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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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사라진 마녀
77# 사라진 마녀
클럽 블레이즈(Blaze). 칼립스의 리그에 속한 클럽들 중 손에 꼽히는 전력을 지닌 곳으로, 마티아스 일파의 핵심 세력이기도 했다. 속해 있는 헌터들의 성향은 대부분 박투, 혹은 중병기를 다루는 무투파들.
블레이즈의 오너, 아주카는 과거 아이언비스트(Iron beast)라 불리며, 웨스턴리그에서 장기간 활약한 적이 있는 유명한 헌터였다. 거기에, 임대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프라임리그에도 한 시즌 발을 담가 본 전력이 있을 정도. 지금이야 나이를 먹어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그 관록과 노익장은 현역에 복귀해도 무리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까득. 까득. 까득.
앉아 있음에도 바윗덩이가 들어앉은 듯한 위압감을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는 노인, 아주카는 역동적인 팔 근육을 움직여 아주 세심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작업이란 다름 아닌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의 손질.
“음, 이제 제법 광이 나는군.”
반들반들하게 갈려진 송곳니를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보던 아주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손에 들고 있던 휴대용 숫돌을 책상 아래의 서랍에 집어넣었다.
두꺼운 입술 사이를 흉험하게 비집고 튀어 나온 송곳니와, 질기고 단단해 보이는 녹색 살가죽으로 뒤덮인 통나무 같은 팔다리. 블레이즈의 오너, 아주카는 노구덕과 같은 오크였다.
“오너.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아아, 잠깐만.”
말을 번복한 아주카는 그의 전용으로 제작된 큼지막한 테이블 아래에 눈길을 주었다.
“이만 나오거라.”
“츄웁… 춥… 네….”
잠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테이블 아래에서 반라의 미녀 두 명이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도톰한 입술 주변이 온통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테이블 아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
“크흠… 조금이면 됐었는데… 잠깐 별실에 들어가 있거라. 일이 끝나면 부를 터이니.”
“네, 주인님.”
동시에 다소곳이 대답한 노예 미녀들은 달덩이 같은 둔부를 살랑거리며 집무실과 연결된 별실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들의 요염한 뒤태를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던 아주카는 다시 밖을 향해 소리쳤다.
“됐다. 들여보내.”
“예.”
끼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용인의 뒤로 장작대기처럼 길쭉한 체형을 지닌 중년 사내가 성큼 발을 내딛는 것이 보였다. 말라깽이 같은 몸에 얼굴빛이 고목처럼 거무죽죽한 것이, 꽤나 음침한 인상의 사내였다.
아주카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은 말라깽이 사내는 돌연 코를 킁킁거리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제가 때를 잘못 맞춘 것 같군요.”
“한창 재미를 보고 있기는 했지. 다른 때라고 달라질 건 없지만.”
“이거 참, 일흔이 넘었는데도 이토록 정정하시니… 이럴 때 보면 오크라는 종족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슬슬 아침에도 맥이 빠지고 있는데요.”
“그 거금을 처바르고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건가? 자네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상기해줬으면 하는데.”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블레이즈 오너.”
말라깽이 사내, 유토는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확실히, 오늘의 만남이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었다. 블레이즈 오너 아주카는 두말할 것 없는 마티아스 일파의 거두였고, 말라깽이 사내 유토는 그룸달 일파에 속해 있는 헌터였으니까.
자칫 뒷말이 새어나올 수 있는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카가 유토와 회동을 가진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그룸달 일파의 헌터, 유토는 오늘 그와의 만남을 위해 엄청난 거금을 쾌척했다. 최근 첩들의 낭비벽 때문에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주카로서는 섣불리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거금이었다. 참고로, 아주카가 거느리고 있는 처첩의 숫자는 물경 스무 명. 거기에 방금 전의 두 여인과 같은 노예들까지 합치면 거의 서른 명에 가까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해야 할까. 달마다 그녀들의 사치를 위해 들어가는 돈은 빅클럽의 오너인 아주카라도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돈도 차명계좌로 받았으니, 나중에 세탁을 해버리면 돼. 유토, 네놈이 무슨 제안을 하든 난 흔들리지 않을 거다.’
돈은 받겠지만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아주카는 ‘먹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룸달의 사자로 온 유토가 무슨 말을 할지는 뻔한 일. 하지만 겨우 이깟 돈이나 더 받자고 미래가 보장된 1인자의 밑에서 굳이 2인자의 휘하로 자리를 옮길 리 없지 않은가.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오늘은 그룸달 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흐음…. 예의상 들어주기는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도록.”
