루한 분위기에 질려 돌아오고 말았다. 클럽 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1시간만 덜 자지, 뭐. 그럼 오늘은 2시간 정도 잘 수 있으려나….’
소피아는 아예 서류철을 덮어버렸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나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가희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왕 시간을 할애하기로 한 거, 소피아는 좀 더 본격적으로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줄 작정이었다.
‘어색하네.’
이런 것, 어쩐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적을 죽이고, 속일 모략과 암계를 짜내던 머리로 애를 돌보다니.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 소피아는 나른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가희 님.”
“으응.”
언제 가져왔는지, 구석에 있던 의자를 책상 쪽으로 바짝 당겨 앉은 가희는 살짝 떠 있는 발을 살래살래 흔들며 소피아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던 소피아는 가벼운 상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리긴 해도 이 또래 여자아이라면 으레 고심하는 문제 하나쯤은 있을 법 하지 않은가.
“요새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나요? 마침 시간이 남으니, 괜찮다면 제가 상담해 드릴게요. 우후후… 아, 친구들의 학교 문제는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제외…….”
“응, 있어!”
가희는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바락 외쳤다.
“…말해보세요.”
딴에는 아주 큰 비밀을 말하는 것인 양, 제법 근엄한 얼굴을 한 가희는 누구 다른 이가 없나 주변을 휘휘 살피고는 매우 낮은 목소리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소율이 언니가 내 언니인 것 같아.”
“……?”
뭔가 알쏭달쏭한 발언에 잠시 동안 눈을 깜박이던 소피아의 얼굴에 기이한 표정이 새겨졌다.
“그러니까… 신소율 헌터가… 언니라고요? 친언니?”
“우움, 그건 모르겠는데, 아빠 딸은 맞아. 저번에 들었거든.”
“듣다니… 뭘…….”
이건 그녀의 똑똑한 머리로도 도무지 일의 전말이 파악이 되지 않는다. 지자(知者)로서의 호기심이라고 할까. 소피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희의 이야기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언니가 아저씨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거. 언니가 아빠한테 아빠! 사랑해! 라고 했어!”
무척이나 구체적인 증언. 듣고 있던 소피아는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언제였죠? 낮? 밤? 어디서 그랬어요?”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가희는 또박또박 잘도 대답을 했다.
“응, 밤이야. 자다 깨서 엄마한테 가다가 들었어.”
“…신소율 헌터 방 앞에서요?”
“응.”
“또 뭐라고 하던가요?”
“계속 사랑한다고만 하던걸. 으으음… 개 짖는 소리도 들렸어.”
“…개 짖는 소리?”
“왕! 왕! 이런 거.”
‘…앙! 앙! 이겠지. 어휴.’
비로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소피아는 무척 난감해진 얼굴로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을 배배 꼬아댔다. 살짝 기분전환이나 할까 싶어 시작한 상담 일이 뜬금없는 성교육 시간이 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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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이틀 연속 연참!
… 미리 공지드립니다만 주말에 일이 생겨 휴재, 혹은 많아야 한편 정도 올라올 것 같습니다. 나중에 따로 사세히 공지하겠습니다.
오늘은 가게에 노트북 충전기와 마우스를 놓고 와서 배터리 끊기기 직전에 겨우 분량을 채웠네요. 리리플 달아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ㅠㅠ 오타수정도 못했어요. 퇴근한 다음에 전편이랑 한번에 손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