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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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대결전
도심을 가로지르며 등장한 임유진은 능숙하게 손을 휘저어, 십여 개의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날려 보냈다. 그녀의 장기 중 하나인 플레임 샷(Flame shot)이었다. 임유진의 손을 떠난 농구공만한 불덩이들은 빠른 속도로 나타샤 일행을 지나쳐, 뒤로 접근해 오던 벌레교단의 잔당들을 자비 없이 불살라버렸다.
“꺼어어어…!”
“카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여섯 명의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하나 같이 맹렬한 불꽃에 휘감긴 그들은 사방팔방으로 팔다리를 흔들며 몸부림치더니, 이내 새카만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한 수에 여섯 명의 적들을 지옥으로 보내버린 임유진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타샤 일행을 맞이했다.
“수고하셨어요. 이쪽은 제게 맡겨주세요.”
“어… 고, 고마워요. 그런데 그 날개…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저도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말을 마친 임유진은 곧장 불꽃의 날개를 휘둘러 옆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던 검은 물질들을 사정없이 휩쓸어버렸다. 그녀의 속성은 광염(光焰). 빛과 화염을 한 데 모은, 만물을 정화하는 신성한 불꽃이다. 오키도의 헌터들을 그토록 괴롭혔던 아트로포스의 분신들도 상극의 권능을 휘두르는 그녀 앞에서는 하잘 것 없는 슬라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미 소울 트랩에 한번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던 임유진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소울 트랩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군요. 개체 수가 많은 대신 그 위력은 많이 떨어진 것 같아요.”
“…이게 위력이 많이 떨어진 거라고요?”
“아, 이것들의 속도를 말한 거예요. 저번에 제가 당했을 땐, 촉수가 피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거든요. 이렇게 느리진 않았죠.”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나타샤 일행에게 충고를 해 주는 임유진의 모습에, 산발 사내는 참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다.
“붉은 봉황…!”
산발 사내가 으르렁거리며 분노 섞인 음성을 토해내자, 임유진은 그때서야 비로소 사내를 의식했다.
“당신은…?”
“조심해요. 저 인간은 저번에 농장에서 오너를 습격한 벌레교단의 주동인물 중 하나예요.”
“…그래요?”
임유진의 눈빛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렇잖아도 본진을 지키느라 노구덕의 옆에 있지 못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예기치 않게도 그 아쉬움을 직접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온화한 얼굴상과는 다르게 투지가 끓어 넘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한 산발 사내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지난날 숱하게 그의 목숨을 구했던 생존본능이 미친 듯이 비상종을 울리고 있었다.
‘싸우면… 죽는다.’
혹시 몰라 대(對) 임유진 비책을 준비해갔던 습격 당시라면 모를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지금은 절대 승산이 없었다. 대륙의 정반대편에 있는 붉은 봉황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원수 같은 놈들을 눈앞에 두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원통하긴 했으나,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대계(大計)는 진행 중이다. 여기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순 없었다.
산발 사내는 남은 수하들을 돌아보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물러난… 컥!”
미처 말을 다하기도 전에 복부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언제 날아왔는지도 모를 단검 하나가 복부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단검 손잡이 끝에 가느다랗게 붙어 있는 붉은색 마력 줄기까지도.
등골이 서늘해진 산발 사내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다, 돌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거미줄처럼 사방에 퍼져 있는 마력의 그물. 그리고 날카로운 살의를 품은 채,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허공에 떠 있는 수십 개의 단검들. 만전의 태세를 갖춘 임유진은 차디 찬 눈초리로 산발 사내를 노려보았다.
“누구도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어요. 정 가려거든, 목숨은 두고 가세요.”
산발 사내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대단히 건방지고 오만한 선고였으나,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제길… 산개해라!”
“어딜!”
벌레교단의 인물들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지자, 임유진은 기다린 것처럼 팔을 휘둘러 수십 개의 단검을 날려 보냈다. 그녀가 조종하는 단검들은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삽시간에 그들의 등 뒤에 따라붙었다. 사내들이 쏘아진 화살이라면, 임유진의 단검들은 천공을 가로지는 번개. 임유진이 전장에 등장한 그 순간부터, 벌레교단의 인물들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오공이나 다름없었다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명백한 힘의 차이.
