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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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자매(姉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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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나고,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방에서 노닥거리던 신소율은 방 안을 울리는 노크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저씨인가?’
“네, 가요!”
급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연 신소율은 별안간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세요.”
툴툴거리듯이 말한 신소율은 홱 몸을 돌려버렸다. 쌀쌀맞은 그 태도에 빙그레 웃음을 지은 소피아는 특유의 톡톡 튀기는 듯한 의족 소리를 내며 신소율의 방에 들어섰다.
신소율은 아무데나 앉으라며 무신경하게 말한 뒤, 자신은 헝클어져 있는 침대보 위에 올라가 비스듬히 누웠다. 손님을 맞는 태도치곤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피아는 굳이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자신은 신소율의 저 삐딱한 태도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의자가 있는 곳을 향해 가면서, 소피아는 살짝 고개를 돌려 방 안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었다. 외부에서는 나타샤에 이어 딕툼을 대표하는 암살자 클래스로 한창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신소율이었지만, 그 위명과는 달리 그녀의 방은 풋풋한 소녀의 감성으로 꼼꼼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꼭 스물셋 소녀다운 방이었다.
‘부럽네.’
신소율과 소피아의 나이 차는 겨우 두 살.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자신은 이런 핑크빛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방 안에는 단촐한 책상과 의자, 곰팡내만 풍기는 서류더미들 뿐.
“…무슨 일이죠? 할 말이 있다면 용건만 간단히 해주세요.”
날카롭게 벼리어 놓은 듯한 음성에, 상념에서 벗어난 소피아는 ‘아.’하고 탄성을 내뱉으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신소율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신소율 헌터가 절 싫어하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당부대로 용건만 간단히 할 테니 부디 들어주셨으면 하네요.”
“말해보세요. 듣기는 할 테니깐.”
정말 듣기만 하겠다는 것인지, 침대에서 비스듬히 누운 신소율은 아예 소피아가 있는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소피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미안해요.”
“…뭐라고요?”
“제가 신소율 헌터에게 저지른 짓, 그로 인해 신소율 헌터가 평생 가도 아물지 못할 상처를 입은 것… 전부 미안해요.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등지고 누운 신소율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신소율은 악문 이빨에서 까드득 갈리는 소리를 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안하다고……. 말이면 단 줄 알아?’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겨우 이것이었나. 미안하다고,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겨우 말 몇 마디로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그 작태가 너무나 역겹고 가증스러웠다. 분을 참지 못한 신소율은 벌떡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 더러운……!”
소피아의 면전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윽박지르려던 신소율은 불현듯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뻐금거렸다.
조금 전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줄로만 알았던 소피아가, 어느새 차가운 방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절을 하듯 그 머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흡사 오체투지를 하듯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그 모습을 보자, 한바탕 대거리를 하려 했던 신소율도 말을 잃어버리고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 뭔 짓이야!”
소피아는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 차분하게 말했다.
“…용서해 달라고는 하지 않아요. 그건 제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으니까요. 다만… 지금으로선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죄표현이네요.”
“그런 뻔한 수법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어차피 보여주기 식이겠지!”
“신소율 헌터도 알다시피 주인님과 저는 계약 관계예요. 조건을 만족하면, 주인님은 절 해방해 주기로 하셨죠. 그때, 신소율 헌터만 괜찮다면, 절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죽이든, 때리든… 마음대로 말이에요.”
“이, 이……!”
주먹을 바들바들 떨는 신소율은 바닥에 엎드린 소피아를 노려보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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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신소율의 방에서 나온 소피아는 꽤나 복잡한 낯빛을 띠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후련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또 다르게 보면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발갛게 물든 이마를 문지르며 터벅터벅 걷던 소피아는, 앞에 누군가가 서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실렌 헌터?”
“소율이와 얘기는 잘 끝냈나요, 소피아 씨?”
