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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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파멸의 전주곡
66# 파멸의 진혼곡
소피아 일행은 그녀의 안가에 갇혀 있던 헨더슨을 닦달하여 오키도의 근방에 퍼져 있는 비밀 접선지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은밀한 장소를 부연설명만으로 한 번에 찾아내는 것은 꽤나 까다로운 일. 그에 소피아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협력해주세요.”
헨더슨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으나, 예상대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희들에게 들은 대로라면, 내가 알던 비트레이는 이미 끝장났고, 난 돌아갈 곳도 없어. 여기서 조용히 작은 아가씨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지. 처음엔 저 까만 계집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런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군.”
“…도와주세요. 다시 한 번 부탁드려요.”
“소피아…! 우붑!”
소피아는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않고 그저 고개만 깊숙이 숙일 따름이었다. 그녀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자, 발끈한 나타샤가 뭐라 소리치려는 게 보였지만, 이두식의 커다란 손아귀에 입이 틀어 막히고 말았다.
필요하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듯한 그녀의 모습에, 헨더슨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작은 아가씨와 오너는 사이가 극도로 나쁘지 않았던가? 오너는 당신을 증오해. 죽도록 싫어하지. 난 틀림없이 당신도 오너를 미워할 줄 알았는데….”
“맞아요. 전 언니가 미워요.”
“그런데 왜?”
“…그래도… 하나 뿐인 혈육이에요.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요. 어렸을 때 이후로, 언니와 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죠. 어제 찾아갔을 때도 그랬고요.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고 있어요.”
“오너가 비트레이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그래요.”
착잡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피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헨더슨의 결정만을 기다리겠다는 듯, 손을 한 데 모으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군.”
헨더슨은 먹먹한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음지에서 그리드를 보좌했던 그다. 당연히 이들 자매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클럽을 최고로 키우기 위해 함께 가시밭길을 헤쳐 나온 자매. 그러나 비트레이가 빅클럽이 되고, 그리드가 비트레이의 오너로서 마티아스의 간섭을 배제하고 정식으로 권력을 손에 쥔 순간부터, 돈독했던 자매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함께 추구해 온 목표를 거의 다 이루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매를 갈라지게 만들 줄이야.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부모형제 간에도 나눠 가질 수 없는 게 권력이라더니….’
한동안 생각을 곱씹던 헨더슨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도와주도록 하지. 단, 날 포로에서 풀어줘.”
“물론이죠.”
소피아는 지친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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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덕분에, 소피아 일행의 수색작업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헨더슨이 합류할 당시만 해도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인간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나타샤도 정작 수색활동을 벌이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내뱉지 않았다. 그녀 또한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헨더슨이 알고 있는 오키도 부근의 비트레이-벌레교단 간 접선지는 모두 일곱 군데. 접선지들은 평범하게 가장되어 있는 술집의 지하 밀실이거나,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하수도의 중간 지점 등, 미리 알고 있는 자가 아니면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곳들이었다.
소피아 일행은 그 중 다섯 번째, 오키도의 북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굴에서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수색에 나선지 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얻어낸 성과였다.
아직 희미하게 온기가 남아 있는 모닥불 앞에 선 소피아는 다소 힘이 빠져 있는 얼굴이었다.
“…늦은 것 같아요.”
“꼭 그렇게 단념할 건 아니지. 이곳에 머물렀던 이들이 오너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봐, 깜둥이. 그쪽은 어때?”
“빌어먹을 자식. 정신 사나우니까 보채지 마.”
신경질적인 투로 일축한 나타샤는 타다만 장작더미 속에 손가락을 쿡 집어넣었다.
“…떠난 지는 한 시간쯤 된 것 같아. 그리고 여자 하나, 남자 하나가 머무르고 있었어. 여자 쪽은 어린아이일 수도 있는데… 벌레교단이 이 접선지에 어린애를 데리고 올 리는 없으니 깔끔하게 배제하겠어.”
“남녀 한 쌍이라고? 어떻게 안 거지? 개코라도 달렸나?”
“간단해. 동굴 바닥에 남아 있는 발자국의 보폭, 그리고 깊이로 추측한 거야. 개코가 아니더라도 머리만 좀 쓸 줄 알면 알 수 있는 것들이지. 멍청한 대가리를 달고 있으면 평생 가도 모르겠지만.”