거들먹거리는 그의 태도에도 유토는 접대용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과연 마티아스 일파의 거두다운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이건 알고 계십니까?”
“느음?”
“최근 마티아스 님과 레그나토르의 맹주가 회동을 가진 모양이더군요.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말입니다. 미리 심어둔 밀정이 아니었으면 저희도 까맣게 모를 뻔했습니다.”
“무어라?”
아주카의 험상궂은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레그나토르의 맹주 노구덕. 자신과 여러모로 닮은 자인지라 은근히 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던 아주카였다. 별로 좋은 쪽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회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희 쪽 두뇌들은 두 분이 은밀히 협정을 맺은 게 아닐까 예상하더군요.”
“협정이라고…?”
“예. 철의 동맹이 마티아스 님의 휘하로 들어가는 대신, 마티아스 님이 아이리스 오너에게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를 약속하신 게 아닐까 하는…….”
“당치도 않은 소리! 마티아스 님이 날 두고 그런 애송이에게!”
다혈질인 오크답게 금세 역정을 내며 테이블을 내려치는 아주카. 그 예상대로의 모습에 유토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씰룩거렸다.
‘제법 정계에서 굴러먹은 모양이다만 그래봐야 멍청한 오크다. 마티아스 님이 이제껏 뒷배를 봐준 것도 네놈처럼 적당히 이용해먹기 편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거든.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나가떨어졌을 인간…. 슬슬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도 되었어.’
유토는 내심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그는 표면적으로 그룸달 일파에 속한 헌터였지만, 실제 그 진정한 정체는 마티아스가 그룸달 쪽에 심어 놓은 이중간첩이었다.
‘네놈이 사라지고 마티아스 님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나도 드디어 양지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네놈의 자리는 내 차지가 될 테지.’
아둔한 아주카와 그룸달을 엮어 두 사람의 평판을 동시에 깎아내린다. 그게 마티아스가 유토에게 하달한 명령이었다. 이쪽에서는 필요 없어진 말을 하나 버리는 셈이지만, 저쪽은 본체에 직접적으로 타격이 가는 셈이니 이득을 따져 볼 것도 없었다.
‘이제 이놈을 부추겨 그룸달과 엮이게만 하면…….’
두근!
득의한 속내를 숨기며 아주카를 기만하려던 유토는 갑작스레 헛바람을 들이키며 심장어림을 움켜쥐었다. 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숨을 쉬기 어려웠다.
“커헉!”
“이, 이놈이! 무슨 개수작이냐!”
철컹!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유토가 심상찮은 기색을 보이며 비틀거리자, 위험을 감지한 아주카는 뒤에 기대어져 있던 대검을 집어 들었다.
백지장처럼 탈색된 얼굴로 꺽꺽거리던 유토의 표정은 점점 기괴해지고 있었다. 아니, 그의 몸 전체가 학질에라도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며 경련하더니, 전신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뒤틀리고 있었다.
“꺼으으… 가, 가슴이… 도, 독…? 독인가…?”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불거져 나온 유토가 쥐어짜듯이 내뱉은 말에, 대검을 치켜든 아주카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놈, 유토! 그룸달이냐? 그룸달이 네놈보고 여기서 죽으라고 시키기라도 한 게야? 내게 누명을 씌우려고? 어림없는 짓거리다! 이 방에는 영상수정이…!”
“크하아아악!”
아주카가 당황한 사이, 침을 질질 흘리며 비틀대는 유토의 몰골은 어느새 괴물에 가깝게 변모해 있었다.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두 눈 위,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린 이마에는 염소의 그것처럼 휘어진 뿔이 두 개나 돋아났고, 짧게 손질되어 있던 손톱이 갈고리처럼 예리하게 뻗어 나왔다. 게다가, 비정상적으로 길쭉해진 양 팔은 원숭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 끔찍한 형상에, 아주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카, 카름? 유토, 네놈 어떻게 된…!”
“깨에에에에에엑—!”
아주카의 당혹스런 음성은 유토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에 가로막혀 흔적도 없이 묻혀버렸다.
그리고… 쩌억 벌어진 유토의 입에서 시뻘건 화마가 번뜩였다 싶은 순간.
콰아아앙!
그의 체내에서부터 발생한 엄청난 폭발이 집무실 일대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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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칼립스 전역은 때아닌 호외로 발칵 뒤집혔다.
-충격! 클럽 블레이즈에서 발생한 대참사!