끈적거리는 핏물을 한껏 들이킨 단검들이 주인의 손에 돌아오는 데에는, 눈을 두어 번 깜박거릴 시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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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읏….”
“소피아 씨? 정신이 들어요?”
백태가 낀 듯 뿌옇게 번졌던 시야가 점차 선명해지며 고운 얼굴선의 윤곽이 잡혔다. 잔잔한 바다를 닮아 푸르게 물결치는 머릿결, 진주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 소피아는 갈라진 입술을 열어 여인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실렌…….”
모기만한 음성을 용케 알아들은 실렌은 얼굴을 환히 밝히며 소리쳤다.
“다행이다! 의식이 있군요? 저 실렌이에요! 오너! 소피아 씨가 정신을 차렸어요!”
“그래?”
가까이서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소피아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려왔다.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는데….’
노구덕의 존재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의식을 회복한 것도, 그녀의 본능이 주인의 존재에 자극을 받아 정신을 일깨운 덕분이었다.
“소피아, 말할 수 있겠냐?”
“그…럼요. 저… 생각보다 명줄이 질기네요….”
“쯧. 이걸로 목부터 축여라.”
짧게 혀를 찬 노구덕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수통을 내밀었다. 얌전히 찰랑거리는 수통을 받아 든 소피아는 꿀꺽 넘기는 소리를 내며 두어 모금 따스한 온수를 들이켰다. 뜨끈뜨끈한 물이 목구멍을 통해 꿀떡 넘어가자 가뭄이 든 것처럼 쩍쩍 갈라졌던 안색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도는 듯했다.
“저… 으극!”
입술을 떼며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했던 소피아는 갑자기 머리를 빠갤 것처럼 밀려드는 두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양 관자놀이를 지그시 짓눌렀다. 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통증. 이건 노구덕이 그녀의 두뇌를 열어보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음, 미안하다. 네 기억을 좀 훑어봤어. 돌아가는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했거든. …많이 아프냐?”
“아니요… 아니, 아프긴 하죠… 머리가 아주 지끈거려요. 근데 전 이런 일로 꼬투리를 잡을 만큼 속 좁은 권속이 아니랍니다.”
노구덕은 그녀의 맥 빠진 목소리에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흐흐… 농담하는 걸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구나.”
노구덕은 살포시 소피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는 소피아의 붉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고생했다. 그리고… 잘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오키도는 오늘 멸망했을 거다.”
“…….”
크고 따뜻한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소피아의 작고 동그란 어깨가 희미하게 떨려왔다. 고개를 푹 숙인 소피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필설로 형용 못할 감정이 가슴 밑바닥부터 북받쳐 오른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시울이 데인 것처럼 뜨거워졌다.
기억의 색조차 바래버린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칭찬받았을 때의 기분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었다. 부모와 함께했던 추억은 이제 꿈속에서나 간혹 등장하는 단역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꿈속에서라도 갈망하던, 지극히 그리고 있던 온기였다.
“…우냐?”
“아…니요. 안 울어요.”
자연스럽게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부정하긴 했으나, 살짝 붉어진 눈가와 젖은 목소리까지 숨길 순 없었다. 본인도 그걸 알았는지, 소피아는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죠? 카름은, 아트로포스는요?”
“…….”
“…주인님? 그렇게 빤히 보시면… 저, 얼굴이 닳아 없어질지도 몰라요.”
“흠, 그러냐? 잠깐 밖에 내보냈을 뿐인데, 너도 꽤 변한 것 같구나. 이래서 세상경험이 중요한 거야.”
“네?”
“아니, 아니다.”
팔랑팔랑 손을 내저은 노구덕은 팔을 뻗어 소피아의 어깨너머, 뒤쪽의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넌 두 시간 정도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아트로포스는… 보다시피 저 모양이다.”
노구덕의 팔을 따라 머리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사제 여인을 비롯해 그녀의 주위에서 함께 싸우던 헌터들과, 임유진, 나타샤, 이두식 등 아이리스의 헌터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원통형의 새까만 물체였다.
