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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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초전(初戰)
하지만, 노구덕의 주먹이 부순 것은 헨더슨의 머리통이 아니라 그 뒤에 있던 헛간 벽이었다. 꼼짝없이 죽을 처지만 기다리던 헨더슨의 몸이 갑자기 귀신처럼 사라진 탓이다.
‘블링크(Blink)!’
단숨에 헨더슨을 저승으로 보내버리려고 했던 노구덕은 헛웃음을 지었다. 빅리그 급 마법사라더니, 과연 속절없이 죽어주진 않았다. 단거리 순간이동기인 블링크를 실전에서 사용하는 마법사를 보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블링크는 마법사들의 여벌 목숨이라 불리는 주문이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다. 마력 소모도 극심하고, 무엇보다 이동 거리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바로 뒤쪽에 없던 기척이 새로 나타나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잠수 끝에 수면 위로 올라온 사람처럼 격렬하게 헐떡이는 숨소리. 코앞에서 사라졌던 헨더슨이 분명했다.
그 거리는 불과 4m. 역시 헛간 밖으로 도망치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노구덕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2차 돌진을 감행했다. 무릇 마법사란 것들은 죽일 수 있을 때 필히 죽여 두어야만 했다. 살려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들이니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달려오는 노구덕을 보았음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고깔 아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커허, 허어억! 처, 척살대장! 살려주시오!”
“막아라!”
산발 사내는 헨더슨이 애원을 하기 전부터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로서도 헨더슨이 이대로 죽어버리는 건 곤란했으니까. 동맹 세력과의 중요한 연락책을 맡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헨더슨을 지키라는 ‘주교’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들은 대장의 명령에 따라 노구덕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사마귀의 칼날과 거미줄로 엮인 그물, 맹독을 품은 벌침이 쏟아졌다. 그러나 마주 달려오는 노구덕은 조금도 주눅 든 것 없이, 오히려 기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럴 줄 알고 있었지!’
사마귀 사내들의 주특기는 그 절삭력과 스피드를 살려 날파리처럼 치고 빠지는 전술이다. 도망치는 것들을 일일이 붙잡기에는 까다롭지만 하나하나 정면 승부를 한다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제 발로 덤벼온다면 그야말로 두손 들어 환영할 일.
그가 헨더슨을 집요하게 노리는 것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사내들이 덤벼올 것을 바랐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하나밖에 없는 마법사라면 주요 인물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말하자면 헨더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질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노구덕은 황소처럼 돌진하며 그 경로를 가로막는 사내들을 향해 난폭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날파리들이!”
쾅!
강렬한 어퍼컷이 정통으로 들어가자, 가장 처음으로 달려들었던 사마귀 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치솟아 지붕을 뚫고 날아갔다.
“모여 봤자!”
콰직!
두 번째 사내는 심장이 갈비뼈째 박살이 났다. 송두리째 함몰된 가슴을 움켜쥔 사내는 입을 쩍 벌리고 고꾸라졌다.
“날파리들이지!”
뿌드득!
이번엔 거미줄 사내였다. 끈적거리는 거미줄이 팔에 달라붙자, 노구덕은 줄다리기를 하듯 거미줄을 휙 잡아당겼다. 그 뒤,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온 거미 사내의 목덜미에 묵직한 손날치기를 넣었다. 그것으로 끝. 목이 대롱대롱 꺾여버린 사내의 눈에 생명의 빛이 푹 꺼져버렸다.
쩌어엉!
결국 노구덕의 돌진을 멈춘 것은 대장인 산발 사내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노구덕의 괴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르륵 뒤로 밀리고 있었다.
산발 사내는 투명한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이를 갈았다.
“끄으으…! 정보가… 잘못되었다.”