-폭발에 휘말린 블레이즈 오너 피살! 원한에 의한 살해인가, 아니면 의도된 습격인가?
-마티아스 위원, 애도와 함께 깊은 유감 표명…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을 천명하다.
도시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선거를 앞둔 이때, 공교롭게도 마티아스 일파의 거두 중 한 명인 아주카가 살해당했다. 그것도 폭발 테러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아직 테러라고 단정 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클럽 홀에서 일어난 인위적인 폭발이라면 백이면 백 의도된 테러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 휘하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만큼, 마티아스의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 신속했다. 그는 치안청과 헌터하우스에 조속히 연통을 넣어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전담 조사팀을 구성했고, 클럽 블레이즈에 파견했다. 이 모든 게 사건 발생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욱더 수상쩍은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집무실에 비치되어 있던 영상수정이 파손된 탓에 결정적인 증거를 잡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꽤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먼저, 집무실에서 발견된 괴이한 흔적이었다. 폭발 당시 집무실에 있었다는 아주카와 노예 여인 두 명의 살점과 뼈를 제외하고,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든 조직세포가 발견되었다. 조사팀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번 습격이 카름에 의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이 조심스레 제기되었다.
그 다음, 아주카가 살해당했을 때 그를 방문했던 의문의 남자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빼빼 마른데다 키가 컸다고 한다. 게다가 폭발 직전 집무실에서 ‘유토!’라는 이름과 함께 노성이 오가기도 했다고. 헌터하우스는 그 인상착의와 증언에 따라, 그 의문의 남자가 그룸달 일파에 속해 있는 헌터 유토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그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불과했다. ‘아주카 피살 사건’은 보다 깊고 끈적이는 흑막이 숨어 있는 사건이었다.
“…아주카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부상이 엄중하다보니……. 제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아니, 영상수정을 손에 넣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아주카는… 만일에 대비한 보험이지.”
그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는지, 살짝 늘어져 있던 임유진의 어깨가 펴졌다.
“영상수정도 깨졌고, 아주카의 시체도 그대로 있어. 그 의심 많은 너구리도 이번엔 속지 않을 수 없을걸.”
“그렇…겠죠.”
모든 게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임유진의 얼굴에는 어쩐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마티아스가 고안하고, 노구덕이 조력한 이번 사건은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였다.
이중첩자인 유토의 몸에 카르믹스톤을 심고, 때가 되면 그 몸을 잠식해 폭발을 일으키도록 잔혹한 장치를 해뒀다. 마치 그 변종 트롤처럼. 유토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간 폭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시술을 담당한 것은 데모나였다.
그리고 임유진은, 투명망토를 착용하여 블레이즈 클럽 홀에 잠입, 유토의 몸이 폭발하기 직전 아주카와 영상수정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현재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그녀가 남기고 간 가짜 영상수정과 모조시체의 잔해였다.
천하의 마티아스도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투명망토라는 신비한 아이템과, 광속을 자랑하는 임유진의 속도가 아니라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재주이기도 했다.
“이제 곧 차명계좌의 존재가 드러날 테고, 그에 대한 추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그룸달이 의심을 받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노구덕은 임유진의 어두운 낯빛을 보고는 돌연 말을 멈추었다.
“유진아.”
“네, 네?”
“이번 일…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
그 나직한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깨달은 임유진은 아차 자책을 하며 재빨리 얼굴을 폈다.
“아니요! 당신을 돕기 위한 일인걸요. 후회는 없어요.”
임유진은 세차게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위원직을 두고 벌이는 정쟁은 이 정도 일은 약과일 정도로 추잡하고 더러운 암투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시궁창에서 뒹굴려면 기꺼이 그 오물을 몸에 묻혀야 하는 법. 평생 그의 옆에 있기로 다짐한 이상, 홀로 손을 깨끗이 할 마음은 없었다.
“여기서 지체했다간, 다시 5년을 기다려야…….”
“주, 주인님!”
비장한 얼굴을 한 임유진이 말을 이어가던 찰나, 집무실의 문을 부서뜨릴 듯 박차고 뛰어 들어온 이가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린 채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여인, 소피아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다급히 소리쳤다.
“헉, 헉! 데, 데모나! 그 여자가 사라졌어요! 아주카도! 영상수정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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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작가 다시 복귀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기조심하세요!
이제 소피아 파트도 마무리 지었으니, 슬슬 데모나 파트를 진행할까 합니다!
내부단속 빨리 끝마치고 위원도 먹고, 십존도 먹고 해야죠! 갈길이 바쁘니 빠르게 진행합시다!