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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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때가 되어 지는 벚꽃처럼
68# 때가 되어 지는 벚꽃처럼
오키도의 경계 첨탑. 피에 절어 널브러진 사체들 위로, 허수아비처럼 우뚝 서서 폐허가 된 도시를 내려다보는 두 쌍의 눈이 있었다.
“저건 틀렸군. 전투 기술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저래서야 힘만 센 어린애일 뿐이지.”
“그래.”
가면 사내가 아쉬운 듯이 중얼거리자, 잿빛 머리의 중년인, 바이론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이정한, 그놈이 모처럼 얻은 좋은 샘플을 가져왔는데 말이야… 정말 아쉬워. 이대로 폐기해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미련은 빨리 버리는 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어차피 시제품일 뿐. 성과는 충분히 얻었다.”
“그렇긴 하지. 보는 나도 놀랐다니까. 평생 제대로 된 훈련 한번 받아본 적 없는 계집이 저런 엄청난 힘을 휘두르다니… 만약 내게 저 정도의 힘이 있었다면 저기서 걸리적대는 것들은 일찌감치 저승행 티켓을 끊었을 거야.”
“…….”
따로 대꾸를 하진 않았으나, 바이론도 그 말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복수심에 젖은 그리드를 바이론이 직접 시술하여 모체로 삼고, 그녀의 원한과 증오,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들을 원동력으로 하여 힘을 몇 배나 증폭시켜 주는 파멸의 주술을 걸었다. 그 사악한 동력은 곧 소울 트랩의 근원이 되었고, 소울 트랩으로 흡수한 에너지는 다시 심령차력술로 인해 그리드의 힘으로 전환되었다.
이렇듯 바이론의 연구성과, 마녀회의 주술, 벌레교단의 비전이 집약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오키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카름, 아트로포스였다.
“뭐, 성과는 직접 확인했으니까 아쉬운 건 이쯤 접어야겠지. 본 교단과 접촉했던 계집을 살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이번 습격으로 교단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나?”
“‘교단’이 특정 지어진 것과 의문의 테러단체가 나타난 건 어감부터가 다르거든.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이쪽도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지. 또, 저 그리드란 계집은 이것저것 알고 있는 게 꽤 있기도 하니까… 혹시라도 입을 놀리면 귀찮아져.”
말하는 걸로 보아, 가면 사내는 처음부터 그리드를 살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던 것 같았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오키도에서 진행된 실험도 성공적으로 끝났겠다, 교단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리드를 살려둘 까닭이 없었다.
“저것들이 대신 쓰레기를 치워주니 나도 편해서 좋군. 자고로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아, 그런데 저 계집이 죽어버리면 체내의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 거지? 실패작들처럼 펑! 터져버리는 건가?”
“그건 알 수 없다. 이제껏 저만한 성공작이 등장한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대로 몸에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
“저만한 마력이 말이지?”
미련을 거둔 듯했던 가면 사내의 눈빛이 살짝 일변했다. 그리드의 몸뚱이를 쓰레기 취급했던 사내도, 역시 그녀가 품고 있는 막대한 에너지 자체는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쉬운가?”
“그럼. 나도 사람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됐어…. 더 끌었다간 ‘그놈’과 마주칠지도 몰라. 늑대왕을 부추겨서 시간을 벌긴 했지만, 슬슬 왕림할 때가 됐지. 괜한 욕심에 목이 달아나는 건 사양이라고.”
가면 사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바이론은 그런 사내를 묘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힘에 욕심을 내는 듯하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곧바로 포기해버린다.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인간이었다.
“자넨 오래 살겠군.”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흠, 그나저나 저 아이리스란 놈들… 저력이 범상치 않단 말이야. 충왕각인을 쓰는 남자가 있는 것도 그렇고, 붉은 봉황, 혼돈의 정령에, 아벨의 손까지… 저것들 정말 미들리그의 헌터들이 맞는 건가? 아! 맞아, 저 까만 머리 계집도 요주의 인물이로군. 앞으로 눈여겨봐야겠어.”
“…눈여겨본다라.”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인연은 아닌 것 같거든. 싹수가 노란 것 같으니 기회가 되면 쓱삭~ 해 줘야지. 어라? 어딜 그렇게 보는 건가?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만 가지.”
