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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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녀의 산(Witch’s mountain)
핑! 피피핑!
괴물의 팔이 노구덕의 머리통을 으깨버리려는 찰나,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수 발의 화살이 날아와 괴물의 팔과 몸통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화살에 실린 힘에 괴물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덩달아 촉수가 감고 있는 힘도 느슨해졌다. 노구덕은 발목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킨 그는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해댔다. 그 와중에 괴물은 십여 발에 가까운 화살 세례에 완전히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
-끼에에–!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한 괴물이 뒤로 수 걸음 물러났다. 그 덕에 촉수에서 풀려난 노구덕은 그대로 몸을 굴려 괴물에게서 떨어졌다.
“노구덕 씨!”
나무 위에서 사뿐히 떨어져 내리며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유진이었다. 분명 농장을 나설 때에는 펑퍼짐한 평상복 차림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구했는지 착 달라붙는 가죽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늘씬하고 농염한 몸의 곡선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노구덕은 임유진의 몸매를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멍청하게 눈을 껌벅였다.
“이, 임유진 씨? 임유진 씨 맞아?”
“어떻게 된 일이죠? 다른 사람들은요?”
그녀의 재촉에, 노구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웬 여자를 따라서 여기까지 오느라 애들이랑은 떨어졌어……. 그런데 그 여자가 갑자기 저런 괴물로 변해서…….”
여자를 쫓아왔다는 것이 창피한지 말끝을 흐리는 노구덕이었다.
“으음. 대충 어찌 된 사정인지는 알 것 같네요. 저것들은 텐타클 좀비(Tentacle zombie)라는 괴물이에요. 사람으로 둔갑해서 먹잇감을 유인하죠.”
그녀는 정말 기분 나쁜 얼굴로 화살을 쏘아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등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 활에 메기고 시위를 당기는 일련의 동작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이루어질 정도였다. 노구덕이 그렇게 멍하니 앉아 눈 몇 번 깜박하는 사이, 접근조차 못하고 과녁신세를 면치 못하던 괴물은 크게 한 번 울부짖고는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너무나 손쉽게 괴물을 처치한 임유진은 종종걸음으로 괴물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화살을 회수했다. 이런 괴물을 많이 상대해 본 듯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 몸놀림이었다.
“텐타클 좀비는 굉장히 불안정한 개체기 때문에 적당히 시간만 끌면 알아서 죽어버리죠. 데미지를 주면 그 과정이 더 빨라지고요. 어차피 놈들의 역할은 본체에 먹이를 전달하는 일벌레에 불과…….”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저리 비켜. 양호한 표본이 필요하니까.”
노구덕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괴물의 잔해를 헤집으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던 임유진의 설명은 어디선가 들려 온 허스키한 여성의 음성에 가로막혔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그녀는 깡총 뛰어 잔해에서 빠져나왔다.
“채취는 빨리 끝내주렴. 데모나. 안 그러면 화살에 역겨운 냄새가 배니까.”
“호오. 그건 너랑 잘 어울리는 냄새인걸.”
“뭐어? 너 정말.”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노구덕은 “으히힉!”이라는 볼품없는 소리를 내며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다. 모습을 드러낸 여성의 모습이 너무 괴이했기 때문이다. 다소 말랐지만 완연한 여인의 곡선을 그려내는 몸매는 임유진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거기에 적당히 가릴 곳만 가린 나이스한 옷차림은 엄지를 꾹 들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위에 달려 있는 것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 늑대의 머리였다.
노란 눈을 부릅뜬 늑대여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노려본다면 누구라도 놀라 나자빠질 것이다. 간이 안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흥.”
토끼눈을 한 노구덕을 째리며 가볍게 코웃음을 친 늑대여인은, 망토로 몸을 휘감으며 괴물의 사체로 걸음을 옮겼다. 임유진은 그걸 보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후후……. 노구덕 씨, 그거 가면이에요. 늑대가면.”
