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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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자매(姉妹)
“이, 이 더러운 년이…!”
꽈득 짓깨문 입술에서 핏물이 흘러나온다. 잡아먹을 듯 흉험한 눈초리로 소피아를 노려보는 그리드였지만 섣불리 명령을 내리진 못했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 모인 전력으로는 소피아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요컨대,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명령을 내렸다간,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오너로서의 권위가 송두리째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분노에 휩싸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미였으나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자기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오너….”
“으으으……!”
그리드가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떨고 있는 그때였다.
“엄마….”
처참하게 박살난 응접실의 벽 틈새에서, 조그맣고 가냘픈 그림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남아 있는 어린 여아의 얼굴이었다.
그 여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소피아는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뜨며, 테이블 모서리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엄마라고?’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낸 여아는 그녀들 자매가 어렸을 때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엘프 특유의 뾰족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마도 종족은 인간인 것 같았다.
‘그렇구나. 저 아이가 언니의……. 내 조카구나.’
그리드가 박준혁과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았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본 그리드의 반응은 소피아가 예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나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엄마… 죄, 죄송해요… 소… 소리가 너무 커서…….”
“됐으니까 방으로 돌아가! 이 망할 것, 내가 부를 때까진 기어 나오지 말란 말이야! 한번만 더 내 말을 멋대로 어긴다면……!”
그리드의 흉폭한 눈빛을 접한 아이는 지레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만 내밀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리드는 옆에 있던 헌터 한명에게 슬며시 눈짓을 했다.
“따라가 봐. 잘 감시해.”
“예. 그러죠.”
지시하는 그리드나 지시를 받는 헌터나 둘다 익숙하게 대화하는 걸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아니… 자기 딸 아닌가? 무슨 엄마가 저래? 애는 걱정 돼서 나온 것 같은데….”
가만히 있던 나타샤가 기가 찬 듯 혼잣말을 했다. 그건 그 뒤에 있던 소피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리드의 행태에 어떤 충격마저 받은 얼굴이었다.
‘…정상이 아냐. 이건… 이건 뭔가 이상해.’
그러는 동안, 아이를 돌려보낸 그리드는 소피아 일행을 향해 또다시 질펀한 욕설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느닷없이 끼어든 아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목소리에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이 역겨운 년, 네 냄새나는 종자들을 데리고 당장 꺼져. 또다시 이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가는 바로 그 즉시 목을 잘라주지. 그때는 명분 타령도 할 수 없을걸.”
“오너, 철수할까요?”
“흥… 멋대로들 해.”
철수 의사를 묻는 헌터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한 그리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그대로 응접실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할 일이 없어진 다른 헌터들도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썰물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드와 헌터들이 모두 사라진 방 안은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엉망이었다.
“휴우. 십 년 감수했네. 소피아 씨? 어서 나가요. 여긴 잠시도 있을 곳이 못되는 것 같아.”
“네….”
나타샤에게 소매를 잡힌 소피아는 여전히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낯빛이었다. 소피아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흐느적흐느적 거리자, 나타샤는 한숨을 쉬며 이두식을 바라봤다.
“두식아, 네가 소피아 씨 좀 안고 가지 않을래? …아니다. 내가 할게.”
“예? 아니요. 제가…….”
“됐어.”
뭔 생각을 했는지 금방 말을 바꾼 나타샤는 지체 없이 소피아를 안아들었다. 베이스가 암살자긴 해도 항시 근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나타샤다. 아담한 체구의 여자 하나 정도 안고 가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호오, 여자끼리 안고 있는 것도 제법 그림이 되는걸. 여러모로 대조적이라 그런가? 키도 그렇고, 피부색도 그렇고.”
쭈뼛!
갑자기 들려온,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남자의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타샤는 온몸의 솜털들이 올올이 가시처럼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너, 넌!”
“…늑대왕.”
