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37)
0237 / 0777 ———————————————-
61# 살모사의 꼬리
61# 살모사의 꼬리
결과적으로 말하면, 데모나 건에 대한 노구덕의 선택은 ‘두고 보기’였다. 어떻게 보면 보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만,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와는 달리, 그가 가지고 있는 스카우터의 눈과 데모나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임유진과 신소율, 실렌에게는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으니 데모나를 지켜봐 달라, 라고 주의를 준 것이 차이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이도저도 아닌 선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노구덕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이리스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데모나고, 당장 그녀가 어떤 위해를 끼친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입장을 십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데모나와 가깝게 지내는 임유진, 신소율에게 넌지시 언질을 해 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감시역’을 붙여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소피아에게는 바이론의 행적을 찾으면서 데모나와 접점이 있는지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더불어, 눈에 걸린 주술을 풀 방도도 따로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있는 셈. 유비무환(有備無患), 이렇게 해 놔야 나중에라도 데모나가 딴마음을 먹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 건 질색이었다.
무엇보다 사방이 적들로 득실거리는 이 마당에, 괜히 민감한 부분을 들쑤셔서 내분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대하지만 속으로는 눈엣가시처럼 아이리스를 못마땅해 하는 마티아스 일파.
대뜸 찾아와서는 폭언을 지껄이더니 또 대뜸 사라져버린 미친년, 그리드. 그리고 그녀 옆에 붙어 있는 의문의 가면남.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미지의 적, 벌레교단의 마지막 교황 발레기우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교황 발레기우스는 차치하더라도, 드러난 적들은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대도시를 쥐락펴락하는 연맹 위원에, 동부의 빅클럽 비트레이의 오너. 이 중 가장 위험한 인물은 역시 비트레이 오너 그리드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랄 맞은 성격에, 마티아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이쪽과 연계를 할 가능성도 다분했으니까. 단지 조금 불편한 관계일 뿐인 마티아스를 적대 관계로 집어넣은 것도, 그리드와 협력할 소지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었다.
‘마티아스 위원은 언니의 대부(代父)이기도 해요. 언니가 젊은 나이에 비트레이 오너로서 일찍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후견인으로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세상일이란 게 참 요지경이었다. 아이리스와 레드 고르곤이 주스트를 했을 당시, 레드 고르곤 측 공증인으로 선 마티아스는 아이리스에 상당한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그것이 비록 즉흥적인 변덕에 불과할지라도, 그 변덕 덕분에 ‘아이리스’라는 클럽이 탄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래서 사람 앞일은 모른다고 하는 것일지도.
어쨌든, 노구덕으로부터 마녀회의 유적에서 있었던 일을 비롯해, 그리드와의 만남 등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들은 소피아는 어두운 낯빛으로 경고했다.
‘만약 언니가 아이리스를 친다고 한다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요. 대비를 서둘러야 하겠네요.’
‘왜지?’
‘아이리스가 빅리그로 가기 전에 해결을 보려고 할 테니까요. 미들리그 클럽을 건드리는 것과 빅리그 클럽을 건드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거든요.’
스몰리그와 미들리그가 그렇듯이, 미들리그와 빅리그 역시 클럽의 위상과 영향력에서 큰 차이가 났다. 당장 연맹 위원의 선출에 영향을 끼치는 투표권부터 늘어나는 셈이니. 즉, 아무리 이스턴리그에 속한 비트레이라고 해도, 유야무야 덮어 버릴 정도로 만만한 위치가 아니게 된단 뜻이다.
아이리스는 현재 빅리그 승격을 잠재적으로 확정지은 상태. 연초가 지나면, 딕툼을 벗어나 강철의 도시 칼립스에서 쟁쟁한 클럽들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 요컨대, 앞으로 서너 달 정도가 고비였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트레이가 뭔가 수를 쓰기 전에 그리드의 목을 따버리는 것이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 가능한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대책을 세워놔야 했다. 그래서 노구덕은 소피아의 조언을 받아들여 곳곳에 촘촘한 거미줄을 쳐 놓았다.
그리드가 멍청이가 아닌 한, 손을 쓰기 전에 어떻게든 아이리스를 정탐하려 할 터. 거기에 착안하여 깔아 놓은 덫이었다. 이쪽에게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쪽도 촉박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나, 마침내 놈들의 꼬리를 밟는데 성공한 것이다. 조급함에 쫓긴 살모사가 미처 숨기지 못한 꼬리를.
++++++++++++++++++++++++++++++
‘오늘이군…….’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든 생각. 노구덕은 눈곱이 덕지덕지 낀 눈꺼풀을 대충 비빈 뒤, 끈적거리는 눈가를 깜박이며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시간은 오전 6시 반. 8시에 메이슨과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며 보고를 듣기로 했으니, 아직 한 시간 반 가량이 남아 있었다. 노구덕은 좀 더 눈을 붙여둘까 고민하다, 고개를 내저으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워낙 덩치가 큰 탓에 침대가 한바탕 요동을 쳤다. 그 반동에 단잠을 깼는지 옆에서 부스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웅…. 벌써 아침이에요…? 몇 시?”
“6시 반이다. 더 자라.”
“응…….”
이불 위로 빼꼼 눈자위만 내민 신소율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대답하고는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 모습이 워낙 얌체처럼 느껴진지라, 노구덕은 이불속으로 슬그머니 손을 집어넣었다.
