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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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남겨진 것 (1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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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호. 그녀의 방에서 꽤나 가까운 곳이다.
‘빈 방일 텐데… 사람이 와 있다니, 누구지?’
오래 누워있느라 머리가 굳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딱히 이 사람이다 하고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 소피아는 자신이 403호의 방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똑똑.
두어 번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
역시 낯익은 음성이 아니다. 아니, 어디선가 들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활기가 넘친다는 걸 제외하면 극히 평범한 톤을 가진 여인의 목소리라 바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의문을 뒤로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열던 소피아는, 문틈으로 불쑥 튀어나온 여성의 얼굴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깨어났다는 말은 들었어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요란스런 접대에 잠시 말문을 잊어버린 채 서 있던 소피아는 이내 황급히 입술을 더듬거렸다.
“아! 그, 그러니까… 이, 이름이…?”
“박선주예요. 그쪽은 소피아 씨, 맞죠?”
보기에도 활기찬 웃음을 머금고 있는 여인은 아트로포스와의 전투 당시 그녀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던 그 사제 여인이었다.
‘이 바보! 이름 하나 제대로 못 물어 보고….’
자책은 잠깐이었다. 소피아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박선주 씨, 살아있었군요!”
“에에, 뒤에서 지원만 했는데 다칠 일이 있나요. 뭐, 위험할 뻔한 적도 있긴 했지만, 소피아 씨 덕분에 살았어요. 까만 슬라임 같은 게 딱 저를 덮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빛무리가 홱 쏟아지더니 그게 홀라당 타버렸지 뭐예요?”
“…다행이네요.”
소피아는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딱 질색이지만, 이상하게도 산만하게 수다를 떠는 박선주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이라 그런 것일까.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내 정신 좀 봐. 얘! 소냐! 이모 오셨단다. 인사 드려야지?”
그렇게 말한 박선주가 비스듬히 옆으로 물러서자, 가로막혀 있던 시야가 훤히 트이면서 침대에 앉아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심심한지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아이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임유진의 딸, 가희였고, 어색하게 쭈뼛거리는 얼굴로 그 옆에 앉아 있는 아이는… 소피아가 갖은 고생 끝에 구출해 낸, 바로 그 아이였다.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감상하던 소피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아이 이름이… 소냐였군요.”
“엥? 몰랐어요?”
그러는 동안, 침대에서 일어난 소냐는 머뭇머뭇 문가로 다가왔다. 비단같이 늘어진 벌꿀색 머리카락이 찰랑일 때마다, 그 사이로 튀어나온 길고 삐죽한 귀가 쫑긋거리며 흔들렸다. 솜털이 넉넉히 들어간 겨울용 드레스가 무척 잘 어울리는 엘프 여아는, 소피아의 어린 시절을 빼다 그린 듯 똑 닮아 있었다.
이윽고, 석상처럼 굳어 있는 소피아의 앞까지 걸어온 아이는 양손으로 드레스자락을 살짝 집어 올리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모님.”
“…그래. 만나서 반가워.”
일곱 살이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경직되고 딱딱한 말투. 붕 떠올라 있던 정신을 수습한 소피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라고….’
그녀와 소냐의 첫만남은, 그리드가 대기 중이던 헌터들을 불러냈을 때였다. 그 소란의 와중에도 제 엄마가 걱정되어 얼굴을 내밀었던 그 여아. 하지만 소냐는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소피아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기절해 있었던 두 번째 만남은 말할 것도 없었고.
“…….”
“…….”
오랜만에 만난 이모와 조카는 어색한 공기를 물씬 자아내며 목각인형처럼 서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이런 쪽으로는 영 요령이 없는 삶을 살았던 탓이었다.
소피아와 소냐가 서로 달랑 인사말 하나만을 던져 놓고 쭈뼛거리자, 보다 못한 박선주가 나서서 두 사람을 부추겼다.
“에잇! 무슨 가족 상봉이 이렇게 팍팍해요? 소피아 씨, 잠깐 무릎 좀 꿇어 봐요! 눈높이 좀 맞추게! 그리고 소냐, 너도 그래. 꼬맹이면 꼬맹이답게 굴어야지. 여기 이모한테 꼭 안겨. 응, 옳지, 잘한다.”
“네, 네?”
“…웃.”