면박을 당한 헨더슨은 별로 나타샤를 상대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도발을 한 귀로 흘려버린 그는 지그시 팔짱을 끼며 혼잣말을 했다.
“흠… 그러면 이곳에 정말로 오너가 머무르고 있었단 건가? 벌레교단의 인물들은 꽤나 여럿 만나봤지만, 여자는 한 명도 없었거든. 문제는 오너가 여기서 어디로 향했느냐는 건데…….”
“여기 뭔가 있습니다.”
“…딱 좋은 타이밍인데 그래.”
가볍게 무릎을 친 헨더슨을 비롯한 소피아, 나타샤는 동굴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던 이두식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식아, 뭐라도 발견한 거야?”
“풀을 엮어 만든 매듭인데… 아무래도 표식인 것 같습니다. 사냥꾼들이 이와 비슷한 표식을 쓰는 걸 본적이 있어서요.”
이두식이 발견한 것은 두 갈래의 억새풀을 엮어 만들어진 매듭이었다. 화살표처럼 윗부분이 세모꼴로 된 매듭은 뒤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모양새였다.
“분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식이군.”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아요.”
화살표를 닮은 매듭은 비스듬히 누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의 시선이 화살표를 따라 표식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 끝에 보이는 것은, 대략 한 시간 전 일행이 떠나온 도시, 오키도였다.
“소피아 씨, 지금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런데, 느낌이 영… 좋지 않네요. 이건 꼭 대놓고 오키도로 찾아오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표식의 위치도 그렇고, 석연찮은 점이 많아요.”
나타샤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표식은 억새밭에 가려져 있긴 했으나, 주의만 기울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앞자리에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그들이 찾아오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가 쫓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군. 뭐, 내가 붙잡혀버렸으니 당연한 건가. 작은 아가씨, 이제 어떻게 하지? 초대에 응할 건가?”
소피아는 그때까지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드를 데리고 있는 벌레교단의 인물은 아마도 이정한일 터. 이정한은 그리드를 오키도에 데려가서 무얼 하려는 것일까? 그래서는 기껏 데리고 도주한 의미가 퇴색되지 않나?
한참을 고민해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애초부터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오키도로 가겠어요.”
조그만 목소리로 답하는 소피아의 눈길은 이미 어두컴컴하게 땅거미가 진 오키도의 성벽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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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오키도의 성벽은 위에서 보면 정오각형의 모양을 띠고 있다. 각 성벽이 이어진 꼭지점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첨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다섯 개의 첨탑은 도시의 방위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머무르고 있는 경계초소 겸 막사이기도 했다.
경계첨탑의 최상층. 양손을 감싸 쥔 채 더운 입김을 훅훅 불어넣던 병사는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는지, 초소 중앙에 타오르고 있는 화로에 장작 하나를 쑤셔 넣었다. 그러자 거의 죽어가던 불씨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시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으, 이제 좀 낫군. 방한복을 껴입었는데도 정말 춥단 말이야.”
“이봐, 이봐… 우리 할당량은 다 썼잖아? 그러다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군장 돌고 싶어?”
“이 새가슴 같으니라고. 추워죽겠는데 그럼 어떡하냐? 그리고 장작개비 하나 정도 더 썼다고 누가 알겠어? 안 그래? 그리고 이미 써 버린 이상 너도 공범이다. 엮이기 싫으면 불 쬐지 말든가.”
“끄응…. 망할 놈. 할 수 없지.”
투덜거리면서도 은근슬쩍 따뜻한 난로 곁으로 다가오던 병사는 아래층 계단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누구지? 아직 교대할 시간은 아닌데….”
“설마… 헉! 부대장님!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불을 쬐고 있던 두 병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군례를 취했다. 아래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올라온 인물, 그는 이곳 3번 첩탑의 경계를 총괄하는 경비부대장이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근무 중에 태만한 꼴을 보이는 그 순간에 엄격하기로 소문난 제3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바짝 얼 수밖에.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병사들은 지레 겁부터 집어 먹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우, 우리 대화를 들으신 것 아냐?’
‘이 새끼야!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자고 그랬잖아!’
“…그래. 이상은 없는 것 같군. 춥지는 않았나?”
눈짓으로 책임 소재를 다투던 병사들은 부대장의 음울한 목소리에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청을 높였다.
“예!”
