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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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파멸의 전주곡
손 끝에 미미한 온기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생명의 촉감이 전해졌다.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생명. 감회에 젖어 있던 소피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속히 치유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잔해를 치우는 소리가 일부 촉수의 주의를 끌고 만 것이다.
쉬익! 쉭!
예닐곱 개에 달하는 촉수가 예의 그 뱀 소리를 내며 쇄도했다. 이를 악문 소피아는 양 손으로 아이를 끌어안으며 번개의 정령을 소환했다.
“크로아(Croa)! 저 촉수들을 막아줘!”
줄곧 무형의 전하(電荷)로만 존재하고 있던 번개의 정령이 비로소 제 형상을 갖추었다. 노엘이 부리는 흙의 정령이 인간형인 것에 비해, 소피아의 권속인 번개의 정령 크로아는 삐죽삐죽하게 깃털이 곤두 선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늠름하게 주인의 앞으로 나선 크로아는 위협하듯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두 날개 사이로 여러 줄기의 푸른 번개 다발을 뿌려댔다.
파지지직!
매섭게 달려들던 촉수들이 따끔한 번개 세례에 잠시 주춤한 사이, 소피아는 바람의 정령 핀(Pin)을 다시금 불러냈다.
“핀! 전장에서 이탈할 거야! 날 최대한 멀리 데려가줘!”
돌풍과 함께 나타난 바람의 정령 핀은 날렵한 늑대의 모습이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 핀은 소피아와 아이를 태우고 안전한 곳을 찾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후욱… 훅, 후우욱…….”
바람의 정령에 위에 몸을 실은 소피아의 안색은 품에 안고 있는 아이와 그다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파리했다. 정령의 이름을 부르고, 그 형상을 현신시키는 것은 강력한 속성 에너지를 다룰 수 있게 되는 대신, 그만한 대가를 수반한다. 흡혈귀의 몸으로 그런 정령들을 두 기나 부리고 있으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했다.
“조금만 더… 크후웁… 크억! 컥!”
소피아의 낯빛이 거무죽죽하게 변하며 목울대에서 울컥 핏물이 토해졌다. 전장에 홀로 남아 주인을 위해 시간을 벌고 있던 번개의 정령이 끝내 역소환을 당한 것이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주인인 소피아에게 전해져, 그 가녀린 몸에 막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령력의 원천인 소피아가 약해지자, 두 사람을 등에 싣고 달리는 바람의 정령의 몸뚱이가 흐릿하게 변했다. 정령계와 현세를 이어주는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자, 소피아는 절박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쉬이잇!
“으으…!”
등 뒤에서 집요하게 따라붙는 놈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힐끔 뒤를 돌아보자 거의 지척까지 따라붙은 촉수들이 보였다. 그 속도가 실로 무시무시해서,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당장에라도 뒤를 잡힐 것만 같았다.
“아아아아아–!”
필사적으로 아이를 끌어안은 소피아는 젖 먹던 힘까지 싸그리 긁어모아, 남은 힘의 거의 전부를 바람의 정령에게 쏟아 부었다.
-크르르릉!
주인의 애타는 마음이 전해졌음인지, 형형하게 눈을 빛낸 바람의 정령은 긴 울음을 토해내며 나는 듯이 대지를 박찼다. 질풍과 한 몸이 된 바람의 정령은 이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도심을 가로질렀다.
“엇! 저것 좀 봐!”
“바람의 정령이다! 뒤에 촉수가 따라붙고 있어!”
3초? 4초? 자신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한 바람의 정령은 마침내 주인의 명령을 완수하는 데 성공했다. 촉수 다발의 추격을 뿌리치고 소피아와 아이를 안전지대로 데려 온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전지대라기보다는 뒤로 후퇴한 헌터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파이어 볼!”
“이 국수 면발 같은 자식들! 저리 꺼져!”
아트로포스의 동태를 살피며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은 소피아의 뒤를 쫓던 촉수들을 합심해서 쫓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던 바람의 정령도 잔잔한 미풍이 되어 허공 속에 잔잔히 녹아들었다. 그 바람에, 그 등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여 타고 있던 소피아는 속절없이 바닥에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으윽!”