그가 사전에 전해 받은 노구덕의 힘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잘해봐야 미들리그 최상위권 수준. 충왕각인이 두 개, 많아야 세 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척살대의 전력이라면 무리 없이 없앨 수 있는 대상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 처참한 광경은 뭐란 말인가. 한순간에 충왕각인 사용자들로 구성된 척살대가 괴멸되었다. 노구덕이 쓰는 충왕각인은 그들의 것과는 뭔가가 달랐다. 촉매를 먹여 강화된 ‘사마귀의 절삭력’은 두꺼운 강철도 썰어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경질 칼날이 이가 빠질 정도라니… 이건 사기였다. 그가 아는 한, 현존하는 충왕각인 중 이토록 괴물 같은 방어력을 가진 각인은 없었다.
이제 그나마 남은 희망이라고 한다면, 후발대가 제 시간에 맞춰 도착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노구덕 또한 각인의 사용자인 이상, 저 신들린 것 같은 무용(武勇)도 오래가지는 못할 터. 촉매가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노구덕의 제삿날이었다.
“크윽!”
겨우겨우 노구덕을 막아내고 있던 산발 사내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사마귀 손은 이가 다 깎여나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이래서야 노구덕은 고사하고 후발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끝인가…….’
산발 사내의 눈빛이 암울하게 젖어드는 사이, 노구덕은 한가롭게도 소피아와 텔레파시를 주고받고 있었다.
‘거의 끝난 것 같은데요? 대단하세요, 주인님.’
‘말도 마라. 멀쩡해 보여도 지금 여기저기 쑤시고 있으니까.’
‘주인님이 한창 얻어맞고 있을 땐 저도 간담이 서늘했다고요. 진짜 아파보이던데.’
‘방심하게 만들려고 그랬지. 이 사마귀 같은 놈들, 몸놀림이 여간 재빠른 게 아니거든.’
‘하여간 어울리지 않게 영악하시다니깐. 빨리 끝내고 배후를… 주인님! 뒤, 뒤!’
‘……!’
화악!
갑자기 등허리가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워졌다. 배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짓쳐드는 살기를 감지했을 땐, 뇌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있었다. ‘파리의 초감각’ 덕분이었다.
물 찬 제비처럼 몸을 날려 살기를 피해낸 노구덕은 연이은 맹타에 또다시 급히 몸을 굴려야만 했다.
쾅!
좀 전까지 그가 있었던 자리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거센 폭음이 일었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노구덕은 휘날리는 먼지에도 아랑곳 않고 먼지구름의 어느 한 지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잿빛 바람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불시의 습격자. 그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이정한……?”
“뭐야! 말도 안 돼! 정한 오빠가 왜…!”
맥이 탁 풀린 노구덕의 중얼거림에 이어, 느닷없이 헛간 구석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뾰족하니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어둠 속에서 작고 가냘픈 인영이 뚝 떨어져 내렸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은신을 풀어버린 신소율이었다.
그녀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반면, 노구덕과 신소율의 앞에 나타난 이정한의 낯빛은 언제나 그렇듯이 잔물결 하나 없는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이정한의 등장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헨더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사이에 무슨 사연이 얽혀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마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수하를 거의 다 잃어버린 산발 사내는 입장이 조금 곤란한 처지였다. 그는 얼른 이정한의 앞에 부복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주교님! 제가 부족해서…….”
“척살대의 일이라면 신경 쓰지 마라. 정보가 미흡했던 것이지, 네 책임이 아니다.”
산발 사내에게 자연스럽게 하대하는 이정한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이번 일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소율의 눈빛에서 초점이 아득하게 흐려졌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에서 벌벌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주교라니…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응? 정한 오빠…….”
“보는 대로다. 너와 내가 적이라는 거지.”
“그런… 왜, 왜 우리가 싸워야 되는데? 우리, 퀸즈가든에서도….”
“소율아, 그만해라.”
노구덕은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듯했다. 안색이 조금 딱딱하게 굳어있긴 해도 신소율처럼 크게 동요하는 빛은 없었다.
“아저씨…….”
“내 지시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 책임은 나중에 물으마. 지금은 밖에 나가 있어라.”
“하지만…….”
“신소율. 내 말, 안 들을 거냐?”