“…좋다. 너희들은 이만 근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도록. 작은 포상이다.”
질책은커녕 포상이라니. 어리둥절해진 병사들은 좋아하는 것도 잊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예…? 다음 번초가 오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내가 대신 근무를 서 주지. 너희 두 명의 계급을 합쳐봐야 내게는 안 되잖나. 아니면, 내가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건가?”
깜짝 놀란 병사들은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규정상 경계는 2인 1조가 정석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고참병이나 지휘관 급은 홀로 경계를 서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이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찍 퇴근을 시켜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자고로 군대는 상급자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경례를 한 병사들은 부대장의 마음이 바뀔세라 허겁지겁 열을 맞추어 아래로 내려갔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아득히 멀어지는 동안, 홀로 남은 부대장은 박제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그때였다.
“체스말도 계급이 되니 상당히 편리하군.”
“…….”
첨탑의 지붕 아래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커다란 솔방울처럼 뚝 떨어져 내렸다. 박쥐와 같이 등장한 이들은 밋밋한 가면을 눌러 쓴 남자와, 어두운 잿빛 머리카락을 지닌 거친 인상의 중년 사내였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초소에 난입했음에도 부대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사내들 또한 부대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는 걸 보아하니, 그들이 고도의 최면술이나 정신계 주문을 써서 부대장의 이성을 제압한 것 같았다.
가면 남자는 미리 준비해 온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박 크기에 달하는 둥근 구체를 꺼내놓았다. 피를 머금은 흑요석처럼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는 구체는 얼핏 보기에도 상당한 마력의 파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구체를 깔아 놓은 밑바닥에 복잡한 술식을 술술 그리듯이 새겨 넣던 가면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잿빛 머리카락의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 주문이 발동되기는 하는 건가?”
“아마도… 허나,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편해서 좋군.”
“계산대로라면 성공하겠지. 너희 교단의 심령차력술과 마녀회의 소울 트랩, 그리고 최고비전인 파멸의 주술… 이 모든 수를 동원해서 그간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에너지 부족을 보완했다. 이론상 실패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장담을 못한다는 건, 이론과 실제의 차이 때문인가? 흠, 그 정도라면 괜찮겠지. 계획이 실패하면 이쪽도 출혈이 크니,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는군. 교황께서도 이번 일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신다.”
“…….”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선 사내는 또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 빵빵하게 들어찬 가죽 주머니를 꺼내놓았다. 움직일 때마다 주머니가 심하게 출렁이는 것으로 봐서는, 액체 상태의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자, 촉매도 든든하게 준비 되었으니… 이만 시작하도록 할까.”
휘황한 빛무리로 둘러싸인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던 가면 남자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굽이쳤다.
“…오키도 파멸의 전주곡을.”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전편 마지막 부분에 누락된 부분이 있었는데, 1시간 정도 지나서 급히 추가했습니다. 혹시 읽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읽어주세요~!
그리고 아이리스 주요 멤버들 저널 말인데, 이번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는 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벤트 이후에 여러모로 크게 변동사항이 있을 예정이라서요.
호야[虎夜] /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크성향에는.. 역시 임신공격! 이…
天魔書生 / 순순히 손에 넣을 순 없을듯…
김도리131 / 하하.. 겉모습은 오크이니 오크적인 면? 이 맞지 않을까요? .. 농담인거 아시죠?
Catmus / 추천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올리다보면 분량빨로 좀 올라가지 않을까요?
은신설야 / 감사합니다다아아아아아아아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 ㅎㅎㅎ 그래도 항상 코멘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북치네 / 감사 쾅쾅! 이번 에피소드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네요
불타는고기 / 그… 가디언즈오브갤럭시의 그 초록피부 여자? 가 생각나네요. 미녀라기엔 좀 무리가 있나.. 그래도 몸매는!
St0 / 정마아아아아아알 간절하시군요… 삼사일 안으로 덮밥 여부가 결정날듯?
†아마테라스† / 자매라기 보다는 소피아를 위해서겠죠? 어쨌든 이번 행보가 어떻게 결정날지… 조만간 끝을 내겠습니다
우낄푸핫 / 작가도 소피아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요..
벌레 / 투로리… 키잡이면 최소 10년인데.. 10년이면 구더기는 거의 육십.. 헉!
그건가요? 넌 더이상 내 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