녹초가 되어 꼴사납게 굴러 떨어진 소피아는 그 와중에도 자기 몸으로 아이를 감싸 다치지 않도록 했다. 덕분에 백옥 같은 살결에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났지만, 소피아의 신경은 오로지 아이의 안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 그녀의 주변에 몇몇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멋진 탈주극 잘 봤어요. 못 보던 얼굴인데… 당신, 어디 소속이죠?”
“아이리스의 소피아예요. …비트레이 오너의 동생이기도 하고요.”
“아이리스…? 아아!”
생소한 클럽 명에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던 여성 헌터는 뒤에 덧붙인 말을 듣고 나서야 알겠다는 듯 짝 손바닥을 마주쳤다.
“당신이 그… 라이오넬의 여우? 어쩐지 비트레이 오너의 수배전단과 닮았다고는 생각했지만!”
꽤나 어수선해 보이는 여성 헌터는 수배자인 그리드의 동생이라는 점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하긴, 그리드가 범죄자라고 해서 소피아에게까지 연좌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가볍게 색안경을 끼고 볼 법 한데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는 걸 보니 원래부터가 수더분한 성격인 것 같았다.
“…옛날 일이긴 하지만요. 그보다 죄송한데, 사제 클래스나 치유 주문을 쓸 줄 아는 마법사 분 계신가요? 이 아이 좀 봐주세요. 부탁드려요.”
시선을 내려 소피아가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 여성 헌터는 어머나를 연발하며 아이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치유 주문이라면 제가 쓸 줄 알아요. 어휴, 손발이 너무 찬데… 일단 따뜻한 곳으로 옮겨야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소피아는 이마가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였다. 노구덕에게 복종할 때와 신소율에게 사과할 때를 빼면, 그녀가 이토록 몸을 낮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한 일인데요, 뭘.”
소피아는 포근하게 웃으며 답하는 여성 헌터의 얼굴을 똑똑히 머리에 새겨두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개인적으로라도 따로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여성 헌터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최후방의 의무대로 보낸 소피아는 그곳의 헌터 부대에 그대로 합류했다. 갈라진 나타샤 일행과 약속한 대로라면 본래 헌터하우스 쪽으로 가야만 했으나, 여성 헌터에게 전황을 전해듣자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임시 지휘부 역할을 하던 헌터하우스가 습격을 당했어요.”
“네?”
“저도 전령에게 전해들은 거라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팔을 사마귀처럼 휘두르는 괴인들이 기습을 했다나봐요. 거기에 자폭 노예들까지 가세해서, 헌터하우스 지부가 통째로 날아갔다고 해요.”
“…….”
더 얘기를 들어 보니, 그 습격으로 오너 여섯 명이 폭발에 휘말려 죽고, 상당수 인사들이 운신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벌레교단….’
소피아는 적들의 정체를 대강 짐작했으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임시 지휘부라면 헌터들이 꽤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도 그렇게 큰 피해를 입었단 말인가요?”
“그게… 현재 도시에 펼쳐져 있는 마력장 있죠? 그 방해 파장이 도시를 둘러 싼 경계첨탑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나 봐요. 그걸 막기 위해 후위의 예비 병력을 나누어서 첨탑에 파견했는데, 하필 그 틈에 적들이 들이치는 바람에……. 대체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불의의 기습으로 큰 타격을 입은 지휘부는 그 기능이 현재 거의 마비 상태라고 했다. 천운으로 살아남은 우룬과 몇몇 오너들은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정리하기에도 벅찬 것 같다고.
적들의 방식은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철두철미했다. 오키도에 테러를 자행한 벌레교단과… 아마도 이 일에 연관되어 있을 바이론은,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계획을 준비했음에 틀림없었다.
‘바이론, 그 자는 그렇다 치고, 벌레교단은 목적이 뭐지? 바이론의 실험성과를 얻으려고 하는 걸까?’
지금으로선 달리 알 방법이 없었다. 낮게 한숨을 내쉰 소피아는 여성 헌터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잠깐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아요. 방금 전 힘을 모두 써 버려서….”
“어머, 내 정신 좀 봐. 지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럼 소피아 씨, 여기는 후위 병동 막사니까 안심하고 쉬도록 해요. 다행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아트로포스가 이대로 가만히만 있어준다면 어느 정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예요.”