어딘지 모르게 복잡한 눈길로 한 곳을 주시하고 있던 바이론은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가면 사내는 묘한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그래도, 너무 싱거우면 흥이 떨어지지. 동부 놈들이 주로 쓰는 말 중에… 그, 뭐랬더라? 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우선 잡초 하나만 미리 뽑아보도록 할까. 하하.”
바이론이 사라진 첨탑 위에 홀로 선 사내는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며 가볍게 실소하더니, 천천히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이윽고 다시 바람이 불어왔을 땐, 첨탑 위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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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아악-!”
그리드는 쇠를 긁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처음 고치에서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티 하나 없었던 우윳빛 나신은 실금 같은 상처들로 인해 군데군데 붉은 얼룩이 져 있었다.
“개새끼들! 날파리 같은 것들! 죽어! 죽으란 말이다!”
험악한 욕설과 함께 어둠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좀처럼 유효타가 나오지 않으니 물량공세를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공격은 본신의 힘만 뺄 뿐, 숱한 전투로 단련된 헌터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전투 경험의 부재. 바로 이것이 카름으로 화한 그리드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보검을 들고 있으면 뭘 하는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세 살배기 어린아이인 것을.
퍼억!
돌연 광대를 얻어맞은 그리드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그리드가 마력을 발산하고 숨을 돌리는 사이, 금세 거리를 좁힌 노구덕이 무자비한 주먹질을 날린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광대뼈가 으스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터져버렸을 테지만, 카름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그리드는 뺨 주변이 붉게 물드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 외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얻어맞은 정신적 충격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여자의 얼굴 아닌가. 카름이 되었어도 그런 본성은 그대로였다.
“이, 이… 아아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눈알을 까뒤집은 그리드는 목이 터져라 핏대를 세우며 노구덕에게 달려들었다. 어찌나 분노했던지, 아벨의 손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양 손에서 새까만 요기가 뭉클뭉클 뿜어져 나오며 대기를 찢어발겼다.
그러나 노구덕은 그녀와 정면으로 상대해 줄 생각이 없었다. 초감각으로 위협을 감지한 노구덕은, 약삭빠르게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뺐다.
“이크! 안 되지!”
“이 개자시이이익—!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넌 여자가 아닐 텐데, 이 괴물아.”
“우아아아아악!”
그의 도발에 눈자위를 벌겋게 물들인 그리드는 이를 갈며 노구덕만을 노렸다. 갖은 주문에 두들겨 맞아도, 다른 헌터들의 칼과 도끼가 피부를 내려쳐도, 오로지 노구덕만은 결단코 제 손으로 쳐 죽이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그 처절한 살의는 노구덕에게 닿지 못했다. 아벨의 손은 그리드의 마력은 물론이고, 강인한 신체 능력마저 크게 약화시켰다. 둔화된 그녀의 팔은 더는 이전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와 달리 능력이 강화된 노구덕은 등에 날개를 단 듯 몸놀림이 경쾌했다.
거기다, 그녀를 방해하는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임유진이었다.
“하앗!”
등 뒤에서 화끈한 열기가 덮쳐오자, 그리드는 무시 일변도의 태도를 바꾸어 다급히 어둠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뒤이어 살갗이 타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화염이 방패를 뜨겁게 달구었다.
“으으으으으…!”
그리드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열기를 참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방패로 열기를 차단하고 있음에도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다른 헌터들의 공격은 모두 몸으로 받아낼 수 있어도 임유진의 공세만은 예외였다. 두 장의 찬란한 날개를 꺼낸 임유진의 불길은, 힘을 잃은 어둠의 마력을 뚫고 그리드의 몸에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고 있었다.
“여기도 있다!”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익스플로젼(Explosion)!”
그리드가 지옥의 유황보다 더한 임유진의 광염을 맞받아내고 있는 동안, 그 빈틈을 노리고 마력을 가득 머금은 칼날과 푸른 번개 줄기, 불꽃의 폭발이 배후를 강타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무시한 채, 눈앞의 임유진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리드는 살갗을 파고드는 격렬한 통증에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그리드가 볼품없이 나뒹굴며 악을 쓰는 사이, 그녀의 배후를 공격했던 헌터들은 얼굴에 커다란 희열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통했다! 방어력이 떨어졌어!”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었던 그리드의 육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타격을 입었다. 점점 데미지가 누적됨에 따라, 철벽과도 같았던 그녀의 신체도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다른 헌터들의 공격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강인한 육체 하나만을 믿고 싸워왔던 그리드로서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 끝에 내몰린 셈이었다.