“가, 가면이라고?”
노구덕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늑대여인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론 괴물의 사체 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여인은 친절하게 뒤를 돌아봐 줄 성격은 아닌 듯 했다.
그 사이 천으로 화살촉에 묻은 진물들을 닦아 낸 임유진이 다가왔다.
“그리 놀라실 것 없어요. 조금 삐딱하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니에요. 데모나 덕분에 제 때에 올 수 있었던 거니까요.”
무슨 소린가 싶어 노구덕은 임유진을 빤히 올려다봤다. 계란형 얼굴에 티 없이 깨끗한 피부를 가진 그녀는 마늘쪽 같은 코 아래 살가운 미소를 달고 있었다. 다시 만난 그녀는 여전히 혼을 앗아가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어깨 위의 갈색 생머리가 윤기 있게 찰랑거렸다.
“데모나는 주술사(Shaman)예요. 저건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지? 하여튼 복잡한 주술인데… 저 가면은 주술도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걸 뒤집어쓰면 늑대처럼 후각이 발달하는데, 사람 냄새를 쫓아 여기까지 온 거죠.”
“뭘 그리 주절대고 있어? 이거나 주머니에 담아. 그리고 거기 오크 늙은이는 이것 좀 들도록 하고. 목숨 값은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서글서글한 그녀의 눈에 빠져들 것처럼 보이던 노구덕은 퉁명스러운 데모나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를 가득 담은 주머니를 발로 툭툭 차며 손짓하는 데모나를 보자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다.
“호호. 이해해주세요. 데모나가 좀…….”
노구덕은 가슴을 피며 괜찮다는 듯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보다 임유진 씨, 가희는 찾았어? 범인은?”
임유진과 재회했을 때부터 쭉 묻고 싶었던 것들이다. 다행히도 임유진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희는 지금 데모나의 오두막에 있어요. 아이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데모나 덕분이에요. 인질범들은…… 모두 죽었고요. 노구덕 씨, 오면서 여자를 쫓아왔다고 했죠? 어떻게 생겼죠?”
“검은 머리의 여자였어. 서나래라는 헌터라고 하던데…….”
“아, 그렇군요. 인질범 중 한 명이 그녀였어요. 하지만 자백을 받아내기도 전에 저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했죠.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은 한 번 본 사람의 겉모습을 흉내 낼 수 있어요.”
노구덕은 오소소 소름이 돋은 팔뚝을 벅벅 긁었다. 어쩌면 자신의 모습을 본 뜬 괴물이 숲속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가희를 찾았으면 빨리 산을 내려가야 하는 것 아냐? 위험하게 왜 여기 있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 이 마녀의 숲은 이레귤러가 일어난 상태예요. 숲의 안개가 감싸고 있는 지역은 ‘놈’의 영역이 된지라, 안개지대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어요.”
“빨리 안 와?”
데모나의 뾰족한 고함에 움찔 몸을 떤 임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응. 잠깐만! 휴우, 이제 그만 가야할 것 같네요.”
그래도 군말없이 데모나의 지시를 따르는 임유진을 보고 있자니,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데모나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딸아이와 함께 데모나의 거처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노구덕도 불똥이 튈 새라 얼른 몸을 일으켜 그녀를 도왔다. 팔짱을 끼고 감시하듯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모나가 돌연 코를 킁킁거렸다. 늑대머리를 한 여자가 자세를 낮추며 킁킁거리는 요상한 광경에 노구덕은 그만 “풋!”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진지함에 간신히 웃음보를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의미로 안도했다.
‘휴. 다행이야. 혹시나 웃었으면 저 사나운 여자가 목덜미를 물어뜯었을지도 몰라.’