“…아트로포스요?”
“몰랐어요? 시스템에서 정의한 저 카름의 공식 명칭이에요. 들어보니까 이제껏 출현한 전례가 없는 유니크한 개체라네요. 풀네임은 비셔스 아트로포스. 이건 너무 기니까 그냥 아트로포스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외에도 주절주절 쓸데없이 수다를 떨던 여인은 소피아가 지친 기색을 내보이자 멋쩍게 웃고는 후방 막사를 떠나갔다. 말이 과하게 많은 걸 빼면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사람이었다. 간만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소피아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 하고 명상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진된 정령 에너지를 회복하던 소피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주위가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져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웅성웅성.
명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한번 일어난 소요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더욱 커지는 듯하자, 결국 견디지 못한 소피아는 아름다운 루비색의 눈을 치뜨며 명상에서 깨어났다.
‘아직 부족한데…. 절반도 채우지 못했어.’
명상으로 회복한 정령 에너지는 평소의 약 사 분의 일.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겨우 절반 수준 밖에는 안 되는 양이었다.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찰나, 소피아가 머물고 있던 후방 막사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다수의 사람들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제! 사제는 어딨나!”
“서둘러! 늦으면 죽는다고!”
들어오자마자 다급히 사제를 부르짖는 그들은 피투성이의 사내가 실린 들것을 들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왼쪽 발목과 팔이 뜯겨져 나간 남자는 보기에도 위태로울 정도로 숨을 껄떡였는데, 조속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대로 절명할 것 같았다.
“알았어요!”
다행스럽게도 병동 막사에 대기 중이던 사제 여인이 늦지 않게 달려와 치유 주문을 시전했다. 따스한 신성력이 체내로 스며들자, 고통스럽게 들락날락 거리던 사내의 숨결도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자, 신성력을 불어넣던 사제 여인은 아미를 찌푸렸다.
“이런 상처라니… 고비는 넘겼지만 최후방으로 이송해야 돼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트로포스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다들 힘을 합쳐서 저지를 하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뭐, 뭐라고요?”
새하얗게 질린 사제 여인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 사내는 쯧쯧 혀를 찼다. 직접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입장이다 보니 뒤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사제 여인이 조금 고깝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프로답게 정도 이상으로 속내를 내비치진 않았다. 대신 가볍게 사제 여인을 타박하며 핀잔을 주었다.
“못 들었어? 이 빌어먹을 전투가 다시 시작됐단 말이야. 아, 그리고 이쪽은 통신이 어느 정도 복구가 된 것 같으니까… 저기 통신용 수정이 있는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 언제든지 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참고로 이건 만약을 대비한 지휘부 명령이야.”
“만약…이요?”
“그래. 마력장이 점점 걷혀지곤 있지만 워프게이트 복구까진 시간이 꽤 걸려. 지원 요청도 좀 전에야 겨우 들어간 상태고… 이래서야 당분간 우리 힘으로 막아야 한다는 소린데, 알다시피 지금 전황이 좋지 않아. 지휘부는 최악의 경우… 도시를 버리고 퇴각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아.”
마지막 말은 가까운 사제 여인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 심각함에 전염된 사제 여인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 그럴 수가… 여기 환자들은 어떡하고요?”
“…어떡하긴. 불가피하면… 버려야지. 어쩔 수 없잖아. 보니까, 이 아트로포스란 놈, 살아있는 인간을 쪽쪽 빨아먹는 개체인 것 같아. 그 녀석에게는 중환자들이 모인 병동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겠지.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사내는 질겁하는 사제 여인을 곁눈질하며 피식거렸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아, 그래도 여긴 다행인가… 일단 녀석의 목적지는 정해진 것 같거든.”
“거기가 어디죠?”
“…일반인 환자들이 모인 최후방 막사야. 지금 놈은 그곳을 목표로 일직선으로 걸어오고 있어.”
최후방 막사라면, 겨우 구출해 낸 그 아이가 보내진 그곳이었다. 실로 믿고 싶지 않은 정보. 구석에서 조용히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소피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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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구출해 놨더니 다시 불구덩이로 굴러들어가야 하는 소피아..
작가.. 아침.. 투척.. 한다… 다시..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