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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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동방화촉(洞房華燭)
74# 동방화촉(洞房華燭)
– 남부의 산에서 나타났던 카름은 드레이크 중에서도 하등한 종류였다.
이것이 헌터하우스에 제출한 아이리스 보고서의 주요 골자였다. 아이리스는 그 증거로 수십여 개의 비늘 조각과 거대한 한 쌍의 날개, 카름의 핵 일부를 제출했다. 다만, 드레이크와의 전투가 너무 격렬했던 탓에 그 본체가 거의 소실되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와중에 영상 수정이 파괴되었다는 핑계는 덤이었다. 물론, 해당 개체가 드래고니안이었다는 것은 철저한 극비였다.
핵 자체로 카름의 종류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 핵에 담긴 기운은 확실히 고위 카름의 것이었기에, 헌터하우스에서는 아이리스의 보고서를 인정하여 남부의 산에서 일어났던 이레귤러 사건을 일단락했다. 슬슬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칼립스 헌터하우스에서도 그런 외딴 지역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진 않은 듯했다. 그리고 헌터하우스에 제출했던 전리품들은 금전적인 보수와 함께, 몇 가지 샘플을 제외한 대부분이 아이리스로 반환되었다.
그리고 배성길의 사체는… 현재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서 아이리스의 비밀 안가에 들어가 있었다. 먼젓번 라이오넬이 그랬듯, 아이리스에서도 전담팀을 구성하여 그 몸에 담긴 비밀을 캐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 구성원은 데모나와 소피아, 헨더슨 등 이쪽 분야에 지식이 해박한 마법사들이었다.
서늘한 한기가 감도는 지하실은, 땡볕하나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았다. 곳곳에 비치된 마법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덕분이었다.
배성길은 커다란 강철 침대 위에 똑바로 누워 있었다. 숨이 끊어진지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피부는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기 짝이 없었다. 일부 갈라진 절단면 사이로 엿보이는 통상적인 시체처럼 근육도 바짝 수축해 있지 않고, 투박하게 덩어리진 질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양 옆에 시립하듯 서 있는 것은 데모나와 소피아. 헨더슨은 어딜 갔는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두 사람만이 손을 바쁘게 깨작거리며 사체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작은 핀셋으로 사체의 절단면을 벌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세포조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소피아는 갑자기 힘껏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으아아아압차……! 히유우… 시원해라.”
“…….”
“아무리 봐도 조직은 살아있는 것 같은데… 심장도, 두뇌활동도 완벽히 정지. 중상을 입긴 했어도 치명상까지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리도 맥없이 죽어버렸을까요? 생포당하면 죽게 되는 암시에 걸려있었다고 가정하면, 지나친 생각이려나…? 하여튼 아쉽네요. 물어볼 게 많았는데 말이에요.”
“…….”
“데모나 씨?”
기계적으로 손칼을 놀리던 데모나는 왜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들어 소피아를 쳐다봤다.
“왜? 같이 떠들 말상대가 필요하면, 저기 좋은 상대가 있는데.”
소피아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지그시 고개를 돌렸다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데모나가 가리킨 것은 아무것도 없는 휑한 벽이었다.
“너무해요. 저보고 벽이랑 얘기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귀찮게 말 시키지 마. 입을 꿰매버리고 싶으니까.”
“방해했다면 미안해요. 성과가 별로 없어서 좀 지루해졌나봐요. 그런데… 그 장갑, 원래도 끼고 있던 건가요?”
능숙하게 드래고니안의 속살을 파헤치던 데모나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에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얇은 가죽 장갑이 덧씌워져 있었다.
“…약초를 채취하다 조금… 다쳤거든. 상처가 덧나면 안 되니까.”
“흐응…. 데모나 씨가 채집을 하면서 다치기도 하다니, 별일이네요. 그때 그 군락지에서 다친 건가요?”
“그래….”
떨떠름히 대꾸한 데모나는 별로 대화를 지속하고 싶지 않은지 시선을 다시 배성길의 사체가 있는 족으로 내려버렸지만, 소피아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굳이 불편하게 장갑을 낄 이유가 있나요? 뭣하면 치유 주문이라도 써 드릴 수 있는데요.”
소피아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데모나는 고운 이마에 몇 겹의 주름을 만들어내며 짜증을 냈다.
“됐어. 그 정도로 낫는 상처가 아니야. 쓸데없는 데 관심 갖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시지.”