소피아는 실렌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럭저럭… 이라고 해야 하나… 애매하네요. 그보다 엿듣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고의는 아니에요. 소피아 씨를 찾다가… 사용인이 소율이 방에 있다고 말해줬거든요.”
“절 찾았다고요?”
“네. 할 얘기가 있어서요.”
소피아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와 실렌의 관계는 개인적 친분이 거의 없는, 극히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하긴 아이리스 내에서 그녀의 인간관계가 거의 그렇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실렌 헌터와는 이렇게 개별적으로 대화하는 게 거의 처음인 것 같네요.”
“실렌 씨라고 불러도 돼요. 아니면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고. 잠깐 걸을까요? 대화하기엔 장소가 영 별론 것 같은데.”
“…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소피아는 실렌의 청을 받아들여 그녀와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개인실을 아우르는 복도의 끝에는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작은 발코니가 있는데, 실렌은 아마 그쪽을 대화 장소로 택한 모양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차가우리만치 스며든 발코니에 도착하자, 줄곧 말없이 걷고만 있던 실렌은 불쑥 말을 꺼냈다.
“소피아 씨가 행동하는 게 꼭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주변정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제 착각이겠죠?”
“설마요. 제가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나요? 우후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재가 휘날리는 것처럼 공허한 웃음. 실렌은 소피아의 하얀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차디찬 겨울 밤바람 때문일까, 그녀의 코가 서서히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소율이, 그 애가 뭐라고 하던가요?”
“할 얘기란 게 그거였어요?”
“아뇨. 이건 그냥… 궁금해서요. 불편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소피아는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불편할 거야 없죠. 신소율 헌터가 말하더군요. ‘당신이 죽고 싶어 하는 걸 알아. 내가 당신 소원을 이뤄줄 것 같아? 절대 싫어. 내게 어떻게 사죄할 지는 당신이 잘 알고 있겠지. 그 좋은 머리로 잘 생각해 봐.’라고요.”
“쿡쿡.”
소피아가 신소율의 앙칼진 톤을 흉내 내어 말하자, 실렌은 소리 죽여 킥킥 웃었다. 그 흉내가 제법 그럴싸해서, 보지 않아도 저절로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았다.
“호되게 꾸지람을 당했군요.”
“네. 솔직히 한 대 얻어맞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주먹이 나가지는 않더라고요.”
“후후훗…….”
맞장구치듯 끄덕끄덕 머리를 흔들던 실렌은 별안간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죠?”
“만에 하나일 뿐이에요. 일반적으로 보면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히 적은 확률… 하지만 언니의 행보를 보면,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가기 전에 최소한의 정리를 해두고 싶었어요. 사실, 이것도 너무 늦은 거죠. 신소율 헌터에게는 진즉에 이랬어야 했는데……. 어설픈 자기 위안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요.”
“어라, 사과는 예전에 하지 않았나요? 유진이 말로는…….”
“형식상의 사과에 불과했죠. 그리고, 단순히 사과로 끝낼 일도 아니잖아요?”
“으흠…….”
묘한 표정을 지으며 뒷말을 삼키는 실렌. 이후로 한동아 짧은 침묵이 계속되었다. 기실 종알종알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사이가 친한 두 사람도 아니었으니, 얘깃거리가 금방 바닥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춥네…….’
사정없이 몰아치는 찬바람에 슬슬 귓불이 아려오는 게 느껴지자, 소피아는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실렌 씨, 더 할 말이 없다면…….”
“여긴 제 고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이에요. 동물도, 식물도, 사람들도… 판박이라고 할 만큼 똑같죠. 듣기론 일부러 생태계 환경이 비슷한 차원들을 골랐다고 해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똑같은 건 아니에요. 예를 들자면… 우리 고향에는 ‘해맞이 꽃’이라는 꽃이 있어요. 새벽에서 아침나절, 딱 해가 뜰 때에만 피어나는 꽃인데, 그 순간이 지나면 금방 시들고 말죠. 대신 꽃잎도 크고 색이 무척 고와서, 어렸을 때에는 일부러 해맞이 꽃이 피는 걸 보려고 일찍 일어나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그 꽃, 우리 집 마당에 몇 송이 심어져 있었거든요.”