더듬거리는 나타샤의 앞을 가로막은 건, 돌덩이처럼 낯빛을 굳힌 이두식이었다. 일전에 퀸즈가든에서 늑대왕과 대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두식은 금방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타샤에 비해 비교적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입술 언저리가 덜덜 떨리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측정이 안 된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퀸즈가든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압감이었다. 그저 가까이 정면에서 마주한 것만으로도 몸이 두려움에 떨다니… 이두식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짓씹어 핏물을 냈다. 텁텁한 무쇠 맛이 혀끝을 감싸고 돌자, 그나마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무너진 벽 너머에 기대어 서 있던 왜소한 체구의 사내, 늑대왕은 우뚝 멈추어 선 일행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젊은 라이칸스로프도 있군. 꽤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데, 어때? 루나틱스에 들어올 마음은 없냐? 내가 제대로 키워주마.”
“그는 아이리스 소속이에요. 우리 헌터죠.”
“으흠?”
늑대왕의 시선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이두식에게서 소피아의 무덤덤한 얼굴로 옮겨졌다.
“…베이스는 하이엘프에, 지금은 변종 흡혈귀… 게다가 의족까지… 꽤나 매니악하군. 뭐, 난 포용력이 있는 남자니까. 미인이라면 마다하지 않아.”
“죄송하지만 저는 축객령을 받은 몸이라서요.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할 것 같네요.”
“거기에 맹랑함까지. 과연 하유라의 조언자였던 여자답군. 아까는 거짓눈물로 시간을 벌더니만……. 하하. 미인의 눈물 치고는 너무 값어치가 싼 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 것도 몰라요~ 하는 얼굴로 순하게 웃고 있었지만, 소피아의 머리는 더없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간파하다니… 늑대왕 가리발디, 역시 만만한 자가 아냐.’
“포위망에 갇혔을 때의 얘기다. 그리드라면 만에 하나라도 참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잔혹한 여자거든. 그에 대한 보험을 들어둔 거겠지. 울고 있는 미녀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남자는 별로 없으니까, 아무래도 좀 망설이게 되거든. 넌 그 시간 안에 정령을 소환할 준비를 마친 것일 테고. 나로서는 그 유명한 혼돈의 정령을 직접 볼 기회를 놓쳐서 좀 아쉽다고나 할까….”
“…뭐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헌데, 늑대왕 님이 여기 계시다는 건, 제게 곧 새로운 형부가 생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소피아의 당돌한 말에, 잠시 말을 잊고 두 눈을 깜박이던 늑대왕은 피식거리며 입매를 늘어뜨렸다.
“형부라니, 꽤나 깜찍한 소릴 하는군. 미안하지만 난 한 여자에 매여 있을 생각은 조금도 없거든. 특히 격이 한참이나 낮은 상대와는. 서리여왕 정도라면 모를까…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야. 육체적 비즈니스.”
“그렇군요….”
“그래, 그런 거다.”
쐐기를 박아 넣은 늑대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휑하게 뚫려버린 자기 뒤쪽을 가리켰다.
“가 봐. 오늘은 이쯤에서 보내주도록 하지. 집주인이 보냈는데 손님인 내가 계속 잡고 있는 것도 모양이 빠져니까.”
“‘오늘은’ 인가요?”
“과하하하… 네가 마음에 들었거든. 머리도 뛰어나고, 능력도 출중해. 적당히 사내를 다룰 줄도 알고. 또… 무엇보다 그 미모가 무척 마음에 들어. 언제고 너희 자매를 내 컬렉션으로 삼고 싶다. 네가 속한 클럽이 어딘지는 몰라도, 곧 담당자를 보내도록 하지.”
아마 이런 말을 당사자인 여자 앞에서 대범하게 떠벌리는 인간은 온 대륙을 다 뒤져도 늑대왕 밖에는 없을 것이다. 수단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일 터. 하긴, 평범한 여자는 늑대왕이란 그 위명에 짓눌려 감히 거부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런 평범한 범주에 드는 여인이 아니었다.
“우훗, 저는 언더독이 취향이라서요. 아무래도 ‘왕’은 끌리지 않네요.”
“그거 아쉽군.”
