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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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자매(姉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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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무어에서 일어난 참극!
-주변 도시 두 곳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치안청에서는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
-재물을 노린 단순 강도살인인가? 아니면 학살을 즐기는 연쇄살인마의 오락인가?
“…….”
노구덕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신문들을 내려놓았다. 동부 지구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벌써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피해를 입은 곳은 현재까지 네 곳. 네 사업체들은 노예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지만, 실상 그들은 모두 그와 소피아가 관할하는 조직에 속한 기업들이었다.
‘미안하다. 랄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복수는 반드시 해주겠다.’
얼마 전 만났던 랄로의 얼굴을 떠올린 노구덕은 속으로나마 그와 다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지금으로선, 그나마 이것이 그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끔찍해….”
임유진과 실렌 등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방 안에는 임유진, 신소율, 실렌, 그리고 소피아가 모여 있었다. 실상 마녀의 유적에서 얻은 유물의 습득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념하는 데모나를 제외하면, 이번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이 모두 모인 셈.
“아마 언니의 짓일 거예요.”
“소피아 씨의 언니라면… 비트레이 오너를 말하는 건가요?”
소피아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네. 이번 일은… 제 불찰이기도 해요.”
“그건 무슨 소리죠?”
“이 정도로 저와 관련이 있는 사업체들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는 건, 범인이 저에 대해서 극히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죠. 그럼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 언니와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서리여왕 뿐이에요. 하지만 유라 언니는 더 이상 제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벌일 사람도 아니죠. 그러므로 제외. 남은 사람은 언니뿐인데, 얼마 전 벌레교단의 습격도 언니가 사주한 일이란 게 밝혀진 이상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넘치죠.”
일리가 있었다. 특히 소피아의 내면을 엿봤던 노구덕으로서는 심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리드는 비트레이 시절부터 소피아를 곁에서 지켜봤고, 그 능력을 두려워해 뒷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 테니 소피아의 점조직 상당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동부 지구는 비트레이의 앞마당일 테니까.
“소피아 씨의 불찰이란 말은…?”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언니가 독자적으로 제 뒤를 캐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본래대로라면 좀 더 일찍 사업체들을 은폐하거나 이쪽으로 이전시켰어야 했는데… 제 행동이 느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소피아의 음성이 차츰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소피아, 네 탓이 아니야.”
“주인님…….”
“그건 자금 조달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당시 아이리스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으니까. 지금도 그렇고.”
그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사실 그대로를 담고 있기도 했다. 소피아가 아이리스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기간은 약 1년 반 정도. 그 중에 상당 기간은 이성빈을 꼬드긴 배신으로 말미암아 억류되어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동부 지구의 사업체들을 정리한다는 건 누구라도 못할 일이었다. 게다가, 트로이카를 상대하면서 여기저기 뿌린 돈이 대체 얼마이던가. 그 돈의 대부분은 전부 이들 사업체에서 나온 돈이었다.
그러고 보면, 돈줄을 끊어야 한다는 그리드의 의견이 의외로 핵심을 간파한 셈이었다.
“무엇보다, 넌 충실히 조언을 해줬어. 상황을 모두 따져 최종결정을 내린 건 나지, 네가 아니야. 말하자면 내 불찰이지.”
“…….”
뭐라 말하려던 소피아가 입을 굳게 다물고, 방 안의 공기도 급격히 내려앉았다. 모두가 가장인 노구덕의 기분을 헤아려 말 한마디를 조심하고 있는데, 신소율이 애써 그의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듯이 말했다.
“하, 하지만 이걸 아저씨 탓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요. 아무리 우리가 싫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이는 사람이 어딨어요? 완전 미친년아니에요?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미친년 맞아. 뒷일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더 무섭지.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
“…최악의 경우에도 증거만 없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요. 충분히 그럴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리드와 생생히 맞대면한 노구덕과 임유진의 견해에, 신소율은 ‘정말… 미친년이야?’ 하며 입만 벌릴 뿐이었다.
“…더 무서운 건 이번 습격은 시작에 지나지 않을거란 거죠.”
“그 말은, 이후로도 계속 습격이 있을 거란 얘기?”
“아마도요.”
“확률은?”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겠죠.”
딱. 딱.
또다시 이어진 침묵. 간헐적으로 노구덕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나, 임유진이나 실렌이 흘리는 한숨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는 와중, 자기 앞에 놓친 찻잔만을 하염없이 보고 있던 소피아가 불현듯 말을 꺼냈다
“…주인님, 제가 가서 언니를 만나보겠어요.”
“불가. 네가 가서 뭘 어쩌려고?”
그리고 기다렸다는 뜻 떨어진 노구덕의 거절. 하지만 소피아는 굴하지 않고 의견을 피력했다.
“사람에 대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제가 드래프트 때 동행해서 언니를 만났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초조해하면서 언니의 다음 수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네가 가면 그리드의 다음 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거냐?”
“장담은 못하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죠. 이래봬도 자매잖아요? 저보다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확실히 소피아가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은 대단했다. 얼굴 표정에서부터 사소한 몸짓이나 습관으로 세세한 것들을 읽어내는 것이 그녀였으니. 그러나 노구덕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그녀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래도 안 돼. 너무 위험해. 그쪽도 언제까지고 학살을 자행하지는 못할걸. 연맹을 완전히 물로 보지 않는 이상에야.”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동안 희생되는 사람들은요? 벌써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 숫자가 백 명, 이백 명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보신 거예요?”