푼수끼 가득한 완력으로 두 사람을 끌어당겨 찰싹 붙여 놓은 박선주는 제법 그럴듯한 그림이 만들어지자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다.
“이거 봐. 둘 다 인물이 예쁘고 참하니 얼마나 분위기가 살아요? 자매 같네, 자매 같아. 자, 이제 마음껏 기뻐해도 돼요.”
“…….”
그러나 제멋대로 손뼉을 치는 박선주의 찬사와는 달리, 억지로 이모와 포옹을 한 소냐의 얼굴은 영 불편해 보였다. 정확히는 불편하다기 보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나타나 있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친모로부터 학대만을 받아온 아이다. 그 이전에도 제대로 된 애정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소냐의 눈에는, 엄마를 빼닮은 이모도 크게 다르지 않게 비쳐졌다. 애초에, 이모라고 해봤자 여태껏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사람 아니던가. 솔직히 말하면 타인만도 못한 관계였기에,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소냐는 슬쩍 시선을 돌려 생글생글 웃고 있는 박선주를 쳐다봤다. 요 며칠 간, 오키도에서 이곳까지 쭉 자신을 돌봐줬던 사람. 처음으로 따스한 온정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모보다는, 차라리 저 사람을 따라가고 싶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어깨가 축축이 젖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따뜻한 손아귀가 양볼을 감싸듯이 어루만지는 게 느껴졌다.
“…이모님?”
놀란 소냐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뻐금거렸다. 어깨에 파묻혔던 얼굴을 든 이모의 얼굴에서, 이슬처럼 투명한 물방울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미안해…. 울면 안 되는데….”
눈시울을 붉힌 소피아는 취한 것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코를 훌쩍이며 소냐의 작은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그러자 포근한 체온과 함께,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기색이 전해졌다.
아이가 안쓰러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갑자기 자신이 소냐가 되기라도 한 듯, 오래된 서러움이 북받치더니 눈에서 빗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진한 동질감… 이 아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너무나 닮았다. 소피아는 말없이 흐느끼며, 아이의 가녀린 등허리를 꾹 힘주어 끌어안았다.
대화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나버린 언니가 남긴 유일한 혈육이다. 에밀, 란돌프… 이제는 멀리 떠나버린 지인들을 유일하게 같이 기억하고, 기릴 수 있는 상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아이는 자신의 조카였다.
‘절대 혼자 두지 않아.’
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다. 이 아이마저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할 순 없었다. 그리 다짐한 소피아는 쓱 눈물을 훔치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미안. 놀랐지? 이름이 소냐라고 했니?”
“네. 애칭이긴 하지만… 다들 이렇게 불러요. 저도 이게 편하고요.”
“애칭? 본명은 뭐지?”
“소니아요. 엄마가 지어주셨어요.”
“소니아….”
소피아가 가만히 그 이름을 되새기는데, 옆에서 기도하듯 손을 맞잡고 혼자서 감격하고 있던 박선주가 눈치 없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소니아? 소피아 씨랑 이름이 비슷하네요! 혹시 거기서 따온 거 아니에요? 예쁘고 똑똑한 동생처럼 자라라는 뜻으로?”
“그럴 리가….”
자신이라면 질색하는 언니가 그랬을 리 없다. 하지만 부정하듯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드는 것은… 미처 떨치지 못한 미련의 잔재일까.
“아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소냐, 정말 똑똑하거든요. 꼭 소피아 씨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요. 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요. 저기 쟤는 소냐보다 3살이나 더 많으면서 아직까지 구구단도 못하고…. 소냐는 물어보면 척척 나오는데. 소냐, 이모한테 한번 보여주자. …팔 육은?”
“사십팔이요.”
“우씨이! 구구단이 다 뭐야! 난 그런 거 배운 적 없다니깐!”
“오호호!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니까.”
입을 가리며 주책맞은 아줌마처럼 호호 웃는 박선주와, 그런 그녀를 씩씩거리며 노려보는 가희. 무척 분해하는 꼴을 보니 이것가지고 얼마나 놀려댔는지 알겠다. 그러면서도 굳이 이 방에서 놀고 있었던 걸 보면, 가희도 소냐를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한 편의 촌극과도 같은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던 소피아는 갑자기 피식거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는 소냐를 얼싸안으며, 그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우리,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소피아는 멀뚱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소냐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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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와 소냐, 두 사람과 예기치 못한 만남을 가진 소피아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왔다. 그녀는 왠지 모를 고양감에 휩싸여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냐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비트레이는 이번 사건으로 거의 모든 헌터들이 죽임을 당했고, 클럽 홀조차 폭삭 무너져버렸다. 그리고 비트레이가 가지고 있던 사업체들은 연맹의 관리 하에 모두 매각되어 이번 전투에 참여한 헌터들에게 보상금조로 돌아가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다.