말과는 달리, 소피아를 품평하듯 훑어보고 있는 늑대왕은 전혀 아쉬운 표정이 아니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그 얼굴에는 언제든지 소피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녀와 짤막한 대화를 나눈 가리발디가 스리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비로소 숨통이 트인 나타샤와 이두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트레이의 클럽 홀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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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비트레이를 빠져 나온 나타샤의 첫마디였다. 늑대왕을 직접 마주 대한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그녀의 눈은 줄곧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감지에 특화된 암살자이다 보니, 소처럼 무신경한 이두식과는 달리 그 힘의 여운도 오래 가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오키도에 좀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네요.”
“어째서요? 목적은 달성했잖아요? 습격의 배후가 비트레이라는 걸 당신 언니가 대놓고 인정했고, 늑대왕과 연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으면 됐잖아요? 한마디 말해두자면, 여긴 적의 앞마당이에요. 뭘 하든 그 여자가 순순히 두고 보진 않을 걸요.”
“누님. 그만해요.”
“이것 좀 놔 봐!”
아니나 다를까, 나타샤는 좀 더 오키도에 있겠다는 소피아의 말에 크게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보다 못한 이두식이 만류를 해도 요지부동,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주기 전에는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한번 속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당신 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요. 자기 딸을 그렇게 대하는 것만 봐도….”
“아니, 언니 얘기가 아니에요. 비트레이 얘기죠.”
“비트레이……?”
나타샤와 이두식의 고개가 동시에 갸우뚱 움직였다. 소피아는 두 사람이 새삼 커플답다는 걸 실감하며, 조곤조곤한 어조로 나타샤를 설득했다.
“아까 포위망이 풀렸을 때, 언니가 나가고 나서 헌터들이 대화하는 걸 엿들었어요. 바람의 정령을 통해서요. 덕분의 주목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죠.”
소피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좀 전까지 머릿속을 한가득 울리던 헌터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젠장, 언제까지 이런 쓸데없는 병정 놀음에 장단을 맞춰줘야 되는 거야? 우리가 자기 사병이야?’
‘혜정아, 뭐가 그리 불만이냐? 두둑이 돈도 주니 좋기만 한데. 그것도 얼마 안 남았지만. 원래 보름달은 지기 전에 가장 밝은 법이라잖아.’
‘흥. 오빠가 무슨 시인이에요? 난 벌써 지겹다고요….’
명백히 불만이 서린 목소리. 그리고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대화들. 얼핏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들이었으나, 소피아의 예리한 감각은 그들의 대화 속에 떠돌고 있는 수상한 공기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비트레이에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요. 지금은… 일단 숙소부터 잡도록 하죠. 저녁에 만나볼 사람이 있어요.”
나타샤와 이두식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항상 소피아와 붙어 다녔는데, 대체 언제 접선 약속까지 잡아놨단 말인가? 그 주도면밀함에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휴우, 대장은 소피아 씨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내 말도 좀 들어줘요.”
“우후후… 전 독불장군은 아녜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담 다행이고요.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네. 얼마든지요.”
“아까 그 눈물… 늑대왕의 말처럼 정말 거짓이었어요?”
평소처럼 나른하게 풀어져 있던 눈매가 살짝 경직되었다. 즉답을 피하고 침묵하던 소피아는 쓰디 쓴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아마 다음번에 언니를 보게 되면… 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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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은신설야 / 하하.. 저는 입다물고 있겠습니다!
한따가리 / 준비된 결말을 향해 gogo
으뜸볍신처리하기2 / 그렇군요.. 한번 제 폰으로 어떻게 보이나 봐야 겠네요!
호야[虎夜] / 엥? 다른 덮밥이라뇨? 그리드 딸내미는 아직 6… 설마!
김도리131 / 매니악하신 분이랍니다 ㅎㅎ
stigma / 쉿쉿! 작가는 스토리를 누설하지 않습니다!
아토므스크 / 그 눈물의 의미는..?
트릭스타 / 일단 성은을 베풀기 전에 살아남아야 할 텐데요..
†아마테라스† / 하하.. 해피엔딩인지 배드엔딩인지는 이번 에피소드 진행되면서 밝혀질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