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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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자매(姉妹)
63# 자매(姉妹)
코를 찌르는 철분 냄새가 랄로의 정신을 일깨웠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눈을 뜬 랄로는 막 악몽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칠칠맞지 못하게 흠뻑 젖은 등 언저리가 유등의 빛을 받아 불길하게 번들거렸다.
‘제발, 제발…….’
간절한 눈동자가 조바심을 내며 주위를 곁눈질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았다.
이윽고, 지옥도를 재현해 놓은 것 같은 주위의 전경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시커먼 절망감에 휩싸였다.
‘꿈이… 아니었어…….’
빛이라고는 기름이 다 떨어져 가는 유등이 발하는 희미한 잔광이 전부였지만, 오히려 그 어렴풋한 시야가 방 안의 참혹함을 더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절단되어 주인을 잃고 굴러다니는 희멀건 팔 다리의 주인은 방금 전까지 그와 사랑을 속삭이던 애인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물감칠을 해 놓은 것처럼 피칠갑이 된 벽면은 수하들의 몸을 찢고 튀어나온 핏물로 인한 것이었다.
차라리 온통 새빨갛게 변해 있으면 현실감이라도 있을 텐데, 어두운 조명 탓인지 희끄무레하게 비치는 광경은 아직도 꿈이라 여기고 싶을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어, 으, 으…….”
쯔북. 쯔북. 쯔북.
입술을 벌벌 떨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랄로의 귓가로 끈적이는 발걸음 소리가 흘러들었다. 시체더미의 몸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다가온 발의 정체는 무척이나 햐얗고 가냘픈 여성의 것이었다.
“어머, 정신이 들었나봐?”
“끄으으…….”
사무치도록 오열하던 랄로는 핏줄이 툭툭 불거져 벌겋게 물든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잡힌 것은 흡사 악마와도 같이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요부(妖婦). 사내라면 혼이 달아날 만치 대단한 미인이었지만, 이 순간 랄로의 눈에 비친 여인의 낯짝은 냉혹하고 무자비한 도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데없이 그의 사업장에 쳐들어와 어떠한 말도 없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모조리 말살해버린 여인. 이제와 겨우 한다는 첫마디가 태연하게 ‘어머, 정신이 들었나봐?’라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럴 순 없었다.
“왜, 왜…….”
랄로는 잔뜩 쉬어버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만은 알아야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왜? 아하, 왜 이랬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몰라… 모른다… 넌 대체 누구길래…….”
순간, 요염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여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병신! 칸다무어에서 장사하는 새끼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거야?!”
콰직!
“끄아아악!”
뾰족한 신발 뒷굽에 손등을 찍혀버린 랄로는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움켜잡았다. 끔찍하게 찢어진 손등 위로 핏물이 분수처럼 콸콸 스며 나왔다.
“멍청한 새끼. 이렇게 주변머리가 없으니 호된 꼴을 당하는 거야. 귀를 씻고 잘 듣도록. 내 이름은 그리드. 그 유명한 빅클럽 비트레이의 오너야. 자, 이제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겠지?”
“크으으으으…….”
“왜 대답이 없어!”
“커헉!”
가냘픈 체구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것인지, 그리드의 발길질에 얼굴을 걷어차인 랄로는 안면을 빠갤 듯 엄습하는 고통에 새우처럼 몸을 굽혔다.
“흐읍… 흐읍…….”
안면이 처참하게 뭉그러진 랄로는 그 숨소리조차 힘겨워 보였다. 아마도 코뼈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괴롭게 몸을 떠는 랄로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그리드는 그나마 좀 상태가 깨끗한 테이블 위에 엉덩이를 가져다 붙이곤 팔짱을 꼈다.
“소피아. 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
“…좋아. 끝까지 침묵을 고수하겠다면 굳이 강권하진 않겠어. 난 너 같은 놈들이 제일 재수가 없더라. 어차피 죽일 거긴 한데, 곱게 죽진 못할 줄 알아. 저기 뒈져버린 년처럼 사지를 모조리 자르고, 죽여 달라 애원할 때까지 관상용으로 데리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돼지밥으로나 줘 버리지, 뭐.”
독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랄로의 얼굴을 응시하던 그리드는 재미없다는 듯 쯧 혀를 찼다.
“제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하여간 소피아 그년 밑에 있는 것들은 죄다 독종들이라니까. 그년이 가랑이라도 벌려 준 거야? 응?”
소피아에 대한 비아냥을 일삼는 그리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던 랄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살려달라는 애원이 아닌, 그리드를 향한 독설이었다.