“네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작게 입맛을 다신 소피아는 다시금 눈에 힘을 주고 배성길의 사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여우처럼 은밀한 시선은 줄곧, 데모나가 끼고 있는 장갑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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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시간 뒤. 배성길의 사체가 보관되어 있는 비밀 안가에서 퇴근한 소피아는 자신의 방에서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 비치된 통신용 수정에서 말간 빛이 들어왔다. 그러자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 수정을 낚아채고는 침대에 편히 누운 채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수정의 투명한 단면에서 흐릿한 영상이 맺히더니, 이내 선명한 여인의 얼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온화한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동부 지구의 헌터, 박선주였다.
“선주 언니!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일주일 전에도 연락했잖아.
“그래서 반갑지 않다는 거예요?”
-얘는. 당연히 반갑지. 호호호!
아트로포스 사태 이후, 급속도로 친분을 쌓은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지기가 되어 있었다. 서로 동부와 서부에 속해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통신 수정을 통한 연락은 빈번하게 주고받는 편이었다.
성격 자체에 꾸밈이 없고 털털한데다, 아줌마 기질이 다분한 박선주는 지난 2년 동안 그녀에게 있어 든든한 조언자 역할을 해주었다. 실제 그녀는 소피아보다 일곱 살 연상이면서, 슬하에 두 아이를 둔 어머니이기도 했다. 때문에 소냐를 처음 양녀로 들였을 때에도 박선주에게 많은 도움을 받곤 했다. 비록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약간 삐딱선을 타 버린 소냐였지만….
잠깐 소냐에게 생각이 미친 소피아의 얼굴에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사용인에게 들어 보니, 오늘도 소냐와 가희 간에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크게 번진 싸움은 아니었지만… 가희의 심기를 살살 긁듯이 건드리는 그 교활한 면모는 여전한 것 같았다.
‘내일… 소냐와 대화를 해봐야겠어. 이대로 둘 순 없으니….’
-소피아?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 아니에요.”
금세 어두운 기색을 지워버린 소피아는 활짝 꽃이 피는 것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동안 흔한 저자의 여인들처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여인의 대화는, 어떤 화제에 이르러서 급격히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어머! 드디어 허락을 받은 거야? 축하해! 잔치국수라도 먹어야 되는 거 아니니?
“아뇨… 그 정도까지는…….”
잔치국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일처럼 뛸 뜻이 기뻐해주는 박선주를 보자 소피아의 얼굴에도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그녀에게는 절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얼마 전, 임유진의 포근한 품에 안겨 엉엉 울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정말 다행이야. 2년 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그래서, 식은 언제 치를 거야? 축의금 두둑이 챙겨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동생 결혼식인데 체면치레는 해야지!
“시, 식이요? 그건 좀…….”
-참, 식은 무리겠다. 그치? 유진 씨나 소율이도 따로 식은 안 올렸다고 했으니까. 에이, 그래도 좀 아쉽다, 얘. 요즘은 간소하게라도 형식은 갖추는 게 대세인데…….
…가끔 이렇게 혼자 너무 앞서나가는 게 단점 아닌 단점이었지만. 이렇게 박선주의 아줌마 모드가 발동되면 백전연마의 소피아마저도 난처한 지경에 처하곤 했다. 그녀의 수선에 피식 입매를 터뜨린 소피아는 팔랑팔랑 손사래를 쳤다.
“저는 지금만으로도 과분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유진이 언니나 소율이였다면, 도저히 절 받아들이진 못했을 거예요.”
-…음, 내가 네 속사정까지 자세히 아는 건 아니라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가져. 그런데 합방은 언제니?
진지한 분위기로 몰고 가다가도 금세 또 기습적인 질문을 던지는 박선주였다. 그에 소피아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 그것까지는… 저도 잘….”
-어휴, 답답해! 아무리 허락을 받았다지만 새신부가 그렇게 넋 놓고 있어서야 되겠니? 안 되겠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거사를 치르자! 이런 건 후딱후딱 해치워버려야 돼!
실로 불 같은 추진력. 저 상냥해 보이는 얼굴 어디에 이런 무대포 같은 면이 숨어 있는 것인지, 실제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어째 본인보다 더 열을 내는 것 같은 박선주의 태도에, 소피아는 황급히 고갯짓을 했다.
“너무 빨라요! 겨우 어제 복귀했단 말예요!”
-그럼 네가 생각하는 적절한 시기가 언젠데? 있지, 소피아. 남자란 시도 때도 없이 여자 생각이 나는 법이란다. 빠르고 늦고 같은 건 없다구.
“그…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2년이나 유예 기간을 줬으면 됐지, 천년만년 준비할 거니? 대체 무슨 준비가 그렇게 오래 걸려? 그러고 보니 너, 승부 속옷은 있는 거야?