데모나는 몸을 굽혀 땅바닥에 코를 처박기도 하고 허공에 코를 쳐들고는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하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후각이 예민한 늑대의 행동을 인간에게 옮겨 놓으면 저런 모습이 될까? 사뭇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인간들이 근처에 있어. 하나, 둘, 음……. 뭉쳐 있어서 잘 모르겠네. 다섯 이상인 것 같군. 대머리, 아는 것 없어?”
“저기, 내 이름은 대머리가 아니라 노구덕이라고. 이왕이면 이름을 불러주면 고맙겠는데.”
“구더기? 어울리는 이름이군.”
“데모나!”
허리에 손을 척 하니 올린 임유진이 노려보자 데모나도 지지 않고 그녀를 마주 쏘아보았다. 샛노란 짐승의 눈이 유난히 번들거렸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널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기분이 좋았던 적 없어. 너도 마음에 안 들고, 애새끼가 칭얼대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인간들이 내 안식처를 침범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저 대머리 늙은이도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너와 행동을 함께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 괴물을 잡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내 엄마라도 된 것처럼 설치지 마.”
임유진은 두 손을 모아 간곡히 부탁하듯 말했다.
“미안해.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어. 다만 난 네가 좀 더 사람들을 존중하길 바라. 넌 지금껏 혼자 살아와서 잘 모르겠지만…….”
“됐어, 잔소리 늘어놓지 마. 짜증나니까. 구더기, 누구랑 함께 들어왔지? 아는 대로 말해.”
데모나는 다분히 독선적인 여자였다. 임유진의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지금껏 혼자 살아온 것 같았다.
‘대머리도 모자라서 구더기라니! 버르장머리 없는 썩을 년 같으니라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티를 낼 순 없었다. 노구덕은 떨떠름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며 말했다.
“크래들타운의 자경단 10명과 내 동료 5명이 숲에 들어왔어. 나와 함께 있던 자경단원 한 명은 저 괴물에게 죽었고……. 나머지 일행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군.”
“꾸역꾸역 많이도 들어왔군. 제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시큰둥한 데모나의 반응과는 달리 임유진은 손뼉을 짝 치며 기뻐했다.
“크래들타운의 자경단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일단 그들과 만나야겠어! 데모나, 가자!”
“모르는 소리. 그 괴물을 기껏 피라미 몇 더해졌다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잠겨 있는 놈에게 접근할 수는 있고? 텐타클 좀비들에게 전멸이나 안하면 다행이지. 됐어, 더 이상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 난 돌아가겠어.”
“데모나!”
두 사람이 의견차를 보이며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자 그녀들의 눈치를 보던 노구덕은 속으로 매정한 계집이라며 데모나를 욕했다. 그러나 이대로 정말 데모나가 돌아가 버린다면 일행과 조우하기란 매우 힘들어 질 것이 분명했기에 어떻게든 설득을 해야 했다. 그는 결국 드리안의 이름을 팔기로 결심했다.
“이봐. 거기엔 자경단 말고도 내 동료들도 있다고.”
“당신과 비슷한 수준의 동료들이라면, 차라리 피라미가 더 낫다고 말해주고 싶네.”
데모나의 신랄한 독설이 여지없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노구덕은 굴하지 않았다.
“흐흐흐. 과연 그럴까? 그중에는 하이 스카우터도 있다고.”
하이 스카우터란 이름 빨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데모나는 조금 전처럼 바로 되받아치지 않고 잠깐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드리안 님은 대단한 실력자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임유진까지 거들고 나서자, 데모나는 노란 늑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런 섬세함이라니. 노구덕은 보면 볼수록 저것이 가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가 전부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가. 얼굴 근육과 신경이 가면과 촘촘하게 이어져 있지 않는 이상,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가면 안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 사이, 고민을 끝낸 데모나는 메마른 윗입술을 기다란 혀로 적셨다.
“…좋아. 서쪽이야. 따라와.”
그녀는 다시 킁킁거리며 냄새를 쫓기 시작했다. 환한 얼굴의 임유진과 노구덕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