실상, 비트레이의 유일한 후계자인 소냐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티아스 쪽에서도 그녀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은 듯했고. 달리 갈 곳이 없었던 소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게 되었지만, 곧 그 아이도 이곳에 정을 붙이게 될 터.
‘아니, 그리 될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야지.’
소냐의 멋쩍은 얼굴을 떠올리며, 싱거운 웃음을 지은 소피아는 돌연 막막한 기분에 걸음을 멈춰 섰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위층과 아래층으로 나뉘는 계단이었다.
‘어떡하지….’
소피아는 주머니에 담긴 아트로포스의 핵을 만지작거렸다. 급한 불은 껐으니, 남은 건 데모나와 의논해서 핵의 올바른 사용처를 찾으라는 노구덕의 지시다. 다만 그건 별로 시급한 용무가 아닌데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발에 못이라도 박힌 양, 쉬이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계단을 앞에 두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던 소피아는 결국 위층에 가기로 가닥을 잡았다. 5층. 이곳과 마찬가지로 헌터들의 개인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약 일 분여가 지난 뒤. 소피아는 5층의 어느 방문 앞에서 작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책사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능글맞게 상대해 왔던 그녀다. 그러나 지금은 막 강단에 선 초짜 연설자보다도 더욱 심하게 떨고 있었다.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끝낸 소피아는 질끈 입술을 깨물고 작게 노크를 했다.
똑똑.
“…무슨 일인가…? 식사라면 됐네….”
드문드문 갈라진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사그라드려는 찰나, 소피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덧붙였다.
“저, 어르신… 소피아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
방문을 사이에 둔 허문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소피아의 심장 박동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에야, 간신히 허락이 떨어졌다.
“들어오게.”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임가희… 의문의 1패…
그리고 소개글을 바꾸고 코멘을 본 작가도 1패를 당했다고 한다…
임신을 부르짖는 분들이 많으신데… 비보를 전해드립니다.. 소피아는 이미 아이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소냐를 양녀로 들일 예정이죠.. 실제 임신은 아마 먼 훗날에나?
미리 살짝 알려드리건대, 이번 파트 마무리짓고 1부 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1년~2년 뒤의 이야기를 다룰까해요. 그게 2부 시작입니다.
벌레 / 비보… 참조… 바랍니다..
불타는고기 / 아니.. 왜 그런쪽으로 해석이 되는 거죠??
Velos / 딜탱의 극한을 향해서!
아토므스크 / 여기.. 두번째… 비보.. 참조 바랍니다…
호야[虎夜] / 해묵은 감정일지라도 에피소드 마무리는 지어야지요 ㅎㅎ
사고뭉치00 / 흠… 게임소설처럼 몹잡고 렙업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서요 ㅠㅠ 하지만 저 핵을 제외하고도 저널적인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파트 마무리하면서 아이리스 헌터들 저널을 주루룩 나열할 예정! 그리고 집필기간은 뭐.. 따로 준비할 게 있나요. 그냥 휙휙 쓰면 되는 것을..
날꼬 / 소개글.. 의외로 여론이 좋지 않군요..
cxz778 / 이제 재생력도 보충했으니 조만간 새겨지지 않을까 하네요
Raden / 그럴 수가.. ㅠㅠ
asd메이지 / 제 센스의 한계인가요..
월병인 / 소개.. 소개를 바꿔야 하나..
kil12 / 403호 어떻게 아셨지! 작가 뜨끔했습니다!
dlftjsgkdl / 미안해… 실렌…
whomi / 아픔이 있어야 성장도 있으니.. 제 책임입니다.. ㅠㅠ
우낄푸핫 / 그래도 다리는.. 생겼네요.
엠파이어3 / 후.. 인주 그대로 실현되었네요..
14C2A58H2 / 그래도 가족들과 행복하게 있으리라 믿습니다..
은신설야 / 작가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북치네 /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