“슬슬 접근전으로 끝내도 되지 않겠습니까? 항마력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 주문으로는 결정타를 주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느 헌터의 말에, 노구덕은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했다. 그렇잖아도 주위에 둘러쳐진 ‘아벨의 손’의 막이 점점 엷어지는 것이 눈에 띄던 차였다. 이 정도면 힘은 충분히 뺐으니, 실렌의 힘이 다하기 전에 그리드를 끝장내야만 했다.
“그게 좋겠군요. 그럼 제가 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예? 아….”
노구덕은 사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육중한 다리를 활시위처럼 튕기며 그리드에게 돌진했다. 방금 전 말한 대로, 그리드를 제압해 나머지 헌터들이 결정타를 먹일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공명심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리드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이 자신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격력을 비롯한 다른 능력치는 오키도의 헌터들보다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을 바탕으로 한 맷집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특히 그리드처럼 온몸에서 어둠의 마력을 뿜어대며 접근을 제한하는 유형이라면, 이전에도 싸워 본 경험이 있었다.
‘티라녹. 그놈의 독액도 무지하게 쓰라렸지. 지금은 실렌의 도움도 있으니…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혹시라도 부족한 공격력은… 유진이가 해결해 줄 테고.’
잠깐 머리를 굴리는 동안, 어느새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리드의 얼굴이 코앞에 닿아 있었다.
“소원대로 맞상대 해주마. 이 빌어먹을 년아.”
“이… 자식! 터헙!”
뻑!
둔중한 소리와 함께, 거칠게 이를 갈아붙이던 그리드의 턱이 위로 치솟았다. 보자마자 그녀의 턱을 아래에서 올려 쳐버린 노구덕은 이번엔 명치어림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카학…!”
푹신푹신한 앙가슴이 우악스럽게 일그러지며 몇 방울의 침이 튀었다. 명치를 강하게 얻어맞으니 숨을 쉬기가 어려운 듯했다.
“웃기는군. 카름 주제에 호흡기관은 인간이란 거냐? 큭!”
비아냥거리는 것과 동시, 쉬지 않고 연타를 먹이려고 했던 노구덕은 찰나지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가 뿜어낸 어둠의 마력이 그의 주먹을 피부째로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절한 재생력 덕분에 외팔이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재생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개미떼가 살을 갉아먹는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크으으…!”
“뭐, 뭐냐? 왜 안 녹는 거지? 너, 정체가 뭐야?”
그리드는 노구덕의 손이 바로 녹아버리지 않고 형체를 유지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소리를 쳤다. 허나 노구덕은 그에 답하지 않고 부글부글 거품이 이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나는!”
퍼억!
“이 정도로!”
빠각!
“죽지 않는다!”
뻐어억!
보는 이의 기가 질릴 정도로 무자비한 난타였다. 노구덕은 전혀 사정을 봐 주는 법 없이 무지막지하게 그리드의 가녀린 육체를 두들겨 팼다. 그러나 그리드 역시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전투경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그녀였지만 하도 맞다 보니 이골이 났는지, 극히 뛰어난 동체시력을 바탕으로 노구덕의 주먹이 날아오는 부위에 암흑의 기류를 생성하여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노구덕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걸.
“허접한 놈! 네 공격은 이제 훤히 다 보인다!”
“그렇겠지. 내 주먹이 느린 건 나도 알고 있어.”
“뭐? …컥!”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던 그리드의 입에서 갑자기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드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힘없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등 뒤에서부터 깊숙하게 박힌 화염의 창이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맑은 불꽃에 휩싸인 길쭉한 창은 임유진이 날려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불의의 기습에 그리드의 몸이 맥을 못 추고 비틀거리는 찰나.
푹! 푸욱! 써걱!
수 개에 달하는 예리한 병장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몸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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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려요
이제 한편이면 이번 파트 마무리. 더불어, 소제목을 따로 나누지 않고 미루었던 것도 슬슬 나눠야겠네요.
벌레 / 요청이 굉장히 구체적이시군요… 일단 킵해놓겠습니다..
월병인 / ……쉿! 하도록 하겠습니다
엠파이어3 / 괜히 마녀의 혈통이 저주받은 혈통이 아니지요..
†아마테라스† / 인덕 하나는 그래도 있네요.. 쥔공이..
우낄푸핫 / 어… 음….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