매끄러운 옷자락을 따라 내려가자, 야들야들하고 따스한 맨살이 만져졌다. 파자마 상의를 대충 입고 있는 상체와는 달리, 신소율은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어젯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까무러쳐버렸으니 바지를 입을 겨를이 어디에 있겠나. 그녀가 많이 피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노구덕의 심술은 멈추지 않았다. 거친 손마디가 맨살에 닿자, 여체가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상관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제법 단단하게 잡힌 복근과 그 사이의 옴폭 파인 배꼽을 한동안 간지럽히듯 어루만지던 손가락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아래로 이동했다. 날렵한 골반을 지나쳐 나타난 것은 여인의 삼각지를 뒤덮고 있는 가슬가슬한 거웃. 어젯밤의 격렬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웃은 아직까지도 몇 군데, 딱딱하게 엉겨 붙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
최종 목적지를 목전에 둔 음흉한 손가락이 한발짝 더 나아가려는 찰나, 그 행동을 제지하는 나직한 경고성이 있었다.
“…스톱. 동작 그만.”
고개를 들어보니, 다시금 눈가만 빤히 내놓고 있는 신소율이 보였다. 신소율은 노구덕과 눈이 마주치자 금방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만지기만 하는 건데 뭐 어떠냐?”
“지금 누구 덕분에 엄청 쓰라리단 말이에요. 만지기만 해도 아파요.”
어쩐지 둔덕지가 꽤나 통통하게 느껴지더라니, 아직 부기가 덜 빠진 모양이었다.
“그러냐? 쩝…….”
여기서는 남자가 한발 양보할 수밖에 없다. 노구덕은 지난 경험을 통해, 신소율이 이렇게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자고 있어라. 정 아프면 나중에 약이라도 발라.”
“응. 알았어요. 아저씨도 수고요….”
작게 잦아드는 목소리. 달팽이처럼 스르르 재차 이불속으로 말려들어가는 신소율을 보고 있던 노구덕은 욕실로 들어가 가볍게 세안을 한 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싸늘한 겨울 공기를 품고 있는 복도에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용인들 외에 다른 헌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와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사용인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던 노구덕이 향한 곳은 실렌의 방이었다.
“실……?”
별 생각 없이 노크를 하려던 손이 도중에 멈춰서고, 입에서 튀어나오던 실렌의 이름이 중간에 뚝 끊긴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때문이었다.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에, 노구덕은 귀를 방문에 가져다 댔다. 사용인들이 지나치며 묘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지만, 노구덕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킁… 크흡… 흐읍…….”
“…….”
숨소리의 주인은 분명 실렌인데, 그 소리가 어디 코가 막힌 것처럼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자나보군. 그런데 실렌이 코골이를 했던가?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대수롭잖게 단정지은 노구덕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이윽고, 방 안에 펼쳐진 정경과 대면한 그는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쳐들린 채, 연신 씰룩거리며 춤을 추는 궁둥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곧게 뻗은 허리와 몸을 떨 때마다 잔잔하게 물결치는 푸른 머릿결.
“크흥… 흥아…….”
실렌은 노구덕이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엎드린 자세로 기묘한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처음엔 자기 위로를 하는 중 인줄 알았는데, 신음소리가 그쪽(?)과는 영 달랐다. 뭔가를 깊게 흡입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자세히 보니 벌건 얼굴이 파묻힌 베개 사이로 정체불명의 천 쪼가리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일 분 정도 넋 놓고 실렌의 치태를 지켜보던 노구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야. …뭐 하냐?”
“누, 누구…! 헙! 허으하, 히아아아앗-!”
기겁해서 뒤를 돌아본 실렌은 노구덕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깩깩 질러대며 난리를 피우더니, 곧바로 황급히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마 도둑질을 하다 들킨 좀도둑도 이처럼 식겁하지는 않을 터. 이쯤 되자 어지간하면 개인 사생활을 존중해 주려고 했던 노구덕도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
창피함과 민망함에 이불 속으로 숨어버린 것 같은데, 오들오들 떨리는 엉덩이는 그대로 밖에 내놓은 채다. 지가 무슨 타조도 아니고, 얼마나 정신이 쏙 빠졌으면 저런 멍청한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그 꼴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노구덕은 불현듯 손을 들어 그 탐스러운 엉덩이를 세차게 후려갈겨버렸다.
처얼썩-!
“꺄아아악!”
떡을 치듯 찰진 소리였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실렌은 불이 난 엉덩이를 부여잡고 벌떡 일어나더니, 노구덕을 노려보며 빼애액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아프잖아요! 어디 숙녀의 엉덩이를 그리 험하게…!”
“숙녀는 무슨. 갖다 붙이면 다 숙녀냐? 너, 아침부터 뭘 하고 있었던……. 어.”
“으아아아!”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음성이 뚝 끊겼다. 노구덕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 너머, 베개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본 실렌은 또다시 요란한 비명을 내지르며 허겁지겁 이불을 덮어썼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노구덕은 베개 위, 흥건하게 젖어있는 천 쪼가리의 정체를 파악한 뒤였다.
일 초가 일 년처럼 느껴지는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노구덕의 입이 열렸다.
“…야.”
“…….”
동그랗게 솟아오른 이불더미는 대답이 없었다. 단지 와들와들 떨기만 할 뿐.
“그거… 혹시.”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유진이 팬…….”
“아아아아아아아아!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린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걸까. 난리법석을 피우는 이불더미를 딱하게 보고 있던 노구덕은 진한 한숨을 자아냈다.
“…쯧쯧.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너도 참 그렇다. 취향이니까 존중은 해준다마는… 어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망조야, 망조.”
그나마 남아있는 한 가닥 자존심을 통렬하게 쪼개버리는 일침. 거기에 더해 마지막 후속타까지 얻어맞은 이불더미는 소란을 멈추고 급격히 잠잠해졌다.
“…으흐… 으아앙…….”
잠시 후, 이불 안에서 세상을 다 잃은 듯 더없이 처량한 울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일단 한 편으로 가볍게 한 주의 스타르를 끊어 봅시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나깨나 문조심하시고요! 집에 아무도 없더라도 방심하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