“으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언급되자, 노구덕도 방금 전처럼 칼 같은 태도를 보이진 못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인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소피아의 말대로, 상황은 여러모로 악조건이었다. 폭주하고 있는 그리드가 언제까지 학살을 자행할지도 모르고, 또 어디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알고 있는 점조직이 어디까지인지도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이 시점에, 대규모 사업체 철수를 단행할 수도 없다. 그러면 당장 아이리스의 자금줄이 끊겨버릴 테니까. 클럽의 재정은 어떻게 자급자족이 된다 해도, 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는 딕툼의 오너들, 그리고 치안청을 비롯힌 기관들에게 매달 나가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동부의 상권을 포기하면 아이리스를 유지하고 있는 기반도 파탄날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드가 가해오고 있는 위협은 이토록 직접적인 것이었다.
‘소피아.’
노구덕은 소피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네, 주인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얌전히 대답하는 소피아.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노구덕의 눈빛은 심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어설픈 선인 흉내는 그만둬라. 희생된 인원이 안타깝기는 하다만,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일일이 걱정했지? 좀 더 속을 솔직하게 털어놔봐. 그리드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
‘그건… 조금 서운한데요. 저도 사람이라고요.’
‘쯧. 아직도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생각이라면…….’
노구덕이 뭔가를 할 낌새를 보이자,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던 소피아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남몰래 한숨을 내쉰 소피아는 항복 선언을 하는 패장처럼 마뜩찮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언니의 상태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고 할까요. 직접 가서 알아보고 싶어요.’
‘정도가 심하다는 건가?’
‘뭐어, 그런 것도 있고요.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미심쩍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소피아답지 않은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그래도 자매란 건가…….’
노구덕은 수심이 서려 있는 소피아의 루비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가 보았을 때, 그리드의 행동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비밀 노트에 소피아를 어떻게 죽일 것인지, 상상하기 힘든 잔인한 수법들을 꽤나 구체적으로 나열해 놓은 게 그리드란 여자였으니까. 그 중에는 윤간도 있었고, 사지를 찢어 죽이는 것도 있었고, 독살도 있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박준혁의 죽음은 핑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드는 박준혁을 알게 되기 훨씬 이전부터 소피아를 증오했고, 죽일 듯이 미워했다. 그것이 단순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리를 위협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녀의 악감정은 선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소피아의 얼굴에는 제 언니에 대한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언니에 대한 얘기를 터부시하고, 꺼려하는 듯하지만 막상 그리드처럼 격렬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그동안 당한 것들을 생각하면 죽여도 몇 번이나 죽이고 싶은 상대일 텐데도.
‘…소피아 씨는 비트레이 오너가 유일한 가족이죠?’
문득, 예전에 실렌이 했던 말이 뇌리를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노구덕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소피아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육성으로 다시 한번 간절하게 요청했다.
“주인님, 부탁드려요.”
“위험할거야.”
“저도 바보는 아니에요. 그에 대한 대책은 어느 정도 세워놨어요.”
“뭣하면 나도 함께 가지. 단순 잠행이라면, 비트레이에 걸리지 않고 얼마든지…….”
“위험해요!”
“그건 안돼요!”
“불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을 둘러 싼 여기저기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소피아는 그에 고소를 삼키며 말했다.
“…이렇다네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킹은 함부로 움직이기 보다는, 자리를 지엄하게 지키고 있는 게 좋아요. 지금은 퀸… 케헴, 룩이 행동할 때라고 생각해요.”
소피아는 임유진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말을 바꾸었다. 함부로 퀸을 논하기엔 그 벽이 너무 높았다.
장고를 하던 노구덕은,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좋다.”
“…굳이 소피아 씨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임유진이나 실렌은 노구덕도 그렇지만 소피아도 괜히 적진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만큼 소피아를 출중한 능력을 가진 동료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반면, 신소율은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얼굴이었다. 소피아에게 직접적으로 당한 경험이 있는 만큼, 아직 구원을 떨쳐내지 못한 것 같았다.
“네. 필요해요. 앞으로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또 흐트러진 동부의 조직을 재정비하려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꼭 언니를 만나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아니면, 임유진 헌터는 다른 좋은 방도라도 있나요?”
“…….”
임유진은 더는 토를 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가는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녀와 의견을 같이 했던 실렌 역시도 입을 다물고 어딘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인선은… 어떻게 할 거냐? 방문 형태는?”
“물론 비공식이죠. 단, 포로를 데려 가려고 해요.”
“얼마 전에 잡은 그 헨더슨이란 놈?”
“네. 어차피 알아낼 건 다 알아낸 이상 이제 쓸모도 없으니까요. 빈손으로 가긴 좀 그러니 구색이나 맞춰주죠. 그리고 수행원은… 생각해 둔 사람들이 있어요. 이따 저녁에 정식으로 인선을 짜서 보고 드릴게요.”
“…그래. 수혈팩 많이 챙겨가는 거, 잊지 마라.”
“에이,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할 일은 없을 거예요. 금방 올 텐데요.”
싱긋 웃으며 답하는 소피아.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동부 지구행이 결정되었다.
소피아가 드물게도 간곡히 요청하는 터라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노구덕은 식도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이 찜찜함은 단지 상대가 그 그리드이기 때문인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달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딱히 없는 것도 사실. 지금은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단 한 번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소피아의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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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아침 한편 투척하고 자러갑니다~!
그리드의 감정은 분노라기 보다는 뭔가 복합적이고 두루뭉술한 감정에 가깝습니다. 열등감+집착+두려움이 짜장범벅처럼 버무려진… 마침 이번 파트가 그에 관한 것이니 최선을 다해 써 보겠습니다. 소피아 에피소드 가야죠.
좋은 하루 되시길. 리리플은 저녁화에 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