“…크크크… 미쳤군. 아주 단단히 미쳤어. 비트레이에 망조가 들어버린 건가? 이런 학살극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흐응.”
그리드는 색기가 섞인 묘한 신음성을 내며 오만하게 눈썹을 내리깔았다.
“아아, 천한 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주제도 모르고 내 걱정을 다 해주네?”
“위원회가, 연맹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닳고 닳은 상인이란 작자가 뭔 되도 않는 소리야? 이런 일,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인데. 천하의 비트레이가 이딴 누추한 사업체를 습격한다고? 세상에 어느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까. 응? 안 그래? 그리고 뭐… 걸려봐야 어쩔 건데. 증거도 없잖아?”
“……!”
지독하리만치 무모한 배짱이었다. 그러나 얼핏 듣기엔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논리이기도 했다. 그리드의 말대로다. 아침이 되어 이 피비린내 나는 시체 더미가 발견되어도, 치안대에서는 돈을 탐한 리버들의 짓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다른 자들이 용의선상에 오른다고 해도, 그리드가 거론될 일은 없을 것이다. 명망 높은 빅클럽의 오너가 이런 미친 살인극과 접점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까. 게다가 그가 소피아나 노구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외부에는 철저한 비밀. 지금 같은 경우엔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우리 그이도 그렇고, 마티아스 위원이나 그 벌레 새끼들도 그렇고… 다들 참 안일하단 말이지.”
“…….”
랄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나, 그리드는 그런 건 상관없는 것처럼 혼자서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이리스가 이만큼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운? 실력? 그도 아니면, 소피아 그년? 아니, 아니, 아니야. 물론 그것도 원인 중 하나는 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지. 그럼 아이리스의 성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뭘까? 바로 돈이야.”
“소피아 그년의 수법은 내가 잘 알고 있지. 비트레이 시절에도 그랬으니까. 그년이 부리는 계략이란 것들은 죄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많거든. 그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줄이 그년의 가장 무서운 점이야. 지금이야 규모가 많이 줄었다지만, 퀸즈가든에서 제법 목에 힘을 주고 다니던 시절에는 정말로 대단했지.”
“만약 그 자금줄이 없었다면, 아이리스가 지금처럼 딕툼을 쥐락펴락 할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할걸. 그럼 아이리스를 말려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호호호! 답은 나왔잖아. 그 돈줄을 모조리 말려버리면 되는 거지. 돈이 새어나올 구석이 없을 만큼 다 죽여 없애면 되는 거야.”
“이, 이 미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그런 이유로 이 참극을 만들었단 말인가? 랄로의 눈에는 그리드가 도저히 제정신이 박힌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작정이란 말인가?
경력의 오랜 시간을 비트레이, 라이오넬 등 동부 지구에서 보낸 소피아다. 당연히 그녀가 가진 기반은 아직도 동부에 많이 집중되어 있었다. 소피아 본인이 서부 지구의 아이리스로 옮겼다지만, 사업체란 한순간에 대규모 이전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드가 소피아의 비밀 점조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많은 인원들을 다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가 정신 나간 발언이었다. 아무리 동부의 빅클럽이라 하더라도 그 뒷감당을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수백, 수천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겠단 거냐! 이 마녀…… 꺽!”
바락바락 악을 쓰던 랄로의 눈이 뒤집히며, 그 머리가 높이 치솟았다. 피분수를 내뿜는 목 아래에 굴러 떨어진 머리는 원통함에 눈조차 감지 못한 채였다.
손을 까딱여 간단히 랄로의 머리를 베어버린 그리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아아~ 재미없어. 말 많은 벌레는 딱 질색이란 말이지.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설교질이야?”
…차라리 랄로에게는 그리드의 성질을 건드려 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천만다행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때, 랄로의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쥐처럼 온몸을 검은색 일색의 옷감으로 두른 사내였다. 그를 보자 그리드는 반색을 하며 손뼉을 쳤다.
“주인님.”
“아, 끝났어?”
“흥미로운 자가 있길래 데려왔습니다.”
“흥미로운 자?”
“예. 아이리스와 관련된 인간인 것 같습니다. 한번 보시고 판단하심이.”
사내가 손짓을 하자, 한 사내가 그 수하로 보이는 자들의 손에 이끌려 방 안에 내동댕이쳐졌다. 볼 살이 쏙 빠져 잔뜩 초췌해 보이는 사내는, 이전에 노구덕 일행에게 제압당해 랄로에게 보내진 배성길이었다.