어렸을 적의 추억을 회상하는 실렌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먼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아련해져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의 땅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해맞이 꽃… 처음 들어보네요. 아마 스퀘어에는 없는 게 맞을 거예요. 그런데 왜 그 얘기를 지금…?”
“…고향은 제게 지옥 같은 곳이었죠. 아버지, 어머니, 언니와 오빠들… 전 고향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잃어버렸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런 곳일지라도…….”
실렌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윽고, 똑바로 서로를 마주 본 두 여인의 시선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아직도 전 그날 아침의 꿈을 꿔요.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죠.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을 잠이 덜 깬 눈으로 넋 놓고 바라보는…….”
“…….”
“소피아 씨, 거기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후회는 남기지 않길 바라요.”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소피아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발코니를 벗어나는 실렌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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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의 대도시, 오키도에는 자랑할 만한 두 개의 명물이 있다.
첫 번째 명물은 도시의 별명. 오키도는 달리 ‘해가 지는 땅’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동부 지구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탓에, 동부 지구 내에선 일몰이 가장 느리기 때문이다. 기다란 해안가를 끼고 있는 오키도의 일몰은, 태양이 마치 바다 속으로 첨벙 빠져버리는 듯한 착각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으로 유명했다.
두 번째 명물은 바로 오키도의 ‘푸른늑대 전설’이다. 푸른늑대 문양이 그려진 방패에, 멋들어진 배틀코트를 걸친 영웅이 도시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이끌어냈다는 전설. 그 영웅은 그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오키도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푸른색으로 칠해진 늑대 가면에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방패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사내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명물은 아니지만 도시를 일직선으로 쭉 관통하는 대로 또한 오키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그 대로의 양 옆에는 갖은 먹거리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시끌벅적하게 호객을 하며 쭉 늘어서 있었다.
“활기가 넘치는 곳이군요.”
“관광 도시니까요. 이래봬도 오키도의 일몰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아름다운 백사장에, 투명한 바닷물이 일품인 해안가도 있고요.”
“어머, 두식이는 오키도에 온 적 없어?”
“예? 아, 예…. 저는 별로 돌아다니질 않아서……. 너, 너무 붙은 거 아닌가요?”
“왜 그래애? 이 정도는 보통이잖아?”
“그, 그래도…….”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곰 같은 사내와, 그런 그의 팔에 풍만한 가슴이 짓눌릴 정도로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건강한 갈색 피부의 여인.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어쩐지 걸음이 불편해 보이는 여성까지.
묘한 조합으로 오키도의 시내를 거닐고 있는 이들은 바로 아이리스의 헌터들인 소피아, 이두식, 나타샤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두시기
가식적썩소 / 오타 수정했습니다! 짜장범벅이 200원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ㅎㅎ 맛있었는데!
만능의자 / 어떻게 될까요 아마 둘의 대면이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에보커 / 하지만 언니가 또라이라는 게 함정
북치네 / 땡길땐 주저하지 말고 드셔야죠~!
우낄푸핫 / 종족은 그냥 특성값과 외형만 다를뿐 별로 특이할 것도 없다는 게 이 소설의 설정이기에… 오타 수정했습니다!
MrX / 때가 되었습니다…
트릭스타 / 으응?? 설마 두식이가…???
엠파이어3 / 너무 배배 꼬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St0 / 참 이상적이고 진취적인 제안이시지만 아직 구더기는 그렇게까지 개방적이지 않습니다…
호야[虎夜] / 수정했습니다 ㅎㅎ 슬쩍 2인자의 욕망을 드러내는 거겠죠?
콜마 / 이번 대면이 어떻게 끝날지에 달려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