요 사이 들어본 적 없는 지엄한 어조에, 무어라 말하려 달싹이던 신소율의 입술이 자물쇠를 채운 듯 꾹 다물려졌다. 애처로운 눈으로 노구덕과 이정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신소율은, 빗물에 젖은 고양이처럼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리고는 터덜터덜 걸어 헛간 밖으로 나가버렸다.
‘소율이를 부탁하마. 잔정이 많은 녀석이라 아마 많이 놀랐을 거야.’
‘네에. 애보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모처럼 소피아의 음성에 활기가 돌았다. 제 3자 입장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무척 흥미진진한 모양이었다.
‘달라질 건 없다. 일단 묻고, 말이 안통하면 싸워야지. 대충 짐작가는 것도 있고.’
‘그 다음에는요?“
‘…위험한 놈이야. 갱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죽여야겠지.’
소피아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노구덕은 이정한을 죽일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정한의 저널 정보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저널 번호(Journal Number) : K903-32003] [이름(Name) : 이정한] [종족&인종(Tribe&Race) : 인간(Human)] [클래스(Class) : 도살자(Butcher)] [재능(Talent) : Lv3 무투(C), Lv3 부술(C), Lv3 마법(UC), Lv1 주술(R), Lv3 금속(R), Lv2 바람(R), Lv1 피(R)] [특성(Characteristics) : 숙련병, 나무꾼, 투척의 대가, 광신자]퀸즈가든에서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재능, 특성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주술’과 ‘피’에 관한 재능은 충왕각인에서 비롯된 것이겠고, 무엇보다 ‘광신자’란 특성. 그때는 사이비 종교에 물든 거겠지 하며 별 의미 없이 지나쳤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저건 대놓고 ‘교단’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는 특성 아니던가.
물론 이런 가정은 무의미했다. 그때에는 이정한이 워낙 빨리 사라진 탓도 있었고, 와일드팽과의 마찰 때문에 이정한에게 신경을 돌릴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벌레교단의 수하라는 것을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왜 그때 눈치 채지 못했을까…. 아니, 아니지. 이제 와서 돌이켜본들 뭔 소용이냐.’
잠시지만 뒤늦은 후회가 스쳐지나갔다. 마음을 정리한 노구덕은 이정한의 무덤덤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초기 아이리스 멤버를 제외하면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믿을만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틀어지게 되다니.
“사람 일이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군. 쯧…. 이정한, 너도 발레기우스의 부하냐?”
“그래. 당신을 처리하란 지시를 받았지.”
“주교라고 했지? 벌써부터 아랫사람을 부리고… 2년 차 헌터치고는 꽤 출세했구나.”
“아이리스 오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못 돼.”
노구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웃는 입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눈에는 얼음장처럼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이정한… 너, 대체 몇 명이나 죽이고 다닌 거냐. 열 명? 백 명?”
“…….”
이정한은 대꾸하지 않고 검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묵묵히 그를 마주 볼 뿐이었다.
“저기 저놈들도 그렇고, 충왕각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피를 먹여야 했을 텐데. 그 제물은 어디서, 어떻게 충당한 거지?”
“당신은 충왕각인의 사용자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내가 순순히 답해줄 거라 생각하나.”
“…하긴, 긴 말은 필요 없겠지. 서로 죽고 죽이려는 처지에.”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저널 정보에 띄워진 이정한의 클래스, ‘도살자’. 숱한 핏방울로 얼룩진 그 클래스명이 모든 대답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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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늦은 오후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은신설야 / 자랑할 건 단단함 밖에!
때구니™ / 이제 좀 단단해졌나요?
호야[虎夜] / 탱커컨셉이니까요 ㅎㅎ 오타수정했습니다!
가식적썩소 / 딜은 좀 두고봐야 할듯…
타락한 마법사 / 터틀쉘 덕분에 몸이 금강불괴 수준이에요
qazxc225 / 오오.. 그 대사를 넣는게 나을뻔 했군요 ㅎㅎ
드래곤음양사 / 쾅 하면 찍!
이벡러그 / 굿 ㅋㅋ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