“허억!”
영문도 모르고 방으로 끌려온 배성길은 참혹하게 절단된 시체들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는 끔찍한 광경에 순식간에 얼굴색이 해쓱해졌다.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데. 그냥 죽이지 그래?”
“노예들을 처리하던 중에 저희보고 아이리스 소속이냐고 묻더군요. 아이리스와 원한 관계를 가진 인간인 것 같습니다.”
“흠, 그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망연자실하던 것도 잠시, 눈치 빠른 배성길은 눈앞의 절세미녀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리스와 결코 호의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 또한.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배성길은 배를 땅에 깔고 넙죽 엎드렸다. 비릿한 피 냄새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피바다가 아니라 똥밭에서라도 뒹굴 수 있는 인간이 그였다.
“마, 맞습니다! 전 아이리스라면 자다가도 치를 떠는 놈입니다! 저를 데리고 가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 된다고? 어떻게?”
“그, 그건…….”
배성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즉석에서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껄였으니, 뒤에 이어질 말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만을 기다리기엔 너무 억울했다.
“칼받이라도 좋습니다! 노예라도 좋습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하다못해 아이리스의 그년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그년들?”
목소리 가득 절절 배어나오는 애절함이 통한 것일까. 드디어 입질이 왔다. 배성길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이번에 아이리스에 들어간 박지현,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두 자루 단검을 쓰는 계집입니다! 저는 그년들 때문에 이곳 노예상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원한을 갚을 기회를 주신다면, 어떤 궂은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리드는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여자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흐응, 어떻게 할까…. 네 의견은 어때?”
“박지현이라면 이번에 아이리스가 영입한 신입 헌터입니다. 앞뒤가 맞는 걸 봐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력은 별로인 것 같은데.”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다면, 실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도움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니까요.”
“그건 그래.”
엎드린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배성길의 낯빛에 안도가 깃들었다. 겨우 살 구멍이 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지?”
“예? 예! 그, 그렇습니다!”
“좋아… 그 각오, 확실하게 다져놔야 할 거야.”
그리드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지며, 잔혹한 호선을 그렸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일요일 쉬고 돌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리리플은 임시공지, 전편 통합해서 달겠습니다~!
소제목이 ?? 인건 아직 정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문세 / 본격 벌 받는 파트의 시작..
hohokoya1 / 보복도 하고 보복도 당하고… 앞일이 훤하네요.
장마와방 / 네 아무리 주인공이 철저한 대비를 하더라도! 작가가 이미 놓아줄 마음이라면!
은신설야 / 감솨합니다~!
호야[虎夜] / 그걸 눈치채시다니 … 날카로우십니다! 0/4 도발을 시전.. 오타 수정했습니다!
우낄푸핫 / 화난 이유가 나오죠..
북치네 /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지만 구더기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가용전력을 총동원한 일전이었습니다 ㅠㅠ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교단 세례를 받은 헌터들인데, 아이리스 전력중 탑 3가 임유진, 소피아(혼돈의 정령 개방), 노구덕인 상황에서 노구덕과 소피아, 그리고 신소율 나타샤까지 동원했죠. 나머지 두식이나 데모나, 임유진, 허문수, 가이탄, 실렌 같은 사람들은 본진 방어를 해야 했고요. 클럽 홀이나 고아원 등 지킬 면적이 많다 보니 인원이 많이 들어가야 했거든요.. 만에 하나 도시 봉쇄에 불복한 상대측에서 어떤 일을 벌일 지 미지수니까요.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작가가 맘 먹고 놓아주기로 했기 때문이지요…
콜마 /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죠! 지금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여 놓은거 보면 저그 같기도 하네요 ㅎㅎ
—- 공지 리리플
불타는고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본작에도 코멘달아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누구셧더람 / 다녀왔습니다!
가연을이 /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드렉슬러 / 넵 걱정 감사합니다!
가식적썩소 / 쉬는 건 아니긴 하지만.. 연참은 하겠습니다 하하..
드래곤음양사 / 가게할때마다 짬짬이 쓰고 있네요 ㅎㅎ;
츠츠라 / 감사합니다! 이런 말 들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네요!
엠파이어3 / 본작에도.. 추.. 추천을..!
라골 / 장문의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건필, 연참 하도록 하겠습니다. 쿠폰까지 받으니 의욕이 샘솟네요!
콜마 / 처녀쿠폰… 감사히 개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스나크람 / 그럴까요? 한번 고려해봐야 겠네요. 저널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꽤 계셔서 설정란에 올리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