“스, 승부 속옷이요?”
소피아는 속사포처럼 몰아치는 박선주의 질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는 책사로서는 초일류였지만, 여자로서는 이류에 불과했다. 물론 아이리스 초기에 노구덕의 환심을 사고자 유혹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애교와는 별개로 여자로서의 내실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요컨대, 밤일 쪽으로는 이론만 빠삭한 것이다.
-승부 속옷도 몰라?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참, 가만 놔두자니 너무 불안하네. 너, 오늘 위 아래 속옷 뭐 입었니?
“위, 아래 속옷이요? 그야 당연히….”
평소답지 않게 어수룩하게 답하는 소피아가 어지간히 갑갑했는지, 화면 속의 박선주는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색깔 말이야, 색깔! 깔맞춤 했냐고 물어보는 거야!
“…….”
깔맞춤이라니. 이 또한 생소한 단어였으나, 대강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아마 색깔을 맞췄냐고 물어보는 것일 터. 소피아는 가만히 동공을 올려 오늘 입은 속옷의 색을 떠올렸다. 아마도 물빛에 가까운 하늘색과 흰색… 불합격이었다.
“…아니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연히 중요하고말고! 소피아, 바로 그게 네 맹점이야! 스퀘어에서는 여자가 얼굴만 이쁘고 아양만 잘 떨면 될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말하는 팜… 그러니까 지구는 좀 다르거든! 우리에겐 우리만의 정서와 에티켓이 있단 말이지! 당연히 아이리스 오너도 지구 출신이니, 그런 쪽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어?
듣고 있던 소피아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처음에는 괜히 열을 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박선주의 말에는 갈수록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오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언제 덮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새신부가 깔맞춤도 안 하고! 도대체 너무 안일한 거 아니니? 내 여자력 측정에 의하면, 네 점수는 100점 만점에 잘 쳐줘야 겨우 50점이 될까말까야!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구!
여자력은 또 뭘까.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낯선 단어들에 머릿속이 아리송했으나, 소피아는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왠지 모르지만, 저 가열한 호통을 들으니 굉장히 큰 죄를 범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선주 언니, 그럼 어떻게 하죠?”
소피아가 삐질삐질대며 물어오자, 화면 속의 박선주는 파이팅 자세를 취한 채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비쳤다.
-진즉에 물어봤어야지! 좋아.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도록 하렴!
“잘 부탁드릴게요. 언니.”
천군만마와 비견될만한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겠다, 오랜만에 배우는 입장이 된 소피아는 다소곳한 자세로 부탁했다. 현지인이라 할 수 있는 박선주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듣고 나니, 왠지 무조건 먹힐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이번 파트는.. 네… 무르익은 소피아를 삶아 먹는 그런 파트입니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리리플은 5분뒤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도라이몽 / 통수인지 아닌지는 아직 불명!
벌레 / 허허.. 이제 슬슬 데모나 파트도 진행시켜야하니까요
우낄푸핫 / 맞습니다.. 작가 때문에 궂은 일을 도맡아버린 소율이 .. 애도를.
†아마테라스† / 아직 통수확정된 것도 아닌데 벌써??
cxz778 / 설마가 사람을.. 크음..
asd메이지 / 유진이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엠파이어3 / 바로 그렇습니다아아아 갑시다
호야[虎夜] / 오타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측이 현실이될지 아닐지는 두고봐야겠죠?
쿠쿠큐 / 네 일부가 구더기에게 이식되어 있죠…
북치네 / 아마 50편 내로 결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식활자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쉿! 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라쟁이 / 그럼 죽창 대신 육창을 꽂도록 합시다
월병인 / 어.. 그런데 왜 월병인님 아이디를 볼때마다 김정인이 떠오르는 걸까요? 인 때문에..?
가식적썩소 / 아직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있다고 아뢰옵니다
에보커 / 네 드디어 선택의 때가 왔습니다… 무슨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요.
코드표 / 저한테 물어보셔도 전 아무것도 몰라요~!
데시트 / 엥? 사망 플래그 였습니까?
앙마스키 / 그런 의미에서 추천을! 추천을 주세요!
劍氣劍風 / 도박이 아니라 실험중독(?) 아버지…
김도리131 / 네 바로 그 분기점에 도달했습니다
인첸 / 본격 막장행인가요 ㅋㅋㅋ
그눈건 / 데모나 조교라.. 작가인 저도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은신설야 / 흠흠… 그런 루트도 있긴 하지만 다른 루트도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