길쭉한 끝이 하늘을 향한 달걀형의 물체는 마치 똑바로 선 오뚝이를 보는 듯했다. 그 겉표면은 심장이 뛰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둥그스름한 형상도 그렇고, 그 모양이 꼭 부화하기 직전의 고치를 닮아 있었다.
“…고치? 저게 아트로포스라고요?”
“그래. 이제 저것만 처리하면 되는데… 결계의 방어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 뭐냐, 리치의 절대방어 있지? 그것보다 더한 것 같다.”
노구덕은 그러면서 그녀가 기절한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상세히 얘기를 들려주었다.
마녀회의 정통을 이은 데모나, 광염을 다루는 임유진, 벌레교단의 비전으로 신성력을 대폭 증강시킨 실렌. 노구덕이 아이리스에서 데려온 지원군들은 모두 아트로포스와는 상극인 힘을 다루는 이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노구덕이 오키도의 재앙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데모나… 정확히 말하자면 리치 베로니카 덕분이었다. 데모나가 봉인석에 가둬 놓았던 베로니카의 정신을 제때 굴복시킨 덕분에, 유적을 먼저 찾아왔던 바이론의 계획을 알게 된 것이다. 원래 지원대를 파견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데모나가 합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노구덕은 원래 생각했던 지원대의 구성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상기, 가이탄, 허문수, 노엘 등… 거의 모든 이들이 자원해 나섰지만, 결국 선택된 것은 상극의 기운을 다루는 위의 세 사람 뿐이었다. 베로니카에게 들은 대로라면 그 외의 다른 인원은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클럽 상황상 많은 인원을 뺄 수 없었던 것도 지원대를 간소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와중에 신소율이 자기도 데려가라고 생떼를 썼다가, 노구덕에게 호된 꾸지람을 당하고 눈물을 쏙 뺐다는 것은 논외로 하자.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지원대는 알맞은 때에 도착했고, 데모나, 임유진, 실렌을 중심축으로 하여 시민들을 위협하던 아트로포스의 분신들을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었다. 그게 약 한 시간 전의 일.
“사전에 네게 연락을 취하려고 했는데 오키도 쪽으로 통신이 되질 않더구나. 그래서 바로 옆 도시의 워프게이트를 이용해 이쪽으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요.”
“당연한 건데 감사는 무슨. 그보다 저게 문제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 저런 고치를 만들어서는 요지부동 꼼짝도 하질 않으니… 이대로 시간을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놈이 부화한다!”
“고치가 열리고 있습니다!”
긴 설명을 늘어놓던 노구덕과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하던 소피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제 자리에서 펄떡이던 고치가 세로로 반듯하게 열리고 있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부화하듯, 쩍 갈라진 틈 새로 엿보이는 것은 순백의 결정체.
놀랍게도, 갈라진 고치 사이로 나타난 것은 가슴에 양 팔을 곱게 포갠 전라의 여인이었다. 눈, 코, 입, 그리고 팔과 다리… 어딜 봐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인간. 굳이 비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 미모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어….”
눈을 꼭 감은 여인의 자태를 망막에 담은 소피아의 동공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열렸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오들오들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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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그리드의 부활(?)???
예상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네요. 바이론이 이런저런 실험을 하는 최종 목적은 누차 말씀드렸지만 잃어버린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거라서요. 괴물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stigma / 제가 영광이죠! 그런 헌터들이 온 게 우연이 아니랍니다 ㅎㅎ
월병인 / 마녀회의 공주??? 가져다 붙이면 그럴수도 ㅋㅋ
코카콜라중독 / 음… 따지면 7할 정도 되지 않을까요. ‘평화주의자’ 특성 때문에 온갖 디버프를 받고 있는 상태라..
우낄푸핫 / 백발마녀도 좋은데… 백발에 물광좀 내면 은발 아닌가요?
호야[虎夜] / 로드!
whomi / 모두 찍 했다고 합니다
벌레 / 낮이밤져? 밤이낮져???
트릭스타 / 검색해보니까 생김새가 영.. 질뻐기 같은 놈이네요
은신설야 /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북치네 / 넵 감사합니다!
콜마 / 응? 여자 다 손대면 추악한 늙은이인건가요? 다 손대는 멋진 늙은이가.. 될 수도…
†아마테라스† / 이제 단독 파트는 끝났으니 매편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